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쓰고 또 쓰고
❚쓰기 센터(Writing Center)의 미션
내가 공부한 대학교 내에는 쓰기 센터가 네 군데 있었다. 교정이 다소 넓고 학생들의 수요가 많아 학생 서비스 차원에서 쓰기 센터를 적극적으로 운영하고 있었다. 얼핏 생각하면 쓰기 센터(Writing Center)는 영어가 서툰 외국 유학생들을 위한 곳인 듯 여겨진다. 하지만 그곳은 외국 유학생들의 쓰기 능력을 키우기 위해 있는 곳은 아니었다. 물론 찾아오는 학생 중 유학생들도 있었다. 하지만 현지 학생들을 그 쓰기 센터의 서비스를 많이 활용했다. 영어가 모국어인 그들에게도 영어로 글을 쓰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매주 수요일 아침에는 흩어져 일하던 쓰기 센터의 모든 라이터와 나와 같은 스케줄 관리자들이 모여 회의했다. 나에게 그 회의는 아주 흥미로운 자리였다. 글 교정에 대한 접근 방식과 운영 방향을 의논했다. 그리고 현지 학생이든 유학생이든 그들에게 좋은 글을 쓰는 능력을 길러주려면 어떻게 해줘야 할지에 대한 아이디어 공유도 활발히 이루어졌다. 영어로 글을 잘 쓴다는 건 비단 영어를 원어민처럼 말할 수 있는 것과 다르다. 학생들의 글에 대한 코칭은 단순 번역을 넘어서서 글의 구조와 짜임새 그리고 글의 전반적 흐름을 잘 잡아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늘 입을 모았다.
글을 교정본다는 것은 글의 줄별 표현의 정확성만을 보는 게 아니다. 그건 사실 빅데이터의 힘을 빌려 쉽게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Grammarly 라는 앱은 문장의 문법적 오류를 간단하게 잡아 준다. 진정으로 교정을 보려면 글의 전반적 구조와 흐름을 볼 줄 알아야 한다. 결국 영어 원어민이면 영어 글을 잘 쓴다는 나의 선입견이나, 영어 원어민이어야 남이 쓴 영어 글을 교정볼 자격이 된다는 내 생각은 정확히 잘못된 것이었다. 나의 잘못된 선입견과 두려움 때문에 Writer 자리에 지원조차 하지 않았다. 회의에 참석하면서 그 사실을 깨닫고 좀 더 시급이 높은 Writer로 지원할 걸 하며 살짝 후회되긴 했다.
❚미국 대학교에서 키우는 핵심 역량
영어로 글을 잘 쓴다는 것은 영어 원어민이든 영어 학습자이든 누구에게도 쉽게 여겨지는 스킬이 아니다. 미국의 교육대학원 수업은 주제에 대한 리서치를 한 후 정리 및 요약해서 발표하기, 온라인 그룹 토론방 참여하기, 그룹프로젝트 수행하기, 온라인 시험, 개인 과제 제출등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관통하는 스킬이 하나 있다. 바로 생각을 글이나 영상 매체로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능력이다. 이를 멀티 리터러시라고 부르기도 하고 이것의 근간은 쓰기 능력이다. 그래서 미국 대학교는 대학교 도서관에 쓰기 센터를 따로 운영하고 있다. 외국 유학생들의 단순 언어적 기능을 위한 게 아니라 현지 학생들이든 유학생이든, 효과적 글쓰기 능력을 기르는 게 주목적이다.
❚한국 교육에선 방치되고 있는 역량
석사 과정 두 번째 학기에 수강한 과목 중에는 교육심리학이 있었다. 그 교수님은 ‘요약하기’를 세상 중요하게 생각하셨다. 숙제는 매 챕터를 한 쪽 분량으로 요약해오는 것이 과제였다. 매 챕터를 그렇게 읽고 압축해서 요약 글을 썼다. 그리고 수업 중에 그걸 근거로 토론을 했다. 그런 수업은 그 이후 박사과정에서도 계속 진행되었다. 읽고 쓰고 발표하고 토론하고 기록하고 이런 일련의 훈련은 4년 반 동안 끊임이 없었다. 마지막 박사 논문까지 생각하면 그간 영어 작문의 양은 어마어마하다. 한국에서 나름 모범생으로 공부한 사람이고, 영어 교사였지만, 정작 나는 영어로 글을 쓰는 시험이나 과제를 별로 해본 적이 없었다. 미국으로 유학 오기 전 까지 나의 진로에서 영어로 작문하는 능력이 거의 요구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영어로 작문을 하는 것은 언제나 두려운 과제였다. 한국 교육에서 키우지 않는 그러나 미국 대학원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No. 1 Skill이 바로 글쓰기 능력이다.
