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륜

by 이수호

H 씨는 서른이 되던 해에 자신은 언제든 패륜을 저지를 수 있는 아들임을 깨달았다. 늦었다면 늦은 깨달음이기도 하다. 그는 이미 제 아비와 누이를 버리고 가족이라고는 어머니 하나만 있다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천륜이라 했던가. 하늘이 맺어준 인연. 하늘이 정한 인연. 태초부터 계획되어 있던 인연. 천륜을 끊는 것이 이리도 쉬울 줄은 몰랐을 것이다. 아주 쉽고 심지어는 청적하기까지 한 일. 가끔은 어쩌다 이렇게까지 되었을까 울울한 상념에 빠지곤 하지만 그것이 자신의 결정을 참회하게 하지는 않는다.

엄마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싶지 않아서 말하지 않고 있지만 말이야,

뒷말을 이어나가기까지 얼마나 오랜 세월을 참았는가. 참으면서 닦아내고 갈아낸 모나지 않은 단어들을 골라본다. 고르고 골라 제 어미에게 상처 주지 않기 위해 둥글고 빛나는 말들로 얼기설기 엉터리 문장을 만들어 본다.

엄마도 참 힘들었겠지. 충분히 이해해. 하지만 나는 그때 엄마에게마저 버려졌다고 느꼈어. 내가 가장 약할 때, 이 세상에서 아무 힘도 쓸 수 없던 그때 내게 연락도 없이 도망가 버렸잖아. 집에서 완전히 사라진 엄마의 흔적을 상상해 보면서 나는 어땠을까. 건강한 성인 남성이지만, 나라에 묶인 몸으로 어떤 계약서에도 서명할 수 없고 돈을 벌지도, 쉽게 지역을 옮기지도 못하는 몸. 나를 지켜줄 법이 없는 몸으로 나는 어디로 가야만 했을까. 엄마가 도망가 버린 집에 아버지는 아들도 챙길 수 없을 정도로 자존감이 무너져있었고 망가진 정신으로의 결정이었겠지만 나를 더 이상 아들로 생각하지 않겠다고 했어. 군복 입은 아들은 갈 곳도 없이 더 이상 내 집이 아닌, 내 동네가 아닌 곳을 헤매면서 어떤 생각을 했었을까. 엄마는 다시 돌아와 나를 거두었지만 그날로 나는 더 이상 가족을 가족이라고 생각할 수 없게 됐어.

어머니였던 여자는 묵묵히 듣고 있겠지. 어디론가 눈물을 훔칠지도 모르겠다.

엄마가 전화 올 때마다, 문자 올 때마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아. 더 이상 날 키우지 못할 것 같다고 말할까 봐. 이미 나는 혼자 잘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아들로 두지 못할 것 같다고 말할까 봐 마음 졸이게 돼. 버림받았던 그날의 기억이 고개를 들어.

그랬다. 이미 지나간 일이고 다 해결되었다 생각했지만 그때의 사소했다고 생각했던 사건이 10년가량 지난 지금도 H 씨의 일상을 뒤흔들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 기억은 아주 순식간에 모든 신경을 훑고 사라지지만 시간과 감정을 아주 느리게 만드는 후유증을 남긴다. 그것이 찰나로 신경을 지나가는 동안 H 씨는 영원과도 같은 고통을 느끼고 끊임없이 두려움에 떨고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최악을 상상하기에 너무나도 충분한 시간. 차라리 스스로 혼자가 되는 것이 더 이상 이 신경통을 완치시킬 수 있는 유일한 치료법이라고 진단 내렸다. 체내기를 하려면 결국 이 말을 해야만 하고 다시 버려질 각오를 해야만 했다. 극단적으로 생각해야만 했다. 패륜을 저질러야만이 자신이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생각해야만 했다. 하지만 H 씨는 이제 와서 그렇게 말할 수 없었다. 아무리 작고 둥글게 만든 조약돌이라도 맞으면 피멍이 드는 법이다.

후- 짧은 한숨을 뱉은 후에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아니야. 이제 괜찮으니까.

그리고 H 씨는 결국 언젠가는 패륜을 저지를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공포와 온몸의 세포에 암세포처럼 자라나는 버려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 마지막 남은 하나의 가족마저도 잃고 싶지 않다는 인간 본성의 무의식이 자신을 꽉 붙잡아주기를 기도하면서 답이 없는 전화를 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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