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움받을 용기
❚긴~ 추석연휴 안녕하셨어요?
정말 길고 긴 추석연휴의 끝자락이었다. 어제도 재량휴업일로 잡힌 덕분에 가을 방학같은 긴 연휴를 감사히 보냈다. 물론 가운데 끼여있던 추석 당일은 참 마음이 불편했지만, 어쨌든 또 한 번의 명절이 삭제되어 기쁘다. 제사상을 준비해야 하는 의무도 없지만, 오랜만에 친인척들을 만나는 일은 정신을 피폐하게 만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오랜만에 만나 서먹한 그 상황을 우리는 몇 마디 말로 채워넣느라 마음이 분주해진다. 사람들이 이런 서먹한 상황에 안전한 화젯거리를 찾지 않고 자칫 상대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대화를 정말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경우가 많다. 근황을 묻고 안부를 묻고 서로를 염려해주는 본의마저 의심케 할 만큼 상대의 마음을 상하게 할 수도 있다. 요즌 세간에는 ‘잔소리 메뉴판’도 있다고 한다. ‘결혼은 언제해’, ‘외모도 좀 가꾸고 그래.’ ‘살 좀 쪄야겠어.’와 같은 지나치게 사적인 질문이나 얼굴 및 외모 평가와 같은 이야기는 값을 치르고나서야 할 수 있는 것이지 그렇게 함부로 상대에게 툭 건네면 안된다는 뜻이다. 참 기막힌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든다.
미국 유학시절 추석은 참 썰렁할 만큼 아무일이 없었다. 찾아볼 부모님도 없고 그저 우리 식구끼리 보통의 날처럼 보내곤 했다. 잠깐 잠깐 한국의 시끌시끌한 명절이 그리워지긴 했지만, 막상 귀국을 하고나서부터는 명절만 되면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았다. 주위에 이런 빌런같은 멘트를 하는 사람이 꼭 있기 마련이다. 게다가 시누들의 횡포, 시댁 사람들의 일방적인 의례의식, 종교의 자유도 무시하는 제사 문화, 이런 모든 것들이 대한민국의 며느리들을 힘들게 한다. 오랜만에 만난 스터디 멤버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렇게 연휴가 길 경우, 누적되는 스트레스는 더 커지는 것 같다.
❚미움받을 용기, 그거 어렵지 않아요.
멤버 한 분이 빌런같은 시누로부터 강요받은 가사노동 때문에 너무 힘들었다고 하셨다. 그랬더니 옆에 계시던 분이 한마디로 해결책을 제시해주셨다. 바로, 미움받을 용기. “저는 4년전부터 명절이 되면 혼자 2박 3일 정도 혼자 집을 나갔다가 들어오곤했습니다.”라고 말씀하셨다. “첫 두해는 엄청난 부부 싸움이 있었지만, 이제는 남편도 시댁 식구도 자신들의 뜻만을 관철시키려 들지 않고 저의 뜻을 많이 받아주는 편입니다.”라고 하신다. 그분은 ‘시댁 식구들의 말을 다 따라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벗어나야한다고 말씀하신다. 이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시대도 바뀌었고 직장있는 며느리가 그렇지 않았던 이전 세대의 어머니들과 같은 식의 며느리 역할을 하도록 강요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사회적으로 맞벌이를 하지 않고는 생활이 힘든 상황에서 대한민국의 모든 시부모님들은 변화에 적응을 하셔야 할 일이다. 각자 자신의 가치와 소신에 따라 결단을 하고 행동을 하는 것이다. 그 결단이 비록 이전 세대들의 관행에 정면으로 부딪히는 것이라 하더라도 그 결단을 멈출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비록 맏며느리라 하더라도 본인이 제사를 지내야겠다싶으면 기꺼이 제사상을 차리는 것이고 그러지 않아도 된다 싶으면 기꺼이 반대를 하고 음식 준비를 하지 않으면 된다. 물론 미움을 받을 준비는 해야겠지만 말이다.
❚오늘의 명언을 나누며
“He who accepts evil without protesting against it is really cooperating with it.”
[악에 맞서 항의하지 않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사실상 그 악에 협력하는 것이다.]
— Martin Luther King Jr. (1929 – 1968): American civil rights leader
기존의 관행이 우리의 인권을 유린하는 것이라면 그걸 대항해서 싸우지 않는다면 그건 그 악에 동조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물론 마틴 루터 킹의 한 마디는 우리나라 명절 문화에 대한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하지만, 좀 과정된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지만, 우리나라 명절 문화는 며느리들의 인권을 참 쉽게 착취하고 있다. 명절을 보내고나면 보통의 며느리들은 삼삼오오 모여 앉아 불쾌한 명절의 기억을 털어내느라 분주하다. 오늘 우리 스터디 멤버도 그랬다. 우리는 모두 어느 집 “며느리들”이었다. 비록 반은 영어로 반은 우리말로 나누긴 했지만, 영어라는 장벽을 넘어 우리는 서로에게 많은 공감과 이해를 주고받았다.
