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살이에서 만난 사람을 다시 한국에서 만남
❚70대 할아버지와 함께한 스벅에서의 브런치
다음 날은 오전에 경주 국립 박물관을 둘러보고 부산에 가서 미국에서 알게 된 지인들을 만나기로 한 날이다. 아침은 호텔 앞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어메리칸 스타일의 아침을 먹었다. 미국 할아버지는 아침으로 스타벅스 커피와 크림 카스테라를 드셨다. 너무 당연한 일이지만 나로서는 참 묘한 기분이 들었다. 늘 아침은 밥에 국인 우리 친정아버지에게는 가당치도 않은 일이다. 그런 어메리칸 스타일 브런치를 나눌 수 있는 사이라서 그런지 밀튼 할아버지와 세대차이는 별로 느낀 적이 없다. 워낙 한국 사람들과 교류를 많이 해오시던 부부라 그분들과는 문화적 차이로 인한 불편함도 거의 없었다.
❚바이블은 책이 아니다. 바이블은 살기 위해 습득해야 할 필수 언어이다.
햇살 좋은 테이블에 앉아서 여유롭게 아침을 먹으며 밀튼 할아버지는 크리스찬에 관한 색다른 말씀을 해주셨다. 크리스찬이 된다는 것은 새로운 언어를 습득하는 것과 같다고 하셨다. 언어는 사람의 생각과 문화를 담기도 하지만 반대로 생각과 문화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크리스찬은 바이블이라는 새로운 언어를 습득해서 세상을 그 언어로 이해하고 바라보고 자신의 생각을 정립시키는 사람들이라고 하셨다.
언어를 배우면서 우리는 언어 정체성을 가진다. 그리고 외국어를 익히면서 또 다른 언어 정체성을 가진다. 영어를 배우면서 또다른 자아 정체성이 생긴 것을 이미 경험한 바가 있기에 나는 밀튼 할아버지의 말씀이 이해가 절로 되었다. 바이블이라는 언어를 배우면서 자신에게 새로운 정체성이 생긴다는 것이다. 진정으로 크리스찬으로서 자기의 모습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언어를 배우는 것처럼 바이블도 평생 배워야 할 대상이다. 지식으로서 바이블을 대하는 것이 아니라 크리스찬으로서의 자아를 형성하기 위해 습득하려 해야 할 대상인 것이다. 우리는 완벽한 영어 구사자가 될 수 없다. 그럼에도 끝없이 영어를 익힌다. 바이블도 마찬가지이다. 완벽한 크리스찬은 죽을 때 까지도 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바이블을 익히는 것이 크리스찬의 도리라는 말씀이다.
다행히 그 아침 식사에 중2 아들도 옆에 있었다. 지루한 듯 큐브를 만지작했지만 나는 아들이 누구보다 귀를 기울이고 있었을 것이라는 걸 안다. 밀튼 할아버지의 말씀을 아들은 참 귀담아 듣기 때문이다. 밀튼 할아버지가 다녀간 이후 아들은 일요일 아침에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알아서 일찍 일어나서 교회 예배를 보러 갈 준비를 한다. 남편과 나는 이 모든 것이 신기하고 감사할 뿐이다.
❚경주 국립 박물관에 담긴 신라의 천년 역사
아침을 먹은 후 경주 국립박물관을 들렀다. 신라의 천년 역사가 고스란히 저장된 곳이니 할아버지 눈에는 신기한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닌 모양이다. 이번 여행을 위해 테라 단위의 메모리가 장착된 폰을 새로 구입하셨다고 한다. 단단히 벼르신 만큼 매 전시실을 들어서자 마자 연신 카메라에 담으려 분주하셨다. 미국으로 돌아가셔서 몇 달은 사진 작업을 하셔야 할 것 같다.
예전에 미국에 있을 때 밀튼 할아버지가 우연한 기회에 한국을 다녀 오신 적이 있었다. 평생 처음 한국이라는 나라를 다녀오고 나서 얼마나 신나게 우리들에게 사진을 보여주셨는지 지금도 그날이 생생하다. 할아버지는 대단한 프리젠테이션을 하시는 양 우리들을 거실에 둘러 앉게 하고는 대형 티비에 할아버지가 드신 한국 음식이며 둘러보신 곳의 사진들을 띄워놓고 신나라 하시며 한국행 여행기를 들려 주신 적이 있다. 아마 이번 두 번 째 한국 여행 기간 동안 찍은 사진은 아마 그 당시 여행의 몇 배는 될 게 분명하다. 이번 두 번 째 한국 여행기 프리젠테이션의 관객들은 단단히 준비를 해야 할 듯 하다.
