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려워하던 그날이 닥쳐버렸다.
❚한복이 멋스러운 레인 할머니
밀튼 할아버지와 함께한 간증 시간을 무사히 마무리하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멀리서 오신 두 분께 감사의 뜻으로 그 교회의 신도들이 한복을 미리 준비해 두셨다. 사실 한복은 참 귀한 선물이고 비싼 선물이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정성스런 선물을 두분을 위해 준비한 데는 이유가 있다.
5년 전 우리 가족이 미국에 있던 시기였다. 그 시골 작은 교회에서 15명가량의 청소년부 아이들이 미국 교회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밀튼 할아버지의 주선으로 그 15명가량의 한국 방문자들은 2명씩 그 미국 교회의 장로님 집으로 배정되어 두 주간 머물면서 교회 예배도 하고 인근 투어도 했다. 그 중 몇 명은 그 교회 소속 학교에서 며칠간 수업을 듣기도 했고 대학생인 몇 명은 내가 근무하던 대학교에 투어도 하고 나의 한국어 수업도 참관했다. 그들 중 상당수에게 그 여행은 평생 처음으로 하는 해외여행이었다.
서툰 영어지만 그들은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만큼은 가득했다. 미국 학생들이 한국어를 배운다구요?? 왜요??라면서 나의 한국어 수업에 와서도 한국어의 세계적 위상에 대해 새삼 놀라면서 너무 신기하다고 했다. 밀튼 할아버지와 그 교회 신도들과의 인연은 그 일을 계기로 더 단단해졌다. 그렇게 고맙게 아이들에게 세상 구경을 시킬 수 있게 한 분이 직접 그 교회에 방문했으니 그 청소년부 아이들의 부모님들이 느낀 반가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 부모님들이 십시일반으로 한복을 준비해 둔 것이다. 풍채가 좋은 밀튼 할아버지에게 한복은 다소 작았지만 그런대로 어울렸다. 특히 레인 할머니에게 한복은 너무 잘 어울렸다. 자그마한 체구여서 멀리서 보면 한국 사람이라 할 만큼 한복의 스타일도 색깔도 레인 할머니와 너무 잘 어울렸다. 함께 온 지인들과 모두 여러 번의 기념사진을 찍었다.
❚시간이 멈추었으면 할 만큼 아름다웠던 해변 산책
한바탕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부산에서 온 지인들은 돌아갔다. 우리는 밀튼, 레인, 그 교회 목사님 부부, 그리고 그 청소년부 아이들과 울산의 멋진 바다를 구경했다. 참 좋은 가을 날씨에 좋은 사람들과 걷는 해변 산책은 그저 시간이 멈추었으면 할 만큼 아름다웠다.
문득 레인이 나에게 “Soon, you look different from who you were in the U.S.” 미국에서 본 나의 모습과 지금 한국에서 보이는 내 모습이 사뭇 다른 모양이다. 어떻게 다르냐고 여쭈어 보았더니, 더 행복하고 더 활기차고 더 적극적으로 보인다고 하셨다. 레인 할머니가 보신 나의 모습은 주로 미국 교회에서의 모습뿐이셨으니 그랬을 것도 같다. 미국 교회에서 우리 가족은 성가대 지휘자 가족과 함께 유일한 외국인이고 유일하게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신도들이였다. 오늘 내가 이 한국 교회에서 보여 준 것처럼 활기차거나 적극적일 수는 없었던 게 당연하다. 물론 미국 대학교에서의 내 모습은 또 다른 모습이었겠지만 그건 레인 할머니에겐 보여지지 않은 부분이었다. 적어도 레인 할머니에게 비친 나는 그 당시 다소 쓸쓸해 보였을 것 같다.
레인 할머니는 활기찬 내 모습이 보기좋다고 하시며 흐뭇한 마음을 표현하셨다. 사실 나 역시 할머니에게 그런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서 참 다행이란 생각을 했다. 귀국 후 여러 가지 일들로 힘들 때 한 번씩 카톡 문자를 주고받은 적도 있고 화상 통화를 한 적도 있다. 나의 고민을 살짝 털어놓기도 했다, 거리가 거리인지라 할머니는 나를 위한 기도를 해 준다는 말만 해 줄 수 있을 뿐 별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러다가 이렇게 우리가 사는 곳으로 오셔서 우리 사는 모습을 직접 보고는 이제 마음이 조금은 놓이셨을 것 같다. 여전히 귀국으로 정착을 위한 몸부림을 치고 있는 시기지만 그래도 마음만은 잘 적응하고 있는 것 같아 두 분의 기도 덕분이라는 생각도 든다. 찬란한 석양을 배경으로 가을 해변을 할머니와 걸으며 반은 꿈같은 그 금쪽같은 시간을 너무 너무 아깝지만 붙잡을 수 없었기에 그저 흘려보내고 있었다.
