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3월 23일, 처음으로 출간 작가라는 타이틀을 안은 날이다. 출판사와 계약을 맺고 출판하는 일반적인 경로가 아닌 POD (Print-On-Demand) 방식으로 생애 첫 출판을 해보기로 했고 POD로 출판을 하는 여러 플랫폼 중에 부크크를 선택했다.
POD 방식으로는 누구든 완성된 원고만 있으면 출간을 할 수 있기에 나의 첫 출간은 그리 자랑할 만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처음으로 내 이름의 책이 세상에 나오고 그 책이 집으로 배달되던 날의 떨림과 설레임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저 어린 아이같은 마음으로 주변 지인과 친구들에게도 나의 첫 책을 소개했다. 다들 축하의 메시지를 전해주었다.
하지만 흥분의 며칠이 지나고 마음이 차분해지며 조금씩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혹여 내 책에 어떠한 오류나 문제되는 부분이 있지는 않을지 염려도 되었다. 나의 첫 출간서는 수필이 아닌 영어 문법서이기에 작은 오류라도 학습자들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다. 그런 생각이 들면서부터 오히려 지인들에게는 나의 출간 소식을 숨길 껄 하는 후회마저 들었다.
다행히 내가 우려한 사안은 출간 1년을 맞이하는 현재까지는 없기에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그리고 출간한 지 3개월 후 즘 친구가 근무하는 고등학교에 저자의 강연 프로그램에 강사로 초청을 받는 기회도 얻을 수 있었다. 초청 강연에서 만난 고등학생들은 내 이야기에 경청을 해주었고 강연 후기도 만족스러웠다. 책을 한 권 세상에 내놓은 덕분에 얻은 기회였다.
❚기왕에 시작한 일은 매듭을 지어보기로
영어 문법서를 발간하고 얼마지나지 않아 내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 어떤 분이 그 영문법서의 워크북은 없냐는 문의를 해오셨다. 향후 제작 예정이라 댓글을 달긴했지만 영어 문법서 하나를 출간하고 마음의 짐이 다소 무거웠던 때였기에 실제로 워크북을 만들 엄두는 내지 못 했다. 더군다나 여태껏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영어 문법서 어디에서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접근법으로 영어 문법을 풀어낸 문법서이다보니 다들 쉽게 그 책의 내용에 마음을 열지 않았다. 같은 학교에 근무하는 동료 영어 교사들에게 보여주어도 반응은 마찬가지였다. 기존의 문법 용어 (명사절, 목적어절, 동격절, 관계대명사절, to 부정사, 동명사, 수동태, 완료진행형 수동태, .....)를 최소화하면서 문장의 구조를 선그림으로 도식화하는 방법과 영어 동사의 형태에 대한 원리를 햄버거 그림으로 설명한 나의 접근법에 다들 큰 관심을 보이지 않으셨다.
처음으로 출간한 책에 대해 주변의 반응이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기에 그 영어 문법 접근법을 실제 나의 영어 수업에서 사용하기가 주저스러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실제 수업에 사용하기에는 연습문제가 별로 수록되어 있지 않았기에 활용도가 높을 수가 없었다. 그런 주저함과 변명을 끌어 안으며 한 해가 끝나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내 마음 한 켠에는 언젠가는 워크북을 만들어 실제로 아이들에게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 책을 그저 나의 첫 시도의 졸작으로 취부하고 방치시켜두기에는 아쉬움이 남았다. 미국 유학을 다녀오면서 늘 마음 속에 생각하던 영어 문법서였기에 나름 애착이 있었다. 결국 기왕에 시작한 일 끝까지 매듭을 짓고 싶었다. <한국식 영문법 말고 원어민식 그림 영문법>의 워크북과 해설서를 제작해서 실제로 수업에 활용해 보리라 마음을 먹었다.
혼자 마음먹고 나면 다시 또 작심 삼일로 흐지브지해질 것 같아 이번에는 아에 겨울 방학 중 보충 수업 교재로 그 워크북을 쓰겠다고 계획을 세웠다. 보통의 보충수업은 시중의 영어 교재를 선택해서 진행하는 데 비해 이번에는 나의 워크북을 주교재로 해서 아이들에게 10일만에 끝내는 영어 문법 수업을 계획했다. 구체적인 일정이 나오고 나니 워크북 제작의 일정도 구체화 되면서 결국 내가 계획한 기한내에 원고를 완성할 수 있었다.
보충 수업 날짜가 너무 바짝 다가왔기도 했고 정식 출간을 하기 앞서 데모 버전으로 실제 아이들에게 수업 교재로 사용하는 것도 좋은 생각같았다. 겨울 방학 중 진행된 수업은 10일간 매일 3시간가량 영어 문법을 집중적으로 정리하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래서 워크북도 최대한 그 기간에 끝낼 수 있도록 일일학습서처럼 제작했다. 비록 워크북이 Day1부터 Day 13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충분히 10일에 1회독을 할 수 있는 분량이었다.
