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농구에 진심인 아들 키우기 5
: 더 멋진 어른
❚어메리칸 스타일 부모
고1 아들은 첫 내신 시험을 치른 후 마음이 심란해보였다. 공부로만 한 줄을 세우는 우리나라 교육에 대해 아들은 불만을 토로했다. 미국은 공부만 잘 한다고 아이비리그 대학에 선발되지 않는다. 공부만 한 학생보다 공부는 어느 정도하고 봉사나 스포츠 활동에 두루 역량을 보인 학생이 오히려 더 우위를 차지한다. 그런 미국에서 지내던 아들은 우리나라의 입시제도에 불만이 많다. 상대적으로 영어 과목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아들이지만 아들의 학교 영어 시험은 30년 전에도 구식이라 불릴법한 그런 문제를 2024년 그것도 수능 30년째를 맞이하는 현재에도 버젓이 출제를 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아들의 고등학교 적응은 쉽지 않다.
그런 아들에게 지난 주말 가뭄의 비처럼 큰 위안과 행복을 준 일이 있었다. 아들은 시대표 농구 선수로 지난 3년간 훈련에 참가하고 있었다. 고1이 된 올해 드디어 정식으로 출전선수가 되었다. 경기는 지난 금요일 인근 도시에서 개최되었다. 예년같으면 첫 예선 경기에 대참패를 하곤 했지만 아들이 처음으로 투입된 이번 경기는 여태까지 경기 중 가장 박빙이었다고 한다. 비록 안타깝게 연장전에서 패하긴 했지만 평일 낮에 학교 수업을 빠지고 농구를 하며 보낸다는 것 자체에 아들은 신나했다. 게다가 뒷풀이로 고기를 실컷 먹었다고 자랑을 한다. 시대표로 선발되면서 농구화, 단체 경기복 선물을 받고 이렇게 점심 대접까지 받은 것 만으로도 아들은 만족스러운 모양이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인 지난 토요일 또 다른 3대3 대회가 있었다. 중구청장배 3대3 농구 대회 였다. 말이 없는 사춘기 아들이지만 적어도 금요일 경기의 패배에 대한 아쉬움보다는 토요일 경기에 대한 기대감이 더 큰 것 같았다. 아들은 올해 포함 3년 연속 출전 하고 있다. 작년에는 중등부 팀 우승과 MVP로 선정되는 쾌거를 올렸고 올해는 고등부로 출전하게 되었다.
나와 남편도 적잖이 기대를 하고 그 대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올해 아들의 태도가 작년과는 사뭇 달랐다. 작년까지만 해도 나와 남편이 함께 경기장에 가서 응원하고 챙겨주는 것에 대해 별 불만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들이 “엄마도 가려고? 엄마가 왜 가?”한다. 그냥 아이들끼리 버스를 타고 경기장 가기로 했으니 남편과 나는 그냥 집에 있으라는 듯이 말한다.
“응? 늘 엄마랑 아빠가 너 데리고 갔잖아. 이번에도 그럴 건데, 가서 간식도 챙겨주고 응원도 하고 할 건데?” “......” 아들은 말이 없다. 잠시 자기 방에 가더니 “그럼, 내일 몇 시에 출발 할 건데?” 한다. 다른 친구들은 아주 이른 시간 만나서 함께 버스를 타고 가기로 한 모양이다. 아들은 우리 차로 가는 게 좀 더 편할 것도 같은 지 우리가 같이 가는 걸 마지 못해 동의해주었다.
대부분 우리나라 부모님들은 아들의 운동 경기에는 구지 동행하지 않는다. 대부분은 공부해야할 시간이 뺏길까봐 일부로라도 아들이 운동에 흥미를 보여도 애써 모른 체 한다. 하지만 미국 부모들은 대학생 아들 경기에도 보러 간다. 귀국 후 아들은 또래아이들의 부모님과 달리 농구대회에 대한 우리의 관심을 부담스러워 할 법도 하다. 하지만 나와 남편은 미국에 있을 때부터 아들의 모든 경기를 함께 했기에 이번 경기 역시 당연히 가는 걸로 생각하고 모든 일정을 조정해두었다.
아들로부터 환영받는 동행은 아니지만 토요일 이른 아침 따뜻한 밥과 소고기국을 아침으로 챙겨먹이고 경기장으로 출발했다. 나는 가는 차에서 아들을 위해 기도도 해주었다. 까칠한 사춘기 아들이 엄마의 마음을 이해할 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저 엄마된 도리는 다 하고 싶었다.
