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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y Soon May 06. 2023

#28. 우리 아이의 멘토

: 부모 노릇

❚훌쩍 커버린 중3 아들

귀국한지 어느 덧 만 3년인 다 되어 간다. 내가 보낸 3년은 눈 깜짝할 사이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훌쩍 커 버린 아들의 키는 아들에게 그 3년의 시간이 얼마나 많은 변화를 가져왔을지 쉽게 짐작하게 만든다. 대한민국 평균 신장도 못 미치는 엄마이지만 그 키보다 작던 미소년의 초등 6학년생이 이젠 아빠보다 더 커버렸다. 아들은 이젠 부모보다 키가 큰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까? 가끔 궁금해진다. 하지만 한번씩 툭 하고 던지는 말투에서 아들은 우리의 말을 크게 권위있게 받아들이고 있지 않음을 느낀다. 남편은 갑자기 커버린 아들이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고 한다. 훌쩍 커버린 아들에게 어떤 아빠로 대해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고 한다.      


저녁 식사 이후부터 늦은 밤까지 아들은 주로 나와 단둘이 집에 있다. 고3인 누나는 이미 집은 잠시 잠자러 오는 곳이 되었고 바깥 일로 바쁜 아빠는 늦은 밤이 되어서야 귀가하니 거의 매일 아들은 나와 단 둘이 있다. 매일 함께 하다보니 시나브로 커가는 아들의 변화를 나는 크게 실감을 하지는 못한다.      


❚엄마이자 공부의 코치

수학, 과학 과목은 이미 내가 봐줄 수준을 넘었기에 아들은 따로 집 앞 학원을 다닌다. 하지만 영어와 국어는 나의 코칭 영역으로 남아있다. 영어는 이런 저런 협상을 한 결과 매일의 루틴이 잡힌 편이다. 작은 양이라도 매일 꾸준히 해나가고 있다. 매일 할 분량을 스스로 정할 수 있게 최대한 배려한 결과 영어 글을 읽고 요약해서 영어로 나에게 말하고 하는 것을 이젠 별 마찰없이 해내가고 있다. 농구광인 아들은 유튜브로 NBA 농구를 보는 것과 영어 챕터북을 읽는 것으로 영어 취미를 들이고 있다. 그래서 읽고 싶은 원서 책이 있으면 주문해서 사주는 정도가 내가 해주는 일이다. 그리고 자기전에 성경 앱을 통해 성경 공부를 들려주는 정도가 아들이 영어를 사용하는 루틴이다.      


영어는 큰 무리 없이 코칭을 하고 있다. 하지만 국어 과목 때문에 며칠 전 언쟁이 벌여졌다. 중3이 되어가는 아들의 국어 실력은 아직 또래 아이에 비해 다소 부족하다. 몇 개월 후면 고1이 된다는 생각에 마음이 다소 조급해졌다. 그래서 고1 3월 모의고사 국어 문제를 아들이 한번 풀어 보면 좋을 것 같았다. 중간고사가 끝이 난 아들에게 국어 문제를 좀 풀어 보는 게 좋다고 말하고 풀도록 했다. 이틀 저녁을 풀고 난 아들이 세 번째 날에는 갑자기 심드렁하더니 이걸 왜 풀어야 하냐며 반감을 표했다.      


무방비 상태의 나는 나의 조바심을 드러내고 말았다. 최대한 내 마음을 숨기고 느긋하게 아들을 대하며 아들의 생각을 물어봤어야 한다. 하지만 늘 그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날은 결국 아들에게 큰 소리로 야단을 치고 말았다. 중간고사 기간 중인 고3 딸은 방문을 닫아버렸고 집안 분위기는 얼어버렸다.     

 

❚아이와 멀어지는 가장 쉬운 방법

내심 소리를 지르고 난 후 ‘앗차, 이게 아닌데.’싶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윽박지르듯이 해서 아이를 끌고 갈 수 없음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엄마는 늘 엄마가 정한대로 할 거면서 묻기는 왜 묻냐는 아들의 말이 떠올랐다. 그랬다. 예전의 아들 같으면 살살 설득하면 내뜻대로 몰아올 수 있었지만 조금씩 어느 순간부터 힘이 많이 든다는 걸 느꼈다. 중3이 되면서 더 그랬다. 점점 대화가 조심스러워지고 나의 질문에 아들은 그저 “몰라”로 일축한다. 고등학교 선택도 의논해야 하고 앞으로 진로에 대한 대화도 필요해 질 텐데 일방적인 나의 강요는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와 같은 편

나의 무거운 마음을 알아챈 남편이 유명한 대학교 교수님의 자녀 교육법에 대한 유튜브 영상을 보내왔다. 거의 1시간 가량의 영상이지만 2번이나 시청했다. 역시 반성할 부분이 참 많았다. 아이와 같은 편에 서서 공부라는 대상을 바라보기, 아이에게 자율적 선택을 할 기회를 주기, 아이가 계획을 세우고 실천해보는 연습하게 하기, 엄마를 위한 해주는 공부 말고 스스로 즐거워서 하는 공부가 될 수 있게 해주기 등 여러모로 마음에 와닿는 메시지가 있었다.      


