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희망이 가지는 초능력

: 안되면 될 때까지

by Hey Soon

❚TOEFL은 처음인데~

GRE 성적을 얻고 나서, 두 번째로 처리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토플(TOEFL) 시험이었다. 대부분 취업을 준비하는 대학생들은 토익(TOEIC) 공부를 했고, 대학원을 진학하려는 대학생들은 토플을 공부했었다.

대학 시절,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나는 대학원 진학에 대한 뜻이 별로 없었다. 물론 유학은 꿈도 꾸지 못할 상황이었다. 그저 빨리 학사 졸업을 하고 직장을 가지는 게 나의 유일한 꿈이었다. 부모님께 의지하지 않고 내가 돈을 벌어서 나의 생계를 스스로 책임지는 것이 무엇 보다 중요했다. 당시 우리 집은 아빠의 외벌이 수입에 전적으로 의존했었고 그마저도 50대 중반인 아빠는 몇 년 안에 퇴직을 해야 할 상황이었다. 다섯 남매 중 둘째인 나에게 재정적 독립은 아주 중요한 삶의 미션이었다.

대학 졸업 후 반년 만에 영어 교사가 된 나로서는 토플 공부를 할 기회도 이유도 없었다. 영어 교사 임용 시험에도 각시도별 가산점 사항이 좀 달랐지만, 토익 시험이나 영어 말하기 시험(ESPT; English Speaking Proficiency Test)이 대체로 가산점이 있는 공인 영어 시험들이었다. 교사 임용 고시를 준비하던 당시 나는 나름 영어에 자신감이 있던 터라 남들이 치지 않던 그 두 가지 시험을 혼자 치러 다니던 기억이 난다. 토익은 대체로 내가 살던 집 근처 중,고등학교가 시험장이었다. 하지만 말하기 시험은 90년대 중반이던 그 시절 부산까지나 가야 시험을 치를 수 있었다. 기차를 타고 말하기 시험을 치러 혼자 낯선 도시를 다녀오기까지 한 걸로 봐서 나의 영어 열정은 그 당시에도 평균 이상은 된 것 같다.

❚이제 TOEFL 차례. 너 이리 와봐!!

15년 경력의 영어 교사이지만 한 번도 쳐보지 않은 토플 시험이 이제 내 길목에 서 있었다. 미국 대학교 입학 허가를 받기 위해서는 TOEFL 점수는 필수 제출 사항이었다. 토플 시험은 기본적으로 외국어로서 영어 의사소통 능력을 측정하는 시험이다. 수험생이 모두 영어를 모국어로 하지 않는 상황이기 때문에 영어를 모국어로 하는 학생을 대상으로 하던 GRE시험 언어 영역에 비하면 그렇게 힘든 시험은 아니다. 또한 미국 대학교의 합격에 토플 시험 점수가 어느 정도 중요한지는 대학교와 전공에 따라 천차 만별이다. 다행히, 내가 지원한 Auburn 대학교 (미국 남부 알라바마주 소재 주립대학교)가 요구한 토플 성적은 그리 높지 않았다. 다행히, 나의 첫 TOEFL 시험성적은 입학 허가를 받는데 충분 했다. 그나마 영어 교사로서의 체면은 세운 셈이었다.

❚GRE 성적, TOEFL 성적, 학부 성적표 발송 요청은 클릭 몇 번으로 끝.

GRE 성적과 TOEFL 성적 제출 방식은 위조를 방지하기 위해 해당 시험 홈페이지에 가서 성적표 발송 서비스를 신청하는 식이다. 자신의 인적 사항을 기입 하고 성적표가 발송 되어야하는 미국 대학교 입학처 주소를 기입하면 그 공인시험 관리처에서 우편으로 성적표를 보내는 식이였다. 학부 시절 성적표도 내가 졸업한 대학교 해당 부서 홈페이지에서 신청할 수 있었다. 세상이 참 편리해 진 것이 내가 굳이 직접 대학교에 방문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졸업한 학교 홈페이지 해당 사이트에 나의 정보를 기입하고 성적증명서를 보낼 미국 대학교 주소만 기입한 후 수수료 결재만 하면 된다. 학생의 의뢰를 받고 기관 대 기관으로 서류를 주고 받는 식이다.


