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대로는 힘들 듯
❚정신없는 3월이 끝나가고 있지만
새롭게 발령받은 고등학교 생활도 조금은 적응하고 있다. 학년실을 같이 쓰고 있는 선생님들도 너무 좋으셔서 새로운 학교에 대한 낯설움이 많이 사라졌다. 무엇보다 고등학교로 옮겨오며 좋은 점 중 하나는 학생들의 태도이다. 그들의 인정어린 말투와 태도가 인상적이다. 수업 시간에도 높은 관심과 열의를 보여주고 있다. 물론 이전에 가르친 중학생들에 비하면 당장 급한 불이 눈에 보이니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사교육에 의존을 많이 하는 지역이 아니라 학생들의 학교 수업에 대한 신뢰는 많이 높은 편이다.
영어의 경우, 사교육에 영향을 덜 많은 학습자들이 많은 만큼 그들의 영어 수준은 이전 중학교 학생들보다 많이 뒤쳐져 있다. 그러다 보니 나의 배움을 좀 더 나누고 싶은 나의 열의가 절로 생긴다. 특히 한국식 영문법으로 영어에 영자도 시작 못 한 학생들, 우리말 번역을 한 줄 한 줄 하다 문맥 파악도 못 하고 시간을 다 보내는 학생들, 이런 학생들에게 나의 영어 공부법을 전수 해주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내가 개설한 방과후 수업도 기대 이상으로 신청자가 많아서 결국 분반을 할 상황이 되었다. 나로서는 행복한 고민이다. 결국 토요일 오전도 그 학생들과 함께 하기로 했다. 3월의 정신없음이 끝나 가지만 나에게는 더 바쁠 4월, 5월이 기다리고 있다. 내가 자처한 분주함이고 예고된 바쁨이다.
❚스터디를 찾으신 새로운 멤버
짝수 토요일에 하는 이 모임 역시 예전의 방식대로 해나갈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뭔가 대책이 필요했다. 그렇다고 함부로 이 스터디를 중단하는 것도 마음에 내키지 않는다. 최근들어 새로운 멤버들이 제법 들어오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이번 모임에 새로이 가입한 멤버는 60대 후반 여성인데, 스터디 모임에 대한 기대와 설레임이 아주 크다고 하셨다. 마땅한 스터디 모임을 오래 찾았지만, 마땅한 곳을 찾기 못한 상황이었다고 하신다. 우연히 당근앱으로 우리 모임을 발견하게 되어 너무 기쁘다고 하셨다.
돌아가신 우리 엄마가 생각이 났다. 엄마의 60대 중후반, 너무도 이런 모임을 갈망하셨다. 자기 자랑만 늘어놓는 엄마들의 모임이 아니라, 온전한 한 사람으로서 새로운 것을 배우려는 사람들의 모임, 그걸 엄마는 가지고 싶어하셨다. 결국, 엄마에게는 누군가와 함께 무언가를 배우는 기회를 찾지 못하셨다. 그분에게 이 모임이 기대하셨던 모임이 되기를 바래본다.
❚함께 모름을 터놓는 사이
매번 스터디의 문은 하나의 영어 명언을 가지고 스몰 토크하며 문을 연다. 이번 모임도 그렇게 시작했다.
“Beauty is in the eyes of the beholder.” (아름다움은 보는 사람의 눈 안에 있다)
다들 미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영어든 우리말이든 다양한 의견을 내놓으셨다. 결국 사람에 따라 아름다움을 느끼는 대상은 주관적이라는 사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새로운 분은 마스크를 끼고 조용히 앉아 계시며 우리의 이야기를 듣기만 하신다. 새로오신 분이 선뜻 이야기를 하시지 않아 말을 걸어 보았다.
약간은 수줍은 듯 영어로 말씀을 시작하셨다. 제법 오래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분명 그분이 하시는 것이 영어일진데,,,, 어쩌면 한 단어도 알아듣지 못 한다는 말인가?? 2분 가량의 말씀을 정말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나 뿐 아니라 그 방의 누구도 그분의 말씀을 알아들은 사람이 없었다.
스터디를 리더하는 상황에서 이건 대략 난감이었다. 못 알아 들었다고 하며 다시 말해 달라 하면 그 분이 민망해 하실 것 같고, 알아 들은 체 하기에는 정말 한 마디도 알아 듣지 못했다. 2분 내 ‘이 일을 어쩌면 좋지?’ 생각하며 머리를 굴렸다.
다행히 한 멤버가 그분이 하신 말씀 중에 워즈워드(영국 낭만주의 시인, Willian Wordsworth)의 <Splendor in the Grass>를 인용하신 것을 들었다. 그래서 함께 그 시를 화면에 띄워 원문과 해석본을 함께 보며 그 시의 메시지를 나누었다.
❚오래 가기 위한 방향 전환
나의 작은 노력이 남에게 귀하게 쓰인다면 나에겐 그 노력이 작지만 보람된다. 그런데 나의 노력이 최근까지는 나의 일상에 영향을 크게 미치지 않는 감당할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새로운 고등학교로 와서부터는 상황이 달라졌다. 주중뿐 아니라 주말까지 학생들을 가르치게 되는 상황이 되어 스터디에 대한 조정이 필요해졌다.
