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꿈결같이 우리 곁으로 온단다.

: 미쿡 아닌 한국 우리 집으로?

by Hey Soon

▮단연코 나의 No.1

미국 남부 고즈넉한 외곽에 순박하게 살고 계시는 70대의 부부가 계신다. 밀튼 할아버지와 레인 할머니이시다. 미국 유학 첫해부터 알게 되었다. 그리고 미국 유학 시절 내내 그분들에게 이런 저런 이유로 신세를 참 많이 졌다. 외로움이든 서러움이든, 기쁨이든. 두려움이든, 행복함이든, 타지에서 겪은 힘든 마음을 참 잘 헤아려주시던 분들이다. 크고 작은 일들을 가장 먼저 함께 해준 두 분이였다. 내 이야기를 애정 어린 마음으로 잘 들어주셨고 나에게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조언하지 않으셨다. 다만 나를 위해 기도를 늘 해주셨다. 내가 한국으로 귀국한 이후에도 잘 지내는 지 늘 물어오시던 분이다.


그분들은 내가 평생 만나본 누구보다 신앙심이 깊으신 분들이셨다. 검소하게 살면서도 품위 있게 사는 법을 보여주셨다. 행여 조금의 경제적 여유로움이 생긴다 하더라도 기꺼이 다른 사람을 위해 내놓으시던 분이셨다. 특히 밀튼 할아버지는 사람을 너무 좋아하셨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알려주는 일을 삶의 의미로 여기시던 분이셨다. 자신의 편안한 삶을 살기보다 다른 이의 삶에 관심을 가지고 응원을 해주는 분이셨다.


애초에 두 분은 나와는 거리가 아주 먼 딴 나라 사람이었다. 하지만 나에게 삶의 지혜를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잘 가르쳐주셨다. 그런 분들 가까이에 지내면서 앙상한 나의 마음에 작은 신앙심의 싹이 트게 되었다. ‘신앙을 가지면 사람이 저토록 평화롭고 평정심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구나’ 늘 곁에서 볼 수 있었다. 타국에서 사는 삶이 녹녹하지 않았다. 경제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마음만은 넉넉할 수 있었던 건 두 분 덕분이었다.


다른 나라 사람에게 그렇게 깊은 정을 베푸는 일이 미국 사람에게는 아주 드문 일이다. 게다가 미국 남부 백인들에게는 더더욱 그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분은 우리에게 마치 한국인들이 베푸는 것과 같은 속정을 우리 가족에게 베풀어주었다. 우리 두 아이에게도 친할아버지보다 더 살뜰하게 챙겨주셨다. 딸아이가 학교 시험이 끝나면 따로 시간을 내어서 시내로 데려가 외식을 시켜주셨다. 아들에게 자기 손자인 양 트랙터 운전하는 거며 잔디 정리하는 일도 가르쳐주셨다. 먼 타지에서 가장 결핍이 되는 할머니 할아버지 사랑을 그분들이 채워주려 참 애써주셨다. 아들은 그런 밀튼 할아버지를 참 좋아한다.


한국으로 완전 귀국을 하면서 가장 아쉬웠던 것은 그런 두 분을 이제 다시 가까이 두고 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다행히 카톡이나 줌 화상 통화를 통해 여전히 우리 가족과 연락을 하며 지낸다. 먼 거리의 여러 가지 제한된 상황이지만 여전히 우리 가족을 염려해주시고 지켜봐 주시는 분이 계신다는 게 우리 가족에겐 여전히 큰 힘이 된다.


▮한국, 우리 집으로 놀러 오신다고??

그렇게 아쉽지만 카톡이나 줌 화상 통화로 서로의 소식을 나누던 중 아주 반가운 소식이 전해왔다. 그 미국 시골 마을에 살고 계시는 두 분이 내가 살고 있는 한국을 한 달간 방문하시기로 계획했다는 거였다. 9월 27일에 입국하셔서 10월 20일에 출국하시기로 항공권을 예약했다고 하셨다. 꿈에라도 만나면 너무 기뻐 꿈에서 깨기 싫을 그런 두 분이다. 너무너무 설레였다. 반가움이 마음 한가득 이었다.


한국에 알고 지내는 지인들을 두루두루 만나야 하셨다. 그래서 한 달의 일정 중에 우리와의 시간은 고작 3박 4일만 주어졌다. 짧은 기간이지만 잘 대접해드리고 좋은 추억을 많이 남기고 싶었다. 두 분에게 타국에서 보여진 나의 모습이 어땠을 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 우리나라에 와서 우리 가족 모두 다시 잘 적응해 가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무엇보다 두 분께 그 간 진 빚을 이번 기회에 조금이라도 갚고 싶었다. 한국인의 정서로는 멀리서 온 손님을 정성껏 모시는 것은 당연한 도리이다. 더군다나 두 분은 우리 가족에게는 부모와 같은 분이라 더욱 더 잘 해드리고 싶었다. 반가운 마음과 고마운 마음, 진 빚을 조금이라도 갚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정말 땡빚을 내서라도 그 분들게 잘 해드리고 싶었다.