❚늦깎이 유학생의 남다른 고민: 교수님들 추천서 받기

이제 미국 대학교 입학을 위한 마지막 서류로 세 분의 추천서가 필요했다. 웬만하면 대학교 교수님들로부터 추천서를 받는 게 좋다. 그런데 졸업하고 거의 20년이 지난 세월이니, 그 사이 대부분의 교수님들은 퇴직하시거나 돌아가신 상황이었다. 늦깍이 유학생의 고민이 시작되었다. 돌아가신 교수님들을 살릴 수도 없고 추천서 3장씩이나 어디서 구한담?? 아주 난감했다.


❚어메리칸 스타일 추천서

지원하는 미국 대학교 홈페이지에 입학 원서 작성하는 곳이 있다. 그곳에 추천자의 이메일 주소를 기입 하면, 그 대학교 측에서 추천서를 써주기로 한 교수님께 이메일로 추천서를 요청한다. 나중에 미국 대학교에서 한국어 강사로 일하면서 몇몇 학부생들이 한국어 캠프참가나 기타 장학금 지원 및 영어 원어민 강사로 지원서를 한국으로 보낼 때, 나에게 추천서를 써달라한 경우가 참 많았다. 나는 아예 추천서 폴더를 하나 만들고 거기에서 학생들의 추천서를 써서 이메일로 온 링크에 업로드 시킨 기억이 많다.

특히, 기억이 나는 학생은 내가 미국 대학교 박사과정 중에 가르치던 한국어 수업 수강생 중 인도 출신 여학생이었다. 우주항공학과 석사 과정에 다니고 있던 그 여학생과 비록 나이는 거의 20년가량 났지만 나와 거의 친구처럼 친해지게 되었다. 나의 한국어 강의 수강생들은 대부분 어린 학부생이었지만 그 아가씨는 유일한 석사 과정의 성숙한 학생이었고 상당히 생각이 깊고 예의가 발랐다. 게다가, 같은 유학생 처지고 아시아인이라 이야기가 잘 통하던 친구였다.


한국에 대한 남다른 관심을 가진 그 친구는 석사 졸업을 앞두고 서울대학교 박사 과정에 지원할 거라 했다. 그래서 자신의 한국어 강사였던 나에게 추천서를 부탁해 온 적이 있었다. 그 친구는 카톡으로 나에게 추천서 부탁을 해왔다. 내가 추천서를 써주기로 하고 나니, 한두 시간 후 바로 나의 이메일로 서울대 입학처에서 추천서를 요청하는 이메일이 왔었다. 아마 요즘은 거의 대부분의 추천서가 이런 식으로 요청되고 수집되는 거 같다. 다행히 그 친구는 서울대 박사과정에 당당히 합격했다. 귀국해 온 지금, 이곳 한국에 다시 그 친구도 와있다. 참 신기한 인연이다.


❚Just Tweak It! 안 되면 살짝 비틀어서라도 되게 만들어!!

아무튼, 정식대로라면 이렇게 어메리칸 스타일로 해야 하지만, 나처럼 늦깍이 유학생에게는 적용할 수 없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할 수 없이, 그 당시 근무하던 중학교의 교장선생님한테 추천서를 부탁드렸다. 그런데 체육과 출신의 교장 선생님께 영어로 추천서를 써달라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어쩔 수 없이, 내가 영어로 나에 대한 추천서를 내가 쓰고 그 분의 서명을 받는 형식을 취했다. 그리고 그 추천서를 밀봉해서 우편으로 내가 지원하는 대학교에 보냈다.


❚유학파 교수님과 국내파 교수님의 대조적인 스타일

나머지 두 장은 20년 전 거의 신규 발령을 받은 교수님 두 분께 부탁드리기로 마음먹었다. 이제는 은퇴를 목전에 두신 분이지만 그 당시는 학과장을 맡고 계시는 등 학과의 중추 역할을 하시는 교수님들이셨다. 대학교 시절 나는 학과 활동에 거의 참여하지 않고 수업만 듣는 학생이었다. 물론 졸업 후 동창회 같은 것에도 한 번 간 적 없기에 그 교수님들을 졸업 이후 거의 뵌 적이 없었다. 하지만, 마땅한 대안이 없었기에 염치 불구하고 연락을 해보기로 했다.


