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좋은 이웃들과 보낸 추석
❚좋은 이웃이 있는 한국에서의 추석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 세 번째 맞이하는 추석이다. 며느리라는 굴레로 늘 부담스러운 추석이다. 이번 추석 역시 한바탕 마음의 분란을 일으키고 그 꼬리를 감추고 있었다. 연휴 3일차 추석 제사 음식이 버젓이 냉장고의 한 공간을 차지한다. 제사라는 공허한 의식의 흔적인 그것들은 며칠간 식탁 위를 오르내릴 예정이다.
본능적인 불쾌함이 솟구치는 추석 연휴가 끝날 무렵이면 “좋은 이웃” 멤버들 사이에는 텔레파시가 어김없이 통한다. 누가 먼저 번개를 칠지, 언제 만날지 미리 정하는 법이 없다. 하지만 꼭 한 명은 번개를 친다. 그리고 한 명도 빠짐이 없다. 각자 십시일반으로 추석의 풍성함을 식탁에 차린다. 미국 유학 기간동안 그 모임은 아쉽게도 멈춤이 되버렸다. 하지만 우리 가족이 다시 귀국을 한 2년 전부터 다시 “좋은 이웃” 이라는 모임은 예전의 활기를 되찾았고 예전의 텔레파시가 켜졌다.
첫째 딸 아이의 동네 친구들로 구성된 “좋은 이웃”은 모두 네 가족으로 이루어져 있다. 좋은 이웃의 엄마, 아빠들은 모두 어린 시절 시골에서 보냈다. 넉넉한 시골 사람의 정서가 우리를 함께 하게 만들었다. 자연주의적인 자녀 교육도 서로 닮았다. 초등 입학전부터 알고 지내던 그 네 집의 딸들은 이제 어느덧 여고 2학년생이 되었다. 모두들 하나같이 왈가닥에 무정리주의자들이다.
❚심심한 일상의 사이다
올해는 특별히 “힐링 아지트”에서 우리의 추석 번개 모임을 갖기로 했다. “힐링 아지트”는 한국으로 귀국 후 남편이 시나브로 혼자 꾸민 공방 겸 음악 연습실이다. 남편은 목공작업과 드럼연주에 나름 진심이다. “힐링 아지트”는 남편의 N잡러 되기 위한 첫 프로젝트이다. 완성이 될 무렵 “좋은 이웃” 사람들은 우리의 독특한 횡보에 높은 관심을 가졌다. 미쿡 물을 먹은 우리 부부의 딴짓이 그들에게는 심심한 일상의 사이다와 같은 무언가다. 그 네 집의 엄마는 교사다. 하지만 우리 가족을 제외하고 나머지 세 가족은 아주 평범한 일상을 무난히 살아오고 있다. 어느 날 미국행을 결심한 우리 가족의 이례적인 횡보에 그들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봤다. 그리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 우리의 일상 역시 그들에겐 뭔가 신기함을 주는 모양이다. 남편의 “힐링 아지트”가 너무 궁금한지 좋은 이웃의 한 멤버가 어제 전화로 쳐들어 올 것을 통보했다. 그렇게 추석 번개 모임이 주선되었다.
❚코스모스도 챙겨오는 센스
추석 음식이 넉넉한 타이밍 덕분이겠지만, 다들 십시일반 각자의 친정에서 농사지은 맛난 과일이며 직접 구운 빵이며 후한 인심을 한 봇다리 들고 온다. 포도 농사를 짓는 집은 그 비싼 샤인머스켓을, 자두 농사를 짓는 집은 큼직한 추희를 그리고 베이크가 취미인 집은 갓 구운 브라우니를 가져왔다. 무엇 보다 그 중 한 집은 7년째 전원 생활을 하고 있다. 그 집 엄마가 가져온 코스모스는 내 마음에 제일 귀한 선물이다.
오기 전 각자 준비할 음식을 단톡에 올려 서로 아이템이 겹치지 않게 한다. 누구는 이렇게 사진을 올렸다. 브라우니도 먹음직스럽지만 코스모스가 너무 반가웠다. 애초에 코스모스까지 챙겨올 마음이 없었던 엄마였지만, 내가 먼저 “코스모스까지 챙겨오는 센스(?) 감사합니다.” 메시지를 날렸다. 그집 식탁에 자리잡은 들꽃이 제일 탐이 났다. 전원생활러인 그 부부에겐 일상이지만 나에게 그 들꽃은 너무 귀한 것들이다.
며칠을 며른 파티보다 더 풍성하게 한 상 그득 차려졌다. 두런두런 둘러 앉아 먹으며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딸 아이들은 드럼연주실에서 춤추고 노래하고 난리다. 다행히 방음시설이 있었기에 두 공간은 철저하게 분리되어 각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종잡을 수 없는 대화의 맥
그런데 뭔가가 불편하다. 내 마음이 불편하다. 대화가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이 이야기 하다 갑자기 불쑥 누군가가 맥커터가 되어 등장한다. 전공이 언어라 그런지 아니면 미쿡 물을 먹고와서 그런지 나는 이 종잡을 수 없는 대화가 불편하다.
