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ey Soon Feb 18. 2024

#32. 농구에 진심인 아들 키우기 4.

: 1년 반의 기다림 끝에

❚불평만 하지 말기

불평하지 않고 지낸다는 건 참 힘든 일이다. 어쩌면 매일 불평으로 시작해서 불평으로 끝낸다고 할 만큼 일상의 불편함과 불합리함에 대한 예민도는 참 발달되어 있다. 하지만 대부분 우리는 그저 불평으로 끝낼 뿐 그 불편함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할 마음까지는 먹지 않는 편이다. 나 역시 그러하다. 직장이든 가정이든 불평하고 체념하고 불평하고 체념하고 그게 일상이다.      


하지만 왠지 이번 건은 그렇게 불평하고 체념하기에는 기성세대의 책임이 크기에 뭔가 액션을 취해 보리라 생각했다. 사건의 시작은 농구에 진심이 아들이 시에서 운영하는 실내체육관을 대관하는 과정에서 일어났다. 일정 수의 사람이 되지 않으면 모든 대관 경비를 다 지불하여 예약한 실내 체육관이라도 사용할 수 없다는 규정아닌 규정이 화근이었다.      


시에서 건립한 멋진 실내 농구코트를 근처에 두고도 사용할 수 없도록 만든 규정과 철마다 다른 꽃들을 심었다가 며칠 후 또 갈아엎고 새로운 꽃을 심는 강변 공원을 바라보며 그 많은 혈세가 저렇게 허투루 사용된다는 생각에 그저 체념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한창 불합리함을 찾아내는 것에 예민한 사춘기 아들에게 그런 현 상황은 그야말로 말이 되지 않게 느껴졌을 것이다.      


부모의 삶의 방식은 아이들에게 매순간 목격되어 장기 기억을 너머 어쩌면 무의식의 세계로 까지 깊숙이 기록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나와 남편은 이 상황을 그저 체념하는 부모로 아들에게 보여지고 싶지 않았는 지도 모른다.   일단은 무모해 보이고 아무 해답을 얻지 못할 지라도 국민 신문고에 청소년 스포츠 활동에 시설적 지원을 요청해보기로 했다.      


다행히 답변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들었다. 하지만 아래와 같이 아무것도 바꾸어 줄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Get Your Voice Heard. (목소리가 들리게 하라. 너의 의견이 개진될 수 있도록 하라)

석연찮은 답변을 듣고 그선에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내친김에 이번에는 바로 시의원에게 장문의 이메일을 보내보기로 했다.      


22.08.03.

<1차 이메일> 전** 의원님께,

안녕하십니까, 의원님.

더운 날씨에 의정활동에 고생이 많으십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00시 시민이자 10대 청소년의 엄마로서 한 가지 건의드릴 사항이 있어서 이렇게 메일을 보냅니다.      


**시 *천 강변 둔치 공원 내 하프코트 농구장 설치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현재 상황의 문제점/ 개선방안 /기대효과 를 아래와 같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현황 및 문제점*      

**시 *천 둔치 내 공원 체육시설은 대부분 어르신들을 위한 것입니다.     

10대 청소년을 위한 운동 시설은 우리 동네에 전혀 없습니다.

특히 쉽게 할 수 있는 스포츠 중에 하나 인 농구 (길거리 농구)와 같은 것을 할 만한 장소가 없습니다. 학교는 코로나 때문에 사용 시간을 제한하며 접근도 쉽지 않습니다. 이곳은 인근 아파트 단지 사람들에게 아주 접근성이 좋은 장소인데, 나이가 많은 어르신들이 주로 쓰는 용도로만 시설이 이용됩니다. **동에는 초중고학생들이 참 많이 살고 있는 동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외 농구장 하나 변변한 것이 없습니다.     


*개선방안*

**시 *천 둔치 내 특히 **동 근처 (10대 청소년들의 주요 생활지)에 10대 청소년들 쉽게 이용할 수 있는 하프코트 농구장 설치를 제안합니다.     


*기대효과*     

10대 청소년들이 갈 곳이 없어 길거리를 배회하거나 PC방 같은 곳에서 밖에 어울릴 수 없는 상황이지만, 위와 같은 운동 시설(반코트 농구장)을 접근용이한 장소에 설치해주시면 **시 청소년들이 서로 건강하고 건전한 어울림 문화 조성이 가능합니다.     

아무쪼록, 10대 청소년들이 우리나라의 기둥으로 건강하게 커나갈 수 있도록 **시가 관심을 가지고 적극 후원해주시고 보살펴 주셨으면 합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

더운 날씨에 건강유의하시기 바랍니다.      

- 운동을 사랑하지만 마땅히 할 장소가 없어 집 안에서 공놀이를 간졸이며 하는 남자 중학생 엄마 올림-


❚역시나 그저그런 답장

이메일을 보낸 지 3일 만에 시의원으로부터 아래와 같은 답장을 받았다.  


