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엔 부자들이 요양보호사를 해요
나이 든 여자의 알바 이야기 / 요양보호사
95세가 된 후 엄마의 허약해지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 최근에는 하루 중 앉아 있는 시간도 식사 시간을 포함하여 총 세 시간을 못 채우는 것 같다. 입맛이 없으니 식사도 여러 번 사정을 해야 먹일 수 있다. 식사 중에도 손목 쓰는 걸 힘들어할 때가 많아서 내가 반찬을 숟가락에 놓아주어야 한다. 식사 후 30분을 앉아 있기가 힘들었다.
소파에 앉아 있을 때 잠시 지켜보면 머리를 오래 가누지 못하고 고개를 툭, 툭 떨어뜨린다. 목 근육이 너무 소실되어 있다. 엄마는 고개를 떨어트리지 않기 위해 손으로 이마를 짚고 있어 보지만 잠시 후엔 손가락 힘도 없어서 툭, 고개를 떨어트리는 일이 계속되었다. 그러다 내가 보고 있으면 얼굴을 찡그리며 나에게 허락을 구하듯 묻는다.
"밥 먹은 지 얼마나 지났어? 밥 먹고 금방 드러누우면 체할까?"
결국 소화제를 먹고 누워 보지만 누워 있어도 몸을 가눌 수가 없다고 말한다. 한번 돌아누우려면 온 힘을 다해도 시간이 한참 걸린다.
엄마가 일상생활을 힘들어하다 보니 우리 둘의 대화는 가끔 너무 나갈 때가 있다. 엄마가 물었다.
"우리나라는 언제 안락사가 가능해진대냐?"
"모르지. 언론에서 가끔 얘기가 나오고는 있지만 10년은 더 지나야 하지 않겠어?"
"네가 사람들 모르게 날 어떻게 해주면 안 되나? 안 되겠지? 네가 법을 어기는 거니까 안 되는 거지. 그게 되면 좋을 텐데."
"안락사를 법으로 허용하면 죽기 싫은 사람도 누가 죽일 수 있으니까 쉽게 허용할 순 없지."
요양보호사를 대상으로 하는 치매교육 강의 중에 노인들을 잘 보살피는 모범적인 지역에 관한 얘기가 하나 있었다. 그 얘기를 엄마한테 했다.
"엄마, 독거노인들이 많은 지역에서는 동네 이장이 하는 아주 중요한 일이 있는데, 그게, 번개탄을 누가 사 가는지 유심히 살피는 거래."
"누가 자살할까 봐?"
"응"
"힘들어 죽겠는데, 맘대로 죽지도 못하게 하는구나."
한 달 전만 해도 나는 엄마에게 좀 더 오래 살아 달라고, 힘내 달라고 부탁하곤 했다. 이젠 엄마가 빨리 갈 수 있을 거라고, 조금만 참고 기다리면 편하게 갈 수 있을 거라고 위로해야 하는 시기가 된 것 같다.
최근 나는 요양보호사 일을 알아봐야 하는 상황이었다. 기존에 하던 일은 올해 말로 끝날 예정이었고 현재 가족 요양으로 엄마를 돌보고 있지만 그걸로는 생활비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치매교육을 받으면 비교적 증세가 약한 5등급 치매환자를 볼 수 있다고 하여 교육을 받기 시작했었다. 그 와중에 엄마의 노환은 갈수록 심해졌다. 치매교육은 끝났고 시험을 치르고 수료증이 나왔다. 엄마를 혼자 두고 내가 일하러 다녀야 하는지 고민스러웠다. 엄마는 누운 채로 나에게 물었다.
"하루 몇 시간 일한다고?"
"세 시간."
"그러면 가고 오고 삼십 분씩 한 시간 하고, 네 시간이면 집에 오네?"
"맞아."
"걱정 마. 요즘 같으면 그 정도는 혼자 있을 수 있어."
나는 내가 집에 없는 동안, 엄마가 화장실에도 조심조심 갔다 오고 냉장고에선 눈앞에 보이는 것만 꺼내먹고, 절대 가스렌지는 켜지 말아야 한다고 몇 번이나 얘기했다.
5등급 어르신을 담당하려는 요양보호사가 품귀라더니 진짜 그런 듯했다. 수료증이 나온 바로 다음날, 내가 속한 요양보호센터장의 소개로 다른 지역 센터장이 전화를 해 왔고, 그 지역에 사는 5등급 여자 어르신을 맡아줄 수 있겠느냐고 물어왔다. 그 센터장으로부터 여러 가지 질문을 받았다.
"그동안 무슨 일 하셨죠?"
"여러 가지 알바를 했어요."
"실은 이 어르신이 어렵게 살아온 사람을 원해요. 평생 남의 집 일을 하면서 자식들 다 키우고 살아온 양반이라 부잣집 요양보호사는 싫대요."
"...? 요양보호사들은 전부 어렵게 사는 사람들 아닌가요?"
"요즘엔 대개 부자들이 요양보호사를 해요. 배운 것도 많고, 젊었을 때 번듯한 직장에 다녔던 사람들이 많아요. 건물도 한 채 있고 그런 사람들이 해요."
"그런 사람들이 뭐 하러 이렇게 힘든 일을 하는 걸까요?"
"봉사 활동도 할 겸, 일도 할 겸 하는 거죠. 건강보험료 적게 내려고 일하는 사람도 있고요."
나는 뭔가... 열심히 걸어왔는데 어디선가 길을 잘못 들어서 낯선 곳에 있게 된 기분이었다.
"그렇군요... 몰랐어요."
"근데 이 어르신이 그런 사람 말고 자기랑 대화가 통하는 사람을 찾아 달래요. 외로워서 사람을 구하는데 부자들 하고는 대화가 안 통한다는군요."
"저야, 뭐, 주방 알바나 청소 알바, 애들 보는 거 다 해봤으니까 얘기는 통하겠죠."
"잘됐네요. 일은 쉬워요. 그냥 어르신, 어르신, 하면서 비위만 잘 맞춰주면 돼요."
"알겠습니다."
지역이 부자 동네여서 근처에 사는 요양보호사들도 다 부자인가, 하는 생각을 해 봤다. 어르신이 사는 아파트도 고급 아파트인 줄 알았다. 센터장과 함께 면접 겸 인사를 드리러 어르신 댁에 갔다. 어르신이 사는 아파트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임대아파트였다. 어르신한테는 죄송하지만 그게 조금은 마음을 편하게 해 줬다. 어르신은 처음에는 요양보호사가 바뀐다고 못마땅해했다. 센터장이 말했다.
"어르신, 이 사람이 식당에서도 일해 봤대요."
"그래? 음식이나 맛있게 해 주면 좋겠는데. 요즘 통 먹지를 못해서."
내가 대답했다.
"제가 주방 알바 하면서 설거지뿐이 안 해봐서요, 음식을 잘하진 못하는데요, 어르신께서 잘하셨던 음식을 가르쳐 주시면 제가 열심히 배워서 해드릴게요."
어르신이 의외로 환하게 웃으셨다. 마치 자신의 역할을 발견한 것 같은 표정이었다. 어르신은 내가 그 댁으로 가는 걸 허락했다. 엄마 때문에 마음은 무거웠지만 나는 내년 초부터 그 집에서 일하기로 센터와 계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