❚간만에 미쿡 이야기, 참 흥미로운 나라
최근 국내외 정치적 상황에서도 마틴 루터 킹의 명언은 참 의미심장하다. 며칠 전 뉴스에서 미국 시카고에 불법이민자 단속 및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트럼프가 미국 연방 군대를 투입해 많은 마찰을 빚고 있다고 전했다. 이런 상황을 영어로 듣고 의견을 말하는 것이 다소 어렵게 느껴지지만, 필요한 부분일 것 같아, 명언과 관련하여 시사적인 내용을 담은 대화를 공부했다. 관련 어휘부터 익혀야 진입장벽이 낮아질 것 같아, 이번 대화에서는 주로 관련 어휘를 익히게 하고 뉴스 내용을 배경지식으로 아는 수준으로만 다루었다.
*자세한 내용은 <영어 한스푼 #59>를 참고해보시길 바랍니다.*
❚소설 <Crying in H-mart>, 어떻게 읽고 계신가요?
마침 현재 우리가 읽고 있는 책이 미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책이다. 그리고 오늘 스터디에 참가한 멤버의 과반수가 미국에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몇 년을 지내시던 분이라, 더욱 소설을 흥미롭게 읽고 계신다고 하셨다. 특히 소설의 배경이 되는 필라델피아는 두 분이 이미 살아 보신 적이 있으시다고 하신다. 책 속에 나오는 지명이 익숙해서 과거의 기억이 회상이 된다고 하신다. 나 역시 이 소설을 읽으며 유학 시절 나를 떠올려 보곤했다. 특히 소설 속 엄마가 되어 이야기를 곱씹어 보곤한다. 먼 타국으로 시집을 가서 아주 오랜 세월 친정 엄마와 시간을 함께하지 못한 딸의 마음. 그리고 그 친정엄마의 임종을 보고 겪는 그 깊은 상실감을 표현한 장면에서는 과거의 내 모습이 겹쳐졌다. 유학첫 해 엄마의 임종을 맞이하고 불과 몇 개월 밖에 지나지 않은 즘, 나에겐 그 상실감은 마치 파도 같았다. 그것도 엄청난 높이의 파도가 되어 나를 덥석 집어 삼킨다. 그 파도속에서 허우적 거리며 펑펑 울음으로 쏟아내면 다시 조금씩 파도가 잦아진다. 그 슬픔은 갑자기 후욱 밀려온다. 어떤 날은 새벽에 화장실을 갔다가 그만 그 파도에 뒤엉켜 펑펑 울던 날도 있었다. 옆 방에서 자던 아이들이 행여나 깰까봐 입을 틀어 막고 솟구치는 슬픔을 애써 억누르려 애썼던 날도 있었다.
오늘 읽은 3장은 그런 엄마의 모습이 나온다.
“It never occurred to me that she was trying to make up for all the years she’d spent away in America. It was difficult to even register that this woman was my mother’s mother, let alone that their relationship would be a model for the bond between my mother and me for the rest of my life.” (p.28)
“그녀가 미국에서 떨어져 지낸 세월을 만회하려 하고 있었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
이 여인이 내 어머니의 어머니라는 사실조차 쉽게 실감되지 않았고, 더구나 그들의 관계가 내 평생 어머니와 나의 관계의 본보기가 될 거라는 건 상상조차 못 했다..”
“ I was afraid of my mother then, and I watched my parents shyly from afar, the same way I had watched my mother and her mother in Halmoni’s room. I’d never seen my mother’s emotions so unabashedly on display. Never seen her without control, like a child. I couldn’t comprehend then the depth of her sorrow the way I do now. I was not yet on the other side, had not crossed over as she had into the realm of profound loss. I didn’t think about the guilt she might have felt for all the years spent away from her mother, for leaving Korea behind. I didn’t know the comforting words she probably longed for the way I long for them now. I didn’t know then the type of effort it can take to simply move.” (p.35)
“그때 나는 엄마가 두려웠다. 나는 멀리서 부모님을 조심스레 바라보았다. 마치 예전에 외할머니 방에서 엄마와 할머니를 지켜보던 그때처럼. 엄마가 그렇게 노골적으로 감정을 드러내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통제력을 잃고, 아이처럼 무너진 엄마의 모습은 처음이었다. 그때의 나는 지금처럼 엄마의 슬픔의 깊이를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아직 엄마가 건너간 그 강을, 깊은 상실의 세계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엄마가 한국을 떠나며, 오랜 세월 어머니 곁에 있지 못한 것에 대해 어떤 죄책감을 느꼈을지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엄마가 그리워했을 위로의 말들을, 지금의 내가 간절히 바라는 그 말들을, 그땐 알지 못했다. 그땐 단지 ‘그럼에도 계속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큰 노력과 용기를 필요로 하는지 조차 몰랐다.”
❚유창한 영어 능통자보다 상대에게 공감할 줄 아는 사람
오늘도 우리는 유창한 영어 실력 보다 상대에게 공감하는 대화 능력을 더 많이 키운 좋은 시간이었다. 어쩌면 우리 스터디가 키우고자 하는 인재상은 “유창한 영어 능통자보다 상대에게 공감할 줄 아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사실 애초에 이런 Mission Statement 같은 건 없었다. 하지만 이제 59번째 스터디를 해오고 나니 슬며시 표면으로 선명하게 떠오른다. 내가 이 스터디를 계속하는 목적이. 그렇다. 나는 영어 능통자가 되기 보다는 상대에게 공감을 할 줄 아는 소통을 하는 사람을 더 많이 주위에 두고 싶었던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