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원어민 선생님, 우리 엄마와 그녀의 어머니
▮익숙함 더하기 새로움
브런치에 글을 연재하는 매거진 중 유독 제목 정하기가 힘든 게 하나 있었다.
5년의 미국 유학을 끝내고 귀국 후 시작한 한국 생활에 대한 나의 생각, 느낌, 계획, 실천 등등을 적으려 시작한 매거진이었다.
여러 차례의 수정 끝에 마침내 매거진 제목을 ‘익숙함 더하기 새로움’으로 정했다.
유학 생활을 마친 후 다시 맞이하는 한국 생활은 익숙한 한국, 익숙한 나의 공간이지만 그 느낌이 참 새롭다. 그게 좋다 싫다를 떠나 내가 더 이상 예전과 같지 않기에 익숙한 공간이지만 일상에서 느끼는 나의 느낌은 그저 새롭다. 같은 걸 봐도 그 느낌이 예전과 같지 않다.
▮원어민 선생님과 나
그런 것 중에 하나가 바로 학교에 같이 근무하는 원어민 영어 선생님이다. 유학을 가기 전에도 원어민 선생님의 코디네이터 업무를 자주 맡아 했다. 하지만 그때는 주어진 업무로서 그들을 대했다. 또, 그저 자유로운 원어민들을 마냥 부러워 했을 뿐이었다. ‘나도 언젠가는 그들처럼 나의 모국어를 가르치며 다른 나라에서 살아 볼 날이 오면 좋겠다’하고 막연히 동경했었다.
그런데, 묘한 인생의 우연으로 나에게 그런 삶을 살아 볼 기회가 정말 주어졌다. 나도 그들처럼 한국어 원어민 선생님으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미국 대학교 학점 수업을 하면서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 귀한 경험을 하고 귀국한 지금, 학교에 근무하는 영어 원어민 선생님에 대한 나의 마음이 참 달라졌다. 공감하는 부분이 참 넓어졌다.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이야기 거리가 예전보다 훨씬 다양해졌다.
나도 그들과 같이 이방인으로 살아봤기 때문이다.
나도 그들과 같이 언어적 장벽으로 마음 나누기가 두 세배 힘들어 봤기 때문이다.
나도 그들과 같이 문화적 차이로 현지 생활에서 이해되지 않는 많은 걸 겪었기 때문이다.
나도 그들과 같이 일상에 쉽게 찾아드는 원인 모를 서운함을 혼자서 삭혀 봤기 때문이다.
나도 그들과 같이 익숙한 공간에서 꽉 막힌 일상 속 성장이 없는 곳에서 답답함을 느껴 봤기 때문이다.
나도 그들과 같이 그 대안으로 새로움을 찾아 새로운 나라로 나를 기꺼이 던져봤기 때문이다.
그런 연유로 귀국 후 누구보다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은 우리 학교 원어민 선생님이다.
나는 그 선생님과의 대화를 참 즐긴다. 비록 20년의 나이 차이와 서로 다른 인종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닮은 구석이 참 많다.
나와 그 원어민 선생님이 닮은 점이 많은 건 비단 서로가 가진 공통의 경험치 때문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같은 경험을 하더라도 통하지 않는 사이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우리 둘은 ‘성장’, ‘발전’, ‘공유’, ‘어울림’, ‘새로움에 대한 동경’, ‘대화’, ‘다름에 대한 호기심’과 같은 가치를 삶의 중요한 가치로 삼고 있기에 닮았다. 언제고 대화를 나눌 땐 시간 가는 줄 모르곤 한다.
▮우리 엄마와 원어민 영어 선생님의 어머니
어제 그 선생님과 함께 차를 하면서 새삼스레 느낀 게 또 하나 있었다.
그런 딸 들을 가진 엄마 둘도 참 닮았다는 거였다. 어제 대화는 우연히 각자의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원어민 선생님의 엄마는 폴란드 여성이다. 젊은 나이에 홀홀단신으로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독일 유학생을 만나 결혼을 했다. 그리고 독일에서 첫 아이를 낳고 신혼을 보내다가 영국으로 건너가 아이 둘을 더 낳았다고 한다. 그 둘째가 우리 학교 원어민 선생님이다.
일찌감치 가족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지낸 원어민 선생님의 엄마는 평생 외로움을 느끼며 이방인으로 살고 계신다고 한다. 폴란드어가 모국어라 영어든 독일어든 살았던 국가에서는 언제고 언어적 장벽으로 친구 사귀기가 힘이 들었다고 했다. 바쁜 남편은 늘 집을 비웠고 혼자서 세 아이의 육아를 책임지며 고된 일상을 보낸 엄마였다고 한다.
이제는 더 이상 사람을 사귀는 것에 지쳤다고 했다. 그리고 늘 조용히 혼자 지내는 스타일이고 말수가 거의 없다고 했다. 그렇게 우울감을 느끼며 시나브로 마음에 우울감이 습관이 되어 버렸다고 한다. 딸로서는 그런 엄마를 위해 해 줄 일이 없다. 그리고 그 딸은 독립심이 강하고 자기 주장이 강한 딸이라 자신의 삶을 사느라 여념이 없다. 곧 한국에서 계약이 만료되면 선생님은 이번에는 독일로 갈 생각이라고 하신다. 부모님 곁으로 가서 지내면 자신의 성장이 멈춘듯한 느낌이 들어서 싫다고 한다.
▮나, 우리엄마, 영국에서 온 원어민 영어 선생님, 그리고 그 선생님의 어머니
살아계셨을 때 우리 엄마가 살었던 삶과 그녀의 엄마의 현재 삶은 참 닮았다.
그녀의 딸과 우리 엄마의 딸인 나도 참 닮았다.
나는 그런 엄마를 두고 먼 이국 땅으로 가버렸다.
내가 그랬듯 원어민 선생님은 그런 엄마를 두고 먼 이국 땅으로 왔다.
뭔가 자기 성장이 될 수 있는 그런 곳에 자신을 또 던지기를 하고 싶었다.
내가 그랬든 원어민 선생님도 그런 이유로 이제 다시 다른 나라로 가서 살 계획을 하고 있다.
우연히 만난 영국인 영어 선생님, 그리고 폴란드계 그녀의 어머니, 그리고 나, 그리고 우리 엄마는 애초에 만날 일이 거의 없는 곳에서 각자 살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 몰랐던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서로가 이미 익숙한 사람들이다.
그 어머니의 마음의 병이 깊어지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 한다.
타국에서 쓸쓸한 가을을 보내고 계실 원어민 선생님 어머님의 하루 하루에 평화가 깃들 수 있기를 바래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