미국 사람들은 남녀 노소 할 것 없이 대화술이 엄청 좋다. 대화의 맥을 흐리지 않고 대화의 소재마다 충분히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다음 소재로 넘어간다. 마치 버스가 각각의 정류장을 들르지만 경로를 벗어나지 않듯이 대화도 다양한 소재를 커버지만 길을 잃지 않고 대화의 맥은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오랜 세월을 함께했고 서로 자녀육아관이 비슷하고 시골의 정서를 아는 우리 네 가정이지만 우리의 대화는 종잡을 수 없었다. 맥을 잡으며 대화를 하고 싶은 나의 마음은 이내 자포자기가 되어버릴 지경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게 불편하지 않은 듯 연신 그 대화에 지루함없이 마냥 즐거워 보였다.
❚어느 조직에나 있는 미운 오리들
다행히 대화 끝이 되어서야 어느 정도 공통의 화젯거리로 대화가 안정세를 잡았다. 그런데 정작 분열의 시작은 거기서 시작되었다. 다들 학교에 근무하는 사람들이다 보니 동료 교사의 근무 태도에 대한 마음의 불만을 토로했다. 다른 조직처럼 교사 조직에도 미운 오리가 늘 한두명은 있다. 그들은 개인의 사생활을 중시하며 월급을 받는 데 큰 지장이 없는 선에서 직장 생활을 한다. 가령 아침 출근을 10분이라도 미리 하는 법이 없다. 가끔은 정시 출근을 하지만 주로는 5분 정도 지각한다. 맡은 반 학생들 관리도 다소 “헐렁하게” 하는 편이다. 시시콜콜 규칙, 원칙을 따지는 일이 번거롭고 번잡하니 대충 안전사고 안 날 수준에서 관리한다.
대부분 10년 경력 이상인 그들은 어느덧 조직의 중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 그들에게 새내기 미운 오리새끼든 노련한 미운 오리든 모두가 엄청 성가신 존재다. 물론 관리자들에게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애물단지로 분류된다. 하지만 정작 본인들은 점점 어렵고 부담이 되는 업무를 부여받지 않는 “특혜”를 획득하게 된다. 그래서 대부분의 무난한 멤버들은 그 오리들이지지 않은 업무의 짐을 조금씩 더 떠안게 된다. 그때부터는 그들은 오리를 진심으로 미워하기 시작한다. 오늘처럼 대화가 시작되면 너 나 할것없이 엄청난 사이즈의 분통을 터트린다.
❚그들은 나를, 나는 그들이 답답해진다
그런데, 나에게 그들은 왜 꼰대처럼 들릴까? 사람마다 직업에 대한 가치가 다를 수 있고 삶의 우선 순위가 다를 수 있다. 그 미운 오리들은 삶의 우선 순위를 직장이 아닌 다른 것에 두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애물단지로 분류되는 현실을 받아들일 것이다. 업무는 쉬울 수 있으나 그들은 자신이 선택한 그 애물단지의 각인을 꿋꿋이 짊어지고 있다. 반면, 대부분 평범한 멤버들은 그 애물단지 각인을 선택하지 않고 ‘일 잘하고 책임감 있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선택했고 그 댓가로 조직 사람으로부터 ‘인정’이라는 걸 받고 있다. 각자 삶의 태도를 선택하는 자유는 있다. 물론 그에 따른 결과가 좋은 것이든 싫은 것이든 모두 본인이 받아들여야 한다. 그에 따른 책임도 각자가 지는 것이다. 나의 이런 생각은 그들을 상당히 불편하게 만들었다. 나도 그들의 꼰대같은 생각을 듣고 있으니 답답한 마음이 든다.
❚나와 남편,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쏟아부은 4배의 자양분
개인주의 사상이 짙은 미국문화에 나를 너무 오랫동안 노출 시킨 결과인지도 모르겠다. 지난 5년간 미국 생활로 생긴 나의 사고방식의 변화는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집단의 존재를 개인의 존재보다 더 우선시 하는 우리나라 가족문화, 직장문화는 분명 개개인의 자유를 일부분 잠식하고 있다. 나는 그게 불편할 뿐이다.
나무를 새로운 토질의 땅으로 이양시켜서 키우기 위해서는 4배의 자양분이 필요하다고 한다. 서로 다른 문화가 존재하는 사회를 오가면 나와 남편, 그리고 우리 아이들은 생존의 뿌리를 내리기 위해 4배의 자양분을 투입시켰다. 그 자양분은 물질적, 정신적, 심리적, 문화적 자양분을 모두 의미한다. 새로운 문화와 사고방식에 적응하기 위한 우리의 생각주머니 키우기는 마치 단단한 고무풍선을 처음으로 부풀릴 때와 같았다. 두 볼 볼록 숨을 불어 넣어 풍선을 불듯우리 역시 새로운 문화 속에서 매일의 일상을 살아가며 두 볼 가득 숨을 불어 넣었다. 이젠 나의 생각 주머니가 그들에게 헐렁하고 원칙이 없는 듯이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 적어도 그런 미운 오리가 나를 노여워하게 만들진 않는다.
❚“좋은 이웃”은 다르지만 함께다.
우리들은 각자 삶을 다르지만 저마다 충실히 살아간다.
우리들은 같은 세월을 개성있게 살아내 가고 있는 “좋은 이웃”이다.
종잡을 수 없는 토크 대행진이지만 우리는 크리스마스의 번개 모임을 기약하며 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