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통을 위한 문법
❚한국식 영문법: 쓰기로 연결되지 않는 외딴 규칙 덩어리
거의 7년간 애플 폰을 쓰고 있다. 하지만, 폰 사용 설명서를 본 적이 없다. 일단 새 폰으로 이것 저것 하면서 모를 경우 조금씩 참고를 하는 정도였다. 영어 문법책은 폰 사용 설명서와 같다. 일단 영어를 사용하면서 (읽거나, 쓰거나, 말하거나 듣거나) 효과적인 메시지 소통이 안 될 때 이를 해결해주는 방법으로 문법 규칙을 적용하는 식이어야 한다.
한국식 영어 문법은 쓰기로 연결되지 않는 외딴 규칙 덩어리라 할 수 있다. 우리의 영어 교육은 각 문법 사항들이 실제 말하기나 쓰기에 어떤 용도로 사용되는 것인지, 주어진 상황에 더욱 적합하게 표현하기 위한 도구로 쓰는 능력을 키우는 데에는 별 관심이 없다.
한국식 영어 문법에 지나친 경계를 하는 듯이 들릴지 모르겠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데 발목 잡는 장치로 쓰일 문법이라면 차라리 아무 것도 모르고 자유롭게 콩글리시를 구사하는 사람이 글로벌 시대에 더 잘 적응할 사람이다.
모국어로 영어를 배우는 학생이 영어로 의사를 정확히 표현하는 능력을 갖도록 교육을 하듯이 외국어로 영어를 배우는 학생에게도 마찬가지의 능력을 갖도록 교육해야 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이야기이다.
“We are not interested in filling our students' heads with grammatical paradigms and syntactic rules. If they knew all the rules that had ever been written about
English but were not able to apply them, we would not be doing our jobs as teachers. Instead, what we do hope to do is to have students be able to use grammatical structures accurately, meaningfully, and appropriately. In other words, grammar teaching is not so much knowledge transmission as it is skill development. In fact, it is better to think of teaching "grammaring", rather than
"grammar." By thinking of grammar as a skill to be mastered, rather than a set of rules to be memorized, we will be helping ESL/EFL students go a long way toward the goal of being able to accurately convey meaning in the manner they deem appropriate”(Larsen-Freeman, 2001, p. 255).
“우리는 문법적 패러다임이나 문장 구조에 대한 규칙을 학생들의 머리에 채우는 것에 관심이 없다. 학생들이 영어에 관한 규칙은 다 알지만 적용할 수 없다면, 우리는 교사로서 제대로 교육하고 있다고 할 수 없다. 교사가 지향해야 할 것은 학생들이 문법적 구조를 정확히,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며(유의미하게), 상황에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문법 교육은 문법 지식의 전수가 아니라 스킬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사실, 문법 자체 보다는 문법 활용 능력을 교육시킨다고 생각하는 것이 낫다. 문법을 암기해야 할 일련의 규칙이 아니라 숙달 되어야 할 스킬이라 생각함으로써 상황에 적합하고 정확한 의사 소통 능력이라는 장기 목표를 향해 영어 학습자들이 나아갈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
❚“묻지 마” 문법 대신 “왜요?”문법으로 시작하자
처음으로 수동태라는 것을 배우던 중2 2학기 영어 수업 시간이 지금도 생생히 기억이 난다.
She prepares dinner.
= The dinner is prepared by her. ( by + 목적격)
수학 시간이 아니지만, 선생님의 판서는 영락없는 수학 시간 같았다. 같은 뜻인데 왜 각각 다른 문장으로 존재하는 것일까? 그 당시 선생님이 지나가는 말로 설명을 해주셨겠지만, 나로서는 스쳐가는 말 한마디로 그 차이를 알리 만무하다. 나중에 대학교에 가서 영어를 전공하면서 능동태와 수동태가 각각 언제 쓰이는 지 알게 되었다.
그게 비단 우리나라 영어 수업만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을 영어 논문을 읽다가 알게 되었다. 거의 25년 전에 쓰인 Nunan(1998)의 논문에도 이미 이유를 설명하지 않은 영어 문법 규칙 교육의 문제점이 다루어졌다.
“Learners are taught about the forms, but not how to use them to communicate meaning. For example, they are taught how to transform sentences from the active voice into the passive, and back into the active voice; however, they are not shown that passive forms have evolved to achieve certain communicative ends—to enable the speaker or writer to place the communicative focus on the action rather than on the performer of the action, to avoid referring to the performer of the action" (Nunan, 1998, p.103).
“학습자들은 단어 형태에 대해 배운다, 하지만 의미 전달의 수단으로 그 형태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배우지 않는다. 예를 들어, 학생들은 능동태 문장에서 수동태 문장으로 바꾸는 방법, 반대로 수동태에서 능동태로 바꾸는 법을 배운다. 그러나, 학생들은 수동태가 특정 의사소통의 목적 (말하거나 글을 쓰는 사람이 행동의 행위자를 언급하는 것을 피하기 위함 이나 행위자 보다는 행위에 더 포커스를 두기 위함)을 위해 쓰인다는 사실을 배우지 못한다” (Nunan, 1998, p.103).
