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월의 졸업식
❚새로운 마음가짐, 학생들에 대한 두 가지 결심
벌써 두 번째 졸업식을 치렀다.
유학을 마치고 복직을 하며 중3 담임을 연거푸 2년째 하고 있다.
미국 가기 전과는 다른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아이들을 지도하려 매년 노력 중이다.
첫해는 아이들에게 내가 본 넓은 세상을 최대한 많이 나누고 싶었다. 캠브리지대학교 교수님이셨던 독일계 영국 물리학자이신 Dr. Held 교수님과 실시간 줌 인터뷰도 중3 아이들과 진행한 것도 그 이유 때문이었다.
작년 이맘때 코로나 상황이 심각해서 졸업생들이 다 같이 강당에 모여 졸업식을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대신 각 반 교실에 앉아서 방송으로 진행되는 졸업식을 했다. 그 졸업식에 그 인터뷰 영상이 전교생에게 송출되었다. 영상을 보는 아이들이 이렇다 할 반응을 하진 않았지만, 분명 인상에 남았던 순간이었으리라 믿는다. 이제 배움의 큰 터전으로 나가는 중3 졸업생들에게 영어가 세상과 만나는 소중한 도구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두 번째 해인 2022년에는 우리 아이들에게도 미국 아이들과 같은 용기, 자율, 책임 같은 덕목을 키워보고 싶었다. 한국 아이들은 수업 시간 중 교사의 질문에 대답을 바로바로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남을 의식하는 사회이다 보니 알아도 모른 척 하는 학생들이 많다. 물론 몰라서 대답하지 않는 것은 용서가 된다. 하지만 알고도 모른 척 하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
대답을 얼마나 자주 하는 지를 체크 했다가 수행평가 점수에 반영하는 선생님들까지 있다. 하지만, 나는 그게 오히려 아이들의 입을 더 막는다는 생각을 한다.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보면, 한 학생이 발표를 할 때 옆 학생들은 그 이야기를 귀담아듣기보다는 시기나 경쟁과 같은 부정적인 분위기를 조장할 수 있다. 그래서 내 수업에서는 대답을 잘 하는 친구에게 따로 점수 주는 일은 없다. 시간을 좀 더 준다. 대답을 할 수 있는 학생이 마음을 먹을 수 있도록 더 시간을 준다. 그리고 질문을 좀 더 쉽게 풀어서 다시 던진다. 자율적 답변이지만 질문의 답을 알고 있는 누군가는 책임을 느끼며 자신의 앎을 공유해야 하는 것이 나의 철학이었다. 어김없이 아무리 조용한 반이라도 누군가는 대답을 한다. 그럴 때 나는 진정 용기와 자율과 책임이라는 덕목이 키워진다고 믿는다.
담임을 맡은 반 아이들일 경우에는 그런 자율과 책임 덕목을 최대한 많이 적용시키려 했다. 아이들에게 가장 민감한 이슈인 자리 배치의 경우 철저하게 아이들 스스로 정하도록 그들의 권한으로 존중해주었다. 아이들이 자치적으로 규칙을 정해 자리 배치를 했다. 아이들은 매달 한 번 뽑기로 자리를 정하기로 한 모양이었다. 매달 자리 뽑기 날이 되면 결석생도 없다. 점심시간 담임인 내가 교실에 없어도 자기네들끼리 아무런 다툼도 없이 뽑기로 매달 자리를 정하는 행사를 진행했다. 시력이 나쁜 학생들은 별도로 맨 앞줄을 배정해서 그 앞줄에서 뽑기를 하도록 하는 등 나름 남을 배려하는 정성도 들이며 진행했다. 참 기특했다.
