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9. 사소해도 행복

:보통 사람들의 사소하고 소소한 말들

by Hey Soon

❚00 같아 보이는 사람

지난 수요일은 추억 여행을 하고 온 듯한 날이다. 근무하는 학교 교장 선생님께서 “학교 소통 공감의 날” 행사를 20년 전의 스타일로 계획하셨다. 우리 학교의 신규 남자 선생님께서 그날의 레크레이션 행사 진행을 맡는다는 소문을 듣고 다들 고리타분한 올드 스타일의 그렇고 그런 행사를 하겠구나 하며 다들 난색을 드러냈다. 소통 공감을 위한 행사지만 다른 어떤 행사보다 우리의 의견이 철저하게 묵살된 행사였다. 반강제인 이 모임이 애초에 왜 소통 공감의 날 행사인지 아이러니했다


아이들이 다 하교한 후 학교 강당으로 전 교직원을 불러 모았다. 함께 근무하는 학년실 선생님들과 바쁜 일을 뒤로 하고 강당으로 갔다. 입구에서 좌석 번호를 뽑게하고 그 자리를 찾아가 앉으라는 거였다. 이 또한 강제 소통을 시키려는 주최측의 억지 같은 아이디어였다. 6명 가량의 소그룹으로 앉도록 둥근 테이블 8개가 대열에 맞춰 놓여 있었다. 전교생이 1000명 가까이 되는 큰 학교이다 보니 같은 학교에 근무한다고 해도 서로 안면식을 하지 않은 동료도 많다. 다행히, 번호를 잘 뽑아서 교장선생님과 같은 테이블이 되는 불운은 면했다. 하지만 같은 테이블의 두 명은 이미 친하게 지내던 동료 교사였지만 나머지 세명은 급식실에서 근무하시는 분들이라 그날 처음으로 만나게 된 분들이었다.


어색한 인사를 나누었다. 하지만 처음 뵌 분들이지만 식사까지 같이 할 상황이니 식사하기 전까지는 어쨌든 어색함을 없애야 겠다 싶었다. 그래서 학교 급식을 너무 맛있게 먹고 있고 점심시간에 살짝 늦게 가서 먹는데 이건 가서 많이 먹으려는 내 작전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 분들도 나를 처음 봤다면서 내가 국어 교과 담당이냐고 물어왔다. 국어 가르칠 것처럼 생겼다는 거였다. 그리고 엄마처럼 포근포근해 보인다고 했다. 교과 마다 담당 교사의 특징이 있는 가 보다. 예전에는 가정 선생님일 것 같다는 이야기도 제법 들은 적이 있었다. 그리고 오늘은 국어 교사로 보인다고 하신다. 언제든 수수한 내 옷차림 때문에 영어 교사로 보인다는 소리는 한번도 들을 일은 없는 듯 하다.


그리고는 이내 엄마처럼 포근한 선생님 같다고 덧붙혔다. 엄마 같은 선생님이라는 말이 참 듣기 좋았다. 집에 있는 우리 둘째가 중2이고 내가 담임하고 있는 학년이 중3이니 거의 아이들이 집에 아들처럼 느껴진다. 가끔 급한 마음에 반 아이들과 대화를 하다가 “엄마가 해줄게”하는 일이 다반사다. 집에서 엄마이자 교사인 나는 학교에 가면 교사이자 엄마가 된다. “그래서 우리 반 애들이 나한테 응석을 부리고 애교를 부리는 건가요?”하고 그분의 말에 대답을 했다.


그렇게 너스레를 떨고 있자니 이내 행사가 시작되었다. 사회자가 각 테이블에서 가장 영혼이 자유로워 보일 것 같은 한 사람을 뽑으라는 주문이 들어왔다. 생전 처음 본 사람들 끼리 우리는 서로 멀뚱멀뚱 거리고 있었다. 그러더니 사회자가 하나, 둘, 셋 하면 한 사람을 지목하라는 거였다. 그런데 생전 처음 본 그 분들이 나를 뽑는 게 아닌가? 내가 영혼이 자유로운 사람이던가?


❚세월이 만들어준 나의 모습

오늘 처음으로 만난 사람들로부터 다양한 수식어를 들었다. 내 안에 존재하는 나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국어 선생님 같은 사람, 엄마같은 선생님, 영혼이 자유로운 사람. 어쩌면 그게 나일 지도 모른다. 그 세 가지는 참 다른 속성을 가진 수식어들이지만 하나 같이 내 마음에 들었다. 예리하기 보다는 둥글둥글함이 떠오르는 그런 수식어들이다. 순전히 나의 통통한 외모 때문에 붙은 말들일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세월을 보내며 울퉁불퉁한 나의 성격이 그렇게 둥글하게 바뀌고 있어서 나의 표정에도 그게 묻어난 거라 믿고 싶다.


그렇게 나를 향한 수식어를 잔뜩 선물 받고 있자니, 앞에서 추첨을 한다면서 좌석 번호를 잘

챙기라고 사회자가 말했다. 난 늘 그런 뽑기 운은 없는 사람이기에 마음을 접고 간단한 다과나 챙겨 먹으려고 했다. 역시나 어떤 번호가 호명되었다. 그런데 그 번호를 가진 사람이 이미 퇴근을 해서 없다고 한다. 그리고 두 번째로 번호를 뽑았다. 그런데 왠일인가? 100여명 되는 교직원들 가운데 내 번호가 떡 하니 불렸다. 비록 1만원짜리 상품권 추첨이긴 하지만, 그날 나는 또 하나의 수식어를 선물 받았다.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다.


그날 저녁 남편으로부터 또 한 가지 수식어를 선물 받았다. 지인의 아들이 중3인데 그 아들 친구가 나한테 영어를 배운다고 했다. 그러면서 영어를 잘 가르친다고 소문난 쌤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 학생이 누군지 이름까지는 모르는 익명의 칭찬이지만, 나는 혼자 어깨를 으쓱했다.


❚보통 사람들의 사소하고 소소한 말들

오늘은 참 사소한 일상의 대화들이고 행사였지만, 그 안에서 나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거창한 표창장이 아니다. 보통 사람들의 사소하고 소소한 말들이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 같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