❚농구 동창회
대회장 입구에서 아들을 먼저 내려주고 우리는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3년째 참가하고 있는 대회다 보니 아들에게는 이 대회가 마치 동창회처럼 여겨지는 듯 해보였다. 오랜만에 만나는 농구 메이트들을 거의 다 만날 수 있는 날이니 아들은 여기 저기 다니며 인사하느라 분주했다. 농구 메이트들 중에는 아들보다 나이가 한 두해 많은 사람도 있고 어린 친구도 있다. 하지만 같은 동네, 같은 학교인 친구는 드물다. 다들 여기 저기 흩어져 사는 친구들이라 평소에는 만나지 못하다가 이렇게 농구 대회가 열리면 그 친구들을 오랜만에 다 만나니 아들에게는 대회라기 보다는 오히려 농구 학교 동창회다.
지난 3년 아들의 농구 대회에 열심히 따라 다닌 덕분에 아들도 그 친구들을 우리에게 소개시켜주고 그 친구들도 나에게 와서 예의바르게 인사를 건넸다. 한창 성장기라 불과 2년 만에 몰라보게 어른스럽게 된 아이도 있다. 하지만 농구 친구들은 다들 순수하고 선한 인성을 가진 게 한 눈에도 알아볼 수 있었다.
❚소소한 아름다운 순간
아들은 귀국 후 참 많이도 변했다. 5년의 미국 생활을 끝내고 귀국한 게 어느 새 4년 전의 일이 되어 가고 있다. 농구를 할 때 빼고 아들은 매사에 소극적이었다. 우리 말도 서툴러 또래 친구들과 대화도 어색해 하던 아들이었다. 농구에 관심이 있는 친구를 찾기도 힘들고 있다고 한 들 아들처럼 NBA 선수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친구는 더 귀한 상황이라 아들은 좀처럼 친구들과 가벼운 대화를 할 일이 없다. 친구와 농구를 할 때도 농구만 할 뿐 별 달리 말이 없다. 아들을 몇 년간 코칭을 해주시던 분들은 아들이 진중하고 예의바르다고 하지만 사실은 아들은 가볍게 대화하는 걸 힘들어 했다. 딱히 공감대를 형성할 주제도 없고 우리말도 서툴기에 아들은 그저 친구들의 대화를 듣는 편이었다. 한 살 위의 선배에게도 마음 편히 형이라 부르며 대화 하는 일은 절대 없었다.
그런 아들이 4년이 지난 지금 아주 많이 달라졌다. 특히 이번 대회 내내 보여준 아들의 모습은 대견스럽기까지 했다. 3대3 대회는 주로 실내 코트에서 하고 팀별로 농구 코트 주변으로 삼삼오오 둘러 앉아 자기 팀 경기 차례를 기다리는 식이다. 아들 팀도 코트 가장 자리 어디메에 자리를 잡고 있었지만 아들은 그곳에 얌전히 앉아있지 않고 여기 저기 다니며 알고 지낸 선후배에 먼저 다가가 인사를 건네고 이런 저런 스몰 토크를 나누는 것 같았다. 2년전 같은 팀으로 출전한 고2 형들도 우리 아들을 아주 반갑게 맞이해주며 아들이 우리에게도 인사를 시켜주었다. 우리 아들이 못 본 새 많이 컸다고 하며 오늘 아들팀이랑 경기하면 너무 막강해서 질 것같다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실제로 대진표를 보니 그 아이들팀과 우리 아들팀이 예선전에서 대결을 하도록 되어있었다. 아들 팀과 그 형팀들은 승부를 가려야하는 상황이었지만 서로 어깨를 다독이며 격려해주고 파울을 한 경우에도 서로 미안하다는 제스추어를 취하기도 했다. 아들 팀은 그 형들 팀을 이겼다. 불과 2년 전에는 그 형들에게 말도 쉽게 못 건네 쭈뼛쭈뼛 거리며 깍뜻한 극존칭의 말투를 어색하게 건넨 아들 이었다. 이제 제법 자신감을 뿜뿜하며 그 경기장을 활보하는 모습이 대견스러웠다. 그 형들은 아들팀에게 진 후에도 남아서 아들의 다음 경기까지 응원해주었다. 농구 엄마를 한 지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룰도 제대로 모른다. 하지만 스포츠의 매력은 이런 게 아닐까 싶다. 나는 눈시울이 살짝 붉어졌다. 별것도 아닌 일, 그저 소소한 일상의 한 순간임에도 불구하고 그 모습은 너무 아름다웠다.
