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극한 평온함을 경험하다.
❚다시 찾은 일상
주말의 꿈같은 여행을 끝내고 다시 한주가 시작되었다. 꿈같은 일이었지만 또 그렇게 아무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나는 다시 일상을 살아야 했다. 학교 출근 후 기말고사 시험 범위까지 진도를 다 나가야 하는 압박감을 느끼며 일상의 바쁨으로 던져졌다. 하지만 한 번씩 숨을 돌리는 순간순간마다 주말의 여행을 떠올리며 미소를 머금었다. 그리고 여전히 같은 타임 존, 같은 나라에 밀튼, 레인이 있다는 사실이 또 신기해졌다.
❚일주일 만에 다시
더군다나 다가올 일요일에는 처음으로 한국 교회에 두 분과 함께 예배를 보러 가기로 했기에 나의 설렘은 사라질 수가 없었다. 특히 이번 예배는 미국에서 친가족처럼 지낸 호성씨의 장인이 목사님으로 계시는 교회에 가서 보는 것이기에 더욱 특별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밀튼 할아버지의 간증(기독교에서 자신의 종교적 체험을 고백함으로써 하나님의 존재를 증언하는 일)이 계획되어 있었기에 더욱 기대가 되었다.
❚밀튼 할아버지의 신앙 고백
물론 밀튼 할아버지는 영어로 신앙 고백을 하신다. 밀튼 할아버지는 미리 준비한 영어 원고를 목사님에게 한국으로 오시기 전에 이미 건네주었고, 한국 교회는 이것을 우리말로 번역하는 작업까지 완료한 상태였다. 감사하게도 내가 그 간증 원고의 우리말 부분을 읽어주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현장에서 바로바로 하는 통역이 아니라 크게 긴장할 일은 없었다. 밀튼 할아버지가 두 세 문장을 말하면 내가 그 부분의 한국어 부분을 읽어주면 되는 간단한 일이다. 그래도 할아버지는 읽으실 문장들을 그룹 지어 번호를 메겨 두었다. 참 대단한 준비성이다 싶었다.
원고를 한 주 전에 받았다. 크리스찬의 롤 모델인 그 분은 어떠한 사연으로 크리스찬이 되었는지 내심 기대를 하며 읽었다. 하지만 생각만큼 드라마틱한 삶의 고전분투는 소개되어 있지 않다. 크리스찬이 되기로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간증을 별로 들어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영화나 소설에서는 신앙 고백이 상당히 드라마틱하다. 그런 선입견 때문에 밀튼 할아버지의 간증 원고는 다소 싱거운 느낌까지 들었다. 살짝 기대가 꺽여졌기에 원고도 그냥 그냥 읽으면 되겠지하는 마음을 먹고 한 주를 그냥 흘려 보냈다.
그런데 막상 당일 아침이 되니 걱정이 되었다. 나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우리말로 읽어주는 역할을 맡은 이상 내가 읽어 주는 말이 어색하면 그것도 곤란하다 싶었다. 할아버지의 영어 원고와 한국어 번역본을 꼼꼼히 비교 대조 해봤다. 혹시나 번역이 이상하게 된 부분은 없는 지, 우리말의 어순이 자연스러운 지 꼼꼼히 훑어 보았다. 브런치 작가가 되면서 나의 최초 독자로 활약을 하고 있는 남편는 원고 교정을 참 잘 한다. 역시나 이번에도 새벽같이 일어나서 원고 교정을 진지하게 파고 있었다. 별달리 특별한 간증은 아니지만 할아버지는 자신의 진솔한 삶의 이야기와 크리스찬으로 쉽게 간과하기 쉬운 성경 속 진리를 그날 오신 분들에게 전해 주고 싶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할아버지의 말씀을 최대한 간결한 우리말 문장으로 최선을 다해 전해드리고 싶었다.
