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교장의 재량권은 어디까지?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중학교 생활을 시작한 현 중3 학생들이 드디어 중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다. 여전히 마스크를 착용하는 안전수칙을 지키며 학교 생활을 하는 그들이지만, 올해는 그래도 졸업식을 강당에서 모여서 할 가능성도 있게 되었다. 작년 중3들은 하지 못한 학교 축제도 올해는 계획을 하고 있다. 일찌감치 2학기 기말고사까지 다 끝낸 중3들은 모처럼 반별 댄스 대회에 열심이었다. 두 주간 연습을 하고 예선을 치른 후 12반 중 7반 만 본선 무대인 12월 말 학교 축제에 공연을 할 수 있는 티켓을 받게 된다고 한다. 중3이라 아직 미숙한 부분이 많지만 학교 축제는 대부분 학생회에서 일련의 크고 작은 것에 대해 기획하고 운영하도록 기회를 주는 행사이다.
엎치락 뒤치락 대회에 관한 방침을 여러번 수정한 끝에 지난 목요일 학교 강당에서 리허설을 끝내고 다음 날 전교생이 강당에 모여 예선전을 치렀다. 두 주간 주말마다 모여 따로 연습을 한 반도 있다고 한다. 우리반은 전신 거울이 있는 인근 지하철 역에 모여서 주말에 연습을 했다고까지 한다. 참 오랜만에 함께하는 그 아이들의 모습이 상상만으로 흐뭇하다. 짧은 기간이지만 서로 격려하고 자신의 역량을 최대로 발휘하며 함께하는 아이들에게 이번 행사는 두고 두고 기억에 남을 듯 하다.
전교 학생회장, 부회장은 리허설 연습 시간도 반 별로 공정하게 하기 위해 타이머를 재면서 운영을 했다. 맨 처음으로 리허설을 하게 된 우리반은 아침 등교와 동시에 강당으로 이동했다. 아무도 없는 강당이니 조금 더 일찍 리허설을 해도 되지 않을 까 했지만 한치의 오차도 없이 학생회 친구들은 계획된 시간만 허용하는 진지함을 보여주었다. 그렇게 아이들은 자신들의 자율과 책임을 최대한 발휘하며 이번 행사를 주도하고 있었다.
드디어 예선전이 있는 날이었다. 오전 수업을 끝내고 5-6교시에 예선전이 계획되어 있었다. 제비뽑기를 한 순서대로 강당에 질서정연하게 앉은 아이들은 학생회의 진행에 잘 따르며 아주 의젓하게 관람하고 자신의 공연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켜보는 선생님들은 다들 언제 이렇게 아이들이 컸는지 모르겠다며 칭찬과 대견함을 표현했다. 다양한 컨셉과 춤을 선보인 아이들은 ‘한껏 신나게 잘 놀았다’ 생각하는 듯 담담하게 결과 발표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지막 팀이 끝나고 바로 결과 발표를 한다는 사회자의 말이 들려왔다. 관객으로 앉아 있던 대부분 담임들은 ‘벌써?’‘이렇게 빨리 점수표 집게가 가능한 거였어?’라며 놀람을 감추지 못 했다. 교장선생님이 이미 강당 무대위로 올라가 있었고 심사위원들의 결과표를 기다리는 듯 했다. 그리고 그 사이 너무 열심히 한 아이들의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아이들은 “네~ 네~” 하는 태도로 숨죽여 결과만을 고대하고 있는 듯 했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여러분이 너무 열심히 해줘서 본선에 12반 다 올려보내기로 교장 선생님이 결정했어요. 그리고 졸업식날 그 중 3팀을 무대 위에 올리기로 했답니다.”
교장의 뜬금없는 발언에 강당은 순간 정적이 흘렀다. 담임 교사도 학생들도 다들 ‘이건 뭐지?’하는 반응이었다. 담임 교사들은 ‘이걸 교장 마음대로 정해도 되는 거였어?’ ‘그럼 이렇게 빠듯하게 예선전을 강행한 이유가 있었어?’ 우리는 모두 어이가 없어 할 말을 잃었다. 심지어 3학년 부장교사도 이 일을 처음 알게 되었다.
