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하지 않을 나만의 엄마표 영어
영어로 업을 삼고 있는 영어 전공자이자 영어 교사이지만 애초에 우리 두 아이에게 영어 영상 노출을 루틴화 시킬 생각은 없었다. 아예 그런 마음을 먹지 않은 건 천만다행이다. 내가 한 엄마표 영어는 대부분 사람들이 하던 것과 많이 다르다.
우선, 나는 영어 영상물에 크게 의존하지 않았다. 영어 영상물을 모든 아이가 좋아한다고 할 수 없고 그것의 부작용도 있기 때문이다. 즐기지도 않는 영상을 그저 루틴을 위해 미련하게 꾸역 꾸역 강요하는 것은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니다. 나는 영어 영상물 시청 대신 영어책 읽어주기에 열심을 냈다. 영어 도서관도 자주 다니고 영어책 대여 서비스도 해보고 생활비 상당 부분을 영어책 사는 데 투자한 적도 있었다. 거실 벽 두 면은 영어책과 우리말 책으로 가득한 책장이 자리를 잡았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집에 TV도 두지 않았다. 첫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 내가 저녁밥을 준비하는 시간에 노트북으로 아이들에게 영어 영상을 조금씩 들려준 게 영어 영상 노출의 전부이다.
두 번째로 나의 엄마표 영어의 특징은 영어 세상에서 직접 살아 보게 해주는 것이다. 우리 부부가 남들보다 유별하다고 여겨지는 부분이 여기에 있다. 미국 유학에 대한 꿈을 결국 실행에 옮기게 된 근본적인 이유도 아이들이 영어 세상을 체험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 나의 결단은 보통의 엄마라면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할 만큼 극단적이고 미국 유학에는 많은 비용이 든다. 당시 주변 지인들은 내가 정말 엄청난 기동력의 수퍼파워 대한민국 아줌마라 생각했다. 그리고 나의 재력에 대한 오해를 했다. 하지만 난 결코 수퍼 파워 아줌마나 재력가가 아니었고 지금도 아니다.
세상엔 공짜가 없다. 어떤 일을 선택하든 우리는 그 선택에 따른 기회비용을 치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엄마들이 엄마표 영어라는 이름하에 아이와 신경전을 벌이며 매일의 영어 학습이나 영어 노출의 루틴을 지키려 애쓴다. 그들 역시 아이의 영어 능력 발달을 위해 모종의 무언가를 지불하고 있는 셈이다. 나는 아이와 그런 신경전을 벌이는 대신 16년간의 교사 생활로 모은 돈을 아이들의 세상 경험을 위해 지불 하기로 했다. 다행히 나는 그 비용으로 나의 늦깎이 배움에 대한 욕구도 충족시킬 수 있었기에 나의 결정에 주저함이 없었다. 그 선택에 대해 친정 아빠나 시아버지는 지금도 탐탁치 않게 생각한다. 어쩌면 내가 하지 말았어야 할 선택이라고 생각하고 계실지도 모른다. 사실 자녀 교육의 다양한 양상을 좌표로 그린다면 우리의 자녀 교육 방식이나 영어 교육 방식은 그 스펙트럼의 거의 끝자락에 있을 만큼 흔치 않은 건 사실이다.
❚배움이라는 큰 그림의 한 조각을 찾아 넣는 과정
사실, 극단에 가까울 만큼 단호한 결정을 한 것은 아이들에게 세상 경험을 많이 시켜주고 싶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주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 아이들만큼은 나처럼 힘들게 영어를 배우지 않고 영어 노출을 일찍 시켜 자연스럽게 영어를 습득했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하지만 5년간의 미국 생활은 우리 두 아이에게 영어를 배우는 것 이외에 내가 예상하지 못한 배움도 가져다주었다. 낯선 환경에서 집의 가장으로 이런 저런 일들을 헤쳐나가는 남편의 모습도 아이들에게 좋은 배움의 순간들이었을 것 같다. 무엇보다 우리 두 아이는 늦깎이 대학원생인 엄마의 배움의 과정을 매일 목격하며 그런 삶의 자세와 태도를 닮아 가고 있었다. 덕분에 우리 두 아이는 현지 학교 생활에 적응을 잘 할 수 있게 되었다. 당연히 영어 실력도 점차 향상되었다.
인생은 배움의 연속이다. 부모의 품을 벗어나서도 아이는 계속 배움을 이어 나가야 한다. 아이를 위한다는 명분 하에 아이와 신경전을 벌이며 엄마표 영어를 꾸역꾸역 하기 보다 엄마 스스로 새로운 것을 배우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이에게 더 유익할지도 모른다. 비록 어린 시절에 영어를 좀 더 일찍 배웠다고 할지라도 결국 영어라는 도구는 계속해서 꾸준히 스스로 연마해야 한다. 그 과정은 쉽거나 즐겁지만은 않다. 그리고 온전히 스스로가 주인이 되어야 해나가갈 수 있는 부분이다. 그리고 분명히 아이들이 살아가야 할 시대에는 영어뿐 아니라 우리가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는 어떠한 새로운 능력이 될 것이다.
