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앞에 서는 걸 즐기는 사람은 극소수이다. 대부분은 남 앞에 서는 것을 두려워한다. 여러 사람에게 뭔가를 말해야 하는 상황이면 그게 간단한 자기소개라 하더라도 저절로 긴장되기 마련이다. 말하기를 좋아할 것 같은 미국 사람들도 실상은 마찬가지였다. 미국 대학원 수업은 주로 조별 발표 수업으로 이루어지곤 했다. 미국인 학생이라도 발표 내내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겨우 말을 이어가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수업 중 프리젠테이션은 성적과 직결되는 것이니 무대 울렁증이 있다 해도 어쨌든 해내야 한다. 하지만 그룹별 토의 같은 경우,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하면 되는 상황임에도 미국 학생들 대다수는 한 번이라도 꼭 자신의 의견 말한다. 내성적인 성격의 사람이라도 떨리는 목소리나 수줍어하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자신의 의견을 말한다.
❚말하지 않아도 아는 한국
무대 울렁증은 미국인이든 한국인이든 누구에게든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미국과 한국은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것에 대한 문화적 인식 차이가 분명히 있다. 5년의 미국 생활을 하면서 그 차이는 비단 공식적이고 거창한 프리젠테이션의 경우 뿐 아니라 일상의 생활 속에서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남 앞에서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사람을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 자기중심적인 사람, 자기 주장이 강한 사람 등으로 다소 부정적인 인상을 줄 수도 있다. 그런 이유를 핑계로 우리는 남 앞에서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걸 가급적 자제하고 피하려 하는 경향도 있다. 설령 자신의 의견을 남 앞에서 말하는 것이 두려워서 회피한 상황이라 하더라도 오히려 과묵한 사람, 차분한 사람, 경청을 잘하는 사람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남 앞에서 자신의 의견을 내는 것이 잘해야 본전이라 할 만큼 리스크가 크다. 그런 이유로 사람들은 웬만해서는 남 앞에서 굳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지 않는다. 아이들의 학년이 올라갈수록 점점 “저요 저요”하며 손을 드는 아이를 발견하기가 어려워지는 것도 이 때문이라는 생각을 한다.
오랜 교직 생활의 경험을 보더라도 중1에 만난 아이가 그 발표력을 그대로 중3이 될 때까지 유지하는 일은 거의 본 적이 없다. 대부분 중1 학생은 자신의 경험이나 의견을 남에게 말하고 싶어 한다. 중1 교실의 수업 분위기는 정말 통통 튄다. 그런 아이들이 불과 1~2년 만에 정반대로 돌변한다. 교사의 질문에 세상 무기력하고 관조적인 태도로 무반응으로 일관하기 일쑤이다. 코로나 시대를 겪고 난 이후 그 증상은 더욱 악화되었다. 아이들의 사회화 그것도 우리나라에서의 사회화는 그렇게 아이들의 말문을 막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듯 하다. 다소 지나친 일반화로 들릴지도 모른다. 물론 여전히 자신의 의견을 또렷하고 예의 바르게 발표하는 학생들도 간혹 있다. 하지만 그런 아이들은 정말이지 아주 간혹 만나게 될 뿐이다.
❚말하지 않으면 모르는 미국
5년간 내가 겪은 미국은 사뭇 달랐다. 미국 사람들은 의견을 내지 않는 사람을 우리나라처럼 마냥 좋게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았다. 그런 사람들을 오히려 생각이 없는 사람, 생각하지 않는 사람, 무관심한 사람으로 인식되는 경향도 있다. 둘러앉아 토론할 때, 앞서 말한 사람의 의견에 동의의 표현으로 우리는 그저 다른 의견을 말하지 않는 것으로 ‘무언의 동의’를 하는 편이다. 하지만 그들은 ‘무언의 동의’가 아니라 동의하는 이유에 대한 자신의 동의 의사를 분명히 밝히는 소위 ‘유언의 동의’를 하는 편이었다. ‘자신의 목소리가 들리게 하라 (Have your voices heard)’는 미국에서 지내던 시절 출퇴근 길에 듣던 영어 뉴스에서도 대학원 수업 시간 중 아주 많이 듣던 영어 표현이다. 자신의 의견을 자신의 목소리를 내어 상대가 귀 기울여 듣게 하라는 뜻이다. 다양한 문화에서 온 이민자들로 이루어진 나라인 만큼 미국 사람들은 어릴 적부터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교육에 가치를 두고 있었다.
❚알지 못해도 말하는 미국 아이
우리 아이가 다니던 초등학교에 수업 참관을 하러 간 적이 있었다. 선생님의 질문에 다들 누가 먼저 손을 드나 내기라도 하듯 손을 번쩍번쩍 들었다. 대부분 아이들은 비록 오답이라 하더라도 자신감 넘치게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말했다. 심지어 그 아이들은 다른 친구가 발표하고 있는 중에도 손을 그대로 들고 그 친구의 발표를 듣고 있기까지 했다. 보통 우리나라의 경우는 손을 들었더라도 다른 친구가 발표할 때는 손을 잠시 내렸다가 다음 질문이나 차례가 올 때 다시 손을 드는 게 예의라 가르친다. 그러나 미국 문화에서는 그렇게 손을 들고 있는 게 무례함으로 비치지는 않는 모양이다. 그렇게 손을 들고 있는 모습은 비단 초등학교 교실에서만 목격한 게 아니다. 대학원 수업 중에도 그렇게 손을 몇 분이고 들고 있는 미국 현지 대학원생을 보고 있노라면 문화가 참 상대적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곤 했다.
