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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y Soon Dec 31. 2022

#5. 생후 7개월 아이가 영어를 좋아한다고?

: 영어동화책은 아들에게 소중한  어린 시절 보물

영어 고통 대물림

학창 시절을 되돌아보면 대부분의 과목 공부가 쉽지는 않았지만, 유독 영어는 저를 괴롭혔던 과목이었습니다. 시골 출신의 조기 영어 무경험자인 저에게 영어는 참으로 넘기 힘든 큰 산이었습니다. 고등학교 입학 후 치른 첫 모의고사에 28점을 맞고 그저 영어를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영어를 포기하는 건 대학을 포기하는 거나 마찬가지였기에 고등학교 3년 줄곧 영어에 올인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익힌 덕분에 영어 교사가 되기까지 했습니다. 영어는 한때 저를 많이 힘들게 한 과목이었지만 저의 인생 행로를 열어 준 고마운 과목이기도 했습니다.  영어를 익히는 것의 재미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이의 엄마가 되고 나서 제 아이들 만큼은 저처럼 힘들게 영어 공부를 하지 않도록 해주고 싶었습니다. 우리 아이에게 만큼은 영어 고통을 대물림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영어에 노출을 많이 시켜주려고 애썼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생후 7개월 즘부터 그 노력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일찍부터 영어 조기 교육을 시키기로 마음 먹은 것은 바로 외국어 습득에 결정적 시기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제2언어 습득의 결정적 시기

결정적 시기에 관한 가설(Critical Period Hypothesis)은 영어 교육 분야에서 가장 자주 거론되는 가설 중 하나입니다. 학자에 따라 결정적 시기가 끝나는 시기를 5세(Krashen, 1973), 6세(Pinker, 1994), 12세 (Lenneberg, 1967), 15세 (Johnson & Newport, 1989)등으로 다양하게 주장하고 있지만 아직도 정확히 언제 그 결정적 시기가 끝나는 지 밝혀지지는 않았습니다.     

2003년 Hakuta, K., Bialystok, E., & Wiley, E.은 결정적 시기에 관한 가설에 관한 아주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연구진들은 1990년 미국 인구조사 (Census) 응답자들 중 10년 이상 미국 현지 체류한 사람들 중 스페인어를 모국어로 쓰는 영어 학습자 2,016,317명과 중국어를 모국어로 쓰는 영어 학습자 324,444명의 영어 능력에 대한 데이터를 분석했습니다. 총 2,340,761명이나 되는 엄청난 숫자의 데이터를 분석하여 제2 언어에 노출 시작 연령과 그 언어 사용 능력 간의 관계를 도출해냈습니다.      



“Our conclusion from these models is that second-language proficiency does in fact decline with increasing age of initial exposure. The pattern of decline, however, failed to produce the necessary discontiꠓnuity that is the essential hallmark of a critical period.”(Hakuta, K., Bialystok, E., & Wiley, E., 2003, p.37)     

“이 데이터 분석 모델에서 끌어낸 우리의 결론은 제2 언어에 노출이 시작되는 나이가 늦어질수록 제2 언어 숙달 정도는 실제로 떨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숙달 정도가 감소하는 패턴을 나타낸 그래프에서 결정적 시기가 끝나는 시점이라 확신할 만큼 선명하게 뚝 떨어지는 시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다시 말해 그 연구는 제2 언어에 노출 시작 연령이 늦어질수록 그 목표 언어 사용 능력이 낮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방대한 데이터 분석으로 애초에 결정적 시기가 정확히 언제까지 인지를 알아내려고 한 목표는 달성하지 못했습니다. 즉, 일정한 나이가 되면 목표 언어 숙달 정도가 뚝 떨어지는 현상이 나타나면 그 시가가 바로 결정적 시기의 종결점이겠지만 연구한 데이터에서는 그런 현상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영어 조기 노출

위 연구에서도 언급된 것처럼 정확히 언제까지가 제2 언어 습득의 결정적 시기가 끝나는 지 알 수는 없지만, 제2언어에 대한 노출을 빨리 시키는 것은 필요합니다. 물론 제2 언어에 대한 본격적인 학습은 모국어의 쓰기, 읽기 능력이 갖춰진 후에 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이와 관련된 연구들도 많습니다. 여기에 관해서는 직전 글을 읽어보시면 참고가 될 것 같습니다.     