그 방대한 배움 중에 영어를 배우는 것은 하나의 작은 퍼즐 조각에 불과하다. 작고 작은 조각인 영어를 배우게 하는 과정이지만 나는 그 단순한 퍼즐 한 조각을 아이에게 일찌감치 훈련을 시키기보다는 배움이라는 큰 그림의 한 조각을 찾아 넣는 과정을 아이와 함께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엄마인 나 스스로 새로운 것을 배우며 발전해가는 모습을 아이에게 보여줄 수 있었다. 나는 그저 영어가 쓰이는 세상에 가서 영어를 배우게 하려 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아이는 새로운 세상에서 적응하고 계속 배움을 이어 나가는 부모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아이는 새로운 세상에서 살아가는 법을 몸으로 배우고 있었다.
❚나의 배움에 대한 태도를 보고 배우는 아이들
그 과정이 만만하거나 녹녹하지는 않았다. 나도 남편도 우리 아이들도 그랬다. 미국에서 지낸 지 3년 될 즘 아들은 초등 4학년이었다. 당시에 아들이 다니던 교회 소속의 작은 학교에는 우리 아이들이 유일한 외국인이었다. 그 학교는 학생들에게 프로젝트형 수업을 많이 시켰다. 각자 조사를 하고 그 결과를 친구들 앞에서 발표하는 활동이 많았다. 점점 학년이 높아지니 그 발표의 강도가 높아졌다. 일상생활에서 친구들과 영어로 소통하는 데 별 어려움이 없어 보이는 아들이었지만 여전히 그런 발표는 부담이 가는 모양이었다. 어느 날 저녁 자기 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아들을 위해 기도를 해주려고 할 즘이었다. 아들이 내게 물었다.
“엄마, 엄마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는 것이 떨리지 않아?”
“엄마, 나는 한 달 후 있을 역사 과제 발표가 벌써 걱정이 되고 생각하면 마음이 힘들어.”
나 또한 대학원 수업에서 유일한 외국인이었기에 아들의 그 심정이 백분 이해가 되었다. 아들은 아들의 레벨에서 나는 나의 레벨에서 서로 비슷한 도전을 맞이하고 그걸 헤쳐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다만 나는 어른이었기에 나의 불안과 걱정을 최대한 나의 통제권 안으로 넣기 위해 이런 저런 준비를 한다. 준비를 하고 나면 그 불안은 크게 신경 쓸 필요가 없을 만큼 작아져 있었다. 하지만 아들은 이제 그러한 것에 대한 배움을 시작하는 단계이다. 다행히 아들은 그런 마음의 불편함을 내게 솔직히 터놓았다. 특히 자기 전 불을 끄고 기도를 하려고 하면 아들은 마음에 담아 둔 이야기 봇따리를 풀어 놓곤 했다. 하나의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40분 가량 자는 시간이 지연된 적도 있었다.
“엄마도 그렇게 떨리는 순간들이 참 많아. 그런데 엄마는 한 시간 운전을 해 가는 동안 내가 떨려하는 그 순간을 머릿속으로 최대한 자세히 미리 그려봐. 내가 두려워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내가 두려워하는 그 순간을 최대한 슬로우 비디오로 흘려보는 거지. 그러면 깨닫게 돼. 내가 딱히 꼭 집어서 두려워 할 게 없다는 사실을. 그런데 그 상황을 통으로 묶어서 생각하면 이유 없이 두려워지는 마음이 자꾸 생겨. 그래서 엄마는 그렇게 머릿 속으로 최대한 그 상황을 자세히 그려 보고 준비를 많이 하려고 하는 편이야. 그리고 내가 걱정하는 그 순간 나를 혼자 두지 말고 늘 하나님이 함께 해주시라고 기도를 해. 엄마 말 무슨 말인 지 알지? 그럼 우리도 이제 기도할까?”
내가 미국 유학을 준비할 때는 부모의 역할은 그저 영어 사용 국가에 아이들을 던져 놓아주기만 하면 부모의 역할을 상당 부분 끝이 난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아이는 저절로 그곳 생활에 잘 적응해 나갈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막상 현지에서 살아 보니 그런 곳에 아이를 던져놓는 게 다가 아니라 그 속에서 부모 자신의 현지 생활 적응 모습도 아이에게 보여주고 아이의 성장도 격려해주는 것이 진정 부모의 중요한 역할임을 알게 되었다. 새로운 나라에서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나가는 과정에서 나의 배움도 아이의 배움도 참 컸다. 무엇보다 나의 배움에 대한 태도를 우리 아이들은 직접 보고 배우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