❚알아도 말하지 않는 한국 아이
우리 두 아이는 우리나라와 미국의 상반된 학교 수업 분위기에 그럭저럭 적응은 한 것 같았다. 하지만 여러 차례 참관 수업을 갔지만 우리 두 아이들은 절대 자발적으로 손을 들고 의견을 말하는 모습을 보진 못했다. 우리 두 아이가 다니던 사립 학교에서 우리 아이들이 거의 유일한 외국인인 상황이라 영어로 발표하는 게 두려웠을 수도 있고 여겼다. 하지만 그건 나의 착각이라는 걸 한국어 캠프를 하며 알게 되었다. 여름 방학을 이용해서 미국국가 보안국 (NSA)의 후원으로 운영되는 한국어 캠프에서 전임 한국어 강사로 일한 적이 있었다. 한국어에 능숙한 우리 두 아이지만 현지 친구들에게 우리말을 가르칠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경험은 없을 것 같아 우리 두 아이를 나의 조교로 일을 시킨 적이 있었다. 물론 캠프 관계자들도 너무 반가워하며 흔쾌히 허락을 해주었다. 3주간 이어지는 한국어 캠프에 매일 같이 우리 두 아이는 나와 함께 출근했다. 대부분 신청한 학생들은 현지 초등생이나 중학생이었다. 당연히 우리 아이들이 참가한 학생 중 우리 말을 제일 잘했다.
그럼에도 우리 두 아이는 그 한국어 캠프 내내 발표하는 걸 본 적이 없었다. 미국 현지 아이들은 비록 한국어는 이제 처음 배우는 상황이지만 매사에 자신감만은 엄청났다. 우리 아이들은 남 앞에서 말하는 것보다 짝에게 차근차근 영어로 설명을 잘해주었다. 당시에 딱지 접는 걸 한 적이 있었는데, 아들이 영어로 친구들에게 접는 방법을 잘 설명해주었다. 나보다 훨씬 더 영어로 설명을 잘하길래 내심 놀란 적도 있었다. 특히 게임 룰을 영어로 설명하는 일은 쉽게 여겨지진 않았다. 아들은 그런 포인트마다 나를 돕는 영어 조교로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다. 한국어 캠프에서 우리 두 아이의 태도를 보며 우리 아이의 발표 회피증은 영어가 서툴러서라기보다 남 앞에서 말하는 것 자체에 대한 두려움이나 회피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런 상반된 모습들을 보며 ‘역시 우리 아이들은 한국인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Self control’ 상 3년 연속 수상자인 우리 아들
우리 두 아이는 5년의 미국 생활 중 3년 반을 교회 소속 학교에 다녔다. 그 학교는 공립학교와는 달리 해마다 학년말에 각 아이의 인성 덕목 중에 남에게 칭찬받을 만한 것을 선정해서 각 학생에게 상을 하나씩 시상 해주었다. 성경에 근간해서 인성 덕목이 이름 지어 졌다. 우리 아들은 다양한 인성 덕목 중에 ‘Self-Control Award (자기 통제 덕목상)’을 3년 연속 받았다. 알아도 말하지 않고 차분함을 유지한 아들의 학교생활 덕분에 다른 미국 학생들은 감히 근접할 수도 없이 그 상은 단연 우리 아들의 몫이었다. 확연히 다른 두 나라의 인재상 덕분에 해마다 그 상은 당연히 아들 것이 되었다. 주위 현지 미국 엄마들은 나에게 어쩌면 아들이 그렇게 예의 바르고 차분하며 경청의 태도를 갖추었냐고 질문을 자주 했었다.
정작 우리 부부는 아들이 해마다 그 상을 받는 게 너무 안타깝게 여겨질 정도였다. 한국에서는 그렇게 조용하게 있는 게 미덕일 수 있다. 물론 미국 학교에서도 미덕으로 여겨지니 상을 받게 된 거긴 하다. 하지만 사회 전체의 분위기가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도록 교육 시키는 상황에서 아들의 반복되는 자기 통제 덕목 상 수상은 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정말이지 마지막 졸업하던 해마저도 그 상을 받기에 급기야 화가 나기도 했다. 왜 선생님들은 우리 아이에게 다른 더 좋은 점은 발견하지 못하고 그저 조용하게 있다고 그런 상까지 주며 아이의 성향을 고착화 시키시는 건지 다소 못마땅하게 여겨지기도 했다.
❚나도 아이들도 또 다른 자신을 만들어 가는 중
우리 아이들의 그 차분함은 현지 아이들이 다다를 수 없는 정도의 경지였을 지도 모른다. 해마다 다른 담임 선생님들이지만 모두가 한눈에 알아볼 정도였으니 말이다. 비록 미국 아이들처럼 자신 있게 발표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지만 우리 아이들을 하루아침에 미국 아이들처럼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견이나 생각을 피력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었다. 이미 한국 문화에서 많은 인성의 틀의 체계가 잡혀 온 우리 아이들을 내가 하고 싶다고 바꿀 수는 없었다. 하지만 우리 두 아이는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아이들의 학교생활을 매 순간 지켜볼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방과 후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모습에서 아이의 변화를 조금씩 눈치챌 수 있었다. 나 역시 미국대학원 수업을 들으며 나의 의견을 피력하는 노력을 많이 한 편이었다. 한국에서 하던 내 행동 양식과는 상당히 달랐기에 그런 나의 새로운 모습에 가끔은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