❚부모가 아닌 신의 영역

예전 미국 유학 시절 미국 교회에서 매주 일요일 어른을 위한 선데이 스쿨(성경학교)에서 자녀 교육과 관련된 스터디를 한 적이 있다. 그들은 자녀가 자신의 자녀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라 믿는다. 의식주와 같은 부분은 챙겨줄 수 있지만 그 이외의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의 영역이라 믿는다.      

아들과의 언쟁과 관련해서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어렴풋이 예전 그 성경학교에서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내 아이는 내 소유가 아니며 내 마음대로 될 수 없다. 나는 그저 먹고 자고 입히고 하는 보호자이지 진정 그 아이의 모든 부분을 바꿀 수 있는 역할까지는 할 수 없다. 그건 신의 영역이라는 생각을 한동안 잊고 살았다.      


어떻게 보면 무책임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국 생활을 통해 완전히 딴 사람이 된 나 자신을 생각해보면 한 사람의 변화는 오롯이 신의 영역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아무리 내 아이라 하더라도 아이의 모든 내면까지 통제하고 바꿀 수 있는 부모는 없다. 난 그걸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리고 기도를 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담는 아이로 키우는 노력을 하는 게 부모된 도리임을 믿기로 했다.      


❚간섭, 훈계 대신 관심

아직도 서툰 부모 노릇에 도움이 필요했다. 변하고 커가는 아들에 비해 아직 내 품은 커가지 못하고 적응하지 못 하고 있기에 밀튼 할아버지께 도움을 청해보기로 했다. 미국에 있을 동안 밀튼 할아버지는 아들에게 좋은 할아버지였다. 훈계나 간섭을 하는 할아버지가 아닌 꾸준한 관심과 보살핌을 주는 할아버지였다. 타지에서 조부모의 역할이 필요할 때 할아버지는 언제고 아들의 할아버지가 되어 주셨다. 그래서 할아버지의 말씀에 아들은 귀를 기울인다. 지난 가을 한국에 오셨을 때에도 그 좋아하는 농구 대회를 마다하고 할아버지와의 여행을 선택한 아들이다.           


전날 남편과의 대화로 어느 정도 마음을 내려놓은 후 다음 날 아침 출근 후 바로 미국에 계시는 밀튼 할아버지에게 도움을 요청해보기로 했다. 예전 미국 교회 사립 학교에 다닐 때 아들은 성경 말씀을 곧잘 외우고 기도문도 쓰면서 신앙심을 키워갔다. 학교 친구들이 모두 신실한 믿음을 가진 가정의 아이들이라 우리 아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또래 친구였다. 그런 세월을 뒤로 하고 귀국한 요즘엔 아들에게 그런 친구가 없다. 가끔씩이라도 밀튼할아버지의 안부 문자가 아들에게는 그 시절 배움을 상기시켜주는 좋은 계기가 될 것 같았다. 비록 몸과 마음이 변하는 시기이지만 그 시절 배운 성경 말씀은 늘 마음에 큰 중심이 될 수 있었으면 했다. 그런 나의 마음을 밀튼 할아버지께 카톡 문자로 전했다. 그것도 출근 후 바로 당장 보냈다.      


14시간의 시차에도 불구하고 자녀 교육에 힘들어하는 나의 도움 요청 메시지를 할아버지는 바로 답을 주셨다.


기꺼이 아들에게 카톡 문자를 통해 내가 요청한 할아버지 역할을 해주시기로 했다. 고맙게도 레인 할머니(밀튼 할아버니의 아내)는 힘들어하는 내 마음을 헤아려주는 따뜻한 카톡 문자를 보내오셨다.      

아들과 관련한 너의 염려를 충분히 이해한다. 특히 아이들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에 덜 흥미를 느낀다는 생각이 들 때 부모로서 염려가 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럽다. 이런 아들의 변화를 늘 알아차리고 동시에 하나님이 너보다 더 아들을 사랑함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또한 하나님은 너의 모든 염려와 부담감, 슬픔을 기도로 올리기를 원하신다. 너는 하나님이 현명하시고 전능하시고 늘 선하시고 너와 너의 가족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끝이 없음을 기억해. 특히 아들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신앙심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기도해. 하나님은 그가 행동하실 때 까지 우리가 인내하며 기다리기를 원하신다. 그건 힘들지만 우리는 믿음으로 견딜 수 있어. 밀튼과 나도 너의 아이들을 위한 기도를 해줄게. 밀튼이 너의 아들과 더 소통을 잘 할 수 있는 지혜를 가질 수 있도록 기도하자.            


❚다른 문화, 다른 나라임에도

분명 미국과 우리나라는 다르다. 자녀 육아 방식 역시 다르다. 하지만 자립적이고 신을 경외할 줄 아는 아이로 키우는 그들의 방법을 닮고 싶다. 달라도 너무 다른 두 나라의 현실에  늘 헷갈리고 실수하기 일쑤이지만 조금씩이라도 변하고 싶다. 비록 아주 멀리 계시지만 여전히 나에게 큰 위안과 도움을 주실 수 있는 밀튼 할아버지와 레인 할머니가 계시기에 또 조금 힘을 내어 보고 싶다. 여전히 나와의 대화보다 핸드폰 게임을 더 사랑하는 아들이지만 나의 마음이 어떻게든 전해질 수 있기를, 아들에게 나의 진심이 통할 수 있기를 바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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