❚새로운 마음가짐, 나에 대한 한 가지 결심
학생들에게 심어주고 싶은 덕목이 용기, 자율, 책임이었다면 나 스스로에 심어주고 싶은 가치는 포용력 이었다. 40세가 된 해 감정 노동자인 내 처지가 가엽기도 하고 더는 참아내고 싶지 않아 탈출하고 싶어서 미국 유학을 결심했다. 완전히 환경이 다른 곳에 적응하며 5년 간 생활을 하면서 나의 인내심과 이해심은 커질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세월을 보낸 후 이제는 알게 되었다. 상황을 인식하는 나의 시선을 바꾸면 충분히 나는 나 자신을 감정의 쓰레기통이라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 감정의 쓰레기통이라는 비참한 비유보다는 감정의 솜이불 같은 내가 되기로 했다. 특히 이번 학년도 중3 담임을 하면서 더욱 마음에 깊이 결심한 부분이기도 했다.
귀국 후 중학교로 복귀를 하니 여전히 버릇없이 구는 학생, 무례한 언행을 하는 학생들은 내 마음에 거슬렸다. 제 아무리 경력이 20년 가까이 되는 교사지만 역시 감정 조절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의 태도는 유학 가기 전의 나와는 많이 달라졌다. 이제는 나 자신을 감정의 쓰레기통이라 생각하지 않고 감정의 솜이불이 되겠노라 결심했다. 아이들의 무례함에 대적하지 않기로 했다. 그런 외부 요인에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기로 했다. 그냥 솜이불처럼 아이들의 말을 통째 품어 버리기로 했다. 훅 들어오는 아이의 말과 무례함이 내 마음에 상처를 남기지 않게 하려면 내가 그냥 솜이불이 되버리면 되는 거였다. 그렇게 일 년을 보내다 보니 정말 아이들에게 언성을 높이거나 화를 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감정조절을 하지 못해 울그락 붉그락하는 일은 결코 없었다.
아버지와의 갈등이 심해 고민을 말하는 한 여학생
남자친구와 헤어져서 마음 힘들어하는 학생
성적이 너무 저조해 인문계 진학이 좌절되어 자존감마저 무너지는 학생
때로는 버릇없이 구는 사춘기 남학생
그런 아이들의 마음을 보듬어 주는 솜이불이 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알았다.
아이를 보듬어 주는 솜이불도 괜찮은 거라는 걸.
맡은 반 아이들에게는 내가 엄마뻘이 되다보니
아이들은 나를 아주 친근하게 대했다.
아이들한테 도움을 급하게 주러 가면서
나도 모르게 ”엄마가 해줄게” 한 적도 있다.
그런 나 자신에 대해 헛웃음을 짓기도 했다.
❚준비되지 않은 이별
그래서 일까?
유난히 올해 반 아이들도 헤어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많이 큰 것 같았다.
준비되지 않은 이별을 강제로 하는 느낌이랄까?
결국 감성이 풍부한 한 여학생이
나에게 안기며 울음보를 터트렸다.
나의 눈물샘도 그만 터져버렸다.
요즘 세상에 중학교 졸업식에 눈물이라니??
하지만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헤어지는 슬픔도 있지만
그 아이들이 맞이할 새로운 도전을 생각하니
마음이 짠 하기도 하고
이제는 커서 내 품을 떠나는 아이들을 보니 대견한 마음도 들었다.
아직 이별이 준비되지 않았기에
아이들은 나에게 “쌤 꼭 놀러 올게요. 쌤 여기 계속 계시죠?”
몇 번을 다짐하듯 묻는다.
“그래, 그래. 쌤은 아직 2년을 더 여기 꼼짝않고 근무하니 오다 가다 들러~.”
따뜻한 봄이 오면 또 새로운 학년도가 시작되고
또 새로운 아이들과 인연을 맺겠지?
하지만
오늘 졸업하는 아이들은
내 마음속 고이고이 간직하고 싶다.
오늘 처음으로 졸업생에게 꽃 선물을 받았다.
내가 꽃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는 듯
넙죽 받아 들고 활짝 웃어주었다.
선물 중 꽃 선물을 제일 좋아하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오늘은 꽃 한 다발에 울다가 웃는 사람이 돼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