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둘째를 영어 영재로 만들려는 나의 계획

: 책에는 엄마 냄새가 나

by Hey Soon

❚내 맘대로 안되는 첫째 딸

뭐든 지 열심히 하는 나의 성격 때문일 수도 있다. 육아도 참 열심히 했다. 첫째한테는 가급적 시중에 가공된 음식을 최대한 먹이지 않으려는 결심을 하고 삼 시 세끼 먹이는 일에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첫째인 딸이 책에 관심을 조금이라도 보였으면 아마도 책 읽어 주기에 더 많은 열심을 했을지 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 딸은 지금 기억하기에도 책에는 영 관심이 없었다.


생후 6개월 무렵 부터 나는 그림책을 읽어주는 시도를 했다. 엎드려서 배밀이를 시작하는 딸에게 맛있는 과일 그림이 있는 알록달록 그림책을 읽어줬다. 딸랑 10페이지도 되지 않는 그 책이 채 끝나기도 전에 딸은 나를 피해 배밀이를 해 도망을 가버리곤 했다. 장난삼아 딸이 배밀이로 가는 길목에 책을 세워 그 길을 가로막으면 딸은 재빠르게 방향 전환을 하고 배밀이를 도망가버렸다. 딸의 운동 신경은 타고난 듯하다. 물론 이야기책에 대한 무관심 역시 타고난 듯하다.


❚책을 좋아하는 갓난쟁이, 둘째 아들

첫째의 시큰둥한 반응과는 달리 둘째는 아주 어린 갓난쟁이였을 때부터 나와 함께 하는 책 읽기를 참 좋아했다. 둘째를 낳고 두 아이를 키우기 위해 3년간 긴 육아 휴직을 한 적이 있었다. 기왕에 휴직을 한 김에 두 아이를 제대로 잘 키워봐야겠다는 결심을 단단히 했다.


2000년대 초반인 그 무렵 조기 영어 교육 열풍이 물었다. 엄마표 영어니 잠수네 영어니 집에서 비디오를 활용한 조기 영어 교육이 어린 아이를 가진 엄마들에게 마치 미션인 듯 슬며시 주어지는 그런 분위기였다. 나도 아이의 영어 조기 교육에 한껏 열을 올린 사람 중에 한 사람이었다.


학창 시절을 되돌아보면 대부분의 과목 공부가 쉽지는 않았지만, 유독 영어는 나를 괴롭혔던 과목이었다. 시골 출신의 조기 영어 무경험자인 나에게 영어는 참으로 넘기 힘든 큰 산이었다. 고등학교 입학 후 치른 첫 모의고사에 28점을 맞고 그저 영어를 포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영어를 포기하는 건 대학을 포기하는 거나 마찬가지였기에 고등학교 3년 줄곧 영어에 올인했다. 그렇게 열심히 익힌 덕분에 영어 교사가 되기까지 했다. 영어는 한때 나를 많이 힘들게 한 과목이었지만 나의 인생행로를 열어 준 고마운 과목이기도 했다. 덕분에 영어를 익히는 것의 재미도 알게 되었다.


아이의 엄마가 되고 나서 내 아이들만큼은 나처럼 힘들게 영어 공부를 하지 않도록 해주고 싶었다. 우리 아이에게만큼은 영어 고통을 대물림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영어에 노출을 많이 시켜주려고 애썼다. 내 기억으로는 생후 7개월 즘부터 본격적으로 그 노력을 했던 것 같다. 그렇게 일찍부터 영어 조기 교육을 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바로 외국어 습득에 결정적 시기가 있음을 확신했기 때문이었다.

