물장구치는 법, 열 번째

20241216 짧은 소설 10회차

by 별흔

물장구치는 법, 열 번째

"작은 물결의 속삭임을 서서히 듣게 될 것이다."


며칠 후, 나는 미용실을 나서며 수현이 던진 한마디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혹시, 우리 딸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그녀는 그 말 후에 짧은 웃음을 지으며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손님을 맞이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더 묻지 못했다.

그녀의 딸에 대한 이야기는 아직도 그녀의 마음 깊은 곳에 묻힌 채로.


그날 밤, 나는 수현의 말을 곱씹으며 침대에 누웠다.

그녀가 나에게 딸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고 했던 건, 분명 큰 결심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녀가 준비되지 않은 이야기를 무리하게 꺼내도록 독촉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그저 기다리기로 했다. 그녀가 진짜로 말하고 싶을 때까지.


그 후에도 나는 주말마다 미용실을 찾았다.

수현은 변함없이 밝은 미소로 나를 맞이했고, 우리는 늘 그렇듯 커피를 나눴다.

이야기의 주제는 가벼운 농담에서 지나간 추억까지 다양했지만, 딸의 이야기는 다시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 그녀가 작은 노란색 앨범 하나를 꺼냈다.


“이거… 우리 딸 앨범이에요.”


그녀는 앨범을 내밀며 조심스레 말했다.

나는 그 앨범을 받아 천천히 넘겼다.

사진 속의 소녀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반짝이는 눈과 생기 있는 표정에서 아이의 맑은 에너지가 느껴졌다.

사진 속의 수현은 지금보다 훨씬 젊고 밝아 보였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은 어릴 때의 나와 젊었을 때의 아버지처럼 비슷했다.

수영 대회에서 수상을 하고 해맑게 웃고 있었다.


“이 사진, 딸아이 초등학교 졸업식이에요.”


그녀는 한 장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날 제가 바빠서 머리를 제대로 못 해줬거든요. 그런데도 얼마나 행복해했는지 몰라요.”


그녀의 목소리는 평온했지만, 손끝은 살짝 떨리고 있었다. 나는 사진을 넘기며 수현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 애는 참 착했어요. 친구들하고도 잘 지냈고, 제가 힘들어할 때면 ‘엄마, 내가 도와줄게’라면서 나섰죠.”


그녀는 앨범을 보며 환하게 웃었다.

그러나 사진을 한 장 한 장 넘길수록 그녀의 미소는 서서히 사라졌다.

그리고 한 장을 넘긴 뒤, 그녀의 손이 멈췄다. 사진 속 소녀는 어딘가 달라 보였다.

웃고는 있었지만, 그 눈빛엔 무언가 알 수 없는 불안이 담겨 있었다.


“이게… 마지막 사진이에요.”


그녀는 나지막이 말했다.


“이때 이미 마음이 많이 힘들었나 봐요. 그런데도 저한테는 아무 말도 안 했어요.”


나는 그녀의 옆에 앉아 조용히 앨범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만큼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수현은 말없이 사진을 바라보다가 이내 눈을 감고 한숨을 내쉬었다.


“저는요, 아직도 제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어요. 그 애가 그렇게 떠나기 전까지, 저는 아무것도 몰랐거든요.”


그녀의 목소리는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의 손을 가만히 잡았다.


“수현 씨는 잘못한 게 없어요.”


나는 천천히 말했다.


“그냥… 너무 힘들었던 거예요.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그녀는 한동안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이내 작게 웃으며 말했다.


“고마워요. 이렇게 말해줘서.”


그날 이후, 수현은 조금 더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녀는 딸아이와 함께했던 행복한 순간들,

그리고 딸이 떠난 후 얼마나 많은 날을 혼자 버텨왔는지를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러던 어느 날, 수현이 뜻밖의 제안을 했다.


“혹시, 저랑 같이 딸아이 묘지에 가줄래요?”


나는 그 말에 잠시 놀랐지만, 그녀의 진지한 표정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주말, 우리는 작은 꽃다발을 들고 그녀의 딸이 잠든 곳으로 향했다.

묘지에 도착한 수현은 조용히 무릎을 꿇고 딸의 이름을 부르며 한참을 말없이 있었다.

나는 그녀가 마음껏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조금 떨어진 곳에서 기다렸다.


한참 후, 그녀가 일어나 나에게 다가왔다.

그녀의 얼굴은 눈물로 얼룩져 있었지만, 어딘가 한층 가벼워진 듯 보였다.


“고마워요, 정말.”


그녀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이제는 좀 괜찮을 것 같아요.”


나는 그녀에게 미소로 답하며 말했다.


“수현 씨가 괜찮아질 때까지, 언제든 옆에 있을게요.”


그날 이후, 수현의 미소는 한층 더 밝아졌다.

그녀는 딸과의 기억을 이제 더 이상 아픔이 아닌,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하려는 듯했다.

그녀와 나는 여전히 매주 만났고, 커피를 나누며 서로의 삶에 대해 이야기했다.

우리는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친구가 되어가고 있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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