예선전은 예상한 시간보다 일찍 끝났다. 아이들은 일단 각자 교실로 이동했다. 아이들은 화가 단단히 났다. 우리반 아이들은 “교장 쌤 탄핵시켜요”라는 말 까지 했다. 난 “그럴 필요 없다. 올해를 끝으로 정년퇴임 하신다.”라고 말해줬다. 아이들은 안도의 함성을 쉰다. 학생 자치로 이루어진 일련의 행사가 잘 마무리 되었다. 그런데 마지막 교장의 독단이 행사를 망쳐버린 꼴이 되었다. 12개 반 담임교사들은 너무 화가 났다. 아이들의 화를 감당해야 하는 부담도 부담이지만, 우리마저 이런 결정에 소외된 채 학교장 마음으로 결정을 내린 사실이 납득이 되지 않았다.
우리는 교장실로 내려가 대화를 요청했다. 사태 파악을 했는 지 교장은 교감과 함께 학년실로 왔다. 아이가 춤을 춰서 아래층 사람으로부터 항의를 듣는다는 학부모 민원을 이유로, 4년전의 학교 폭력 사건을 빌미로 아이를 우리 학교로 배정시키지 말아달라는 교육청에 항의한 학부모의 민원을 운운한다. 그리고 이번 졸업식은 강당에서 할지 말지 고민중이라는 등 교장은 오늘의 독단과 별 상관 없는 이야기로 썰을 푼다.
학년 부장의 불쾌한 표정과 무거운 회의 분위기가 감돌었다. 여전히 교장은 자신이 오늘 너무 바빠서 의논을 할 시간이 없었다면서 자신이 12반을 다 본선으로 올리기로 한 자신의 결정을 합리화 하기 바빴다.
불의를 보면 못 참는 나의 성격이 그만 발동 해버렸다.
“교장 선생님, 지금 졸업식을 강당에서 할지 각 교실에서 할지 정하기 위해 우리가 이 자리에 모인 겁니까?”
“오늘은 교장 선생님과 우리 담임 교사간에 의사소통이 부재하여 생긴 일이라 생각합니다. 우리는 미리 우리와 의논을 하지 않고 교장 선생님께서 독단적으로 결정한 부분은 지혜롭지 못한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여러 명이 함께 고민하면 더 나은 해결책을 마련할 수도 있었던 부분인 것 같습니다. 가령, 12반을 다 본선에 올리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일단 약속대로 7반을 선정하고 나머지 반도 희망하면 본선 무대에 설 수 있다고 하시면 되는 것 아닙니까?”
“그러면 7반에 든 반들이 기분이 상해서 본선 무대에 올라가고 싶겠어요?”학교장의 대답이다.
참 말이 안된다. 그럼 이제껏 일곱 반을 뽑으려고 한 두 주간 동안 본인은 어디 있었단 말인가? 왜 그 계획을 오늘 단독으로 뒤엎는단 말인가? 학교장의 재량권은 그 한계가 없는 건가?
나는 민주적이지 못한 교장의 경영 스타일에 결국 “독단”이라는 말과 “지혜롭지 못한”이라는 직설적인 표현을 쓸 수 밖에 없었다. 결국 다음 수업 때문에 회의에 끝까지 참여하지 못했지만 얼핏 교장의 실수를 인정하고 예정대로 다음 주 일곱 반을 선정하는 것으로 마무리가 된 것 같다.
일련의 사건을 다 전해 듣고 난 남편은 나의 말이 너무 직설적이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중2 아들은 엄마 말이 다 옳은 건데 뭐 하며 다른 입장의 피드백을 준다.
"You are so assertive." 예전에 미국 대학교에서 근무하면서 나의 상관에게서 들은 소리가 생각난다. 내가 그렇게 자기 주장이 강한 사람이었던가?
이번 일에서 내가 자기주장이 강한 건지 상황이 어이없는 건지 알 수 없다. 그리고 학교장의 재량권은 이런 일에서도 독단적으로 정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인지 묻고 싶다.
그 교장은 다음 달 학교 행사에 본인이 한복을 입고 전통춤을 단독으로 추신다고 한다.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벌써 부터 걱정이 밀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