❚결정적 시기에 대한 나의 확신

나의 확신은 나름 영어 전공자로서 배운 지식에 근거하긴 했다. 외국어 학습에 결정적 시기에 관한 가설(Critical Period Hypothesis)은 영어 교육 분야에서 가장 자주 거론되는 가설 중 하나다. 학자에 따라 결정적 시기가 끝나는 시기를 5세(Krashen, 1973), 6세(Pinker, 1994), 12세 (Lenneberg, 1967), 15세 (Johnson & Newport, 1989)등으로 다양하게 주장하고 있지만 아직도 정확히 언제 그 결정적 시기가 끝나는 지 밝혀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2003년 Hakuta, K., Bialystok, E., & Wiley, E.은 결정적 시기에 관한 가설에 관한 아주 흥미로운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진들은 1990년 미국 인구조사 (Census) 응답자들 중 10년 이상 미국 현지 체류한 사람들 중 스페인어를 모국어로 쓰는 영어 학습자 2,016,317명과 중국어를 모국어로 쓰는 영어 학습자 324,444명의 영어 능력에 대한 데이터를 분석했다. 총 2,340,761명이나 되는 엄청난 숫자의 데이터를 분석하여 제2 언어에 노출 시작 연령과 그 언어 사용 능력 간의 관계를 도출해냈다.



“Our conclusion from these models is that second-language proficiency does in fact decline with increasing age of initial exposure. The pattern of decline, however, failed to produce the necessary discontinuity that is the essential hallmark of a critical period.”(Hakuta, K., Bialystok, E., & Wiley, E., 2003, p.37)

“이 데이터 분석 모델에서 끌어낸 우리의 결론은 제2 언어에 노출이 시작되는 나이가 늦어질수록 제2 언어 숙달 정도는 실제로 떨어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숙달 정도가 감소하는 패턴을 나타낸 그래프에서 결정적 시기가 끝나는 시점이라 확신할 만큼 선명하게 뚝 떨어지는 시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다시 말해 그 연구는 제2 언어에 노출 시작 연령이 늦어질수록 그 목표 언어 사용 능력이 낮음을 보여주었다.



❚엄마의 관심을 끌기 위한 갓난쟁이의 비밀 계획

언어 습득에 관한 학자들의 말을 익히 들은 나로서는 내 아이만큼은 영어를 학습이 아니라 모국어처럼 습득시키고 싶었다. 영어 조기 노출의 장점을 알고 있기에 최대한 우리 아이들에게 그러한 환경을 심어주려고 했다. 아이는 대부분 시간을 나와 같이 보내니, ‘내가 아이에게 많은 영어 인풋 제공자가 되면 그게 바로 영어권 아이들과 같은 조건이 될 수 있겠다’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육아 휴직 3년 동안 아이의 영어 노출에 열심이었다.

아이가 생후 7개월이 되던 무렵부터 내 무릎에 아이를 앉혀놓고 영어책이랑 우리말 책을 읽어주었다. 사실 아주 어렸을 때는 우리말 책보다는 영어책을 더 많이 읽어주었다. 거실에 큼직한 책장 두 개를 나란히 들여놓고 그곳에 영어책으로 다 도배를 하다시피 했다. 영어책이든 우리말 책이든 책이라는 것에 별 관심이 없던 첫째가 어린이집에 가고 나면 책을 좋아하던 둘째에게 책을 주로 읽어줬다. 특히 오전 한두 시간, 오후 한두 시간은 영어책 읽는 것을 매일의 루틴으로 했었다.


아이에게 영어책을 읽어주는 것이 영어 교사인 엄마로서 아이를 위한 당연한 도리라 생각했다. 더군다나 육아 휴직이나 한 나로서는 당연히 그래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무거운 의무감에서 한 일은 결코 아니었다. 사실 아이에게 영어책을 읽어 주는 일은 내가 더 즐거워서 했던 일이다.


중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주로 읽던 영어 교과서나 참고 자료는 별 재미가 없었지만, 어린이를 위한 영어 동화책은 통통 튀는 고무공처럼 생기가 넘치고 다양하고 재미있는 소재들로 가득했기에 영어 동화책 읽기의 매력에 푹 빠졌었다. 그 당시 둘째는 걷지도 못하고 겨우 기어 다니는 7개월이었지만 신기하게도 영어책 읽기를 참 좋아했다. 생후 7개월인 둘째가 유독 재미있어하던 책은 Scholastic Hello Reader 시리즈 중 Level 1인 ‘Pizza Party’라는 책과 Level 2인 ‘Dinosaurs’이었다.


