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안심, 감사, 다행

: 인생에서 아주 “결정적인” 결정

by Hey Soon

❚참 대단했다

미국 유학을 끝내고 귀국한 지 이제 삼 년째 접어들었다. 가끔 그때 시절을 생각하면 스스로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 대단함은 내가 두 아이를 데리고 먼 나라, 미국을 가서 석사, 박사 공부를 하고 박사 학위를 취득한 그런 눈에 보이는 것 때문은 결코 아니다. 그건 어쩌면 그저 학위취득을 증명하는 종이 한 장에 불과한 일일 수 있기에 나로서는 그것의 대단함은 잘 모르겠다.


내가 진정으로 내가 대단하다고 느끼는 것은 ‘그런 눈에 보이는 것 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은 것 때문이다. 5년간 해외 살이를 하면서 나와 우리 가족에게 닥칠 수 있었던 수만 가지의 어려움, 고생스러움의 가능성을 두 눈 딱 감고 없는 듯이 살 수 있었던 그 당시의 나의 용기가 참 대단했다’라고 느낀다.


일 주일에 삼 일을 왕복 두 시간 운전해서 대학교로 출근하던 시절이었다. 초등학생인 둘째가 독감에 걸려 열이 나도 돌봐줄 사람이 없어 그냥 해열제 하나 먹여놓고 집에 혼자 두고 학교로 가야 했던 날도 있었다. 엄마로서 느낀 불안함과 애처로움을 인내한 것이 참 대단했다.


홀로 집에 남겨진 아들은 내가 보고 싶을 때 내가 집에서 입던 티셔츠를 자기 침대 머리맡에 두곤 했단다. 그 티셔츠에서는 엄마 냄새가 나서 그걸 맡곤 했다고 나중에 털어놓았다. 그 당시에 그걸 알았으면 눈물을 펑펑 흘렸을 테지만 다행히 아들은 한 참 지난 후에 지나가는 말인 듯 나에게 말해 주었다. 잘 참아준 아들과 그런 상황을 짐작하면서도 무던히 지냈던 게 참 대단했다.


❚수많은 최악의 시나리오

우리나라 보험의 긴급출동 서비스 같은 게 미국에는 없다. 물론 트리플 A라는 보험사에 특별 서비스를 가입하면 그나마 그 비슷한 서비스를 받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 긴급출동에 소요되는 시간은 한국과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다. 대충 한나절 안으로 와주면 그저 감사할 일이였다. 그게 내가 겪은 미국식 긴급 출동이었다.


일주일에 삼일을 고속도로 출근을 하는 나에게 언제든 그런 자동차 고장 문제가 닥칠지 모르는 일이었다. 8시 깜깜한 밤에 야간 수업을 마치고 어두운 고속도로 밤 운전을 해오는 날에도 언제고 고속도로 한중간에서 그런 자동차 고장 문제가 닥칠지 모르는 일이었다. 늘 기도하는 마음으로 통근을 해야 했던 시절이었다.


나도 예외 없이 자동차 고장 문제가 여러 번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 내가 생각한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이 된 적은 없었다. 그런 최악의 시나리오의 가능성을 늘 품은 채 그 세월을 용감하게 헤쳐 나갔던 게 참 대단했다.


❚안심, 감사, 다행

어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틀 전 은행 볼 일이 있어서 조퇴를 달로 퇴근을 하고 있었다. 교문을 나가기도 전에 좁은 주차 공간에서 코너를 돌다가 타이어의 옆이 날카로운 무언가에 쭉 긁혀서 타이어에 바람이 심하게 세었다. 며칠을 벼르던 은행 업무는커녕 퇴근도 못 할 판이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참 황당했다.


하지만, 다행이었다. 그게 미국이 아니어서.

안심이 되었다. 친절한 긴급 출동 서비스가 신속하게 대응을 해주어서.

감사했다. 이제 내가 한국에서 살면서 매 순간 감사함을 느끼며 살 수 있게 되어서.

펑크 난 그 순간 차에 관해 일자무식인 나는 어쩔 수 없이 남편한테 전화를 걸었다.

긴급 출동 서비스가 도착하고도 바로 남편한테 전화해서 상황을 둘이서 해결하게 했다.

차를 견인해서 서비스 기사분의 트럭을 함께 타고 타이서 수리소로 향했다.


긴급 출동 서비스를 해주시던 분이 말을 시작하셨다.

서비스 기사분: “남편이 참 자상하네요.”

나 : “서로 살면서 누가 더 잘 참나 시합하는 것처럼 살고 있어요.”

서비스 기사분: “많이 참는 사람이 이기는 거지요.”


참 맞는 말이다.

남편과 이런 관계는 미국 유학시절의 여러 어려움을 함께 헤쳐 나가면서 시나브로 생긴 것 같다.

힘든 시간을 견디는 것이 단지 힘듦만 주는 게 아니고 반대로 이런 좋음도 주니 참 다행이고 감사하다.


❚"결정적인" 결정

지금껏 살아오며 수많은 결정들 중

마흔에 미국행을 결정하고

마흔 다섯에 한국 행을 결정한 것은

인생에서 아주 “결정적인” 결정이었다.

내 인생의 최대의 결정이었던 그 두 사건은

나에게 감사함을 가지며 매일을 살 수 있게 해준 소중한 것들이다.

참 안심이 된다. 감사하다. 그리고 다행이다.

나와 우리 가족이 여기 이렇게 매일 일상을 무탈하게 살 수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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