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가을 불국사 산책
❚밀튼, 레인, 남편, 중2 아들과 함께 간 경주 여행
다음 날 아침 일찍 집을 나섰다. 중2 아들은 2학기 중간고사를 이틀 남긴 상황이었다. 하지만 아들을 공부하라고 집에 남겨두기에는 너무 귀한 여행이기에 그러지 않기로 했다. 아들은 밀튼 할아버지를 엄청 좋아한다. 자기도 당연히 함께 경주를 가겠다고 했던 터라 시험공부를 포기하고 여행을 선택했다. 고2인 딸은 혼자 하룻 밤 집에서 자는 게 괜찮다고 했다. 미국에 있을 때는 꿈도 못 꾸던 일이었다. 불과 2년 사이 딸이 훌쩍 커버린 게 아쉽기도 했다. 레인 할머니도 적응이 안 되는 지 채원이는 같이 안 가냐고 연신 물으셨다. 레인 할머니와 나는 불과 2년 반 만에 만난 건데, 아이들은 그 2년 반 사이에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언니와 조카 그리고 여동생 가족도 함께
경주는 우리가 사는 도시에서 그리 멀지 않다. 그래서 언니, 여동생도 함께 경주에 와주기로 했다. 나한테 말로만 듣던 밀튼 할아버지와 레인 할머니를 언니는 처음으로 보게 되는 셈이다. 여동생은 우리가 미국에 있을 때 우리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때 밀튼 할아버지 집에 초대되어 식사도 함께 한 적이 있기에 기쁜 마음으로 경주까지 와 주었다. 미국에서 손님이 왔는데 식구 중 아무도 소개를 안 해주는 것은 결례 라면서 외국 출장을 몇 번 다닌 적이 있는 제부도 흔쾌히 따라왔다. 그리고 그 많은 일행의 점심을 다 계산해주었다. 가족이 많이 있다는 게 든든했다.
❚시식수준의 소량 그러나 다채로운 한정식 음식
영어를 못 하는 여동생과 언니는 연신 웃음으로 의사를 전달했다. 그마저 영어를 좋아하는 조카는 나름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밀튼 할아버지, 레인 할머니 포함 모두 10명이 정갈한 한정식 식당에 둘러 앉았다. 뱃고래가 크신 밀튼 할아버지에게 한정식의 음식은 그저 입가심에 불과했을 것 같다. 접시 숫자는 참 많지만 각 접시에 놓인 음식은 그저 시식을 하는 수준이라 은근히 눈치껏 음식을 조금 드시는 것 같았다. 한정식 식당은 음식의 양을 많이 주는 미국 식당과는 아주 다른 컨셉이라 아마 힘드셨을 듯 하다. 하지만 연신 스텐레스 젓가락을 떨어트리면서 열심히 이것 저것을 집어 드셨다.
❚초가을 불국사 산책
점심을 끝내고 불국사를 한 바퀴 돌았다. 비가 오는 날이지만 초가을이라 산책하기엔 딱 좋은 온도였다. 풍채 좋은 밀튼 할아버지는 쌀쌀한 가을 날씨를 너무 좋아 하셨다. 우리는 추워서 긴 팔에 바람박이를 입고 있었지만 할아버지는 반팔 셔츠를 입고 시원한 가을 날씨를 한껏 즐기고 계셨다. 그리고 불국사 이곳 저곳을 둘러 보고 사진을 찍으시느라 혼자 바쁘셨다. 아마 외국인의 눈에는 불국사의 모든 것이 신기할 법도 하다. 역사 지식이 짧은 나로서는 경주의 역사적 정보를 모두 전해드릴 수 없었고, 그 분들에게 너무 많은 정보(TMI?)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저 석가탑, 다보탑, 그리고 고풍스러운 건물들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해드렸다.
❚멀리서 온 미국인 선교사
10명의 일행은 그렇게 불국사 산책을 끝내고 커피숍에 앉아 잠시 숨을 고르기로 했다. 우리 집에서 나는 유일한 크리스찬이다. 엄밀히 말하면 유일하게 기독교에 관심을 가진 멤버이다. 제부도 한때 교회를 다녔던 신자이지만 냉담 중이다. 이런 상황을 이미 밀튼, 레인은 알고 있다. 우연찮게 제부가 냉담자인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았다. 그 기회를 놓칠 리 없는 밀튼, 레인은 성경 말씀을 전해주셨다. 내심 언니와 여동생이 그 분들의 말씀을 귓전에라도 듣기를 바랬으나, 언어적 장벽과 마음의 벽은 너무 높고 두터운 듯 보였다.
엄마의 갑작스런 죽음과 그걸 감당하기 힘들던 40세 나이, 나는 남편과 아이 둘을 데리고 먼 나라, 미국으로 유학을 나섰고 그 첫 해에 밀튼, 레인을 알게 되었다. 한국에서의 삶이 송두리째 뽑혀 새로운 곳에 뿌리를 내리려 발버둥 치던 시기였다. 그 분들을 만나고 나서부터 요동치던 내 마음의 큰 파도를 잠재울 수 있었고 나의 삶의 가치관은 참 많이 달라졌다. 그분들 덕분에 나는 예전의 나와는 완전히 다른 나로 바뀌게 되었다.
그 먼 미국에서 그렇게 나의 삶의 좌표를 송두리째 바꾼, 나에게 은인이던 두 분이 이렇게 멀리까지 와서 나의 언니와 동생에게 직접 만나고 있고 그리고 신앙심에 대한 대화를 하고 있는 그 순간이 나로서는 참 감사한 일이었다. 그분들의 선한 마음이 언니와 여동생의 마음에 전해졌기를, 그리고 나에게도 그러했듯이 나의 가족들에게도 빛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두 시간 가량 대화를 끝내고 커피숍 앞에서 단체 사진을 찍고 언니네와 여동생네와 작별 인사를 나누고 우리는 호텔로 향했다.
❚점심과 다른 푸근한 저녁 한 끼
호텔에 짐을 풀고 저녁을 해결하기 위해 인근 순두부 찌개집으로 갔다. 예전 미국에 있을 때 두 분을 모시고 한번씩 순두부 찌개집에서 식사를 한 적이 있었다. 미국 할아버지, 할머니지만 순두부 찌개를 참 좋아하셨기에, 저녁 메뉴로 순두부를 먹기로 했다. 우리가 간 곳은 고급스런 식당이라기보다는 단체로 와서 먹고 가는 그런 식당이었다. 밀튼은 멤피스(미국 테네시주) 출신인데 그곳에도 그런 값싼 아주 대중적인 식당이 많다고 하면서 그 순두부 식당에서 그런 향수가 느껴진다고 좋아하셨다. 그리고 저녁값을 구지 계산하신다고 하셨다.
❚동궁과 월지의 밤
저녁을 먹고 우리는 예전 안압지인 ‘동궁과 월지’로 이동했다. 그곳을 야간에 방문하기로 한 건 참 잘한 선택 같았다. 은은한 조명과 한국적인 정취가 물씬 풍기는 고풍스런 건물은 그저 꿈결같이 아름다웠다. 연못에 비치는 건물 모습은 환상이었다. 역시나 많은 인파를 뚫고 밀튼은 좋은 샷을 위해 이곳 저곳을 비집고 다니셨다. 내 눈에도 신기한데, 그 분들 눈에는 얼마나 더 그러할까 싶었다. 그리고 그날 밤은 지금도 나에겐 꿈같은 밤이었다. 그런 꿈결같이 아름다운 곳에 꿈결처럼 찾아온 두 분과의 시간은 내 기억에 좋은 꿈처럼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