Town meetings were held throughout New England yesterday. Many issues were discussed, although the big one for most citizens was the issue of growth. Many changes have been made recently. For example, .. .
(Larsen-Freeman, 2001, p. 261)
위의 예시에서 볼 수 있듯이 초점이 행동한 사람(타운 미팅 참가자)이 아닌 논의 된 사안들(issues)이기 때문에 위의 문맥에서는 문장들이 수동태로 쓰인 것이다.
중2 그 당시 내가 가졌던 의문은 비단 나만 것이 아닌 것 같다. Larsen-Freeman (2001)에서도 알 수 있듯이 외국어로 영어를 배우는 학생들에게는 수동태를 쓰고 언제 능동태를 써야 할지 구별하는 것이 어렵다. 기계적인 문장 형태 변형보다는 각 패턴이 언제 사용되는 지를 먼저 설명해주어야 한다.
“the greatest long-term challenge for students working on the passive voice is for them to figure out when to use the passive. ...... What we know in fact to be the
case is that one voice is not a variant of the other, but rather the two are in complementary distribution, with their foci completely different. ....... Thus, from the first, the passive should be taught as a distinct structure which occurs in a different context from the active” (Larsen-Freeman, 2001, p. 262).
“수동태를 배우는 학생들에게 가장 장기적인 어려움은 언제 수동태를 사용하는 지 파악하는 데 있다. 확실히 수동태는 능동태의 단순한 변형된 형태에 불과하다고 할 수 없다. 두 개의 패턴은 서로 초첨을 두는 것이 다르고 결국 각각 사용되는 경우가 정반대이다. 그러므로 애초부터 수동태는 능동태와 다른 문맥에서 사용되는 별개의 문장구조로 가르쳐져야 한다” (Larsen-Freeman, 2001, p. 253).
사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영어 원서나 영어 동화책을 읽지 않은 아이라 하더라도 예전의 “묻지마” 영어 문법 말고 “왜요” 영어 문법을 가르치면 아이는 영어 문법에 거부감을 덜 느낄 것이다. 우리가 폰을 처음 사용하면서 사용 설명서를 먼저 다 숙지한 후에야 폰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면 참 어처구니가 없는 일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영어를 처음 배우는 아이에게 영어 사용 설명서 즉 영어 문법서를 먼저 다 숙지한 후에야 영어를 사용하는 기회를 그제서야 주겠다는 식의 영어 교육은 너무 어리석은 일이다.
실제 영어를 사용하는 기회를 많이 가지고 영어로 글쓰기를 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영어 문법의 필요성을 절실히 알게 된다. 그리고 영어 문법을 가르칠 때에도 문맥에 맞게 쓰고 상황에 맞게 말할 수 있게 하기 위한 영어 문법을 가르쳐야한다. 단순히 문장의 형태 변형에 집중하지 말고 왜 그런 형태를 취해야 하는 지 그 이유에 대한 설명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가능한 원어민식 영어 문법 교육
미국에서 초등학교를 다 보낸 아들에게는 영어 문법에 대한 명시적 지식이 없다. 하지만 긴 문장을 보면 그 구조를 다이어그래밍을 하며 머릿 속에 도식화할 수 있다. 그리고 많은 영어 책을 읽으면서 다양한 문장 패턴에 대해 익숙해져 있다. 그리고 명시적으로 이유를 말 할 수는 없지만 주어진 상황에 적절한 표현 방법에 대한 감각이 어느 정도 생겼다. 이것을 가능하게 만든 것은 많은 영어 책 읽기와 영어 쓰기 그리고 다양한 장르의 인풋들이다.
5년간의 미국 생활로 얻은 많은 영어 독서량을 대신할 효과적인 영어 문법 학습은 없다. 하지만 적어도 규칙의 반복 암기보다 더 효과적인 원어민식 문법 교육을 한다면 분명히 의사전달을 위한 영어 능력은 향상된다. 우리나라에서도 원어민식 영어 문법 교육을 할 수 있다. 특히 초등, 중등 학습자에게 영어 문법을 가르칠 때 다음 세 가지를 기억하자.
1. 규칙 자체를 강요하지 말고 이유를 설명하기
2. 다양한 예문과 영어 원서를 많이 접하게 하기
3. 읽기와 쓰기, 듣기와 말하기에서 문법이 활용될 수 있도록 가르치기
이제 우리 아이들에게 성문 기본 영어 문법이 아닌 원어민식 영어 문법을 가르쳐 보는 건 어떨까요? 비록 자녀에게 직접적으로 영어를 가르칠 수 없는 상황이라도 자녀의 영어 교육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늘 보살피는 부모님의 역할은 필요합니다. 특히, 초등, 중등 맘일 경우 그 역할이 아주 중요합니다. 부모님들의 역량을 키우기 위해 <넓고 멀리 20년 엄마표영어 보고서>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고 문헌:
- Larsen-Freeman, D. (2001). Teaching grammar. Teaching English as a second or foreign language, 3, 251-266.
- Nunan, D. (1998). Teaching grammar in context.
**영문법의 효과적인 교육에 관한 영상**
위 글의 내용을 영상으로 제작했습니다.
영어 공부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