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내가 집에서 해주는 집밥을 좋아했다. 식구끼리 외식을 하고 와도 “그래서 엄마 오늘 저녁밥은 뭐야? 난 엄마 밥이 더 좋아”라 말하던 아들이다. 식당에서 먹은 건 애피타이저이고 이제 제대로 된 한끼를 먹겠다는 듯이 아들은 늘 그렇게 질문했다. 미국에서 대부분의 초등학교를 보낸 아들은 평일 방과 후면 뒤뜰에서 꼭 풋볼공을 같이 던지거나 앞뜰에서 농구를 같이 하자고 조르곤 했다. 저녁을 먹고 나면 다양한 카드 게임을 알아와서는 그걸 나랑 해보자고 하거나 신기한 카드 마술을 연습해서 나에게 보여주곤했다. 밤이면 자기전에 베드타임 스토리로 영어 책을 읽어달라고 떼를 쓰기도 했다. 대학원 과제 해내느라 매일 밤 바빴지만 그래도 아들에게 20분 정도 자기전 이야기책을 읽어주었다. 마지막으로 읽어준 책은 아들이 5학년이 될 무렵 NBA 농구 선수 Kobe Bryant의 <Mamba Mentality>였다. 정말 수십번도 더 읽어주었다. 읽고나면 아들은 이런 저런 질문을 하곤했다.
엄마는 대학원에서 뭐 배워?
엄마는 한국어 가르치는 게 재미있어?
엄마는 다른 엄마들처럼 왜 집에 있는 엄마 안 해?
엄마는 학교에서 프리젠테이션을 할 때 떨리지 않았어?
왜 미국에는 흑인들이 그렇게 가난하게 살아?
왜 우리 학교에는 흑인이 단 한명도 없어?
친구 부모들은 어떻게 해서 그렇게 큰 집에 사는 거야?
어린 아들 눈에 비치는 새로운 나라는 하나부터 열까지 다 신기한 모양이다. 그리고 만만한 곳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아들은 미국 현지 아이들과 즐겁게 지냈고 공부도 늘 우수한 편이었다. 그곳에서 나와 아들은 참 친하게 지냈다. 많은 것을 함께 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러던 아들이 초 6학년 2학기에 한국으로 귀국하고 중3이 되면서부터 서서히 변해가기 시작했다. 고1 입학을 하면서 이젠 완전히 180도 변해버렸다. 나에게 어떤 질문도 하지 않고 내가 하는 말에 조금의 관심도 보이지 않는다. 아들은 그저 혼자 내버려두기를 원했다.
고등학교 입학 후 아들은 신체적 변화 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입시제도에 적응을 해야했다. 비록 우리나라에서 중학교 3년을 보낸 후이지만 그건 결코 만만한 적응이 아니다. 엉덩이 힘으로 공부해 온 한국 아이들 틈에서 아들은 그 엉덩이 힘을 키워야 했다. 아들은 중학교 3년간 그 힘을 키우려 애를 썼다. 하지만 고1이 된 아들은 그 모든 것에 이유를 생각하며 마음이 심드렁해졌다. 급기야 이러고 3년을 더 못 견디겠다며 울먹이기까지 한다.
❚왜 하필 우리 아들에게?
아들의 심경에 무슨 변화가 일어나는 지 세세히 알 수는 없다. 농구 연습을 하고 차로 픽업해오는 길은 유일하게 아들이 기분이 좋은 때다. 그럴 때만 가끔 나에게 말을 걸어온다. 그것도 자신의 이야기가 아닌 수업 중에 들은 이야기를 하곤 한다. 그렇게 조금씩 말을 줄이기 시작한 아들에게 적응 하기란 쉽지 않았다. 아들 앞에서 나의 마음을 드러낼 수도 없고 그저 혼자 저녁 집 앞 강변을 산책하면서 불편한 내 마음에 집중을 해보곤 한다. 왜 하필이면 그 사춘기가 이렇게 입시에 중요한 때에 찾아오는 걸까? 내가 좀 더 무언가를 잘 했었으면 그 증상을 줄일 수 있었을까?
❚뒤를 돌아보며 후회
아들을 바라보는 엄마의 마음은 해준 것에 대한 당당함보다 해주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 그리고 내가 좋은 것이라 해준 것조차 과연 그것이 아들에게 진정 좋은 것이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몰려오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아들을 이 나라 저 나라 데려 다니며 적응하느라 힘들게만 한 건 아닐까?
그냥 다른 애들처럼 한 곳에 진드기 적응하도록 했어야했나?
