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 영어 스터디 육십번째 모임 후기

: save 10 percent of myself

by Hey Soon

❚단촐하지만 찬찬히

간만에 햇볓이 좋은 토요일 오전이라, 다들 한껏 야외를 즐기러 갔을 법도 하다. 이번 모임은 나를 포함해 4명 뿐이었다. 하지만 뭐 어떠랴. 많으면 많은대로 적으면 적은 대로 대화의 양상은 다양하게 흘러가니 그 역시 나에게는 흥미롭다. 또 멤버들의 밝은 표정과 즐겁게 스터디에 오시는 모습을 보는 게 즐겁다. 지난 주 토요일에는 다른 도시에 사시는 초등학교 선생님께서 나의 이야기를 글로만 읽다가 실제로 만나고 싶으시다고 일부러 먼길을 마다하지않고 오셨다. 내가 하는 일이 거창한 일도 아님에도 그 선생님께서는 연신 나를 칭찬해주셨다.

사실, 이 모임은 오시는 분들을 위해 한다기보다는 오히려 내 아이들을 위해 3년간 운영하고 있다. 며칠 전 교무실에서 한 후배 선생님께서 나의 넘치는 에너지를 진즉에 아시고는 나보고 주말에도 집에 조용하게 안계시지요? 묻는다. “어떻게 알았어요? 사실 어른들을 위한 영어 스터디 모임을 3년째 운영중이예요.”라 했더니 연이어 또 물으신다. “근데, 그거 왜 하세요?”. “아들을 위해 이 모임을 해요. 내가 내 일로 바쁘게 즐겁게 의미롭게 하면 아들은 내 뒷모습을 보고 배울 테니까요.”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차마 그 선생님께는 나의 또다른 이유까지는 말하지 못했다. 넉넉지 못한 집안의 맏딸이던 우리 엄마는 동생들 뒷바라지만 하시다 시집오셔 또 자식 뒷바라지만 하시다 돌아가셨다. 배우고자 하는 마음은 참 넘치셨던 걸로 기억한다. 노후에는 영어 공부도 참 하고 싶어하셨고 내가 틈틈이 엄마에게 영어를 가르쳐 드리마 했지만, 결국 흐지브지되고 말았다. 삶의 즐거움을 알지도 미쳐 느낄 시기도 없이 우리 엄마는 바삐 천국으로 가셨다. 그래서 난 평생 엄마에게 진 빚을 조금도 갚을 수 없게 되버렸다. 엄마에 대한 나의 미안한 마음을 조금이라도 만회하고 싶은 게 솔직한 나의 이유이다. 비록 엄마에게 해드리지는 못했지만, 중년의 여성분들에게 배움의 즐거움을 나누며 엄마에 대한 미안함을 조금이라도 덜고 싶다.

❚읽고 있는 원서책 <Crying in H-mart> 5~6장이 주는 내 마음의 여운

주인공의 모습에 나의 십대 시절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그리고 어느덧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 주인공 엄마의 모습과 나는 닮은 점이 많다.


p.53

“Why did her interests and ambitions never seem to bubble up to the surface? Could she truly be content as only a homemaker? I began to interrogate and analyze her skill set. I suggested possible outlets—

courses at the university in interior design or fashion; maybe she could start a restaurant.”

“왜 엄마의 관심사와 야망은 한 번도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을까? 정말로 ‘전업주부’로만 만족할 수 있었던 걸까? 나는 엄마가 가진 능력들을 캐묻고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출구를 제안했다. —대학교에서 인테리어 디자인이나 패션 수업을 듣는다든지, 아니면 식당을 시작해보는 건 어떠냐고.”


그랬다, 나 역시 이렇다할 직업이 없던 우리 엄마를 보며 난 다르게 될 거라 다짐한 적이 있었다.



p.62

“ he was waiting for me to stop her—to chase her and beg for forgiveness. But I would not give in. I could live without them, I thought to myself with foolish teenage confidence. Icould get a job. I could stay with friends. I could keep playing shows until someday the rooms were full.. “

“그녀는 내가 그녀를 말리고—뒤쫓아가 용서를 빌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굴복하지 않으려 했다. 그들 없이도 살 수 있다고, 어리석은 십대의 자신감으로 생각했다. 일도 구할 수 있고, 친구 집에서 지낼 수도 있고, 언젠가 공연장이 가득 찰 때까지 계속 무대에 설 수도 있다고.”


그리고 나는 자신감으로 가득했었다. 세상도 모르고 인생도 모르는 주제에 감히 장담을 했었고 자신감에 넘쳐있었다. 막무가내 도시로의 홀로 유학을 졸랐다. 그런 십대 시절 나와 같은 딸을 지금 내가 감당해야 하는 엄마라면 어땠을까? 소설을 읽는 내내 엄마에 대한 미안함을 숨길 수가 없었다.



p.66

“I envied and feared my mother’s ability to keep matters private, as every

secret I tried to hold close ate away at me. She possessed a rare talent for keeping secrets, even from us. She did not need anyone. She could surprise you with how little she needed you. All those years she instructed me to save 10 percent of myself like she did, I never knew it meant she had also been

keeping a part of herself from me too.”