<답장> 22.08.06     

안녕하십니까.

시의원 전**입니다.

좋은 의견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가 적극 추진해 보겠습니다.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무더운 날씨 건강조심하세요.

감사합니다.


우리 청소년들을 대신해 목소리를 내보았지만 그냥 허공에 대고 소리 한번 지르고 만 셈이다. 아무런 수확도 없이 그렇게 야외 길거리 농구 코트를 세워달라는 우리의 요구가 흐지브지 될 것 같았다.


❚제대로 의견을 개진해보기로

하지만 기왕 시의원의 이메일 답장도 받은 상황이니 마지막으로 의정을 맡고 계시는 그 분한테 제대로 팩트를 알리고 청원을 해보기로 했다.      


<2차 이메일> 22.08.06

안녕하십니까, 전** 의원님,     

지난 번 이메일 내용과 관련하여 하나 만 더 말씀드릴 게 있어서 이렇게 추가 이메일을 보냅니다.     

**시 *천 강변 둔치 공원 내 하프코트 농구장과 관련하여 **시청에도 제안의 글을 올린 한 바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제 **시 복지 문화국 체육진흥과 강**으로 부터 답변이 오기를 *천 둔지내 시민들이 농구공 소리로 인한 민원이 발생할 우려가 있어서 저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더라구요.     

하지만, 저로서는 청소년의 스포츠 활동권을 보장하는 다른 대안을 없이 그저 안 된다고 하는 대답을 들으니 더 답답하기만 합니다.     


이와 관련된 저의 제안     

* 현황 및 문제*

1. **동 일대에 청소년들이 부담없이 접근가능한 체육활동 시설이 없음.     

2. 기존 세대들의 무책임한 방치 속에 청소년들은 온라인 게임으로 병들어 가고 있음.

: *천 둔치 내 거주민들의 소음에 대한 민원만 민원입니까?

조용히 온라인 게임의 세계로 빠져드는 우리 청소년들의 아픔은 아무도 소리내어 울지 않으면 안들리는 것인가요?

온라인 게임 말고 뭐를 더 할 수 있는 지 답도 내놓지 않고 그저 게임 그만하라고만 하기엔 참 답답한 현실입니다.

한명 한명의 아이가 귀한 인구 절벽 시대에 우리의 청소년들을 건강하게 키우려는 사회적 책임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3. ** 생활 체육관 있으나 마나한 시설

: 실내 농구 코트 장은 2시간 30분 통으로만 대여 해야하고 & 그것도 5만원씩이나 내야 함 & 3달치를 한꺼번에 결제해야함 & 날짜가 겹치면 직접가서 추첨씩이나 해야함     

요즘처럼 바쁜 현대인, 그것도 청소년들이 과연 몇 명이나 위의 조건들을 다 맞춰가며 그 체육관을 빌려낼 수 있을까요?

이건 그저 전시 행정일 뿐입니다.     

4. **시민체육관

: 여기 역시 멤버십이 아니라 코트 전체를 통으로 대관하는 식이라 개개인의 청소년들이 활용하기에는 참 진입장벽이 높습니다. 농구 동호회와 같은 어른들이면 모를까, 공부하다 마음 편히 농구 연습하러 혼자 가고싶은 청소년들은 도저히 못 들어오게 진입장벽이 아주 아주 높습니다.     


* 해결방 안에 대한 제안 *

1. 멤버쉽제 운영

: 미국의 YMCA와 같은 청소년 운동 시설은 멤버쉽제 입니다. 연간 이용권을 발행하면 연중 아무때나 본인이 시간이 될 때 입장헤서 농구 및 헬스장등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좋은 체육시설을 잘 세워놓고 쉽게 활용하지 못하게 진입장벽을 그렇게 높게 쳐둔 상황에 저는 참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시설 아껴 아껴 거의 찾지 않는 멋진 체육시설은 누구도 원치 않습니다.

저는 현재 **실내체육관이든 **시민 체육관이든 멤버십제 운영을 강력히 제안합니다.     

2. 부적절한 행위의 청소년들에게 페널티 및 입장 제한 벌칙

: 혹시나 미성년자들인 청소년들이 시설을 함부로 사용하는 것에 대한 우려가 있어서 현재와 같은 진입장벽을 치신 거라면 그런 행위의 청소년들에게 페널티( 입장 제한 기간을 두는 방식)을 주는 것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기대효과*

1. 기존의 멋진 시설 활용도를 엄청 높일 수 있다.

2. 보다 많은 청소년들의 건전한 스포츠 활동의 공간에 대한 진입장벽을 낮추어 온라인 게임말고 다른 놀이 문화 육성

3. 청소년 온라인 게임으로 인한 사회적 우려 해소     

아무쪼록 좀 더 적극적으로 우리 청소년들의 스포츠 활동권이 보장 될 수 있는 경산시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더운 날씨 건강 조심하세요.     


