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10월의 어느 멋진 추억 여행

by Hey Soon

❚마음이 절로 그렇게 흘러가면 가는 대로 두기로

늦은 밤 자정이 되었지만, 아들은 졸음을 참고 기어이 두 분이 머무실 호텔로 모셔다드리는 길을 동행하고 싶어했다. 11시 한창 잘 시간이지만 그날은 아들도 설레는 마음에 잠이 멀리 달아난 모양이었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아들은 친할아버지나 외할아버지 한테는 그런 애틋한 마음이 별로 없다. 피가 섞인 탓에 어쩌면 더 가깝고 살갑게 여겨져야 할 일이지만, 아들은 밀튼 할어버지를 더 애틋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내가 자녀 교육을 잘 못 시켜서일까? 나 자신에게 질문을 해봤다. 하지만 아이의 마음은 내가 교육 시킨다고 바꿀 수 있는 영역은 아니다. 누가 누구를 좋아한다는 것은 강제나 교육으로 될 일이 아니기에 내 탓이라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레인 할머니를 내 시어머니보다 더 따르는 이유도 내가 교육을 잘못 받아서 그렇다기 보단 내 마음이 절로 그렇게 흘러가는 것과 같은 이치인 것 같다.


❚문화충격

두 분이 머물 호텔은 차로 15분 정도 가야 하는 곳에 있다.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서 나름 괜찮은 곳에 두 분을 모시고 싶어서 다소 멀어도 그곳에 이미 두 밤을 예약해두었다. 미국에서 여행을 할 때에도 다양한 호텔에서 머물러 봤지만 내가 머물러 본 호텔에서 비데를 본 적이 없었다. 당연히 미국 남부 시골에서 오신 두 분은 비데가 아주 낯선 신문물이다. 우리보고 호텔에 가면 도움을 요청할 게 있다면서 살짝 S.O.S 신호를 보내왔다. 좌변기의 커버가 따뜻하게 설정된 온도가 영 어색하신지 그걸 꺼달라는 부탁이셨다. 다양한 기능의 버튼이 있는 좌변기라 우리 눈에도 뭔가 복잡해 보였다. 객실 담당자분이 오셔서 안내를 해주었고 그분들의 부탁대로 좌변기의 온도 기능을 꺼드렸다. 호텔에 도착하자 밀튼 할아버지는 신기하다며 나에게 보여준 게 있었다. 호텔 방에서 욕실 안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창이 있는 걸 보고 엄청 이런 방은 생전 처음이라 하셨다. 소소한 문화충격을 받은 채 첫 날이 저물어 갔다.


❚미국식 소통법을 잊어버린 내 탓

호텔이 우리 집에서 조금 먼 관계로 다음 날 아침은 두 분이 호텔에서 바로 아침 식사를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미리 아침 식사권까지 선불을 해놓았다. 다소 비싼 아침 식사 비용이지만 기꺼이 그렇게 해드리고 싶었다. 헤어지면서 아침은 호텔 1층의 식당에서 하시라고 당부를 했다.


그런데 이게 왠 일인가? 그분들이 아침을 편의점에서 간단한 먹거리를 사다가 방에서 드셨다고 한다. 앗차 싶었다. 미국 사람의 사고 방식을 잊고 그저 한국식으로 말한 내 탓이다. 분명하게 아침 값을 미리 지불했으니 꼭 드셔라고 정확히 다 말해야 하는 미국식 의사소통 방식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한국 사람들은 척하면 척인 게 있다. 내일 아침 뷔페에서 드시라고 하면 우리는 당연히 식사비가 이미 지불된 걸로 이해한다. 하지만 미국 사람들은 그저 아침은 1층 뷔페식당이 있으니 원하면 (본인이 돈을 내고) 이용 가능하다는 정도의 정보로만 이해한다. 비용을 이미 냈다는 말을 해드리지 않은 내 탓에 두 분은 첫날 아침 호텔 뷔페 식사를 하지 않고 편의점 빵으로 때우셨다. 그날 오후에 호텔에 문의하니 이미 지난 아침 식사비는 환불이 불가하다고 했다. 결국 미국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생각하지 못 한 탓에 비싼 아침값을 날려버렸다.


❚10월의 어느 멋진 날

다음 날 아침 날씨는 진짜 10월의 어느 멋진 날의 노래가 떠오를 만큼 청량했다. 우리는 가을 산과 산 기슭에 위치한 전통 유기박물관을 들르기로 했다. 오전이라 방문객이 거의 없었다. 박물관 안내원이 상세한 안내를 해주셨다. 고즈넉한 박물관 뒤뜰에서 아침 햇살과 바삭거리는 가을 공기를 실컷 음미했다. 습도가 높은 미국 남부에서 온 두 분은 건조한 가을 날씨를 참 좋아 하셨다. 박물관 입구에 들러 전통 유기접시를 선물로 사드렸다. 나중에 미국으로 돌아가셔도 이곳과 함께한 시간을 추억할 수 있으시도록 하고 싶었다.


