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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y Soon Jan 30. 2023

#7. 존재감이 제로에 가까웠던 아이의 돌변

: 영어로 먼저 말을 건네 본 적이 있나요?(1부)

❚ 아줌마가 되고 나서 엄청 쉬워진 이것

미국에서 5년을 살면서 느낀 점은 이거다. 모국어가 달라도 살던 나라가 달라도 그 가지각색의 아줌마들과의 대화는 언제나 할 말이 넘치고 시간 가는 줄 모를 만큼 몰입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5년간 미국 교회를 다니면서 아들이 제일 힘들어 하는 시간은 목사님의 한 시간 가량 진행되는 영어 설교 시간이 아니라 주구장창 이어지는 그 아줌마 토크가 끝이 나기를 기다려야 하는 시간들이었다. 집에 가서 점심도 먹고 또 놀아야 하는 아들에게 별 중요한 이야기도 하지 않는 그 아줌마 토크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들이 눈치를 보내도 나는 세상 몰입도가 높아 그걸 캐치하지 못한다. 이 쯤되면 무아지경이라 부를 만한 수준이다.    

  

미국 사람들은 물론 MZ세대를 제외하고 나와 비슷한 나이 또는 그 이상의 세대들은 하나같이 대화를 나누는 걸 즐긴다. 물론 아주 내성적인 사람들도 간혹 있지만 우리나라 사람의 보통 수준이면 그 나라에서는 아주 내성적인 걸로 오해 받기 쉽다. 다른 말로 하자면 우리나라 수다쟁이는 그 나라에는 평균치 토커라 할 수 있다. 그만큼 자신을 표현하기를 즐기는 문화이다 보니 자연스레 누구를 만나도 대화가 이어진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어느 정도 영어로 구사할 수 있는 40대의 수다지수 평균인 내가 미국에서 살면서 엄청 쉬운 건 바로 낯선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걸고 대화를 이어나가는 것이었다. 사실 너무 즐겁게 대화를 나눴다. 나랑 살아온 환경도 다르고 모국어도 다른 사람이지만 그들이 살고 있는 일상과 그들의 생각이나 감정이 나와 비슷한 점을 발견할 때도 나와 완전 다른 점을 발견할 때도 그 각각의 이유로 난 즐거웠다. 소통을 하면서 산다는 것이 행복했다.      


40세라는 늦은 나이에 미국 대학원을 다니며 박사학위를 성공적으로 취득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나의 이런 아줌마 토크 덕분이다. 아줌마의 근성이 나를 그곳에서 살아 남게 했고 심지어 즐길 수 있게 만들었다. 매 학기 강의 첫날 내가 가장 먼저 하는 것은 우연히 그날 내 옆에 앉게 되는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건네는 일이다.      


우선은 그들이 나 같은 외국인이면 어느 나라 사람인지부터 묻겠지만, 대부분 나의 클래스 메이트들은 미국 현지인들이고 다행히 직장인들이 많았기에 그들의 직업을 묻거나 그들의 옷차림새에 대한 칭찬부터 시작했다. 누구든 칭찬을 하면 쉽게 마음을 연다. 정말 그랬다.


대부분 그룹 워크로 이루어지는 미국 대학원은 사람과의 인화관계를 훈련시키기 위한 목적도 상당히 있어 보였다. 박사과정 중에는 내가 유일한 외국인이라 내가 함께 할 그룹들은 어쩌면 내가 할당 받는 일들을 잘 처리 못 하리라는 선입견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누구보다 내 몫을 잘 해내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교사 경력을 최대한 살려 내가 알고 있는 것이나 경험한 것을 수업 시간 중에 나누려고 애썼다.


조용히 꿔다 놓은 보릿자루 마냥 있기보다 먼저 옆에 앉은 사람에게 말을 건넸다. 그리고 교수님이 토론을 시킬 때 주저없이 말을 했다. 때로는 교수님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거나 안내가 미흡하면 손을 들어 질문을 바로 바로 했던 편이다.  외국인이라는 점을 수치스럽게 생각하지 않고 그 점을 당당하게 활용했다. 내가 하는 질문을 교수님들은 아주 친절하게 대답을 잘 해주셨다. 이쯤 되면 나의 성격이 엄청 외향적이고 씩씩하고 당당한 사람이라 생각이 들 것 같다.      


❚ 존재감이 제로에 가까웠던 아이의 돌변

중2 여름방학을 끝내고 홀로 대도시로 전학을 온 이후로 나는 세상과의 소통을 끊었다. 같은 반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도 할 말이 없었다. 그들과 나의 처지가 너무 달랐기에 나는 나누고 싶은 말도 듣고 싶은 말도 없었다. 그저 수업 중 선생님들의 말씀만 나에게 유의미한 데이터였다. 고등학교로 진학하고 나서도 그 닫힌 문을 열지 않았다. 여전히 같은 이유에서였다. 게다가 고등 학교 시절은 엄청 가난한 집에 태어난 나의 상황을 극복하고자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공부하느라 옆도 돌아 볼 겨를이 없었다.


고등학교 내내 나의 단짝 친구인 한 친구와 몇 마디 했을 뿐 대부분은 정말 정자세로 꼿꼿이 앉아 공부만 했던 것 같다. 고등학교 졸업 후 담임 선생님을 찾아 뵌 적이 있었는데, 그 당시 반 친구들이 나를 보고 짜증난다고 말했다고 했다. 늘 공부만 하는 반 친구를 지켜보는 그들은 얼마나 숨이 막혔으며 설렁설렁하는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비교 했을 까 하는 생각이 들어 그들의 그 짜증이 백분 이해가 된다.      


그런데 그 여고생이 40의 나이에 미국 유학을 가서 딴나라 아줌마들과 시간가는 줄 모르게 수다를 떤다는 것이 믿기기나 할까? 사람이 변해도 이렇게 180도 변할 수 있을까 싶을 만큼 나는 참 그 20년 세월 동안 많이도 변해 있었다.  나의 돌변은 20년 세월동안 시나브로 변한 것이 아니라 불과 3개월간 일어난 일이다.


고3을 졸업할 즘 겨울 방학 동안 영어 회화를 처음으로 배우면서 나의 성격을 그렇게 180도 돌변했다. 영어라는 언어는 나에게 새로운 아이덴터티(identity) 또는 페르소나 (persona)를 심어주었다. 언어적 자아 정체성 (Language ego)은 자신이 구사하는 언어에 맞게 발달되는 자신의 정체성이다. 한국말을 할 때 가지는 자아 정체성과 외국어인 영어를 할 때 가지는 자아 정체성은 일치하지 않는다.


생각과 마음이 언어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머릿 속 생각과 마음에 있는 것들을 우리가 말로 표현하니 그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반대로 언어가 사람의 생각과 마음에 강한 영향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욕설을 하는 사람은 그런 언어가 그 사람에게 부정적인 생각과 마음을 키우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될 법하다.      


그런데, 외국어인 영어를 배우면서 그 영어가 우리의 생각과 마음에 영향을 주는 것은 아주 시나브로 일어나는 일이라 학습자 본인이 그걸 쉽게 파악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 외국어를 구사하는 자신을 바라보면 모국어를 할 때 자신과 다름을 쉽게 느낀다. 예를 들어 나의 경우에는 영어를 할 때 더욱 에너지가 넘치고 씩씩하게 변하는 것 같다. 반대로 우리말을 할 때는 에너지를 조금 줄이고 차분하게 말하려고 애쓰는 나를 보게 된다.      


“Language Ego is the identity a person develops in reference to the language he or she speaks.” – Alexander Guiora (심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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