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같은 고향 사람

:어디든 비슷한 해외 살이

by Hey Soon

❚고향

설 연휴가 되면 누구든 고향을 떠올리고 고향을 그리워한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도 괜히 같은 고향 사람이면 반가움이 앞선다. 왜 일까? 같은 공간에서 함께 한 것, 그리고 비슷한 환경에서 가지게 되는 공통의 경험 그것은 낯선 사람과 대화를 하기에 충분한 시작점이고 공통 분모가 된다. 공감이 절로 되는 대화만큼 사람을 기분좋게 만드는 것도 없다. 빠른 세월의 변화를 겪고 있는 매일이지만 아련한 우리의 과거에 대한 기억은 고향이 주는 푸근함과 함께 시간을 거슬러 늘 그 자리에 온전하게 자리잡고 있다.


우리 가족은 미국에서 5년 가량 생활을 했다. 그곳은 나에게는 한국 생활의 1/8에 불과하는 상대적으로 아주 작은 분량의 세월이다. 하지만 그곳에서 나의 경험은 아주 다른 색깔을 띄었고 나에게 준 임팩은 내 삶의 절반을 살았다고 해도 믿을 만큼 아주 크다. 그 곳에서 경험은 아련하다. 늘 좋은 일들만 있었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따금 생각이 난다. 가끔은 그곳과 그곳에서 알고 지낸 사람들이 그리워진다.


❚유년 시절을 보낸 곳은 어디라도 고향

이제 16살이 되는 아들에게 그곳은 초등학교 전 기간을 보내다시피 한 공간이기에 고향이나 마찬가지인 곳이다. 누구든 유년의 시기를 그리워하고 그 당시 살던 곳은 늘 아름답게 기억이 된다. 초록 풀밭에서 쨍쨍 내리 쬐는 햇볕을 받으며 친구들과 풋볼을 하고 축구를 하고 농구를 하고 프리즈비를 던진 그곳이 아들에게는 그림같이 아름다운 천국이나 마찬가지다. 중2인 아들은 이번 겨울 방학 동안 혼자라도 그 곳을 다시 방문하고 싶어할 만큼 그런 유년 시절을 보낸 그곳을 그리워한다. 지난 가을 잠시 한국을 방문한 밀튼 할아버지의 초대로 미국을 혼자라도 가겠다고 단단히 마음을 먹었었다. 비록 미국 현지의 여러 상황적 이유때문에 가지는 못 했지만 그만큼 아들에게 그곳은 언제고 가고 싶은 고향이다.


❚고국을 떠나 본 사람은 모두 같은 고향 사람

해외살이를 통해 내가 한 색다른 경험은 국내에서 절대 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물론 일상의 주부로서 살아가는 것은 정말이지 똑같다. 식료품을 끊임없이 사러 다니며 삼시 세끼를 해결하며 집안일을 하는 것은 그곳이든 이곳이든 지겹도록 같다. 하지만 그것을 제외한 일들 특히 사람과의 관계된 모든 것들은 너무너무 다르다.


타국에서 느끼는 그 감정은 좋은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공존한다. 온전히 나 스스로 개척해 가야 하기에 독립적인 마음으로 무장하고 매사에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침착함, 혼자임을 쓸쓸하게 여기지 않는 강인함, 낯선 사람이나 공간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용기 뭐 이런 것들이 내가 타국에 살면서 길러진 감정이다. 하지만 우리 네 가족 이외에는 가족이 없기에 문득문득 밀려오는 그 고독함은 나 스스로 허공에 날아다니는 민들레 홀씨 같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 가끔은 그런 나의 처지에 연민의 감정이 강하게 들기도 했다.