▮부랴부랴 비상금 마련

그렇게 잘 해드리고 싶은 마음이 커질수록 마음 한켠으로는 조금만 더 있다가 오셨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도 했다. 아직 우리의 재정 상황이 여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막상 여행경비며 숙소 경비 마련이 부담이 되었다. 기쁜 마음 한 켠에는 실질적인 고민과 염려하는 마음이 자리했다.


3일 호텔비용이 나의 한 달 생활비의 절반을 이미 차지하는 수준이었다. 기타 식사비와 여행경비를 생각하니 짧은 기간이지만 비상금을 두둑히 쟁여 놓아야 할 상황이었다. 두 분이 한국 여행을 오신다는 말을 3달 전에 듣고 난 이후 비상금을 마련하기 위해 초긴축재정에 들어갔다. 오랜만에 오시는 어쩌면 평생에 마지막으로 오시는 한국 여행이니 제대로 대접을 해드리고 싶었다. 짧은 일정이지만 그분들의 숙소와 여행 경비 모두를 마련하려면 비상금이 투입되어야 했다. 보충수업도 자처하면서 열심히 열심히 비상금을 마련했다. 두 달간의 긴축 재정 덕분에 다행히 괜찮은 호텔에 두 분을 모실 수 있게 되어 흐뭇했다.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쓴다’는 말이 이런 데 써야 하는 걸까?


▮우리 집으로 두 분이 진짜 오셨다.

드디어 막상 오시기로 한 날이 성큼 다가왔다. 오시는 전날까지 저녁 식사로 뭐를 할까 고민에 고민을 했다. 이미 서울, 경기 일대에서 지인들과 한 주를 보낸 후 우리 지역으로 오시는 상황이었다. 거의 산해진미를 다 대접받고 내려오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결국 재정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예전 유학시절 내가 그 분들게 대접해드리던 나의 집밥을 한번 더 해드리고 싶었다. 없는 솜씨지만 집에서 닭백숙과 잡채를 준비했다.


남편이 두 분을 모시고 저녁 8시가 넘어서 겨우 우리 집에 도착했다. 2년 반 만에 그분을 그것도 우리 집에서 보는 그 느낌은 참 꿈결 같았다. 한국 사람이 아닌 미국 사람이 먼 이곳 내 집으로까지 와 준 게 참 반가웠고 고마웠다. 게다가 무슨 산타 할아버지인 양 선물을 한명 한명을 위해 다 따로 챙겨오셨다. 남편에게 전기 와인 오프너, 초록 캡모자, 작업용 노랑 가죽 장갑, 나를 위해 바디 로션, 찬송가책, 딸을 위해 여러 가지 미쿡산 캔디며 주전부리들, 아들이 좋아하는 농구팀인 아틀란타 호크스의 티셔츠도 사오셨다. 그렇게 한 명 한 명 종이가방을 따로 준비하셔서 선물을 주셨다.


▮자정이 다 될 때까지 함께한 첫 날

그렇게 선물 봇다리를 푸는 사이 잡채 면도 붓고 닭백숙 육수도 많이 졸아버렸다. 하지만, 밀튼 할아버지는 너무 기쁜 얼굴로 한국말로 “기도하자~~”하고는 이내 영어로 식전 기도를 해주셨다. 나는 이 순간을 기억하고 싶어서 음성 녹음을 했다.



기도를 끝내고 시장이 반찬이셨겠지만, 나의 한국식 집밥을 그날도 너무 맛있게 잘 드셔줘서 다행이었다.


말로 다 표현 못 할 반가움이 어느 정도 잦아지고 나서야 우리는 그간 밀린 이야기를 풀었다. 밀튼 할아버지와 레인 할머니를 안 지도 어느새 8년째 되어간다. 그 세월 동안 우리는 친한 친구처럼 많은 것들을 나누었다. 그리고 우리가 귀국한 지 2년 반의 세월이 흘렀다. 그 세월의 공백을 채우며 그날 저녁 우리의 이야기는 자정이 다 될 무렵까지 이어졌다. 대화 내내 우리 집에 내 눈앞에 두 분이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유명한 연예인과는 가장 거리가 먼 시골 노부부이지만 나에게는 최고의 셀럽이시다.


여독으로 피곤하셨겠지만 자정이 거의 다 될때 까지 함께 해주셨다. 그렇게 늦은 밤이 되어서야 우리의 정겨운 이야기는 일단락 되었고 예약해둔 호텔로 두 분을 모셔 드렸다. 다음 날부터 함께 할 시간들을 기대하며 우리는 그렇게 Day-1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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