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ey Soon Mar 29. 2023

#15. 신기한 우연

: 희망한 게 희한하게

❚망설임

미국에서 우리 가족이 다니던 미국 현지 장로교회에는 우리 가족을 많이 챙겨주시던 부목사님이 계셨다. 그 분은 우리가 귀국한다는 소식을 듣고 아는 사람 아는 사람 소개 소개로 우리가 살 게 될 곳에 괜찮은 교회를 알아봐 주셨다. 한국을 가면 언젠가는 그 교회를 가보리라 생각만 했다. 하지만 그게 언제가 될지 정할 수는 없었다. 평생 교회 한 번 안 가본 우리 가족은 미국에서 처음으로 교회를 다니게 되었다. 그것도 미국 백인들이 다니는 교회가 우리에게는 첫 경험이었다. 그렇게 거의 4년간을 매주 빠짐없이 예배드리며 미국식 예배 스타일에 익숙해져 갔다.      


코로나가 한창인 2020년 여름에 한국으로 완전 귀국을 했다. 미국에서 생활을 모두 마무리하고 돌아온 나의 터전이지만 코로나로 인한 적응은 쉽지 않았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때에도 미국 교회는 여느 때처럼 예배를 봤다. 우리 가족 역시 그랬다. 하지만 이곳 한국은 엄두를 낼 수 없었다. 교회가 코로나의 온상지인 듯 뉴스에서 보도되었고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었다. 귀국 두 달 후 바로 예전의 학교로 복직했다. 공무원의 신분으로 종교의 자유를 운운하며 교회 예배를 보러 가는 것은 상당히 무리였다.  거의 2년 동안 미국 교회 온라인 예배만 했다. 코로나가 조금씩 나아지던 작년 가을 처음으로 마음이 조금씩 생겼다. 이제 우리도 직접 교회를 나가봐야겠다 싶었다. 온라인 예배만으로는 뭔가 많이 부족함을 느꼈다.      


❚희망

큰 마음을 먹고 남편과 나, 그리고 그 당시 중2인 아들, 이렇게 셋은 미국 교회 목사님이 추천해주신 교회를 찾아갔다. 신도수가 엄청 많은 큰 교회였다. 역시 건물도 여러 개였고 지하에 멋진 체육관 까지 있었다. 게다가 실내 농구 코트로 꾸며 놓기까지 했다. 한창 농구에 빠져있는 중2 아들에게 이 교회는 꿈의 교회였다. 예배는 핑계고 아마도 그 실내 체육관에서 농구할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하지만 그 체육관 이용은 허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4개월이 흘렀다. 다행히 아들은 순순히 일요일마다 우리를 따라 예배를 보러 다녔다.      


❚무심

미국 교회는 주일 예배후 예배당에서 서로 담소를 나누는 장면이 늘 펼쳐졌다. 말하기 좋아하는 미국 사람인데다가 말 많은 아줌마가 있으면 그 대화는 거의 한 시간도 이어지기도 한다. 기다리다 지친 아이들은 아예 뜰로 나가 농구를 하거나 자기들 끼리 놀이 문화를 꽃피웠다.


우리는 그런 일이 여기에서도 가능할 거라 그저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우리의 오산이었다. 한국 교회는 바쁘다. 주일 예배 시간에 5분이라도 늦으면 예배당은 문이 닫기고 좌석은 만석이다. 그럼 홀이나 옆의 다른 건물에서 화면으로 설교를 들어야 한다. 그리고 예배가 끝나면 쌩하니 차로 향한다. 주차난이 심해서 얼른 차를 빼주지 않으면 교통이 마비가 되기 때문이다. 참 숨이 막힐 만큼 빡빡하고 바쁘다. 이런 지경이기에 아이들끼리 예배 후 간단하게 놀고 싶어도 그럴 공간도 시간도 허락되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애초 우리의 기대를 버리기로 했다. 마음을 비우기로 했다. 아들이 예배보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 것 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했다.  

    

❚신기한 우연

하루는 일요일 예배를 보는 데 목사님께서 주보 안내 사항을 설명하시며 초등학생들을 위한 농구 교실이 개설될 거라 하셨다. 순간 기뻤으나 중학생 대상이 아니라 갈 수 없는 걸 알고 아쉬워했다. 그렇게 한 주를 보내고 있는데 참 신기한 우연이 일어났다. 중학생인 아들은 고등학생 시대표 농구팀과 우연한 기회에 함께 훈련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거의 일년 간 그 대표팀 농구 코치와 인연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우리 교회 농구 교실의 강사가 바로 그 코치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너무 너무 신기했다. 이미 아들의 농구 실력을 좋게 봐 주고 계신 코치님인데 우리 교회에 인연을 오래 전부터 맺고 계셨다는 소식을 들으니 참 우연 치고는 신기한 우연이였다.      


❚뜻 하지 않은 기회

말 수가 적은 아들은 사춘기에 접어들며 더욱 말이 없고 그저 농구만 좋아한다. 사교성도 키우고 리더십도 키울 생각으로 아들을 인근 농구 학원에 조교로 쓰라고 부탁할까 까지 생각했다. 거의 전화로 문의를 할려고까지 했다. 그러다가 마음을 접었다. 그런데, 교회 농구 교실은 아들에게 좋은 기회였다. 농구를 배우는 수강생이 아닌 코치를 돕는 조교로 아들이 일하면 너무 좋을 것 같았다. 이미 그 코치를 잘 알 고 있는 데 다가 교회 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니 아들에게는 둘도 없이 좋은 기회였다. 그 당시 코치가 손가락 부상을 입은 상태여서 아들이 좋은 시범 조교가 될거라 하며 흔쾌히 승낙했다. 교회에게도 바로 전화를 해서 허가를 받았다고 한다.      


이번 주로 3주차 농구 시범 조교로 활동하는 아들은 이제 일요일이면 친구와 농구하는 것 보다 교회 오전 예배를 보고 다시 오후에 교회로 가서 농구 조교일을 열심히 즐겁게 다니고 있다. 코치 말로는 첫 날은 뭐 할지 몰라 우물쭈물했다고 했지만, 이젠 제법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참 감사하고 감사할 일이다.     

 

❚점들의 연결

미국 목사님들의 교회 추천, 망설임 끝에 찾아간 교회, 몇 개월의 기다림과 실망, 그리고 예기치 못한 우연의 기회. 그것들은 다들 이어져 있었다. 뭐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니다. 하지만 우리에겐 그리고 우리 아들에게는 그게 실업자가 직업을 구한 것만큼이나 기쁘고도 기쁜 일이다. 기꺼이 남을 위해 시간을 내어 봉사하는 일을 아들은 평생 처음 해보는 거다. 이보다 더 좋은 교육이 또 있을까? 좋은 배움의 기회가 허락된 것이 감사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스티브 잡스의 2005년 스탠포드 대 연설문에서 그가 한 말 중 점들이 이어짐을 믿어라, 그렇게 하면 남이 가지 않는 길을 가더라도 자신 있게 걸아 나갈 수 있다고 한 게 생각이 난다. 오늘 학교에서 그 부분을 가르치며 또 한번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리고 언제나 그 대목은 내 마음에 남아 있다.    


“So you have to trust that the dots will somehow connect in your future. Because believing that the dots will connect down the road will give you the confidence to follow your heart even when it leads you off the well worn path.”  

매거진의 이전글 #14. 오랜 친구 같은 20살 연하 친구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