영어 교사인 저는 제 아이만큼은 영어를 학습이 아니라 모국어처럼 습득시키고 싶었습니다. 영어 조기 노출의 장점을 알고 있기에 최대한 우리 아이들에게 그러한 환경을 심어주려고 했습니다. 아이는 대부분 시간을 저와 같이 보내니, ‘제가 아이에게 많은 영어 인풋 제공자가 되면 그게 바로 영어권 아이들과 같은 조건이 될 수 있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육아 휴직 3년 동안 아이의 영어 노출에 열심이었습니다.      


영어책의 매력

아이가 생후 7개월이 되던 무렵부터 제 무릎에 아이를 앉혀놓고 영어책이랑 우리말 책을 읽어주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아주 어렸을 때는 우리말 책보다는 영어책을 더 많이 읽어주었습니다. 거실에 큼직한 책장 두 개를 나란히 들여놓고 그곳에 영어책으로 다 도배를 하다시피 했습니다. 첫째가 어린이집을 간 이후 둘만 남겨진 시간 중에 오전 한두 시간, 오후 한두 시간영어책 읽는 것을 매일의 루틴으로 했었습니다. 휴직을 하고 딱히 할 일이 없던 저로서는 영어책 읽어주는 것이 아이를 위한 프로젝트였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 일은 제가 더 즐거워서 했던 일이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중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주로 읽던 영어 교과서나 참고자료는 별 재미가 없었지만, 어린이를 위한 영어 동화책은 통통 튀는 고무공처럼 생기가 넘치고 다양하고 재미있는 소재들로 가득했기에 영어 동화책 읽기의 매력에 푹 빠졌었습니다. 신기하게도 둘째 아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당시 걷지도 못하고 겨우 기어 다니는 7개월이었지만 영어책 읽기를 참 좋아했습니다.     


생후 7개월인 둘째가 유독 재미있어하던 책은 Scholastic Hello Reader 시리즈 중 Level 1인 ‘Pizza Party’라는 책과 Level 2인 ‘Dinosaurs’였습니다.

Scholastic Hello Reader 시지즈 Level 1
Scholastic Hello Reader 시지즈 Level 2

제가 설거지나 청소를 하고 있으면 이 책들을 들고 저에게 기어왔습니다. 교육에 열정이 많은 저는 만사를 제치고 읽어달라는 영어책을 읽어줬습니다. 처음에는 참 신기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해서 열심히 읽어주었습니다. 사실 위의 책들은 엄청 짧기 때문에 한 번 읽는 데 5분도 채 걸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한번만 들려줘서는 성에 차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들은 한 자리에서 같은 책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어달라고 졸랐습니다. 설거지를 하다 말고 싱크대 앞에 앉아서 몇 분이고 같은 책을 무한 반복해서 읽어 주다 보면 하던 집안일을 미뤄야 해서 짜증이 나기도 했습니다. 화내며 그만하라 할까 웃으며 무한 반복에 가깝게 읽어줘야 할까? 그 정도로 둘째에게 영어책의 매력은 강력했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지금 생각하면 미소 가득해지는 시절이긴 하지만 그 당시로는 내적 갈등이 심했던 것 같습니다.


중3이 되는 아들의 책꽂이에는 여전히 그 시절 영어 동화책들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가끔 아들은 어린 시절이 그리운지 그 책들을 들적이기도 하더라구요. 아들에게 영어책은 유년시절의 앨범처럼 그 시절을 추억할 수 있는 소중한 물건 인가 봅니다. 5년간 미국 유학을 떠나면서도 미국 현지에 가면 널리고 널린 게 영어 책이겠지만 저희들은 그걸 들고 갔습니다. 그리고 현지 동네 미국인 애기 엄마에게 무료로 장기 대여를 해줬습니다. 그리고 다시 귀국할 즘에는 그 책을 다시 들고 왔습니다. 그게 뭐라고. 아들에게 그 책들은 돈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어린 시절 보물이 되었습니다.      


영어 영재?

아들이 돌도 되기 전 저는 아들이 영어 영재라 생각했습니다. 영어책을 다 알아듣는 것 같았습니다. 많은 영어책을 한 시간 이상 읽어줘도 싫다 소리 안 하고 가만히 잘 듣고 있었습니다. 영어책 제목을 말하면 그 책을 찾아오기도 했고 그 수많은 공룡 이름을 영어로 말하면 그 공룡을 정확히 다 가르키는 걸 보고 진짜 영어 영재인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과연 둘째가 영어 영재라서 그랬을까요? 저는 세상 모든 아이는 제2언어 습득에 영재라 생각합니다. 그게 4살이 되기 전까지는요. 모국어가 탄탄해지기 전 아이들에게 소통의 수단이 무엇이든지 그것은 아이에게 아주 절실한 도구입니다. 엄마가 영어로 말하든, 우리말로 하든 그 소통의 매개체가 아이에게 절실하기에 마치 스펀지처럼 그 언어를 받아들입니다. 그게 소위 언어 습득의 결정적 시기인 셈이지요. 그런데 4살이 되고 어린이집을 가면서부터 아이는 깨닫기 시작합니다. 물론 우리말의 인풋이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영어보다 많기도 하지만, 소통의 언어로 모국어가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요. 그렇게 필요성이 강력한 언어를 아이는 더욱 무서운 속도로 배워가기 시작합니다. 반대로 필요성이 상실된 언어는 별로 흥미를 가지지 못하게 되는 것이지요.      