❚농구는 중요 과목
대부분의 대한민국 엄마들은 고등학생이 된 아들이 운동한다는 사실을 반기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아들이 고등학교에 가서도 농구를 계속 즐겨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현재 아들이 다니는 고등학교를 선택했다. 농구 덕분에 아들은 공부로 채울 수 없는 많은 역량들을 키울 수 있게 되었다. 아들은 팀원 중에 학년이 가장 어리지만 팀의 메인 코치 역할을 맡은 모양이다. 아들은 다른 팀의 경기도 집중하며 팀의 특징, 장점, 단점등을 파악하고 팀원 들에게 세세히 일러주는 모습도 보였다. 이제 아들은 자신감을 가지고 당당하게 플레이하고 팀원들과도 적극적으로 소통을 하며 경기를 한다. 아들은 매 경기 자신의 모든 역량을 총동원하여 아주 열정적으로 임하지만 여전히 상대팀에 대해 깍듯이 대한다. 경기 전 서로 인사를 나눌 때도 행여 파울을 범하고 나서도 보는 사람이 민망할 만큼 폴더 인사를 꾸뻑한다. 무엇보다 내 마음이 흐뭇했던 것은 경기 전 아들이 두 손 모아 잠시 기도하는 모습을 볼 때였다. 매 경기마다 아들은 참 열정적인 플레이를 하지만 늘 마음 속 깊은 곳에는 하나님께 차분하게 기도하는 마음을 잃지 않는 아들이 되길 바래본다.
비록 아들 팀은 결승전에서 패하긴 했지만 4승 1패의 기록으로 준우승을 차지했다. 함께 팀이 된 친구들에게는 이번 대회가 평생에 첫 입상이라 너무 기뻐했다. 그런 팀원들을 위해 아들은 트로피며 상금 피켓을 다 팀원들에게 양보했다. 팀의 리더로서 팀원들이 모두 최선을 다해준 게 그저 고마울 뿐 아들은 그런 트로피와 상금 피켓은 조금도 욕심이 없어 보였다. 2년 전 같은 팀이었던 그 형들이 지금의 아들처럼 첫 대회 우승을 한 아들에게 트로피와 상금 피켓을 양보해준 적이 있다. 아들은 그 형들의 멋진 모습을 닮고 싶었던 모양이다. 농구를 한 덕분에 아들은 좋은 코치와 좋은 선후배의 인맥을 탄탄하게 엮을 수 있었다. 여전히 그들은 아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주고 있다. 학업에 전념해야 할 고등학생이지만 아들에게 농구는 국영수 만큼이나 중요한 과목이다. 대회를 끝내고 결승전에서 대결한 상대팀 최다 득점 선수에게도 먼저 축하의 인사를 건네고 연락처를 주고 받는 아들의 모습에서 경쟁만을 부추기는 공부의 세계에서 익힐 수 없는 그 무언가를 아들은 익히고 있다. 공부만 해서 어른이 된 아들보다 농구를 한 덕분에 더 멋진 아들이 되어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든다.
모든 경기를 끝내고 아들은 미국에서는 해보지 못한 아이들끼리 파티를 했다고 한다. 인근 식당에서 뒷풀이를 했단다. 어른이 동행하지 않는 모임이 미국에서는 거의 불가능했다. 귀국이후에도 아들은 어른이 없는 자기들 만의 파티 같은 건 거의 가본 적이 없다. 비록 좋아하는 고기가 아니라 별달리 즐기지 않는 떡뽁이 파티였지만 아들에게는 그들끼리의 파티이기에 마냥 신나했다.
❚착한 엄마 & 안 착한 엄마
전날 농구 대회가 아침 9시부터 시작해서 오후 5시가 넘어서야 끝이 났고 총 다섯 경기나 뛰었음에도 아들의 몸음 하룻 밤 사이에 다시 리셋이 된 모양이다. 이튿날 또 농구하러 가겠다고 인근 체육공원에 태워달라 부탁 한다. 오후 커피 약속도 취소하고 나는 또 아들을 위해 나의 스케줄을 조정하고 온전히 아들을 위해 나의 일상을 바친다. 그런 아들이 나에게 “엄마는 참 착해”라 말해준다.
그날 저녁 아들은 토요일 농구 대회 때문에 결강한 국어 학원 수업을 다녀와서는 시무룩하다. 나보고 착하다고 한 아들이 불과 몇 시간 만에 나의 말을 들은 체 만 체하고 자기 방으로 쌩하니 들어가버린다. 그런 아들을 오늘도 참아내고 있다. 공부로만 평가를 받아야 하는 대한민국으로 아들을 데려온 미안함 때문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 결정에 후회는 없다. 미국사람이 아닌 한국 사람으로 먼저 키우고 싶었기에 귀국을 결심했다. 그런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공부만 하는 아이로는 키우고 싶지 않다. 공부 뒷바라지와 농구 뒷바라지를 함께하다보니 때로는 “착한 엄마” 역할을 때로는 “안 착한 엄마”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참 쉽지 않지만 오늘 또 아들을 위해 응원을 멈추지 않는다. 이 모든 것들이 우리 아들을 더 멋진 어른으로 만들어 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