타국살이가 느끼는 그런 감정은 어디든 비슷한가 보다. 이번 겨울 방학 동안 매주 금요일 엄마표 영어 티타임이라는 모임을 하고 있다. 그 모임에 참가한 사람들 중에 해외 살이를 한 분이 두 분 오셨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이지만 첫 만남에서부터 많은 부분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는 “고향 사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정말 신기하게도 한 분은 내가 살던 미국 남부 도시, 딱 그 도시에 살았다고 했다. 거주 기간을 서로 물어 본 결과 일 년 정도 겹쳤다. 물론 그 당시에 서로의 존재를 몰랐지만 같은 곳에서 해외 살이를 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반갑고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게 많았다. 미국을 떠나온 지 거의 3년이 다 된 지금이지만 늘 가던 한국 식료품 가게, 코스트코, 한국인이 많이 살던 구역, 아이들 학교 등등 과거를 추억하며 서로 반가움에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또 한 분은 유럽에서 몇 년을 사시다가 아이 출산 즘 귀국해서 현재 4년 정도 한국에 머물고 있는 중이라고 하셨다. 비록 그 분이 살던 곳은 미국과 대서양을 사이에 둔 먼 유럽이지만 타국 살이의 애환과 정서는 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리터니(일정기간 해외 살이를 한 후 귀국한 사람)가 된 계기를 물어보니, 답은 심플했다. “타국 살이가 어떤 건지 잘 아시잖아요. 녹녹치 않은 상황이라는 걸요. 그래서 코로나가 있기 전 즘에 출산을 위해 귀국했고 이젠 완전 귀국했어요.” 그렇다. 해외살이는 녹녹치 않다. 자신의 모국이 아닌 타국에서 사는 사람은 모두 같은 고향 사람인 느낌이 드는 것은 이것 때문이다.


❚이별을 통보하는 같은 고향 사람

우리 학교 원어민 선생님은 영국 국적을 가진 20대 후반의 아가씨이다. 그 선생님에게 이곳 한국은 나에게 미국과 같은 타지이다. 비록 같은 곳에 있지만 그 선생님에게 이곳은 낯선 타향 살이에서 느끼는 그 감정들을 고스란히 전해주고 있는 듯 하다. 20살 가량의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선생님의 마음이 어떨지 잘 그려진다. 그래서 같은 고향 사람처럼 우리는 거의 하루 종일 수다를 떨 수 있는 막역한 사이가 될 수 있었다.


그런 고향 사람이 이제 떠난다고 한다. 지난 주 학교에 당직 근무를 위해 그 선생님과 하루 종일 시간을 같이 보냈다. 본국으로 갈 준비, 세금 보고, 가스와 전기, 핸드폰 같은 서비스를 정지 시키는 일등 소소하게 해야 할 일이 많았다. 한국말을 못 하는 사람이 한국에서 그런 업무를 오롯이 혼자 해야 한다면 얼마나 막막할까? 영어를 꽤 한다고 하더라도 내가 귀국을 앞두고 처리해야 했던 많은 일들을 그 선생님도 이제 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그 선생님의 막막함을 알기에 난 내 업무도 아니지만 내 나라이고 내 나라 말로 하는 일들이기에 기꺼이 그 세세한 사항들을 쉽게 처리해 줄 수 있었다.


같은 고향 사람을 돕듯이 나는 아주 기꺼이 그 선생님의 귀국 준비를 도와주었다. 이제 같은 고향 사람이 아주 멀리로 떠나간다. 지난 일년 반 동안 같은 근무지에서 함께 나눈 그 추억이 아련하게 그리고 따뜻하게 기억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여전히 카카오톡으로 서로의 안부를 그리고 일상의 대화를 물리적 공간과 시차를 뛰어넘어 이어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새해 인사를 건네는 반가운 같은 고향 사람

고향 사람 같이 정이 든 한 친구가 이별을 통보할 즘, 고향 친구 같이 정이 든 또 다른 친구가 연락을 해왔다. 미국 유학 시절 나의 한국어 수업을 수강하던 인도 아가씨이다. 역시나 20대 후반의 나이로 나와 나이 차이는 제법 나지만 그 친구와의 대화는 늘 같은 고향 친구처럼 즐겁다. 그 친구가 반가운 소식을 전해왔다. 6살 정도 어린 패션에 관심이 많은 여동생도 3월에 서울에 있는 대학교로 유학을 온다고 한다.


❚영어는 링구아 프랑카(세계 공용어)

영어 덕분에 생긴 고향 사람들, 그들과 나누는 이야기들은 내 삶을 한층 더 다채롭게 해준다. 한 자리에 머문 사람들은 결코 느낄 수 없는 그 감정의 결들을 난 그들과 풍성하게 나눈다. 내가 어릴 적 알고 지낸 고향 사람보다 세계 공용어를 사용하며 타국에서 만난 사람들은 그 누구라도 나에겐 더 반가운 고향 사람이다. 그들과 생김새도 문화도 언어도 다르지만 난 그들과 상당히 많은 부분을 말하지 않아도 이미 나눈 사이가 될 수 있어 좋다.


새로운 해가 시작되었다. 현재 근무하고 계시는 원어민 선생님이 떠나고 나면 또 새로운 원어민 선생님이 배정될 것이다. 또 어떤 고향 친구를 만나게 될지 설레고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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