교수님의 연구실로 전화를 먼저 해서 세월을 뛰어넘는 안부 말씀을 전하고 추천서를 부탁드렸다. 역시나 학부 시절에도 깐깐하기로 유명하신 유학파 교수님은 나에 대해 아는 바가 없으니 내 소개서를 이메일로 보내라고 하셨다. 나는 사실 이게 어메리칸 스타일인지 몰랐다. 그 교수님도 미국에서 박사를 하고 오신 분이었다. 나는 내심 ‘참 깐깐하게 구신다’라고 생각 했다. 한편, 다른 한 교수님은 순수 국내파 교수님으로 나보고 알아서 추천서를 쓰고 본인은 지금 해외여행 중이니 과 사무실에 가서 본인 도장을 찍으라고 했다. 유학파 교수님과는 너무 대조적이어서 다소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어찌 되었던 추천서는 형식상 필요한 부분이고 상황 상 다른 대안이 없기에 그렇게 해서 추천서 세 장을 무사히 미국 대학원에 보낼 수 있었다.


❚드디어 멀리 바다건너 날아온 나의 입학 허가서

다른 세세한 서류들을 챙겨 4월경에 모든 서류 제출을 완료했다. 그날 이후 이제나 저제나 오려나 나는 지원한 미국 대학교로부터 입학 허가서가 배달되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인내심이 거의 바닥이 날 때즘, 모든 서류를 제출한 지 거의 두 달 만에 드디어 도착했다. 퇴근길에 우리 집 우편함에 국제 우편물이 도착했다. 처음으로 받아 본 국제 메일에 난 마냥 신이 났다. 입학하려는 미국 주립대학교에서 보내온 우편이 왔다. 입학 허가서였다. 반가운 합격 통지 이메일과 입학허가서 (I-20)를 받았다. 미국 유학을 결심하고 입학허가서를 받는 데는 거의 6개월 정도의 시간이 걸린 거 같았다.

이제 나의 꿈이 현실로 드디어 나타나기 시작했다. 나의 마음은 이미 미국행 비행기 안에 있었다. 들뜬 마음을 겨우 차분히 가라앉히고 서류를 찬찬히 읽어 내려갔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발생했다. 내가 입학하기 지원한 학기는 2016년도 봄 학기였다. 그런데, 미국 대학 입학처에서는 내가 2015년 8월에 시작되는 가을 학기에 입학을 희망한다고 생각하고 가을 학기 입학 허가서를 보내왔다.

나는 미국 대학교 입학처에 이메일을 썼다. 영어로 이메일을 쓸 일은 내 생전 없었다. 이메일을 쓰면서도 나의 메시지가 그 담당자에게 정확히 가기나 할까? 그 많은 이메일 중에 나의 이메일이 씹힐 것 같기도 하고, 나는 불안한 마음이 엄습해 왔다. 하지만 달리 그 대학교에 연락할 길이 없었기에 크나큰 돌발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고작 이메일 밖에는 내가 손쓸 방법이 없었다.

❚ 이메일, 나의 유일한 S.O.S 수단

나는 일단 이메일을 한 번 보내보고 연락이 없으면 또 쓰리라 작정을 하고 글을 작성했다. 지난 번 GRE 논리적 글 쓰기 처럼 부부싸움 한다 생각하며 나의 주장을 펼쳐 나가는데 몰두했다. 나의 실수가 아니라 입학처 직원의 실수임을 분명하게 밝혔다. 그리고 새로운 입학 허가서를 요청했다. 아울러, 대학교측의 실수이니 당연히 서류 항공 운임료도 미국 대학교에서 지불해야 한다고 써서 보냈다. 영어로 이메일을 쓰는 것도 처음 하는 일이었지만, 사실, 이렇게 클레임을 거는 영어 이메일도 난생 처음 쓰는 거였다. 하지만, 나는 정의감에 불타올라 열심히 글을 썼다. 그 이후 몇 주를 기다리고 기다렸다. 난 아직 학비를 낸 게 아닌 상태라서 일이 꼬여서 설사 못 가게 되더라도 금전적 손해를 본 게 아니기에 그나마 차분하게 기다릴 수 있었다.