둘째 아들의 경우는 이런 현상이 심했습니다. 말하기를 좋아하는 아들은 4살 이전까지만 해도 저와의 소통 언어로 영어가 유효했기에 영어책을 읽는 것도 좋아하고 제가 영어로 말하는 것도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할 무렵부터는 또래 아이들과 노는 것을 좋아했기에 저와의 소통에 쓰던 영어보다는 친구들과 소통할 수 있는 언어 즉 우리말로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둘째가 영어를 거부하지 않는 이유는 소통의 수단으로 유효했기때문이기도 하지만, 아들에게는 또다른 강력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바로 저를 차지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 바로 영어책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입니다. 어린이집을 갈 나이가 되기 전까지 집에서 저를 차지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은 저에게 영어책을 가져다 주는 일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엄마에게 영어책을 가져다 주면 엄마는 언제고 내 차지가 된다고 눈치가 빠른 둘째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던 것입니다. 아주 어린 아이에게 영어 노출이 가능한 것은 바로 이점 때문입니다.      


간혹 어린 나이에 영어 노출을 많이 시켜주면 모국어 습득이 늦춰지지 않을까 하는 염려를 하는 분도 계십니다. 하지만 그런 염려는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이는 엄마를 통해 새로운 언어 세계를 접한다 하더라도 결국은 생존에 제일 필요한 언어, 즉 모국어를 절대로 놓치지 않습니다.      


조기영어 노출의 필요성

영어를 사용하는 나라가 아닌 이상 아무리 어린 나이에 영어 노출을 시작한다하더라도 결국 모든 아이는 자기의 주변에서 사용되는 언어 즉 모국어를 제1 언어로 구사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어라는 언어를 어린 나이에 노출시키는 것이 필요할까요? 위의 연구에서도 보여준 것처럼 결국 제2 언어를 습득하기 위해서는 노출이 시작되는 시기가 빠를수록 유리합니다. 특히 영어책을 통해 노출되는 것은 참으로 소중한 경험입니다. 엄마가 읽어주는 책을 통해 아이는 책이라는 것에 따뜻한 기억을 가지게 됩니다. 마치 ‘책에서는 엄마 냄새가 난다, 엄마 품이 느껴진다’와 같은 인상을 남길 수 있습니다. 그 소중한 시절을 잘 활용하면 좋겠습니다. 엄마에게 절대적으로 의지하는 어린아이일수록 이것이 훨씬 더 쉬워집니다.       


영어든 모국어든 아이가 한쪽으로 편향되기 전에 그 언어에 노출 시켜줌으로서 영어에 대한 낯설음을 줄여주어야 합니다. 특히 음성언어(듣기, 말하기) 습득은 문자언어보다 먼저 발달하고 어린 나이일수록 더 쉽게 받아들입니다. 이것에 관해 많은 연구들이 있습니다. 물론 우리말의 습득을 생각해봐도 이건 아주 당연한 일이라는 걸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영어책을 즐길 수 있는 엄마/아빠/아이 되는 법

다음 글에서는 영어책을 즐길 수 있기 위해 어떤 것이 필요하고 어떤 방법이 좋을지 저의 경험담을 들려주고자 합니다.


참고문헌

- Hakuta, K., Bialystok, E., & Wiley, E. (2003). Critical evidence: A test of the critical-period hypothesis for second-language acquisition. Psychological science, 14(1), 31-38.

Krashen, S. (1973). Lateralization, language learning, and the critical period. Language Learning, 23, 63–74

- Pinker, S. (1994). The language instinct. New York: W. Morrow

- Lenneberg, E.H. (1967). Biological foundations of language. New York: Wiley

- Johnson, J.S., & Newport, E.L. (1989). Critical period effects in second language learning:   The influence of maturational state on the acquisition of English as a second language.  

Cognitive Psychology, 21, 60–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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