방대하고 끝없어 보이는 영어 문법의 세계를 시각적 도구(선그림, 햄버거 그림)을 활용해서 지도하고 나니 영어 성적이 우수했던 아이도 저조했더 아이도 모두 그 핵심 사항을 이해했다. 마지막날 그 아이들이 나에게 준 영어 문법서 후기는 내가 출간을 시도할 수 있는 큰 용기를주었다. 아래 내용은 학생들이 열 번의 수업을 모두 마치고 마지막날에 나에게 써준 후기이다.
<워크북 한국식 영문법 말고 원어민식 그림 영문법. P.7>
<워크북 한국식 영문법 말고 원어민식 그림 영문법. P.8>
가장 만족시키기 힘든 연령이 바로 중학생들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십대 아이들도 만족한 영어 문법서라면 출간을 해봐도 되겠다 싶었다.
❚워크북 완성의 개운함도 잠시
워크북에는 다양한 예시문항을 수록했다. 그래서 영어 문장의 원리를 최대한 다양한 문장에 적용해봄으로써 그 규칙을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다. 그런데 수많은 연습 문제의 해답 특히 문장 선그림 (Sentence Diagramming)을 파워포인트로 그려내는 작업은 순전히 수작업으 제작될 수 밖에 없었기에 앞이 캄캄했다.
<정답 및 해설집 한국식 영문법 말고 원어민식 그림 영문법. P.39>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반을 걸어온 길을 포기하기도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시작해보기로 했다. 며칠 해설집을 작업을 하다말고 갑자기 자기의심이 들었다. 어쩌면 아무도 찾지 않을 워크북일 수도 있는데 나의 소중한 겨울 방학을 다 갈아 넣기에는 너무 무모하게 느껴졌다. 마음에 확신이 생기지 않자 더 이상 작업을 해나갈 의지도 사라졌다.
며칠 작업을 중단했다. 그러다 문득 기왕 시작한 거 아무도 보지 않는 책이 된다 할 지라도 완성은 해놓고 보자는 오기가 생겼다. 미국 대학원 박사 시절 박사 학위를 목표로 할까 그냥 수료를 목표로 할까 고민하던 때가 생각이 났다. 그 당시에도 박사 학위룰 따려고 하니 엄두가 나지 않아 박사 학위를 따봤자 별 소용이 없을 거야 하며 편한 길을 선택하고 싶었다. 하지만 다행히 나는 편한 포기의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 소용이 있을지 없을 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만 학위를 따고 나서 괜히 땄다고 후회할 리는 절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의 경우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워크북을 누군가가 살지 그 누구도 찾지 않은 책이 될 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하지만 다 완성한 이후에 나 스스로 괜히 만들었다고 생각을 할 리는 없을 것 같았다. 아무도 찾지 않는 책이 된다 하더라도 적어도 나의 영어 수업에는 백분 활용할 수 있는 책이 될 테니 일단 완성을 해야겠다 싶었다.
그날 부로 논문을 쓸 때처럼 전체 해야 할 산더미 같은 일을 생각하기 보다 매일의 양을 배분했다. 수많은 예문의 선그림을 하나 하나 제작하기란 여간 곤욕스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매일 정해진 분량을 완성하는 일에만 집중했다. 앞으로 얼마나 더 그려야할 지는 생각하지 않고 그저 그 하루치 분량만 생각했다. 그 결과 매일의 누적이 쌓여 결국 완성의 날이 왔다. 드디어 새학기가 시작될 무렵 워크북과 해설집의 원고를 완성했다.
❚부크크를 활용한 POD(Print-On-Demand) 출간 과정에서 생긴 고민
작년에 출간한 첫 영어 문법서처럼 이번에도 부크크를 통해 출간을 하기로 했다. 보통의 출판사들은 유명세가 있거나 팔로워가 많은 인플루언서와 출판 계약을 맺는 것 같았다. 나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이기에 작년처럼 이번에도 부크크로 해보기로 했다. 책 표지도 작년에 출간한 원교재와 표지를 통일감있게 하고 싶었다. 이번 워크북의 경우는 책표지에 대한 고민보다는 가격에 대한 고민이 컸다. 출간의 마지막 단계에 있는 가격 책정은 며칠의 고민거리였다. 부크크의 출판 과정의 마지막 절차인 제출 버튼을 클릭하고 나면 원고 수정은 가능하지만 가격 수정은 할 수 없다. 평소 나의 성향대로 하자면 바로 선 자리에서 원고 제출 버튼을 눌렀을 법도 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며칠을 고심했다.