한국의 교육을 너무 쉽게 또는 너무 하찮게 생각한 건 아닌가?
미국에 있을 때도 주말마다 한국 학교를 보내 한국의 교육과정을 공부시킨 한국 엄마들을 난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 생각하니 그들처럼 나도 아이를 시켰어야 했나?
이제 영어가 대학 입시에서 큰 변별력이 없는 과목으로 전락한 마당에 영어 하나 잘하는 아들을 만든 게 애초에 전략적 실패인 건가?
그렇게 넓은 세상을 보게 해놓고 이제 와서 좁은 우리나라에서 딴소리 하지 말고 꾹 참고 적응하고 현실적인 꿈을 꾸라고 강요하는 건 너무 모순적인 게 아닐까?
올해 초 아들이 우연히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아들 :엄마 나 체육 교사 해볼까?
나: 글쎄, 이제 체육교사도 거의 안 뽑는데?
아들: 그럼 나 엄마처럼 영문학 공부해보는 건 어떨까?
나: 글쎄, 그건 취업이 참 힘들텐데....
그렇게 무심코 내뱉은 몇 마디로 아들에게 꿈 꿀 자유를 무자비하게 짓밟아 버렸다.
내심 ‘나처럼 그냥 교사를 시킬려고 내가 너를 그 먼 땅까지 데려가서 구경시킨 건 아니였어.’라는 생각을 했다. 뭔가 모르겠지만 아들은 나보다는 더 큰 일을 더 멋진 일을 할 수 있고 그런 것을 꿈꾸기를 바랬다. 그게 뭔지 내가 정할 수도 없고 대신 그릴 수도 없지만 아무튼 나처럼 그냥 영어 교사가 되어 보겠다는 아들의 생각을 바꾸게 하고 싶었다.
❚기꺼이 기다려주기로
내가 더 애를 쓰면 쓸수록 아들과의 관계에서 마찰만 생기자 나는 그냥 기다려주기로 했다. 여러 전문가들의 조언을 밤마다 유튜브로 들으며 마음을 위로했다.
그리고 아들이 꿈을 찾는 데 기다림의 시간을 기꺼이 가지기로 결심했다.
아들도 이제 독립의 날개 짓을 해보려 하는 것이겠지. 이제 겨우 처음으로 혼자 힘으로 날개짓을 하는 아들이 크고 원대한 꿈이나 목적지를 향할 수는 없는 법이겠지. 날아가면서 시야가 넓어지고 하고 싶은 게 더 생길 테고 날개 짓을 더 열정적으로 해나가겠지.
나에게는 지금 이곳이 너무 익숙한 내 나라지만 아들에게 지금 이곳은 기억에도 별로 남아있지 않은 그 유년기 시절을 제외하고 이제 겨우 4년째 살고 있는 새로운 나라라는 사실을 난 자꾸 까먹는다. 내가 미국에서 살았던 5년동안 참 고된 적응의 과정을 인내했었지 생각한다. 아들은 그 적응의 과정을 지금 미성년의 신분으로 그것도 사춘기라는 신체의 변화까지 한 번에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새로운 나라에 적응 중이다.
힘들겠지. 불안하겠지. 스스로에게 늘 물음표를 던지겠지. 나 여기서 지금 뭐하고 있는 거지? 나 이제 어떻게 되는 걸까? 그럼 나는 이제 무얼 해야 하고 무엇부터 어떻게 해야하는 걸까? 내가 5년의 유학시절 동안 그곳에 정착하려 애쓰며 마음 한켠으로는 민들레 홀씨처럼 허공을 떠도는 그 느낌을 지울 수 없었던 그 날들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이 새로운 땅에서 아들은 어쩌면 그냥 허공이 아닌 깜깜한 우주 한 가운데 있는 듯한 느낌 마저 드는 날도 있으리라.
5월 어느 날 시험을 끝내고 아들은 “엄마, 오늘 하교길에 먼 산을 봤어. 근데 그 산은 참 아름다운데 나는 참 슬펐어. 아름다운 자연과 대조되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서글픔을 아들은 그렇게 표현했다.
그 날이 신호탄을 던진 날이었다. 그 이후로 차츰 아들은 공부에 흥미를 잃어갔고 급기야 기말고사 기간은 첫 하루를 제외하고 나머지 날은 거의 책 하나 들여다 보지 않고 시험을 쳤다. 그럼에도 여전히 난 엄마로서 아들을 챙겨야 했다.
그리고 속으로 다짐했다.
