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RE시험 치던 날
❚토플, 토익, GRE 다 나한테 덤벼!!
남편과 결심을 하고 나는 본격적으로 유학 준비를 시작했다. 유학원에 의뢰하지 않고 하나부터 열까지 다 내 손으로 진행했다. 입학에 필수로 요구되는 성적표부터 처리하기로 했다. 유학생이 미국 대학원에 입학 허가를 받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TOEFL (Test of English as a Foreign Language) 점수가 필요했다. 또, 미국 대학원 입학 시 내국인, 외국인 모두에게 요구되는 GRE(Graduate Record Examination)점수를 제출해야 한다. 그리고 교육 공무원 신분으로 유학 휴직을 하기 위해서는 교육청에 최근 2년안에 치른 공인 영어시험 (TOEFL이나 TOEIC)점수를 제출 해야 한다.유학 휴직을 위해서 GRE성적, TOEFL성적, 그리고 교육청 휴직을 위한 공인 영어시험(TOEFL 또는 TOEIC)성적이 필요했다.
❚제일 큰 놈 GRE부터 잡자!
그 세 가지 시험 중에 첫 6개월간 GRE 시험공부를 먼저 시작했다. 일단 시중에 판매되는 문제집 하나를 온라인으로 주문했다. GRE시험은 원래 미국 현지 학부생들이 대학원을 입학하기 위해 치르는 일종의 수학 능력 시험이다. 이 시험은 1) Analytical Writing 2) Verbal Reasoning 3) Quantitative Reasoning 으로 구성되어 있다. 결국 언어 영역과 수리 영역인 셈이다.
❚ Analytical Writing (논리적인 글쓰기)의 비결: 부부싸움처럼 내 주장을 기를 쓰고 하기??
대학원에서 논문을 쓰기 위해서는 학문적인 글의 독해 능력 및 작문 능력이 필요하다. 언어 영역에서는 Analytical Writing이 시험의 첫 섹센으로 나온다. 이는 논리적인 글쓰기 능력을 측정하는 시험이다. 그 당시 우리 학교에 근무하던 미국인 원어민 선생님은 미국 남부 멤피스에서 오신 선생님이셨다. 부인도 옆 학교 원어민 선생님으로 근무했다. 그는 GRE의 글쓰기는 부부싸움을 할 때를 떠올리면 된다고 한다. 다정한 부부이지만 그들의 부부싸움도 여느 부부나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 Verbal Reasoning 긴 장문 독해의 비결: 선택적 집중?
쓰기가 끝나면 장문 독해력 및 어휘 능력을 측정하기 위한 읽기 영역이 나온다. 원어민들에게도 다소 어려운 학구적인 어휘가 많이 포함되어 있는 평가이다. GRE시험의 언어 영역은 외국인인 나에게는 넘을 수 없는 높은 산 이었다. TOEFL시험의 독해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무지막지한 장문에 듣도 보도 못한 단어들이 수두룩했다. 어떤 단어는 그게 영어인지 알 길도 없을 만큼 낯선 단어들이 많았다. 그 읽기 시험을 위해 수많은 영어 단어를 다 외우기에는 시간도 에너지도 역부족이었다. 결국 나는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고 할 수 없는 것은 과감히 포기하는 선택적 집중이라는 그럴싸한 전략을 취하기로 했다.
❚ Quantitative Reasoning의 비결: 머리 말고 손으로 하는 대한민국 수학 공부법
마지막으로 나오는 Quantitative Reasoning은 논문을 정확히 해석하고 쓰기 위해 요구되는 데이터 분석 및 해석 능력을 측정하는 섹션이다. 처음 GRE 문제집을 받아들고 공부를 시작할 때만 해도 이공 계열을 전공할 것도 아닌데 왜 수학 시험을 봐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막상 미국 대학원 교육과정을 이수하면서 기본적 수학적 지식과 수리능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능력이었음을 절실히 느꼈다. 미국 박사과정에서 나에게 가장 큰 부담을 준 과목이 데이터 분석 및 데이터 처리 과목이었다. 박사 과정 끝무렵에 이수하는 그 과목들은 내 발목을 잡을 뻔한 과목이었다. 그 과목은 전공 필수 과목이었고 이를 이수하지 못하면 수료도 불가능할 만큼 비중이 높은 과목이었고 내 평생 그렇게 힘들게 수강한 과목은 없었던 거 같다.