아직 한가을의 알록달록 단풍은 찾아오지 않은 초가을이었다. 우리는 케이블카를 타고 산정상에 가서 인증샷을 찍었다. 우리가 살던 미국 남부 동네에는 눈씻고 봐도 산이 없는 동네였다. 그런 곳에 평생 사시던 분이라 우리나라의 예쁜 산을 꼭 보여드리고 싶었다. 5년 남짓한 미국 생활이지만 귀국 후 어느 방향으로 눈을 돌리던지 산이 내 시야에 들어오는 것이 참 신기했다. 평생 그런 미국에 사시던 분들의 눈에는 산으로 둘러싸인 우리나라의 지형이 색다르게 느껴졌을 것 같다.


연세가 있으셔서 비탈진 산길 걷기를 힘들어하셨다. 산 정상에 마련된 벤치에 걸터 앉아 멋진 풍광을 감상했다. 그리고 케이블카를 타고 다시 산 아래로 내려왔다. 조용한 커피숍에 앉았다. 손님이 거의 없는 작은 룸이 있는 곳에 창밖 커다란 은행 나무를 보고 있자니 레인 할머니의 조용한 거실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나만 그렇게 느끼고 있었던 게 아니었다. 우리는 모두 누구가 먼저 할 것 없이 이곳이 미국인지 한국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미 서울, 경기 일대에서 한 주를 보낸 후 우리 지역으로 오신 상황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번잡스런 시내 관광보다는 조용한 외곽에서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었다. 그렇게 우리는 여유로운 토요일 낮을 풍경이 좋은 산에서 보냈다.


❚맨 케이브(man cave)로 초대

저녁에는 남편이 일 년에 걸처 직접 리모델링하고 단장한 음악 연습실 겸 목공 작업실에서 야외 바베큐를 계획했다. 우리가 사는 일상을 보여드리는 게 기억에 더 남을 추억이 될 거란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의 남성들이 그렇듯이 미국 중년 남성들은 남자들만의 작업 공간에 대한 로망이 있다. 밀튼 할아버지도 그런 공간이 있으시다. 내 눈에는 전혀 매력적이지 않은 기계와 통나무들로 가득한 창고이지만 남편은 미국에서 지낼 때에도 늘 그런 공간을 부러워했다. 결국 귀국 후 일 년의 시간과 수고를 들여서 올해 가을 드디어 자신의 맨 케이브(man cave)를 완공했다. 남편이 직접 완공한 그 작업실은 야외 바베큐도 할 수 있고 모닥불을 피울 수도 있는 포도밭 한 가운데에 위치한다. 그곳에는 미국에서 가져온 밀튼 할아버지가 만든 테이블도 있다. 그래서 더욱 더 두 분한테 보여주고 싶은 장소였다.


야외 그릴에 삼겹살을 구워 먹고 모닥불 주위에 모여 앉아 있으니 예전 미국에 살던 우리 집에 온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예전 미국집은 1980년대 지워진 아주 오래 된 집이었지만 뒷뜰이 멋진 곳이었다. 금요일이면 늘 그곳에서 남편과 불멍을 하며 여유를 즐기곤 했었다. 그런 장소가 사라진 한국 생활이 참 각박하게 느껴지자 남편은 일년 프로젝트로 그 공간을 마련했다. 덕분에 두 분과도 의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예전 우리 미국 집 뒷뜰처럼

우리 부부도 그 두 분도 그런 삶의 소박한 행복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들이라 우리는 좋은 식당 뷔페보다 더 맛있게 저녁을 먹고 좋은 시간을 보냈다. 모닥불 주위에 두런 두런 앉아 예전의 추억도 떠올리고 좋은 성경 말씀도 해주셨다. 우리는 고스란히 예전 우리가 살던 그 미국 집 뒤뜰로 추억 여행을 하고 왔다. 그렇게 우리의 두 번째 날은 아련한 예전을 추억 하며 아쉽게 끝나가고 있었다.


미국에 살던 우리 집 뒷뜰 꼬맹이 아지터
미국에서 살던 우리집 뒷뜰 바베큐 파티
미국에서 살던 우리 집 뒷뜰 아지터 불멍 플레이스
귀국 후 새로 마련한 아지트 불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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