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이야기이지만 누구의 이야기일 수도 있기에
❚마흔이 주는 무게
서른이 되기 직전. 한 해의 마지막 날. 늦은 밤이 다 되도록 잠을 이루지 못 했다. 첫 아이를 키우느라 여념이 없이 보내다 나도 모르게 서른은 불쑥 내 앞에 와 버렸다. 해질녘의 스산함 같은 감정과 청춘의 잔치가 끝난 씁슬함이 내 마음을 가득 채웠다. 그 이후로도 시간은 변함없이 예정된 대로 흘렀고 나는 그 서른에다가 10년이라는 세월을 더 보태어 어느덧 마흔에 접어들었다. 40년의 세월을 살아내면서 주어진 삶의 과업을 하나하나 해내느라 꽤 열심이었다. 학업에 몰두했었고, 취업했고, 배우자를 만났고, 두 아이를 키웠다. 그리고 매일 아내로, 딸로, 엄마로, 교사로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았다.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이고 새털처럼 많은 날 이었다. 그래서 10년이라는 시간은 어쩌면 별 의미 없는 시간 뭉치일 수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 마흔은 단지 물리적인 10년의 추가가 아니었다. 그것은 시간의 유한함을 피부로 절실히 깨닫게 만든 세월이었다. 지난 10년이 흘러갔듯 앞으로 10년도 흐지부지 일상의 쳇바퀴에 갇혀 또 그렇게 흘려보낼 것 같았다. ‘그렇게 10년, 10년, 또 10년의 세월이 가고 나면 나의 삶도 곧 끝이구나’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갑자기 찾아온 삶에 대한 물음
정말 정신없이 살아온 삶이었지만 마흔이 되는 즘 ‘어쩌면 내가 인생의 절반을 다 소모했을 수도 있고 절반 이상을 이미 소진했을 수도 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마음이 급해졌다. 그리고 ‘그런 매일의 삶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삶에 대한 의문을 품으며 내 마음은 더 조급해졌다. 사실 그 질문은 어느 날 갑자기 내 마음에 불쑥 들어온 건 아니었다.
우리 엄마는 누구보다 열심히 다섯 아이 뒷바라지를 하며 최선을 다해 살아온 엄마이셨다. 엄마가 60대 중반이던 무렵 다른 어느 날보다 더 굳은 얼굴 표정으로 우리 집에 오신 적이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 당시에는 딸들 누구도 눈치를 채지 못했지만 이미 몇 해 전부터 엄마는 마음의 병을 조금씩 키우고 있었다고 했다. 삶에 대한 회의감에 빠진 것인지 혼자만의 고민이 따로 있었던지 우리로서는 알 수가 없다. 돌아가신 지 어느덧 8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그 누구도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엄마의 우울증의 심각성을 깨달은 그날 이후 엄마의 병세는 날이 갈수록 악화되었다. 첫 번째 한 달간의 입원으로 거의 정상으로 돌아오신 적이 있었다. 하지만 또다시 마음의 어두움이 시나브로 엄마를 덮어 버렸다. 그런 엄마를 바라보는 나의 마음은 참으로 안타까웠다. 세상 치열하게 살아온 엄마라는 것을 알기에 나의 질문은 더욱 절실했다. 삶의 의미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늘 반복되는, 나의 역할이 부여하는 임무를 다 해내느라 허덕이던 나의 일상은 도무지 그 해답을 줄 리가 없었다. 매일 반복되는 치열한 일상은 나에게 삶의 의미를 찾게 하기는 커녕 의문만 증폭시켰다. 무의미한 일상을 반복하는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내 주변을 바꾸고 다른 삶의 경험을 하고 싶었다. 다른 역할로 살아 보고 싶었다. 사회가 부여하는 그 역할 말고 나 스스로 부여한 나의 역할을 오롯이 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 당시 유학을 결심하면서 그것이 나의 삶의 방식이나 가치,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바꿀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새로운 나를 만들겠다는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다.
❚지금 아니면 언제?
엄마는 삶의 희망을 거의 놓아 버리신 상태였다. 두 아이는 아직 초등학교 저학년이다. 남편의 개인 사업은 이제 겨우 기반을 잡아가고있는 상태 였다. 연로하신 시부모님은 매주 손주들의 방문이 삶의 낙이셨다.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 그럼 언제가 가장 최선의 시간일까? 조금만 더 여기서 꾸물거려 줘야 하는 것일까? 그런데 지금이 아니면 언제가 좋은 시기일까? 하지만 언제든 내 주변에는 나를 꾸물거리게 만들 일들로 가득하다.