GRE 시험 준비 당시 그 필요성은 모르고 공부했지만, 쓰기 및 읽기 영역에 비하면 GRE시험의 수리 영역(Quantitative Reasoning)은 나의 GRE성적을 그나마 좋게 만들어준 효자 과목이었다. 우리나라의 고1 수준의 수학 과목 능력만 있으면 제법 풀만한 시험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나는 고3때 수포자로서의 길을 걸었으나, 고2때 까지 열심히 한 수학 공부가 큰 밑천이 되었다. 수학을 손 놓은 지 거의 20년 만에 다시 수학책을 들고 교무실에 앉아 열공 모드로 공부 했다. 같이 근무하던 동료 수학 선생님께 설명도 들으면서 차분히 수학 공부를 해나갔다. 대한민국 수학 공부는 머리로 하는 게 아니라 손으로 하는 수학이라 했던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거의 20년 세월이 자났음에도 불구하고 내 손은 수학 문제 푸는 법을 기억하고 있었다. 참 신기한 일이었다.
❚Just Do It !
GRE 시험 대비 문제집 한 권을 혼자 공부하고 온라인 무료 시험도 한 번 쳐봤다. 되든 안되든 GRE 시험을 실제로 쳐보기로 마음먹었다. ETS사 홈페이지에서 GRE시험 신청을 했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시험장이라 해봐야 지하철로 1시간 가량 떨어진 곳이었다. 비용도 20만원 이나 되었다. 비록 만반의 준비를 하진 않았지만 어쨌든 한번 쳐보기로 마음을 먹고 시험 응시 신청을 완료했다.
드디어 GRE 시험이 있는 일요일 아침, 나는 일찌감치 일어났다. 다들 늦잠을 즐길 평화로운 주말 아침이지만 나는 원대한 나의 꿈을 위한 첫발을 내딛었다. 지하철을 한 시간 가량 타고 시험장인 대학교 캠퍼스에 도착했다. 보통 토익 시험은 응시자가 많기 때문에 군중을 따라 가도 바로 시험장을 쉽게 찾을 수가 있다. 하지만 GRE 시험은 그렇지 않았다. 인적이 드문 조용한 캠퍼스에서 시험장을 찾기가 좀 어려웠다. 처음 가는 그 곳이라 길을 잠시 헤매었지만 다행히 시간안에 시험장에 도착했다. 역시나 내 연배의 수험생은 없었다. 다들 유학을 준비하는 대학생즘 되어 보이는 학생 몇 명이 시험장에 앉아 있었다. 아는 이도 없이 그저 혼자 썰렁한 시험장에 도착했다. 이미 미국 대학교에 혼자 와 앉아 있는 느낌 마저 들었다.
❚Oh, My God! 세상에 이런 끝도 없는 시험은 생전 처음.
중간에 잠시 간식 시간을 제외하고 거의 5시간을 계속 시험장에 갇혀 시험을 쳤다. 세상에, 그렇게 몽롱해지는 시험은 생전 처음이었다. 대학교 수학 능력 시험도 하루 종일 쳤지만,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경험이었다. 시험 치는 중간중간 화장실도 다녀올 수 있고 각자 들고 온 간단한 간식도 복도에 나가서 먹을 수 있었다. 그래서 대학교 때 치던 오픈 북 테스트 같은 느낌도 들었다. 하지만 절대 필기구와 종이 한 장, 각자 준비해온 간단한 간식거리 말고는 허락되는 건 없었다.
첫 번째 영역인 Analytical Writing 시간이었다. 당시 '공공 서비스(예, 인터넷 뱅킹 등)에 수수료를 매기는 것이 정당한 일인가?'라는 주제가 주어졌다. 나는 은행원이 예전에 하던 일을 인터넷 뱅킹 이용 고객이 대신해주는 것이므로 은행이 송금 수수료를 요구하기보다 오히려, 고객이 할인을 받아야한다고 논리를 펼쳤다. 원어민 선생님의 조언이 도움이 된 것 같았다. 나는 부부싸움을 할 때처럼 기를 쓰고 내 주장을 펼쳤다. 주어진 시간 안에 논리를 펴느라 여념이 없었다. 여전히 주위는 타자치는 소리만 끊임없이 들렸고 시간은 계속 흘렀지만 그 시험장의 안의 모습은 변함이 없었다.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개념이 모호해지며 마치 꿈을 꾸고 있는 듯한 느낌 마저 들었다.