솔직히 돈에 대해 무심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듯 하다. 더군다나 부크크의 정책은 판매수익을 저자와 출판사가 5대5의 비율로 가져가는 상황이라 책 한 권을 출간하는 데 든 시간과 노력에 비해 돌아오는 댓가는 참 눈물겨울 만큼 작다. 그마저 부크크가 아닌 외부 유통(yes24, 교보 문고, 알라딘, 웅진북스)에서 판매가 될 경우 그 판매수익은 다시 절반으로 줄어든다. 그리고 대부분 구매자들은 부크크보다는 외부 유통 싸이트에서 판매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책 가격을 책정하는 일이 다소 고민스러웠다.
이 책은 시중에 판매되는 대부분의 영어 문법서와는 사뭇 다르다. 영어 원어민들의 영어 문장 구조 분석법인 문장 선그림 (Sentence Diagramming) 기법을 적용해서 엄청난 수의 영어 문장을 일일이 선그림으로 제시했다. 또한 작년에 출간한 원교재에서 세세한 문법 규칙들을 아우를 수 있는 영어 동사형태 변형에 대한 원리를 햄버거 그림으로 설명하였는데 이번에 출간한 워크북에는 이에 대한 다양한 연습 문제를 수록했다.
엄밀히 말하면, 나의 영어 문법서는 한국식 영문법, 소위 K-영문법에 대한 문제의식도 가지지 못한 학습자들보다는 찐 영어문법을 원하는 찐팬들을 위한 책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대중적인 가격을 포기하고 프리미엄 가격으로 가보기로 했다. 약간의 비용을 더 지불할 만큼 영어 공부에 진심인 학습자들이라면 이 책에서 소개하는 원어민식 영어 문법에 대한 마음의 문도 더 열려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찐 팬들과 인연을 맺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추후 이 책을 구매한 학습자들을 위해 해설 영상도 제작해서 공유할 계획도 하고 있다.
❚지인들에게는 알리지 않은 이유
첫 책을 출간하고 가족과 지인들에게 출간 소식을 전했던 것과는 달리 이번 두 번째로 출간한 책에 대해서는 일절 알리지 않았다. 그저 순전히 그 책이 필요한 책인 사람들만 구매를 했으면 한다. 부크크에서 보내오는 판매내역 문자가 오는 날은 하루가 즐겁다. 사실 그 문자가 매일 오는 건 아니다. 하지만 나를 전혀 모르는 누군가가 내 책을 구매했다는 사실은 꽤 기분 좋은 뉴스인 것 틀림없다. 판매 개시 하루 만에 원 문법서와 학습서 그리고 해설서의 판매 내역이 알림으로 떴다. 그리고 출간한 지 두 주 가량 흐른 지금은 일주일에 몇 권씩은 판매가 일어난다. 아마도 외부 유통이 시작되면서부터 판매가 더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것 같다. 워크북을 출간하지 않으면 두고 두고 후회될 것 같아 제작을 시작했는 데 이렇게 판매로 이어지니 너무 감사하다. 더군다나 주변 지인에게는 일절 알리지도 않은 상황에서 나를 알지 못하는 누군가가 나의 책을 구매했다는 사실이 더욱 감사했다.
❚처음도 힘들고 두 번도 힘들지만 그럼에도 출간을 하는 이유
솔직히 시간당 수입으로 계산하자면 원고를 쓰는 작업은 가성비가 아주 현저하게 낮은 경제활동이다. 돈을 벌 목적이라면 출간을 하기보다 강연이나 수업을 하는 게 더 효과적이다. 게다가 출간의 과정에는 크고 작게 신경쓰이는 일이 참 많다. 그리고 출간하고 난 뒤에도 늘 신경이 쓰인다. 나의 작품이 남에게 난도질을 당하지는 않을까 손가락질은 당하지 않을까 괜히 마음이 쓰인다.
첫 출간도 쉽지 않았지만 이번 두 번째 출간 역시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간을 다시 하게 된 이유는 책 하나를 집필하는 과정에서 얻게 되는 유익이 크기 때문이다. 현 상황에서는 경제적 유익은 얻지 못 하고 있다. 하지만 책을 쓰는 것 자체가 나의 배움과 지식의 체계를 잡아갈 수 있게 하는 최고의 도구다. 특히 나의 전문 분야와 관련된 책을 쓸 때는 더욱 그렇다.
또한, 책 쓰기는 나의 경험을 생생하게 기록할 수 았는 최선의 도구이기도 하다. 현재 진행하고 있는 <가칭: 마흔에 떠난 미국 유학기>가 그렇고 <가칭: 찐 경험으로 터득한 최선이 아닌 유일한 영어 공부법>의 경우가 그렇다. 그런 이유로 한번도 어렵고 두 번도 어려운 출간의 작업을 앞으로도 계속 해볼 예정이다.
비록 나 좋자고 하고 있는 출간의 작업이지만 나의 배움과 경험이 누군가에게 소중하게 쓰임 받을 수 있으면 하는 소망은 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