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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영어 스터디 마흔세 번째 모임 후기

: It doesn't matter how slowly you go.

by Hey Soon

▮새해 새로운 멤버

지난 연말에는 스터디의 존폐를 살짝 염려할 만큼 멤버들의 출석이 저조해 스터디 홍보에 빨간 불이 켜졌다. 산책을 하다가 틈틈이 생각날 때 더 많은 좋은 인연을 보내달라고 기도를 하기도 했다. 신기하게도 나의 기도에 응답이 왔다. 새해 첫 달에 좋은 두 분의 새로운 멤버가 스터디를 방문하셨다. 두 분다 이미 영어 관련된 일을 하시던 분들이라 스터디 적응을 잘 하셨다. 매주 홀수 토에 하는 생활 영어 스터디에 처음으로 오시고 이번 짝수 토에 하는 영어 원서 읽기 스터디에 또 오셨다. 엄밀히 말하면 이번 모임이 그분들에게는 두 번째였다.

▮새로운 멤버를 맞이하는 법

기존에 새로운 멤버가 오면 우리 스터디가 어떤 건지를 설명하느라 바빴고 내가 왜 이 스터디를 운영하게 되었는 지 알리는 데 신경을 많이 썼었다. 그러나 이젠 그러지 않기로 했다. 차차 알아가는 그들의 재미도 있을 것이다. 호기심으로 스터디를 계속 오시게 하는 것도 일상의 잔잔한 서프라이즈일 수도 있겠다.

스터디에 상세한 소개대신 그들이 어떤 이유로 어떻게 영어 스터디에 오게 되었는 지, 영어가 그들의 삶에 역할을 하는 지 등 그들의 이야기를 좀 더 듣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 이번에 오신 분들도 참 다양한 경험을 하신 분들이라 너무 반가웠다. 물론 영어가 우리 모두의 공통 분모이긴 하지만 각자 걸어온 삶의 흔적들을 영어로 들려주시니 더 흥미롭다. 한 분은 인도에서 몇 년간 회사를 다니셨다고 하고 또 한 분은 의료 분야에서 일을 하시면 다양한 직업을 가지셨다고 한다. 평생 교사이던 나에게 그분들의 이야기는 아끼며 조금씩 조금씩 먹고 싶은 초콜렛이다.


▮스터디의 재산

나에게 매 스터디 마다 5분 전에 도착하는 일은 꽤나 도전적이다. 하지만 이번에 새로 오신 한 분은 건강을 위해 일부러 버스를 타고 내린 후 10분 정도 걸어서 오신다고 한다. 이번 모임에는 걸어오시는 길에 싱싱한 딸기와 찹쌀떡까지 사 오셨다. 여유롭고 차분하고 배려하시는 그 분의 스타일이 스터디 가득 번진다. 그 공간, 그곳에 모인 사람들, 그리고 각 사람들이 품어내는 삶의 향기, 그 조화로운 어우러짐이 스터디의 재산이다. 비록 내가 그 스터디의 운영지기이지만 애초에 이런 좋은 인연만을 만날 거라 결심을 한 것도 계획을 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참 운이 좋게도 나의 스터디에는 삶의 기품이 있는 분들로 채워지고 있다. 감사하다.


▮친정 같은 스터디

이번 모임에 아주 오랜만에 얼굴을 보이신 분이 계셨다. 첫 얼굴 표정에서 속상한 일이 있었음이 표시가 났다. 하지만 섣불리 무슨 일이 있으시냐 묻기도 조심스러웠다. 또 한편 나를 반기는 얼굴에 무언가를 하소연하고 싶어 하는 속내까지 읽혀졌다. 스터디를 끝내고 다른 멤버들이 다 가고 난 이후 그분과 잠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지난 1년간 스터디에 오실 수 없을 만큼 무척 바쁘셨다고 하셨다. 하지만 이제 새해 들어 삶의 우선 순위에 대한 생각을 하며 새로운 결단을 하셨다고 한다. 최근 새롭게 이직해 간 그 일이 삶의 질서를 많이 무너뜨린 모양이다. 그래서 이제 좀 안정을 찾고 싶다고 하신다. 스터디에도 다시 나올 수 있을 거라는 반가운 소식도 전해주셨다. 비록 우리가 어른이라 불리지만 우리의 삶 역시 우리 아이들과 다름없다. 우리도 아이들처럼 삶의 올바른 방향을 찾아 늘 이리기웃 저리기웃하며 걸어간다. 삶의 가치를 무엇에 두느냐에 따라 매일의 하루가 참 다르다. 삶의 방향도 속도도 누군가가 우리에게 정해주지 않는다. 누구나 엉뚱한 방향으로 빠르게 가기도 한다. 그러다 또 언제는 잠시 멈춤을 하고 방향을 다시 고쳐 잡고 찬찬히 새로 가기도 한다. 살다 보면 차분하게 삶의 페이스를 가다듬고 싶을 때가 누구에게나 있다. 그런 어른들에게 나의 스터디는 언제고 와서 가쁜 숨을 고르고 새로운 에너지를 얻는 공간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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