❚1년 반의 기다림 끝에 좋은 소식

야외 농구 코트에 대한 사건은 거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하지만 오늘 아침 교회 예배를 드리고 있는 데 띵하며 이메일이 하나 왔다.      


<2차 이메일 답장> 2024. 02.18


안녕하세요.

시의원 전**입니다.

지난번 민원 요청한 *천변 하프농구장 설치요청민원을 조만간 공사 할려고 합니다.

그리고 **동 앞 *천변에 맨발걷기 설치공사도 합니다.

언제나 지역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건강하시고 복많이 받으세요.     



세상에 기억에서도 사라지고 있었던 일을 잊지 않고 받아주기로 했다니 참 감사했다.

농구에 진심인 아들이 친구들과 편하게 농구를 할 수 있게 된 것도 감사하다. 불합리한 현실과 불편함을 그저 불평으로 그치지 않고 그 불편한 상황을 알려 개선될 수 있도록 한 일련의 과정이 아들에게는 좋은 배움이 되었기를 바래본다.

     

❚선거를 앞둔 전시 행정이 아니길

기분 좋은 일요일 오후 아들 만큼이나 농구에 진심이었던 남편이 살짝 의견을 더 보태주었다. 그래서 아래와 같이 청원에 응해줌에 대한 감사와 또 새로 생길 농구장이 다른 민원의 소지가 되지 않게 해달라는 부탁의 말을 이메일 답장으로 전해드렸다.       


<3차 이메일> 2024. 02.18

안녕하세요. 전** 시원님.      

바쁘신 가운데 저희들의 청원을 잊지 않으시고 이렇게 이루어 질 수 있도록 해주신 점 깊이 감사드립니다.     

저희들 처럼 청소년기 자녀를 둔 부모님들에게 참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제 고등학생이 되는 아들도 오늘 아침 의원님이 주신 반가운 소식에 많이 기뻐하더라구요. ^ ^     

기왕 청을 드리는 김에 하나만 더 말씀을 드려도 될까요?     

다름아니라, *천변 하프 농구장 설치 시 가급적 소음에 대한 민원이 적을 만한 곳에 위치 선정을 잘 하셔서 많은 비용으로 세워질 농구장이 또 민원으로 강제 폐쇄되지 않도록 세심한 배려를 사전에 해주셨으면 합니다.      

아울러, 하프 농구장 설치시 기왕이면 농구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하셔서 하프 농구장 공식 규격에 맞게 설치 해주시면 실제 농구를 하는 친구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대부분은 그냥 농구대만 덜렁 설치하는 그런 경우가 허다하여 노파심에 말씀드려봅니다~ .^ ^     

자칫 소홀할 수 있는 청소년들의 요구에 귀기울여주시고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살기좋은 **시가 될 수 있도록 애써주심에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의원님께서도 늘 건강하시고 올 한해 복많이 받으세요.     


❚아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

사춘기 아들과의 진지한 대화는 자주 이뤄지지 못한다. 이 글에서라도 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고백해 본다.      


너희가 어른이 되어서도 지금의 너희들의 고충을 잊지 말길

너희가 불평만 하며 세대 간의 반목을 깊게만 하게 말길

불편함을 그대로 잘 알리는 것 만으로도 상황을 멋지게 바꿀 수 있음을 기억하길

엄마 아빠가 이렇게 애를 쓰는 건 너희들이 몸도 마음도 생각도 건강하게 자랐으면 하는 그 마음 한가지 뿐이었다는 걸 기억해주길     


❚이례적인 일

지난 3년간 아들에게 농구의 멘토이셨던 **시 농구 팀 코치이셨던 분이 계셨다. 분을 처음 알게 된 것도 국민 청원을 넣던 2022년 여름이었다.  이후 우연한 계기로 시 소속 농구팀의 코치이신 그 분과 차가운 농구 현실에 대한 공감을 나누기도 했다. 하지만 이젠 그런 현실을 바꾸려 애쓰는 걸 그만하고 체념하기로 했다고 하셨다. 결국 농구로 업을 하시며 보낸 세월이 10년도 넘으셨지만 이제 전업을 하신단다.  그분께 오늘 이 기쁜 소식을 전하자 이런 일은 전에 없었던 아주 이례적인 일이라며 반가움과 놀라움을 보이셨다.   


동네 강변에 작은 농구 코트를 세우는 일은 어쩌면 사소한 일 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난 일련의 과정 속에서 아들이 배웠을 무언가는 절대 사소한 것일 수 없다. 비록 투표권이 없는 청소년들이지만 그들의 불편함도 반드시 시정에 반영되어야 한다.


청소년들이 겪고 있는 불편함에 대해 목소리를 내어 그들의 불편함을 조금이라도 더는 일에 나의 작은 노력이 보탬이 된 것 같아 뿌듯하다. 아무쪼록 많은 청소년들이 몸도 마음도 생각도 건강하게 잘 자랐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30. 이른 새벽, 뉴욕 그리고 수능시험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