❚드디어 그날이다
한 시간 운전을 해서 자그마한 교회에 도착했다. 처음으로 방문하는 한국 교회, 낯선 사람들 앞에서 그 조용한 예배 시간에 내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퍼져나가는 걸 상상하니 긴장감이 감돌았다. 오전 예배를 함께 보고 점심을 먹고 오후 2시 예배에 간증을 하기로 했다. 그래서 살포시 마음을 가다듬고 예배당에 앉아 아침 예배를 보았다. 예배 순서 중에 어느 신도 한 분이 자신이 준비한 기도를 드리는 차례가 있었다. 그런데 그 신도의 목소리가 얼마나 떨리고 격앙되어 있던 지 듣는 우리는 모두 마음이 불안불안했다. 기도가 끝날 때까지 그 분의 음성은 불안 불안했다. ‘나의 우리말 간증 리딩은 제발 저렇게 되지는 말아야 할 텐데.’라며 저절로 걱정이 되었다.
아침 예배가 끝나고 교회에서 정성스레 준비해주신 점심 식사를 함께 먹고 우리는 2시 예배를 위해 예배당으로 들어 갔다. 나와 밀튼 할아버지는 차례를 기다리며 맨 앞쪽 성가대 자리에 앉았다. 할아버지의 간증 시간은 대략 20분 가량이 되도록 배정 받았다. 살짝 긴장이 되었다. 그 순간 맨 먼저 ‘기도 해야겠다’라는 마음이 들었다. 마음 속으로 하나님께 이 시간 행사가 무사히 진행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아마 밀튼 할아버지도 그 자리에 앉아서 나와 같은 기도를 올렸을 것 같다. 나란히 앉아 있었기에 할아버지의 얼굴을 보지는 못 했지만 할아버지의 손길과 나에게 건네는 말씀에서 살짝 긴장감이 전해졌다.
언어가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전하는 메시지가 얼마나 전달이 될지 의구심이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꼼꼼한 할아버지는 자신이 천천히 말할 테니 자신의 읽는 부분의 단락 번호를 잘 챙기라고 나에게 당부를 하셨다.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을 시켜드렸다. 처음으로 해보는 일이기에 살짝 긴장이 되기도 하고 설레기도 했다.
❚지극한 평온함
드디어 우리 차례가 되었다. 마이크 앞에 밀튼 할아버지와 나란히 섰다. 그런데 아주 아주 신기하게도 마음이 지극히 편안해졌다. 조금 전 한 기도 덕분일까? 1도 긴장하는 마음이 없었다. 최대한 차분한 목소리 톤으로 한글 부분을 읽어 나갔다. 우리말을 읽으면서 내심 그 시간이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마음보다 그 순간들을 감사히 여기며 아끼듯이 보내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밀튼 할아버지는 평소 대화에서 늘 영어 표현을 하나라도 나에게 더 가르쳐 주시려고 하신 분이다. 그래서 늘 감사하게 배웠지만 오늘 만큼은 내가 할아버지께 작지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너무 뿌듯했다. 평소 할아버지의 성격과 말씀 스타일을 익히 잘 알기에 할아버지의 농담조의 말도 그 뉘앙스를 잘 살려 전해 줄 수 있었다. 그렇게 차분하게 간증의 시간이 흘러갔다. 교사가 된 지 거의 20년이 지났고 유학 기간 많은 수업 발표와 영어 프리젠테이션을 했지만 늘 대중 앞에 섰을 때 긴장하지 않은 순간은 없었다. 내 기억으로 긴장하지 않고 나의 역량 이상으로 해낸 것은 오늘이 유일한 것 같다. 옆에 있던 중2 이들이 나에게 물어왔다,“엄마, 안 떨렸어? 나라면 엄청 떨렸을텐데.“. ” 그럴까봐 엄마가 하기 전에 기도 했지~ .” 대답했다. 무엇보다 오늘 행사에 아들이 함께 한 게 참 다행이었다.