❚이번 생에 마지막이라도 아직은 슬퍼하지 않기로
길든 어떻든 이젠 우리는 그 프리젠테이션을 구경 할 수 없다. 이번 여행을 끝으로 어쩌면 그 두분을 직접 뵙는 일은 이번 생에는 없을 수도 있다. 문득 그런 생각을 하면서 신나던 여행 중간 중간 슬픔이 와락 몰려 들기도 했다. 그래도 지금은 슬플 필요가 없기 때문에 슬픈 생각은 한 주 더 있다가 하기로 하고 당장 반가움을 만끽하기로 했다.
❚치맥으로 점심 떼우기
경주 관광을 끝내고 점심은 교촌 치킨을 야외 피크닉 테이블이 세팅된 식당에서 먹었다. 예전에 미국 유학 첫 해 남편과 아이 둘을 데리고 크리스마스 즘 뉴욕으로 가족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유학생 처지라 비싼 식당은 못 가고 피자나 햄버거로 식사를 해결했던 여행이다. 하지만 뉴욕의 교촌 치킨은 아무리 비싸도 절대 놓칠 수 없었기에 우리는 거금을 쓸 각오를 하고 들어간 적이 있다. 역시나 치킨값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배불리 먹지는 못 했던 기억이 난다. 마지막 한 조각을 가지고 아이들과 신경전을 벌였던 기억도 난다. 역시 미국 할아버지에게도 한국의 교촌 치킨은 히트였다. 먹어본 치킨 중에 제일 맛있다며 너무너무 잘 드셨다.
❚부산에서 다시 만날 반가운 얼굴들
치맥으로 배를 불린 후 우리는 부산으로 향했다. 이번 부산 모임은 참 의미있는 모임이다. 그 곳에 모일 사람의 숫자는 대략 20여명이다. 근데 그 20여명은 애초에 서로 관련이 없었던 사람이다. 하지만 한 사람으로 인해 그렇게 얽히고 섥히는 인연을 맺게 된 사이가 된 사람들이다. 아이러니하게 우리 모두를 귀한 인연으로 만들어 준 그 사람(호성씨-가명)은 정작 그곳에 불참했다. 호성씨네는 미국에 살고 있기에 올 수가 없었다. 한 사람이 사람을 소개해주고 또 다른 사람을 더 소개 시켜주고 그렇게 5년의 세월 동안 우리는 한 사람을 통해 서로를 알게 되었다. 힘든 미국 생활 기간 알고 지낸 호성씨는 우리 가족에게는 참 귀한 인연이다. 호성씨 덕분에 밀튼 할아버지도 레인 할머니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이후 더욱 더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되었다.
❚한 사람이 만들어준 인연
호성씨의 가족과는 친가족 마냥 주말마다 같이 밥도 먹고 서로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하던 사이였다. 그런 가족을 덩그러니 미국에 두고 와버려 참 미안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현재 그가족의 경제적 상황이 좋지 않아 더욱 마음이 쓰인다. 내가 힘든 시기에 함께 한 사람들이고 그 시기에 알게 된 사람들이라 누구보다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가웠다. 너무 반가워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루룩 흘렀다. 이제 다시 한국에서 만났지만 그 당시 나의 상황과 처지를 생각하며 아직도 힘들게 살고 있는 호성씨 가족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아무쪼록 그 가족에게도 좋은 일들이 새해엔 생기기를 기도한다.
밀튼 할아버지의 통역관으로 있던 나였지만 결국 사람들은 나를 통하지 않고 서로 손짓 발짓으로 대화를 나누게 되었고 왁자지껄 한바탕 소란을 피우듯 2시간의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일요일 저녁 부산에서 모임을 하고 밀튼, 레인은 부산 쪽 사람들이 일주일 관광을 책임져주기로 했다. 한 주 후 일요일에 호성씨의 장인어른이 목사님으로 계시는 부산 근처 한 교회에 예배를 함께 참석하기로 했기에 이별의 슬픔은 없이 가볍게 인사를 하고 두 분을 보내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