세월이 흐르면 부모님들은 더욱 연로해지실 것이고 그런 부모를 두고 떠나기엔 더욱 부담될 게 뻔하다. 그리고 나 역시 나이를 한 해 두 해 먹어가면서 삶의 동력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삶의 무의미함을 그저 받아들이며 세월을 무심히 살아갈지도 모른다. 나와 남편의 결론은 하나였다. 지금 아니면 언제 하겠어? 지금이 언제고 최선의 시간이다. 그일이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이고 가치 있는 일이라면 그것을 실행하기에 최선의 시간은 언제든 지금이다. 행동력과 결단력이 다소 강한 나는 결국 남편과의 며칠 의논 끝에 결단을 내렸다. 모두 다 떠나기로 했다.
내가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나에게 주어진 역할들은 잠시 잊기로 했다. 남을 위한 그 많은 일과 책임을 잠시 멈춤 하기로 했다. 내가 원하는 역할, 나 스스로 선택한 역할에 집중해보기로 했다. 다행히 남편과 같은 방향을 바로 본 덕분에 남편의 지지와 후원을 얻을 수 있었고 우리 가족은 그러한 삶을 살아 볼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남편의 지지와 후원은 삶의 동반자로서 궂은 길이라도 함께 걸어가겠다는 지지와 후원이었다. 금수저로 태어난 남편이거나 재정적인 후원을 원 없이 해줄 수 있는 남편이었음은 절대 아니었다. 하지만 남편은 나의 유학 기간 내내 나와 우리 가족의 큰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뜻한 일과 뜻하지 않은 일, 그리고 뜻 밖의 선물들
애초에 다른 세계로 나가서 살아 보고 싶었다. 재산 대신 경험이라는 유산을 두 아이에게도 물려주고 싶은 우리 부부의 소망으로 실행한 일이었다. 새로운 배움, 새로운 일, 새로운 생활,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을 기대하며 우리는 미지의 나라로 점프해 들어갔다.
하지만 그 새로운 배움, 새로운 직업, 새로운 생활,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은 우리가 예상한 방향이거나 종류가 결코 아니었다. 학문적 배움을 위해 유학을 생각했다. 하지만 학문적 배움도 물론 얻었지만 인생에 대해 더 많이 배운 것 같다. 새로운 직업을 구하고 찾으려 했으나 직업 하나 얻기가 힘들었다. 새롭고 도전적이고 진취적인 생활을 하고 싶었으나 고달프고 무기력해지는 생활의 도전을 받아야 했다. 새로운 사람들과의 좋은 인연을 기대했다. 비록 좋은 사람들과 많은 교제도 있었지만 기억 속에서 도려내고 싶을 만큼 괴로운 악연 역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뜻한 일을 해내기 위해 애를 썼고 뜻하지 않은 좋고 나쁜 일들 겪음에도 슬기롭게 헤쳐 나가려 열심히 살았던 것 같다. 그렇게 뜻한 일과 뜻하지 않은 일련의 일들을 겪으며 우리는 뜻 밖의 선물을 둠뿍 받았다.
❚나의 이야기이지만 누구의 이야기일 수도 있기에
이 책은 마흔에 떠난 나의 미국 유학에 관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건 아이의 조기 유학에 관한 이야기일 수도 있고 배우자와 함께 떠난 미국 이민 이야기일 수도 있다. 어쩌면 한 사람의 오롯한 새로운 삶의 방식과 가치관의 변화를 맞이하게 된 이야기일 수도 있다. 이 책이 새로운 것을 도전 해보려는 누군가에게 한 번쯤은 읽어 봄 직한 이야기였으면 한다. 특히 유학과 이민을 생각해본 마흔 전후의 독자들에게 나의 이야기가 유학과 이민에 대한 막연함을 다소 해소해줄 수 있기를 바래본다. 하지만 비록 나의 기록이 그 누구에게도 별 의미를 주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이 책은 마흔에 두 아이, 남편과 함께 유학을 떠나 얻게 된 뜻밖의 선물에 관한 나의 기록이 될 것이라 믿으며 이야기를 시작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