그렇게 첫 교시 시험을 치고 한숨을 돌리니 두 번째 영역인 Verbal Reasoning 시험이 주어졌다. 영어라 하기에는 모르는 단어가 너무너무 많았고 지문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그 장문의 지문을 읽고 내용 이해 확인 문제를 풀어야 했다. 영어에 진심인 영어 교사였지만 그렇게 긴 지문을 그것도 아카데믹한 내용의 글을 시간의 압박을 받으며 읽는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풀다 풀다 지쳐 잠시 멍해지는 순간도 몇 번이나 있었다.어떤 문제는 그저 찍기까지 한 것 같다. 열심히 준비해서 친 시험이 아니라 치면서도 돈이 아깝다는 생각까지 했다. 어쨌든 나는 시험성적이 필요했으니 시험을 치는 데 의의를 두며 나 자신을 위로했다.
마지막 영역은 대입 수능의 수리 영역에 해당하는 Quantitative Reasoning이었다. 수리 영역은 내 눈에 제법 익숙한 수식과 문제로 채워져 있었다. 다행히 수리 영역의 수학은 우리나라의 중3이나 고1 수준의 수학 정도 교육과정 범위 내에서 출제되는 거라 대부분 국내 대학교 졸업자라면 무난히 해치울 수 있는 문제가 상당히 있었다. 비록 1994년도, 내가 고3이던 해에 갑자기 도입된 수능시험 때문에 수포자의 인생을 살았지만 고2때가지 쌓아두었던 나의 수학 실력 덕분에 마지막 시험은 이전의 언어 영역 보다는 훨씬 쉽게 느껴졌다. 미궁과 같던 언어 영역을 빠져나와 수리 영역 시험지를 받아 본 순간 나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 기분마저 들었다. 나는 정말 최선을 다해서 수학 문제를 풀었다.
❚최선을 다한 나의 첫 GRE 시험 결과
GRE 성적은 해당 회차에 친 전 세계 모든 수험생들 성적에서 내 성적의 상대적 위치로 내는 퍼센타일 성적이다. 당연히 나의 언어 영역 성적은 원어민인 수험생들과는 비할 수 없을 만큼 저조했다. 밝히기 민망할 만큼 낮았다. 평생 처음으로 친 시험이니 낮을 수 밖에 없다고 스스로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설사 한 번 더 친다고 하더라도 단기간에 성적을 올릴 수는 없는 능력 시험이기에 다시 도전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다행히 나의 수리 영역 성적은 평균 점수 대에 근접했었다. 정말이지 GRE시험은 두 번 다시 치고 싶지 않은 시험이었다. 결국 만족할 만한 성적은 절대 아니었지만 그냥 그 한 번으로 얻은 점수로 미국 대학원에 지원을 해보기로 했다.
다행히, 웬만한 미국 대학교는 입학 사정을 할 때 GRE 시험 성적을 크게 이슈화 하지는 않는 것 같다. 낮은 성적이라도 제출만 하면 되는 그런 정도이지 그것으로 당락을 결정하지는 않는 듯 했다. 물론, 장학금을 받고 조교로 지원하려는 사람이라면 이야기는 다르다. 미국 유학 시절에 만났던 우리나라 친구는 한국에서 직장을 다니다가 그만두고 미국 석박사 통합과정에 지원했다고 했다. 그 여학생은 교육 심리학과의 조교로 일하며 장학금을 면제받고 있었다. 그 친구의 지도 교수는 그 친구의 GRE 수리 영역이 우수해서 조교로 선택했다고 말했다고 했다.당시 나는 석사 과정을 지원하는 상황이라 조교 자리는 거의 불가능했다. 하지만 나의 예상대로 나의 GRE 시험성적은 미국 대학원 입학 허가를 받는 데는 별문제가 없었다.
❚GRE시험은 대학원 지망생이면 한 번은 거쳐야 할 통과의례
GRE시험 성적이 높아야 하는 건 아니지만, 미제출 시 대학원 입학 자체가 불가하여 반드시 쳐야하는 시험이기는 하다. 이는 외국 학생이든 미국 국내 학생이든 예외는 없는 걸로 안다. 현지 생활을 하면서 알게 된 미국인 공립초등학교 교사가 있었다. 지금은 내가 거주하던 도시에 교육청 장학사가 되었지만 그 친구도 GRE시험 때문에 석사 과정에 지원을 하고 싶지만 못 하고 있다고 했다. 특히 그 친구는 언어 영역보다 수리 영역이 부담이 된다고 했다. GRE시험은 미국 대학원 지망생이면 반드시 거쳐야 할 통과의례인 건 분명하다. 나는 얼떨결에 통과의례를 무사히 치뤘다. 그렇게 유학 준비의 큰 한 산을 넘었고 나는 기꺼이 다음 산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여전히 나는 미래에 대한 설레임과 기다림, 그리고 희망으로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