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62. 영어 스터디 마흔 네 번째 모임 후기

: 내가 스터디를 하는 이유

by Hey Soon

▮저조한 출석률과 응답률

카톡방 이사를 가기로 했다. 작년 여름 이후로 이사를 하지 않으니 실제 참여하지 않는 멤버가 카톡방의 절반이나 되었다. 그러다보니 실제 모임에 오실 분들이 참석/불참을 해줘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의무감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카톡방이 되어 버렸다. 진짜 오실 분은 참석을 해줘야만 스터디가 취소될지 말 지가 결정된다. 실제 이번 모임은 취소 위기에 놓일 지경이었다. 딱 한 분만 참석을 누르셨다. 나머지들은 말 그대로 패스를 해버리고 나니 준비하는 나도 오시겠다고 하던 분도 난감해졌다. 급기가 그 분이 오늘 스터디가 취소되면 다른 일정을 잡겠다고 한다. 물론 참석여부를 단톡 방에 남기지 않은 분 중에 몇 분도 막상 스터디를 하러 오실 것 같은 느낌도 들었고 오늘은 대학 동기도 온다고 했기에 나는 원래대로 스터디를 진행한다고 톡을 남겼다. “한 명만 오신다 해도 스터디는 진행합니다”라고 톡에 남겼다. 나의 의지를 강하게 내비치고 한편으로 참석/불참 선택을 꼭 해달라는 간접 압력이기도 하다. 역시나 어른 학습자들에게 강제는 힘들다. 역시나 스터디가 시작되니 멤버들이 한 두 분씩 오더니 급기야 오늘은 6명이나 모여 스터디를 했다.

▮만 2년, 스쳐가신 분들

이제 만 2년을 넘기고 있다. 문득 작년 이맘 때 오신 분들은 어떤 부분이 맞지 않았길래 그저 스쳐지나가는 인연으로 밖에 되지 못 했을까 궁금해졌다. 지금 이 분들 중에도 내년 이맘때는 아련한 예전 기억 속 사람으로 바뀔 사람들도 있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 조금 힘이 빠지기도 하다. 매년 학생들을 졸업시킨 담임 교사의 서운함처럼, 떠나가는 학생들은 그저 덤덤하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멀어져 가는 학생들을 먼 발치에서 바라보는 마음은 늘 2월엔 겪어야 하는 마음이다. 어른들을 대상으로 하는 스터디도 그 서운함은 마찬가지긴 하다.


▮역시 친구만 한게 없음

이런 저런 상념으로 마음이 스산한 아침이었지만, 오랜만에 스터디에 와주겠다는 대학 동기 덕분에 힘내어 스터디를 했다. 지난 번 미국에서 밀튼과 레인이 오셨을 때도 스터디에 와서 나에게 힘이 되어 주었던 친구들이다. 이번에도 그렇다. 친구들은 참 척하면 척이다. 내 마음이 썰렁한 오늘 어찌 알고 두 손 가득 과일을 들고 날 위로하러 오기로 마음 먹었는지. 거의 30년 지기 친구들이다. 이젠 서로 말하지 않아도 먼 곳에서 서로를 잘 헤아려주는 든든한 친구들이다. 급기야 한 친구는 다음 모임부터 본격적으로 참여하겠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왔다. 사실 난 그 친구와 언제부터 이 스터디를 함께 하고 싶었으나, 바쁜 직장 생활에 이런 스터디까지 해나가는 날 보며 늘 혀를 내두르던 친구라 강하게 말하지 못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여유가 좀 되는 지 기꺼이 오겠다하니 천군을 얻은 마음이다.


▮ 새로운 도전이 되는 해

새로운 학년은 나에게 새로운 도전이 되는 해이다. 처음으로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근무를 하게 되고 게다가 최근 아주 핫한 IB교육 관련 업무까지 맡게 될 것 같다. 나의 이 스터디 모임으로 쌓은 역량이 새로운 학교 업무에 얼마나 도움이 될른지는 모르겠다. 한편으로 이 모임을 계속 이어나가기 위해 나의 에너지 배분이 잘 될까하는 염려도 살짝 든다. 언제까지 이 모임이 이어나갈 수 있을까 걱정도 되기도 한다. 이번 발령을 핑계로 멤버들의 참석률이 거의 없어지면 스터디를 하지 않아도 되겠다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 꺼질만하면 다시 새로운 연료가 투입된다. 정말 가늘고 길게라는 나의 모토처럼 실제, 그렇게 되려나?


▮오래 오래 할 수 있을까?

늘 멤버들에게는 오래 오래 할 겁니다라고 장담하지만 요즘처럼 멤버들의 참석률이 들죽날죽 할 때는 스스로에 의문이 든다. 과연 내가 그렇게 오래 오래 이 스터디를 끌고 갈 수 있을까?

스터디를 하고 나서 정리하는 것도 어떨 때는 시간이 많이 쓰인다. 요즘처럼 마음도 몸도 바쁠 때는 한 주 쯤 스터디 후기도 건너뛰고 스터디 준비도 대충해야 할 것도 같다 그래야 오래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도 든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게 힘들다. 한 주 밀린 지금이라도 기어코 난 어줍잖은 후기라도 남겨야 직성이 풀린다. 다소 귀찮지만, 이마저 마음의 흔적을 기록하지 않으면 정말 스터디가 나에게 주는 의미는 반감될 것 같다. 이렇게 마음을 정리하면서 좀 더 마음이 다 잡아 진다. 이제 에너지 효율을 높이며 스터디를 운행해가야 하는 게 관건이다. 스터디 준비도 그렇고, 이렇게 스터디를 한 이후 마무리 정리도 그렇고. 좀 더 가볍게 해나갈 방법을 찾는 게 필요하다.


▮내가 스터디를 계속 하는 유일한 이유

이런 저런 마음의 갈등을 매번 겪으면서도 꾸역꾸역 스터디 준비를 하고 늦었지만 스터디 후기를 정리하는 이유는 딱 하나다. 좋은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가지고 싶어서. 겨울 방학에 이렇게 스터디라도 안 하면 내가 뭘 하겠어? 어디서 이런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겠고, 어디가서 이런 대화를 하겠냐고. 이 두 가지 질문을 하고 나면 언제나 내 대답은 늘 같다. 그리고 또 한 번 의지를 내어본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