- 아무 말을 하지 않기
- 그냥 먹거리나 주고 지켜봐주기
- 아들의 독립의 길에 괜히 방해꾼이 되지 않기
❚변화의 한 가운데 선 아들
김상균 교수(경희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변화의 속도가 빠른 요즘, 아이에게 필요한 건 적응력, 자기주도력이라고 한다. 부모가 이걸 어찌 키워줄 수 있을까?
그는 아이의 적응력을 키워줄 수 있는 방법은 부모가 직접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 한다.
그 유튜브 영상을 시청하면서 그간의 불안과 초조함이 눈녹듯 사라졌다. ”그렇지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라고 댓글이라도 달고 싶었다. 아이를 어린 시절 그 먼 곳에서 살아보게 한 과감한 도전이 아이에게 평생 두고두고 큰 밑거름이 될 것이라는 걸 의심하지 않기로 했다.
그럼에도 어쩌면 아들은 소박한 삶을 꿈 꿀지도 모르겠다.
또 어쩌면 우리 부부가 한 것처럼 도전적인 삶도 꿈꿀지도 모르겠다.
이미 부모의 도전을 매일 같이 지켜본 아들, 게다가 자신도 자신의 레벨에서 적응하느라 애썼던 아들이다. 아들에게 그 시간은 분명히 그의 몸과 마음에 오롯이 새겨졌으리라. 새로운 공간에 가서 사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은 없을 것이리라.
그런 확신으로 이제 아들의 날개짓을 대견스레 바라보겠다 마음 먹고 있다.
아들은 이제 자신의 미래에 대해 나름의 리서치를 하고 내비게이트를 하고 자신이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서서히 머리를 들어 바라보려 하는 것이다. 그럴려면 바삐 가던 걸음은 멈추어 서야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이치이다. 그 방향을 내가 부모라는 이유로 정해줘서도 안되지만 정해줄 수도 없다. 그건 오롯이 아들 혼자의 몫이다. 부모가 하라는 일이 아니라 평생의 시간 동안 본인이 기꺼이 즐겁게 할 수 있는 그 일을 할 권리가 있다. 아들에게는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갈 권리가 있고 하고 싶은 일을 즐겁게 해볼 시간은 확보되어야 한다.
현재의 출발점에서 아들이 향하게 될 다음 목적지가 비록 최고로 원하던 그 지점이 아닐지라도 적어도 본인이 원하는 지점으로 이어지는 과정이라면 그게 먼 길을 돌아가는 것이든 아니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어쨌든 삶은 계속되어야 하고 우리는 계속 행복을 추구하며 살게 되어 있으니. 누가 먼저 빨리 최고로 원하는 지점에 도착하는 지 경쟁이라도 하듯 우리는 은연중 효율과 가성비를 따진다. 하지만 그 최고로 원하는 지점은 누가 정하는 것이고 그곳이 설령 정해졌다 한들 그곳에 도착하고 나면 또 우리는 새로운 목적지를 정하는 게 인간이 아니던가? 결국 그 최고의 지점은 존재하지 않는 허상에 불과하다. 그 지점에 초고속으로 도착하는 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가?
문득 아들의 인생을 대신 그려보는 버릇이 생겼다. 아들에게 그 몽상을 절대 말로 전할 필요도 전했어도 안 된다는 걸 이제는 안다. 하지만 그건 오롯이 내 생각의 자유에서 발동한 나의 유쾌한 상상일 뿐이다.
‘내가 만일 아들이라면 운동도 즐겁게 하고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일도 하고 영어를 잘 활용해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며 멋진 커리어를 쌓을 것 같다. 그러면 얼마나 신나게 매일을 살까? 내가 아들이라면 매일 아침 설례일 것 같다.’
아들이 내가 꾸는 꿈대로 움직일 리 만무하다. 그건 그저 나의 몽상에 불과하고 그 몽상에서 즐거움을 찾는 것으로 족하다.
아들은 아들의 버전의 꿈을 꾸겠지. 영어를 할 수 있다는 그 장점과 해외 생활을 해봤다는 그 경험치는 아들의 잠재력을 한층 더 키워줄 역량인 건 분명하다. 이제 아들에게 그런 경험을 하게 했고 적응력을 키울 수 있는 환경을 줬고 아들에게 도전하는 부모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걸로 족하다.
나는 이제 나의 삶을 계속 살아가면 된다. 가끔 엄마의 삶에 호기심이 들어 기웃해주면 기꺼이 알려줄 거다. 나 역시 아들의 삶에 호기심이 들면 기웃하며 구경을 하겠지. 이제 어른이 될 아들에게 나는 그런 엄마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