”나는 엄마가 사적인 일을 남에게 드러내지 않는 능력을 부러워했고 동시에 두려워했다. 내가 붙잡아 두려 했던 비밀들은 매번 나를 좀먹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비밀을 지키는, 우리에게조차 숨길 줄 아는 드문 재능을 지녔다. 엄마는 누구도 필요로 하지 않았다. 얼마나 적게 타인을 필요로 하는지로 사람을 놀라게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평생 내게 ‘네 자신을 10%는 남겨 둬’라고 가르쳤지만, 그 말엔 엄마 역시 나에게서도 자기 일부를 숨겨 왔다는 뜻이 담겨 있다는 걸 나는 몰랐다.”


우리 엄마도 그랬다. 딸들에게 당신의 우울증을 아주 오랜 세월 혼자서 앓고 계셨고 아주 많이 늦었을 때야 비로소 우리에게 들키다시피 드러내셨다. 엄마와 매일 같이 있었음에도 가끔은 우울한 표정을 본 적도 있었던 것 같았다. 하지만 그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게 엄마를 좀먹고 있을 줄은 몰랐다.



p.67

“I would radiate joy and positivity and it would cure her. I would wear whatever she wanted, complete every chore without protest. I would learn to cook for her —all the things she loved to eat, and I would singlehandedly keep her from withering away. I would repay her for all the debts I’d accrued. I would be everything she ever needed. I would make her sorry for ever not wanting me to be there. I would be the perfect daughter.”

“나는 기쁨과 긍정으로 빛을 뿜어 엄마를 낫게 할 거라고 믿었다. 엄마가 원하면 뭐든 입고, 모든 집안일을 토 달지 않고 해낼 것이다. 엄마가 좋아하는 음식들을 전부 배워서 직접 해 드리고, 내 힘만으로 엄마가 쇠약해지지 않게 막아낼 것이다. 내가 쌓아 온 모든 빚을 갚고, 엄마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이 될 것이다. 나를 거기 오지 말라 했던 일을 후회하게 만들겠다. 나는 ‘완벽한 딸’이 될 것이다.”


엄마의 오랜 우울증을 맞서 우리 가족 모두 특히 나는 참 애를 썼다. 엄마에게 격려의 말도, 따뜻한 위로도, 함께 지어 먹는 저녁 밥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사실을 나주에야 알게 되었다. 엄마를 치유할 수 있는 힘이 나에게는 없었다.



p.73

“ as I grew older the secret began to fester. The same stories grew tiresome and repetitive, his violent past less the exploits of a hero than excuses for his shortcomings. His constant lack of sobriety was no longer endearing; the drunk driving after work, irresponsible. What had been a delight as a child fell short of what I needed from a father as an adult. We were not innately, intrinsically intertwined the way I was with my mother, and now that she was sick, I was unsure of how we’d manage to pull through together.“

“하지만 내가 나이를 먹을수록 그 비밀은 곪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똑같은 무용담은 점점 지겨운 반복이 되었고, 그의 폭력적 과거는 영웅담이 아니라 자기 결함을 변명하는 말처럼 들렸다. 늘 술에 취해 있는 모습도 더는 귀엽지 않았다. 퇴근 뒤 음주운전은 무책임했다. 어린 시절엔 즐거웠던 것들이, 성인이 된 내게 필요한 ‘아버지다움’엔 미치지 못했다. 우리는 엄마와 나처럼 본능적으로, 내적으로 얽혀 있지 않았고, 이제 엄마가 아픈 지금 우리가 어떻게 함께 버텨낼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늘 집안의 경제와 크고 작은 일들을 챙기시던 엄마가 60중반에 들어서며 우울증 증세가 급격히 심각해지며 그 사이 엄마를 너무 많이 의지하고 사시던 아빠는 엄마에게 큰 버팀목이 되지 못해 보였다. 아빠와 우리 자매들이 곁에서 엄마를 보살피려 해보았지만, 부부사이의 신뢰를 대체할 수는 없었다. 그저 엄마는 우두커니 껌껌한 거실에 하루종일 앉아 계시고 아빠는 또 그 하루를 견디기 힘들하시며 끝내 밖으로 술 한잔을 걸치러 나가시곤 하셨다.



p.77

“I envied and feared my mother’s ability to keep matters private, as every

secret I tried to hold close ate away at me. She possessed a rare talent forkeeping secrets, even from us. She did not need anyone. She could surprise you with how little she needed you. All those years she instructed me to save 10 percent of myself like she did, I never knew it meant she had also been

keeping a part of herself from me too.”

“지금 상황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나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 나는 다시 여기 와 있었다. 이번엔 내 자유 의지로 돌아온 것이었고, 더 이상 어둠 속으로 몰래 탈출을 꾸미는 아이가 아니라, 어둠이 들이닥치지 않기만을 필사적으로 바라는 사람이었다.”


비록 엄마와의 추억을 뒤로하며 마흔에 새로운 삶을 기대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아니, 거의 이민까지 각오하며 떠났지만, 이제 다시 나는 그 모든 시간과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이곳으로 다시 돌아왔다. 당찬 십대의 패기도, 왕성한 에너지를 발산하던 20~30대, 그리고 큰 도전을 마다하지 않던 40대도 거의 끝나가가고 있다. 이제 나의 인생의 절정기는 내 뒤로 조금씩 조금씩 멀어져 가는 것 같은 느낌은 지울 수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에게 어둠이 들이닥치지 않기를. 그 아름다운 저녁 노을을 서서히 즐기며 끝내 맞이하게될 어둠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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