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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y Soon Feb 09. 2024

#39. 영어 스터디 스무번째 모임 후기

: We don't meet people by accident.

❚모임을 당분간 쉬어야 겠다구요?

스터디 모임이 1년을 넘어가며 기존의 멤버들에게 이런 저런 상황이 발생하여 모임을 당분간 쉬어야 겠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그런 소식을 듣고서야 모임 홍보를 적극적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는 건 참 힘들다. 모임을 처음 시작하던 작년 이맘때 그랬다. 이제 유에서 더 확장하면 되는 거다. 그렇게 생각하며 모임 홍보에 다소 적극성을 발휘해 보기로 했다.      


❚남의 걸음 쫓기

새로운 해가 시작된 지 어느덧 한 달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연초에는 학교 방학 중 영어 프로그램에 몰입하느라 영어 스터디 홍보를 거의 못했다. 1월 중순이 되어서야 겨우 당근 앱의 동네 생활 코너를 둘러봤다. 작년에는 모임 만들기가 참 까다로웠는데 이제는 모임 만들기 기능이 더 쉬워진 것 같았다. 이미 많은 영어 스터디 모임이 조회되고 있었다. 그 중 유난히 멤버가 많은 모임을 훑어보니 역시나 영어 프리 토킹 모임이었다. 아무리 온라인 세상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지만 그런 온라인 모임은 직접 만나 이야기하는 것 만하지 않은 모양이다.      


매일 새로운 플랫폼이 만들어지고 기존의 플랫폼도 다양한 기능을 추가하는 상황이다보니 뭐 하나를 시작해도 바로 자신있게 척척 해낼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나의 생존법은 잘 나가는 모임을 벤치마킹해서 하나하나 내 것으로 변형해서 만들어 내는 식이다. 처음 블로그를 할 때도, 네이버 카페 운영을 시작할 때도 브런치 작가 활동도 모두 그랬다. 세상에는 늘 앞선 자가 있다. 다들 언제 그렇게 부지런히 새로운 영역을 잘 개척했을까 싶다.      


‘내가 걸어온 내 발걸음이 남에게도 그렇게 보이려나?’ 혼자 생각해 본다. 하지만 내가 걸어온 걸음은 별거 아닌 듯 늘 나 자신을 홀대하기 마련이다. 특히 마흔을 훌쩍 넘어 버린 요즘 더 그렇다. ‘내가 산 삶은 그저 남이 먼저 간 길을 열심히 그저 쫓아간 것에 불과하진 않을까?’라는 생각까지 든다. 비록 남의 걸음을 쫓아 왔다 한들 그 속에서 나의 정체성을 담은 나만의 무언가를 만들어 가고 싶기에 이렇게 조금씩 뻘짓을 하고 있다.       


❚오히려 좋아. 

당근앱의 모임 만들기 기능 덕분에 이번 모임에는 기존 멤버보다 새로운 멤버가 오히려 훨씬 더 많이 오셨다. 약간은 서운했지만 어쩌겠는가? 이건 학교 수업도 아니고 수업료를 내며 듣는 학원 수업도 아니고 다들 저마다의 상황이 있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기존 멤버가 소수고 새로운 분이 다수인 것이 오히려 좋은 부분도 있었다. 다들 처음이라 스터디 모임에 대한 개괄적 설명과 스터디지기로서 나를 소개할 시간도 가질 수 있었다. 간혹 검증되지 않은 사람들의 모임에 대한 불안함이 있을 수 있기에 일부러 나에 대한 소개도 넣었다. 그리고 연달아 각자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다.      


기왕에 하는 거, 영어로 스터디를 진행했다. 갑자기 영어로 진행했지만 그래도 다들 자신들이 하실 수 있는 만큼 영어로 말씀하시고 부족한 건 우리말로 하시며 그럭저럭 도전 정신을 발휘하셨다. 직업상 나는 늘 영어를 끼고 산다. 영어로 말하는 것에 대한 별다른 부담은 없다. 그래서 그분들이 느낄 부담감은 나의 상상 이상일 듯하다. 하지만 비록 다른 분야에서 일하시는 분들이고 한동안 영어 근처에도 가지 않으셨겠지만 다들 쓰지 않던 영어 단어를 먼 기억 속에서 되내이시느라 열심이셨다.      


❚끊임없이 나와 이야기하기

새로이 오신 분들에게 영어 공부는 미래에 대한 꿈과 연결되어 있었다. 대부분 자녀들을 어느 정도 키우신 분들이었고 이제야 자신을 되돌아보며 자기를 위한 시간을 갖고자 했다. 유일하게 참석하신 한 30대 남자분은 새로운 일을 위해 영어를 배우고 싶다고 했다. 가장 연장자이신 60대 여성분은 이제 남은 시간들을 무언가를 배우며 의미있게 쓰고 싶다고 하셨다.      


내가 애초에 이런 스터디 모임을 만들고 싶은 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자신에 대한 정체성을 건강하게 만들어가기 위한 어른들의 모임이다. 과거의 나, 현재의 나, 그리고 미래의 나는 각각 해야 할 일들이 달랐다. 하지만 그 과업들을 해내오면서 또는 해가기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나를 더 정성스레 가꾸어야 한다. 그 밑바탕에는 새로운 배움이 있어야 가능하다.      


마흔에 세상 사람들이 쉽게 도전하지 않는 미국 유학길을 떠난 내가 그랬듯이, 그들도 무언가를 도전하고 싶어진 분들이시다. 도전하는 사람 근처에는 늘 희망이 있다. 난 그런 사람들을 곁에 두고 싶다. 나의 이 모임은 할 일이 없는 사람들의 소일거리로 취부 될 수 있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나에게 이 스터디 모임은 소신, 우직함 이라는 진지함이 담뿍 담겨있다. 가볍게 만나는 모임이고 늘 항상 곁에 있는 모임이라 여겨질지 모른다.      

모임을 운영하는 나에게는 결코 가벼운 모임도 아니고 늘 계속 유지될 거라 당연시 여겨지는 모임은 더더욱 아니다. 매 모임을 준비하면서 계속 해야하나 말아야 하는 고민을 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몇 년은 스터디를 운영하는 방식과 스터디를 홍보하는 방법, 나의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방법 등 스터디 운영을 통해 실험과 배움을 이어나가고 싶다.      


나의 배움, 나의 역량, 나의 비전, 나의 삶이 나와 남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그리고 

과연 내가 즐기며 기꺼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지 발견하는 게 이 프로젝트의 목표이다. 앞으로 3년, 5년, 10년 세월이 흘러 그 목표가 달성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새롭게 시작해 볼 용기

졸업식과 입학식이 동시에 있는 봄이다. 우리 스터디 모임에는 딱히 졸업도 입학도 없다. 하지만 이번 달 들어 각자 상황이 여의치 않아 졸업을 알려오시는 분도 계시고 똑똑 문을 두드리며 입학을 지원하시는 분도 계신다. 크든 작든 헤어짐은 늘 쉽지 않다. 하지만 새로운 만남의 설레임이 그 작은 그늘을 덮어 주기에 다시 이 봄을 새롭게 시작해 볼 용기를 내어 본다.      


오늘 아침에 새로운 멤버가 채팅창으로 인사를 반갑게 건네 오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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