❚어수선한 마지막 티 타임
산책을 끝내고 20여명의 일행은 이른 저녁을 먹으러 식당으로 향했다. 여기저기 흩어진 테이블에 여섯 일곱명이 그룹을 지어 식사를 했다. 함께 할 수 있는 마지막 식사였지만 식당이 복잡해서 같은 테이블에 앉을 수는 없었다. 식사를 끝내고 진짜 이제는 마지막 티 타임만 남기고 있었다. 그때까지는 사실 내일 또 만날 수 있을 듯한 착각마저 들 만큼 마음이 전혀 아무렇지 않았다. 오히려 지난 주 4일간의 시간과 이번 주 주말의 시간을 충분히 즐긴 덕분이라 이제는 보내드려도 괜찮을 것 같았다.
우리 모두는 근처 카페로 이동했다. 이번에는 레인 할머니 곁에 앉았다. 하지만 우리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있었기에 마지막 만남이라고 하기 무색할 만큼 우리의 티 타임은 번잡스럽게 흘러갔다. 아직 어린 청년부 아이들은 수줍어하며 그저 멀뚱멀뚱 두 분을 바라보고 있었고 밀튼은 언어 장벽에 가로막혀 유쾌한 대화를 나누고 계시지는 못 한 채 우두커니 앉아 계셨다. 그렇다고 내가 나서서 대화를 다 통역해 드리려 해도 누구하나 적극적으로 묻고자 하는 말도 전하고자 하는 말도 없었기에 그럴 수도 없었다. 그렇게 마지막 순간을 정말 어정쩡하게 보내버렸다. 그러든 말든 야속하게 시간은 어김없이 흘렀고 저녁 8시가 될 무렵 이제는 정말 내가 두려워하던 그 순간이 닥쳐버렸다.
❚이생에서 어쩌면 마지막
카페는 2층이라 지하 주차장까지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물리적으로 같은 공간에 있을 수 있는 마지막 순간이라 나는 레인 할머니의 손을 꼭 잡고 내려왔다. 눈물을 겨우겨우 참았다.
“엄마, 이제 레인 할머니를 보는 게 오늘이 마지막이야?” 중2 아들이 물었다. 내가 영어로 다시 할머니에게 이 말을 영어로 전해드렸다. 그랬더니 “Yes, it may be the last time in this life. (그래, 이생에서 어쩌면 마지막일 지도 모르지.)”하신다. 그만 그 눈물보가 툭 터져 버렸다. 그제서야 실감이 확 났다. 70대 중반이신 두 분이 다시 한국을 올 리 없고 나 또한 다시 당분간 짧은 여행이라도 미국에 갈 상황이 못 되니 어쩌면 이게 마지막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분을 호텔로 모시고 갈 분의 차 앞에 도착했다. 정말 마지막으로 두 분과 이별의 포옹을 했다. “Thank you for visiting us in Korea (우리가 있는 한국에 와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이라 말씀드렸다. 짧게 내뱉은 말이 지만 내 안에는 아주 많은 걸 포함한 말이었다.
긴 비행시간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오시려고 애초에 결심을 해주셔서 감사해요.
우리의 안부가 염려되어서 이렇게까지 멀리 일부로 보러 와줘서 감사해요.
4주 채 안 되는 짧은 여행이지만 우리 가족에게 귀한 시간을 내어 주셔서 감사해요.
5년간의 유학 기간 동안 진 빚을 이렇게 아주 아주 작지만 갚을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해요.
무엇보다 우리에게 꺼져가는 신앙의 빛을 다시 밝혀 주셔서 너무너무 감사해요.
그렇게 짧게 작별의 인사를 하고 우리는 헤어졌다. 그리고 사흘 후면 이제 두 분은 다른 타임존의 나라로 돌아가신다. 완전히 이별이라 하기에는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나는 다시 다음을 기약하고 싶어 마지막 날 밤 카톡 영상 통화를 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나는 이별에 잠시 멈춤을 걸어 두었다.
❚이별에 잠시 멈춤 걸기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었고 두 분은 서울 지역에서 남은 시간을 보내셨다. 마지막 날 밤 약속한 대로 영상 통화를 했다. 아직 9시도 채 안 된 저녁 시간이지만 이미 두 분은 파자마 차림으로 누워 계셨다. 할머니가 산책을 다녀온 사이 꼼꼼한 할아버지가 이미 모든 짐을 다 챙겨두어서 일찍 짐 정리가 다 끝났다고 하셨다. 꼼꼼한 할아버지와 이를 허용하는 할머니는 참 천생연분인 것 같다. 평소 하던 카톡 영상 통화처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화면 속의 두 분은 이미 미국 할머니 집에 있을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아서 새삼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것이 어색할 만큼 이미 내 마음에 두 분은 이미 미국으로 돌아가신 상태였다. 그렇게 두려웠던 마지막 이별의 시간은 한 번에 딱 끝나지 않았고 매일 조금씩 이별하는 듯한 느낌으로 서서히 마음에서 그 두 분을 보내드렸다.
❚여기를 다녀가셨다니!
이제 같은 타임존에 두 분은 안 계신다. 퇴근해서 혼자 덩그러니 집에 있을 때는 두 분이 앉으셨던 우리 집 식탁을 멍하니 바라본다.
‘밀튼, 레인이 여기를 다녀가셨다니......!’
꿈결같이 오신 두 분과 함께한 그 시간들은 그렇게 나에게 꿈결처럼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