❚ 인종차별은 아닐지라도 인간 차별은 맞는 듯

마침내 내가 계획한 대로 봄 학기 입학 허가서가 국제 우편으로 다시 배달되었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뭐든지 느릿느릿 진행된다고 듣기는 들었지만, 이렇게 느릴 줄은 몰랐다. 그 당시 나의 입학 허가서를 담당한 직원은 제니퍼라는 흑인 여자였고, 나는 미국에 도착 후 얼마 안 되어서 신입생이 받아야 할 미국 출입국 기록서(I-94)를 받으러 해당 사무실에 갔다가 그 직원의 얼굴을 처음 보게 되었다.


역시나 첫 인연이 좋지 않아서 그런지 나에게 상당히 퉁명스러웠다. 입학 후 1년 후 즘 내가 그 대학교 ESL영어 강사로 일하게 될 때였다. ESL 담당 부장이 그 제니퍼라는 직원에게 나를 소개시켜준 적이 있었다. 첫 대면에서 그렇게 퉁명스럽게 대하던 그 여직원의 태도는 완전히 180도 달랐다. 이제 같은 부서 소속 직원이 된 나에게 그전과는 완전 다르게 웃으며 최대한 친절 모드로 나를 대했다.

이 일은 미국인의 인간성에 적응이 안 되었던 수많은 일화 중 하나에 불과하다. 관련 없는 사람일 때는 한없이 퉁명스럽고 불친절하다가 관련이 있는 순간부터 사람이 완전히 친절 모드로 바뀌는 그런 전략적인 인간관계라고나 할까? 물론 몇몇 예외는 있었지만, 내가 업무로 만난 미국 사람들은 대부분 그랬다.

❚근데, 휴직을 낼 수가 없네~. 이를 어째?

다시 이야기를 유학 가기 전 준비 시절로 돌려보자면, 그 당시 입학 허가서를 받고도 또 한 가지 더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었다. 현직 영어 교사가 유학 휴직을 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이건 그때나 지금이나 동일한 것 같다.

일단, 유학 휴직을 하기 위해서는 관련 학과의 석사나 박사과정을 지원해야 한다. 나는 영어 교사였고 내가 지원한 학과도 영어 교육학이었기에 내가 받아 둔 입학 허가서는 그 기준에 잘 부합했다. 두 번째로 교육청에 유학 휴직을 하기 위해서 토플이든 토익이든 교육청이 지정한 점수 이상을 획득해야 했다. 영어 전공 유학 휴직을 신청하기 위해서는 제출해야 할 토플 성적이 다른 과목 교사들 보다 좀 더 높다. 미국 대학교 입학 허가를 받기 위해 치른 나의 첫 토플 시험은 안타깝게도 그 기준 살짝 아래였다.

나는 20 만원 이상 드는 비용을 들여 토플 시험을 한 번 더 쳐 보기로 했다. 그런데, 두번째 친 시험의 성적도 처음 거나 별반 다르지 않았다. 난감했다. 아무리 영어 교사라 해도 중학교에 오래 근무를 한 상황이었고 아카데믹한 글을 거의 읽지 않은 세월 탓에 나의 토플 시험 성적은 단시간에 오르지 않았다. 마음이 급해졌다. 미국 대학교 입학 허가서까지 받은 마당에 다른 것도 아니고 영어 성적이 모자라 유학을 갈 수 없게 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이야기다. 나는 그런 이유 때문에 목전에서 나의 꿈이 홀연히 사라지게 하고 싶진 않았다. 이미 온 동네방네 미국 유학 간다고 소문은 소문대로 다 나있는 상황이라, 참 난감했다.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났다.


❚막다른 골목이다 싶어도 누구나 살아남을 수 있는 필살기는 있다.

교육청이 요구하는 영어공인시험 성적은 TOEFL이나 TOEIC 둘 중에 하나를 내면 된다. 토플이든 토익이든 어느 것이다 모두 치지 않은 지 20년 가량 된 상황이었다. 토플 시험은 미국 입학 허가서를 받기 위해 꼭 쳐야 하는 거라 토플을 쳤고, 한 번 쳐 본 시험이니 두 번째 치면 더 성적이 당연히 오르겠거니 하고 안이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는 쉽게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전략을 바꾸어서 TOEIC시험을 공격하기로 했다. TOEFL보다 TOEIC은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에 점수를 올릴 수 있고, 대학교 시절 자주 치던 시험이라 20년이 흐른 상황이지만, 왠지 모르게 잘 칠 거 같은 근거없는 자신감도 있었다.