주말 동안 결국 중대한 결정을 하기로 했다. 이제 내가 주도하는 스터디가 아니라 멤버들과 함께 이끌어 가는 형태로 바꾸기로 했다. 멤버들에게 사전 상황 설명을 자초지종 하지 못했지만, 고등학교로 옮겨오며 조금의 변화가 있을 거지만 결국 스터디는 계속 할 것이라고 약속을 한 바는 있었다. 다행히 최근에 모임에 오시는 분 대부분은 이미 영어가 수준급이셔서 나를 대신해서 스터디 모임을 충분히 이끌 수 있으리라 생각이 든다. 내친김에 카톡 투표를 해서 새롭게 시작한 책 <A Man Called Ove>의 챕터를 나누어 각자 맡을 부분을 정했다. 다행히도 세분이 먼저 손을 들어주셔서 일단은 다음 한 두 달은 그렇게 진행해보기로 했다.
나의 본심을 그분들도 헤아려주셔서 다행이다. 일단 모두가 함께 주인이되는 스터디가 진정 스터디라는 점을 한동안 이루지 못했지만, 이제 서서히 이번 봄부터 시작해보려 한다.
❚또 한권의 원서책을 끝내며
비록 영어 교사이지만, 늘 공부를 위한 영어를 했을 뿐, 영어 소설책 한권을 제대로 읽을 시간을 나 자신에게 허락하지 않았다. 심지어 미국 유학을 가 있으면서도 영어 소설책은 녕 영화 한 편도 제대로 감상할 사치를 부리지 못 했다. 강제로 시간을 내지 않으면 바쁜 일상에서 책 한 권을 제대로 읽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스터디 모임 덕분에 나에게도 그런 사치가 허락되었다. 지난 3년간 스터디를 통해 함께 읽은 영어 소설책이 총 4권이나 된다. <A Long Walk to Water>, < Wonder>, <Number the Stars> 그리고 이번에 끝낸 <A Summer To Die>를 함께 읽었다. 그 사이 멤버들은 많이 바뀌었지만, 나 혼자 읽는 게 아니었기에 가능했던 일인 것 같다.
특히, 이번에 끝낸 <A Summer to Die>와 <Number the Stars>는 나름 히트를 했다. 멤버들 모두 그 책 속으로 몰입했고 작가가 전하는 그 감정의 선을 잘 따라갔다. 길이도 적당했고, 문장 수준도 적절했다. 삶과 죽음, 정의와 평화, 사회적 선과 개인의 행복, 자연의 섭리, 하나님의 주권과 같은 주제들이 녹아있는 책이라 책을 읽으면 의미있는 대화를 멤버들과 나눌 수 있어서 그 또한 좋았다.
특히, 이번에 끝낸 <A Summer to Die>는 대부분 중년이 되어가는 멤버들에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비록 10대 소녀의 시선으로 죽음을 바라본 소설이지만, 충분히 멤버들에게도 공감을 이끌었다. 다들 미리 읽으면서 주르륵 눈물이 흘렀다는 말씀을 하셨다. 지난 가을에 이 소설을 시작했다. 마침 소설의 초반, 시간적 배경도 그 즘이라 계절적 타이밍도 좋았다. 그리고 새로운 해가 시작되는 요즘, 이 소설을 끝냈는데, 마침 소설의 결말도 봄을 배경으로 그려져있었기에, 더욱 몰입할 수 있었다. 소설을 읽는 맛을 요즘 한껏 느끼게 되었다. 새로운 삶으로 점프인 해가는 듯한 그 느낌은 참 신선하다.
❚새로운 원서책을 시작하며
다음 원서책을 선정하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참 신중하고 싶었다. 마냥 얇은 책을 선정하자니 주제가 마땅하지 않을 수도 있기에 소설의 길이 보다는 주제에 좀 더 초점을 두고 싶었다. 멤버들의 의견을 듣고 싶었지만, 다들 내가 알아서 정해주기를 바랐다. Chat GPT의 추천, 도서 판매 사이트 후기 등을 참고로 해서 결국 <A Man Called Ove (오베라는 남자)>를 읽기로 했다. 두께는 제법 두껍다. 기존의 읽던 책 의 거의 3배 가량이다. 하지만 다행이 영화로도 제작되어 있고 <A Man Called Otto (오토라 불리는 남자)>로 미국 판으로 리메이크 된 영화도 스트리밍으로 볼 수 있어서 미리 시청하고 원서책을 읽으면 훨씬 체감 난이도가 낮아질 것 같았다.
지난 소설은 죽음에 관한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든 책이라 다소 대화가 진지하고 심각했다. 그래서 이번에도 마음을 좀 가볍게 만드는 이야기를 찾던 중, 발견한 책이다. 영화도 코메디로 분류된 만큼 이야기를 읽으며 잔잔함 웃음을 선물받을 수 있을 것 같다. 멤버들 몇 분은 이미 영화를 보신 분도 있다고 하니 진입장벽이 다소 낮은 것 같아 다행이다.
새로운 4월에는 새로운 방식으로 새로운 책을 함께 읽는다. 또 어떤 공감대를 형성할지 우리는 또 어떤 나눔을 하게 될지 기대가 된다. 바쁜 일상에 굳이 원서 책을 읽어야 하는 것이 부담스러울 때도 있지만, 멤버들과 함께 읽어간다는 사실에 힘을 내게 된다. 더욱 바빠질 4월이지만, 나에게 이정도의 사치는 허락될 수 있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