부산에서 이 예배를 보러 온 지인들도 내 목소리가 아주 차분하게 듣기가 좋았다고 말씀해주셨다. 그러며 덧붙히기를 “형수님~ 사투리 안 쓰실려고 노력 많이 하셨네예.” 했다. 사실 내용도 내용인지라 최대한 라디오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역시 나의 모국어는 경상도 사투리이다.
❚나를 위해 이미 해두신 일
“It was an act of love and joy and thanksgiving for what God had done for me in Christ.”
밀튼 할아버지와의 신앙 고백 시간은 두고두고 우리 모두에게 좋은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다음은 멀리서 온 미국 선교사(?), 밀튼 할아버지의 말씀 중 가장 마음에 들어온 대목이다.
I didn’t understand the fundamental truth that salvation was all of God and none of me. That God had set his affection on me as Ephesians 1:4 says “...he chose us in Him before the foundation of the world...”. Or further, that He had already fixed the time and date and circumstances of my conversion and that he was working His plan to bring me to Himself.
구원이 내가 아닌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에 의한 것이라는 근본적인 진리를 이해하지 못했었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1 장 4 절에서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먼저 저를 긍휼히 여기시기로 하셨다는 사실을요. 더 나아가서, 하나님께서 제가 회심할 시간과 날짜와 상황을 이미 정하셨고, 저를 하나님 그분 자신께로 데리고 오실 계획을 실행하고 계셨다는 사실을요.
During my years of school and military service, I was under the belief that Christian salvation and faith was gained by doing good things, and if you did not live a so-called “good life” you were not a Christian. This thinking continued into my early dating and marriage days.
학창시절과 군복무 시절에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구원과 믿음이 선행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며, 소위 말하는 것처럼 ‘선한 삶’을 살지 않으면 기독교인이 아닌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이 생각은 연애 때 뿐만 아니라 결혼하고 난 이후에도 계속되었습니다.
Later I came to understand the truths expressed in Ephesians 2:8-9, that salvation is by grace... that it is God’s grace by which we are saved, and that it is not according to our good works. I finally understood that salvation occurs outside of ourselves by the Lord Jesus through the work of the Holy Spirit. It is, as the Scriptures say, a gift of God.
나중에 비로소 에베소서 2 장 8-9 절에 나타난 진리, 즉 구원은 은혜로 말미암는 것이요,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우리의 선한 행위로 말미암지 않는다는 진리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마침내 구원이 성령의 역사를 통해 주 예수에 의해 우리 외부에서 일어난다는 것을 이해했습니다. 구원은 성경 말씀대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When I began to understand that my righteousness is “as filthy rags” to quote Isaiah, and that I have NOTHING worthy to offer God and that salvation is all of Him, my life really changed. I began to understand that as I sought to live my life according to the Scriptures, that it was not to earn God’s favor but rather as an act of love and joy and thanksgiving for what God had done for me in Christ.
이사야 선지자의 말처럼 제 ‘의’가 “더러운 누더기"와 같고, 제 안에는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선한 것이 아무 것도 없으며,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시작했을 때, 저의 삶은 진정으로 변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성경 말씀대로 제 삶을 살아가기를 추구하는 와중에, 그것조차 하나님의 은혜을 얻어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저를 위해 이루신 일에 대한 사랑과 기쁨과 감사의 행위라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덩그러니 내동댕이쳐진 존재가 아님
삶의 엎치락 뒤치락을 겪으면서도 예전보다 이제 마음의 평정을 어느 정도 얻을 수 있는 이유는 밀튼 할아버지의 간증에서도 나온 것처럼 나는 더 이상 혼자 덩그러니 내동댕이쳐진 존재가 아님을 믿기 때문이다. 한 해가 끝나가고 있다. 올해도 또 많은 것들을 감당하고 인내하면서 많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기에 감사할 뿐이다. 그 은혜 중에 가장 큰 것은 우리 가족이 미국에서 생활을 모두 정리하고 이렇게 멀리 한국으로 왔음에도 불구하고 밀튼 할아버지와 레인 할머니가 우리 가족을 방문해주시고 우리의 신앙심에 다시 불을 밝혀주신 일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