거의 20년 만에 TOEIC 시험을 치러 간 날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따뜻한 봄날이었다. 평화로운 일요일 아침이었지만, 혼자 부산을 떨며 시험장으로 향했다. 아직 초등1학년이고 4학년인 두 아이들과 남편은 내가 시험을 치는 동안 그 시험장 근처에서 수녀님이신 큰고모를 만나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나는 혼자 홀가분하게 시험장에 들어가 앉아 마음을 가다듬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마음에 큰 평온이 생겼다. 그리고 듣기 시험을 치는데 모든 대사가 다 들렸다. 진짜 신기할 만큼 나는 시험을 잘 쳤다. 20년 전에 받은 성적까지 다 합해서 이제까지 받은 성적 중에 최고 성적을 받았다. 교육청 유학 휴직에 필요한 점수보다 훨씬 높게 나왔다. 천만다행이었다.


❚뭐지 그 느낌은? 누군가가 나를 돕고 있는 듯한 그 묘한 느낌

나는 지금도 그날 나의 그 평온한 마음 상태가 신기하다. 어느 시험 보다 조바심을 낼 뻔 한 시험인데도 그 날 나는 엄청 초연함을 경험했다. 나중에 들은 사실인데, 내가 시험을 치고 있을 시간에 남편과 두 아이 그리고 큰고모님은 근처 성당에서 조용히 나를 위해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고 했다. 그 당시, 크리스찬에 대한 강한 거부감이 있던 나로서는 그 기도가 나를 도왔다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날 내가 경험한 그 뭔가 모를 마음의 평화는 평생 잊지 못할 신기한 경험이었다. 누군가가 나를 많이 돕고 있는 듯 한 그 느낌을 나는 분명히 느꼈다. 그렇게 유학 준비의 또 다른 한 산을 넘었다. 난 기꺼이 다음 산을 바라 봤다. 평생 하고 싶었던 일을 하기 위해 걸어가던 그 날들이 나에겐 큰 행복이었다.

❚공든 탑이 무너질세라....

나의 유학 준비 마지막 단계는 미국 대사관에 가서 비자 승인을 받는 거였다. 비자 승인만 받게 되면 나는 교육청에 당당히 유학 휴직을 내고 가족을 모두 동반하고 미국으로 떠날 수 있게 되는 순간이었다. 물론 현직 영어 교사가 미국 유학을 간다는 것이 미국 대사관들 눈에는 별 달리 의심을 할 부분은 없다. 하지만 당시 지나치게 많은 한국 사람들이 해외로 나가는 추세라 비자 승인이 다소 까다롭게 될 거라는 소문이 있었다. 그래서 대사관에 비자 승인을 신청하기 직전에 약간의 비용을 내고 유학원에 잠시 조언을 얻었다. 여러 가지 예상 질문을 알려줬고 나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미리 생각해 두었다.


드디어 비자 인터뷰를 하러 남편과 기차를 타고 서울을 향했고 가는 길 내내 마음을 졸였다. 지금껏 쌓아온 나의 수고와 노력이 물거품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나 바로 앞에 인터뷰하던 30대의 한 남자는 거의 10분가량 대사관 직원과 실랑이를 벌였다. 그리고 결국 비자 승인 거절을 받고 실망을 하며 지나가는 걸 봤다. 드디어 나의 차례가 왔다. 내가 준비해 간 서류들을 직원에게 내밀었다. 나는 최대한 당당한 표정을 짓고 얼굴에 미소를 띄우려 애를 썼다.


나의 인터뷰는 불과 1분 정도 만에 끝이 났다. 현장에서 바로 잘 갔다 오라는 말과 함께 나에게 비자 승인 도장을 찍어주었다. 지금 생각하면, 영어 교사인 내가 영어를 더 공부하러 가는 나의 목적이 정당성이 있었던 거 같다. 그리고, 내가 공무원 신분이라 휴직을 내고 다녀오는 것이기 때문에 다시 돌아올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쉽게 승인을 받은 것 같다. 참 다행이었다. 남편과 두 아이를 모두 데리고 미국 유학을 떠나려는 결심을 한 지 거의 2년 만에 모든 준비가 끝이 났다. 그렇게 유학 준비의 마지막 산을 넘었다. 하지만 그건 서류 준비의 마지막 산일 뿐, 살던 집을 정리하고 이사 준비라는 물리적인 준비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그 많은 일들을 앞두고 있었지만 그래도 난 매일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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