❚영어 원어민이 아닌 영어 학습자의 쓰기 실력 키우기
5년간의 대학원 과정 동안 끊임없이 무언가를 계속 쓰고 또 썼다. 요즘 한창 활용되고 있는 오픈 AI는 없던 시절이라 원어민이 아닌 영어 학습자로서 최대한 온라인의 도움 사이트를 최대한 활용해서 원어민의 영어 문장에 대한 직관을 보충했다. 단순 문법은 Grammarly 앱을 통해 도움을 받았다. 그 당시 약간의 연회비를 내고 Grammarly 프리미엄 서비스를 받았다. 프리미엄 회원에게는 단순 문법을 넘어서 좀 더 나은 영어 표현까지도 도움을 얻을 수 있기에 그 앱을 많이 활용했다. 그리고 언제나 온라인 영영사전과 온라인 Corpus (영어 예문 리스트), 동의어 사전(thesaurus.com)은 즐겨찾기로 해두었다.
❚글쓰기의 기본이 되는 습관: 먼저 지도를 그리기
대학원의 다양한 과제를 계속해 가면서 확실히 자리 잡은 영어 글쓰기에 관한 습관이 하나 있다. 바로 첫 단락 첫 줄을 쓰기 전에 글의 흐름과 글의 구성을 먼저 곰곰이 고민하는 습관이 생겼다. 쓰기의 성패는 우리의 생각을 정리하고 잘 짜임새를 구성하는 일에 달려있다. 이는 마치 낯선 곳을 가기 전에 우리가 구글 맵이든 카카오 맵이든 지도로 먼저 가는 경로를 파악하고 길을 나서야 하는 것과 같다.
우리가 이전에 가보지 않은 유명한 음식점에 간다고 생각해보자. 누구도 그 식당 위치를 지도로 검색도 안 해보고 대뜸 아무 버스나 타고 일단 출발부터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길을 나서기 전에 우리는 출발지와 도착지를 선택한다. 그리고 그 중간 경유하는 길을 먼저 확인 한다. 그런 후 길을 나선다. 그래야 우리는 헤매지 않고 도착지에 정확히 갈 수 있다. 글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나의 출발지(Topic)에서 나의 도착지(전하고자 하는 Message) 사이의 전개 과정(도착지에 가는 방법)을 먼저 그려놓고 글을 써 내려가야 한다. 정말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우리는 영어로 작문할 때, 미리 글의 짜임을 설계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중요함을 자주 간과 한다. 그저 우리말의 단어들이 영어로 무엇인지 문장의 문법적 오류에만 지나치게 에너지를 쓰고 있다.
❚ 우리나라 영어 교육에 대한 희망 사항
우리나라 영어 교육을 성실히 받은 사람일수록 위와 같은 현상은 더욱 두드러진다.
우리의 학창 시절 우리가 치른 시험에는 아래와 둘 중 어떤 질문이 더 자주 등장했을까?
1). 다음 문장 중 문법적으로 틀린 문장의 개수는?
2). 윗글의 내용을 생각하면서 아래 주어진 질문에 영어로 답하시오.
단연 1번 문제가 전국 모든 중 고등학교 영어 정기 고사에는 주로 등장한다. 동료 교사의 교육 철학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기에 나 또한 그런 시험의 출제위원으로 이름이 올라간다. 그럴 때마다 나는 참 마음이 무거워진다. 객관성의 미명 아래 엉뚱한 기능을 측정하는 우리의 영어 시험은 측정해야 할 기능을 제대로 측정하지 않고 엉뚱한 능력을 측정하고 있을지 모른다. 우리는 언제 영어 사용 능력을 평가하는 그런 타당한 평가를 할 수 있게 될지 염려스럽다. 한국의 영어 교육도 언제 생각의 표현이 중요하게 되는 날이 올지, 참으로 요원해 보인다. 그런 날이 올 수는 있을까? 수능 영어는 이제 문해력을 측정한다는 명분을 가지고는 있지만, 이미 그 시험이 측정하는 능력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논리정연하게 펼치는 역량을 키우는 데는 한계가 있다.
미국 유학을 하면서 비로소 관심을 가지게 된 영어 글쓰기는 나의 영어 공부 및 영어 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꾸었다. 영어든 우리 말로든 생각을 글이나 영상 매체로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힘은 이제 어느 시대보다 중요해지기 시작한 듯하다. 우리의 영어 교육도 그런 시대의 흐름에 맞게 영어 학습자들을 키울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