내가 설거지나 청소를 하고 있으면 아들은 그 책들을 들고 나에게 기어왔다. 당연히 나는 만사를 제치고 읽어달라는 영어책을 읽어줬다. 신기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해서 열심히 읽어주었다. 아기들을 위한 영어 책들은 엄청 짧기 때문에 한 번 읽는 데 2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그런데 문제는 한 번만 들려줘서는 아들의 성에 차지 않는다는 거다. 아들은 한 자리에서 같은 책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어달라고 졸랐다. 설거지를 하다 말고 싱크대 앞에 앉아서 몇 분이고 같은 책을 무한 반복해서 읽어 주다 보면 하던 집안일을 미뤄야 해서 짜증이 나기도 했다. 화내며 그만하라 할까 웃으며 무한 반복에 가깝게 읽어줘야 할까? 늘 고민스러웠다. 그 정도로 둘째에게 영어책의 매력은 강력했다. 그 시절을 떠올리면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중3이 되는 아들의 책꽂이에는 여전히 그 시절 영어 동화책들이 보관되어 있다. 가끔 아들은 어린 시절이 그리운지 그 책들을 들척이기도 한다. 아들에게 영어책은 유년 시절의 앨범처럼 그 시절을 추억할 수 있는 소중한 물건 인 듯 하다. 미국 현지에 가면 널리고 널린 게 영어 책이겠지만 5년간 미국 유학을 떠나면서도 우리는 그걸 들고 갔다. 미국에서 살던 우리 동네네은 아이 셋을 키우는 백인 애기 엄마가 있었다. 그 애기 엄마에게 무료로 장기 대여를 해주고 다시 귀국할 즘에는 그게 뭐라고 그 책을 챙겨서 들고 왔다. 아들에게 그 책들은 돈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어린 시절 보물이다.


❚영어 영재

아들이 돌도 되기 전 나는 아들이 영어 영재라 생각했다. 영어책을 다 알아듣는 것 같았다. 많은 영어책을 한 시간 이상 읽어줘도 싫다 소리 안 하고 가만히 잘 듣고 있었다. 영어책 제목을 말하면 그 책을 찾아오기도 했고 그 수많은 공룡 이름을 영어로 말하면 그 공룡을 정확히 다 가르키는 걸 보고 진짜 영어 영재인 줄 알았다.

그런데, 과연 둘째가 영어 영재라서 그랬을까? 이제 와 생각해보면 4살 이전의 세상 모든 아이는 제2언어 습득에 영재라는 생각이 든다. 모국어가 탄탄해지기 전 아이들에게 소통의 수단이 무엇이든지 그것은 아이에게 아주 절실한 도구다. 엄마가 영어로 말하든, 우리말로 하든 그 소통의 매개체가 아이에게 절실하기에 마치 스펀지처럼 그 언어를 받아들인다. 그게 소위 언어 습득의 결정적 시기인 셈이다. 둘째도 그저 평범한 그런 아이였지만 그저 엄마가 더 많이 영어 노출을 해주었고 관찰을 더 많이 한 결과 영어 영재로 오해했을 뿐이다.

그런데 아들이 4살이 되고 어린이집을 가면서부터 아이는 깨닫기 시작한 것 같다. 소통의 언어로 모국어가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그렇게 필요성이 강력한 언어를 아이는 더욱 무서운 속도로 배워가기 시작했다. 반대로 필요성이 상실된 영어는 별로 흥미를 가지지 못하게 되는 것이 확연히 드러났다. 말하기를 좋아하는 아들은 4살 이전까지만 해도 나와의 소통 언어로 영어가 유효했기에 영어책을 읽는 것도 좋아하고 내가 영어로 말하는 것도 거부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할 무렵부터는 또래 아이들과 노는 것을 좋아했기에 나와의 소통에 쓰던 영어보다는 친구들과 소통할 수 있는 언어 즉 우리말에 훨씬 더 많은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어린이 집을 다니기 전까지 둘째가 영어를 거부하지 않는 이유는 소통의 수단으로 유효 했기때문이기도 하지만, 아들에게는 또 다른 강력한 이유가 있었다. 바로 엄마를 차지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 바로 영어책이라는 걸 깨달은 것 같았다. 두 아이의 엄마로 먹이고 씻기고 하는 일에 늘 바쁜 나를 차지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은 나에게 영어책을 가져가는 일이라는 걸 알아버렸다. 엄마에게 영어책을 가져가면 엄마는 언제고 내 차지가 된다고 눈치가 빠른 둘째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던 것이다. 아주 어린 아이에게 영어 노출이 가능한 것은 바로 엄마와 아이의 유대관계 덕분이다. 그런 시기를 잘 활용해서 아이에게 영어 노출을 해주는 것은 여러 모로 효과적이란 생각을 한다.


간혹 어린 나이에 영어 노출을 많이 시켜주면 모국어 습득이 늦춰지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아이는 엄마를 통해 새로운 언어 세계를 접하더라도 결국은 생존에 제일 필요한 언어, 즉 모국어를 절대로 놓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둘째 아들을 이중 언어 구사자로 만들고자 하는 나의 계획은 애초에 미션 임파서블인 셈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아들은 영어에 대한 긍정적 감정이라는 큰 재산을 얻게 되었다.


❚책에는 엄마 냄새가 나

영어를 사용하는 나라가 아닌 이상 아무리 어린 나이에 영어 노출을 시작한다 하더라도 결국 모든 아이는 자기의 주변에서 사용되는 언어 즉 모국어를 제1 언어로 구사하게 되어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어라는 언어를 어린 나이에 노출 시키는 것이 필요한 이유는 위의 연구에서도 보여준 것처럼 제2 언어에 노출이 시작되는 시기가 빠를수록 그 언어의 학습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아이가 사회 생활을 시작하면서 모국어로 편향되게 되어 있다. 그 이전에 모국어와 영어에 모두 노출을 시켜줌으로서 영어에 대한 낯설움을 없애주면 좋다. 특히 음성언어(듣기, 말하기) 습득은 문자언어보다 먼저 발달하고 어린 나이일수록 더 쉽게 받아들인다. 우리말의 습득 순서를 생각해봐도 이건 아주 당연한 일이다.


엄마에게 절대적으로 의지하는 어린아이일수록 이것이 훨씬 더 쉬워진다. 우리 아들의 경우, 아주 어린 나이부터 내가 영어책 읽어주기를 한 덕분에 영어라는 언어에 일찍 노출이 되었다. 그것이 지금의 영어 능력을 위한 소중한 씨앗이 된 것 같다. 무엇보다 영어 노출이 영상이 아닌 영어책으로 이뤄진다면 그것은 참으로 소중한 경험이란 확신이 든다. 엄마가 읽어주는 책을 통해 아이는 책이라는 것에 따뜻한 기억을 가지게 된다. 아이는 ‘책에서는 엄마 냄새가 난다, 엄마 품이 느껴진다’ 라 느낀다. 책과 엄마가 아주 소중한 인풋이 될 수 있는 그 소중한 시절을 잘 활용하면 좋을 것 같다.


❚ 참고자료:

- Hakuta, K., Bialystok, E., & Wiley, E. (2003). Critical evidence: A test of the critical-period hypothesis for second-language acquisition. Psychological science, 14(1), 31-38.

Krashen, S. (1973). Lateralization, language learning, and the critical period. Language Learning, 23, 63–74

- Pinker, S. (1994). The language instinct. New York: W. Morrow

- Lenneberg, E.H. (1967). Biological foundations of language. New York: Wiley

- Johnson, J.S., & Newport, E.L. (1989). Critical period effects in second language learning: The influence of maturational state on the acquisition of English as a second language.

Cognitive Psychology, 21, 60–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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