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로의 자원, 가치를 상호보완하려는 마음
❚활용될 만한 가치를 지닌 사람(Being resourceful)
우리 아이들이 미국 공립학교를 다닐 때 일주일에 세 번씩 도서관 도우미를 자처한 적이 있었다. 매일 아침, 하루 수업을 준비하면서 그 학교는 국기에 대한 맹세(The Pledge of Allegiance) 및 일종의 마음 다지기 의식을 하였다. 그 낭독문에는 학교 교육의 목표도 포함되었는데 그 목표 중에 ‘being resourceful’이 소개되었다. 처음에 나는 ‘활용될 가치를 지닌 사람이 되자??’라는 말에 좀 의아해했다. 사람을 상품화 시키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까지 했다. 그런데, ‘어차피 교육의 목적이 활용될 수 있는 사람을 만드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그 단어의 의미를 파악하고는 나의 오해가 사라졌다.
‘Resource’는 ‘자원, 천연자원’의 뜻으로 주로 알려진 영어 단어이다. 그런데, 그 단어를 영영사전에 찾으면 ‘실질적인 문제를 처리할 줄 아는 능력( the ability to deal with practical problems)’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이 서로 다른 두 갈래의 뜻은 어쩌면 서로 맥이 통한다. 자원은 실질적인 문제의 해결에 큰 도움이 되는 것이다. 사람이 가지는 자원 중에 그런 실질적인 문제의 해결에 도움이 되는 것은 바로 ‘실질적인 문제를 처리할 줄 아는 능력’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어로 ‘resource’가 그 두 가지 뜻 모두를 나타내는 것 같기도 하다.
❚작아지는 자존감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내가 이 미국에서 활용가치가 있는 사람인가? 영어 원어민들 사이에 앉은 늦깍이 유학생 아줌마인 내가 그들보다 탁월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기는 한가? 자꾸 자기의심이 들었다. 다들 나보다 영어를 몇 배는 더 잘 한다. 적어도 말을 할 때는 그렇다. 다들 나보다 젊고 생기발랄하다. 이곳 문화에서 자란 그들은 어느 하루도 문화적 충격으로 마음의 상처를 입고 슬퍼하지 않는다. 낯선 공간에 놓인 나는 자존감 제로인 상태를 가진 적도 있었다. 팀 프로젝트에서 ‘나의 온전한 1/N의 책임(fair share)’을 책임질 수 없을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나의 특징 = 나의 자원
그렇게 자존감이 낮은 시절에 나를 조금씩 변화시킨 두 가지 일이 있었다. 하나는 영어 강사로 교내 어학원에서 외국 유학생 및 유학생의 배우자들을 가르치는 일이었다. 그 일 자리의 제의를 받고 선뜻 할 자신이 생기지 않았다. 그런데 그 어학원의 학장과의 면담을 한 이후에 나는 나의 특징이 나의 소중한 자원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선 원어민들이 가진 직관을 못 가진 대신 나는 영어 문법에 대한 명시적 지식을 가지고 있다. 나는 원어민들이 습득해서 구사하는 그 언어를 오랜 ‘학습’과정을 통해서 익히고 그 언어를 구사하고 있다. 나는 그 언어를 학습해본 경험이 넘치고도 넘치는 사람이다.
영어를 모국어로 구사하는 사람보다 영어를 배우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 지 더 오래 궁리했던 사람이다. 그래서 내가 이제 영어를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에게는 더 이용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또 아는 것과 가르치는 것은 다르다고 하는 말처럼, 영어를 20년간 외국어로 가르쳐본 나의 티칭 경험은 그들에게 아주 소중한 자원인 셈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도 이민자이기에 그 외국어 학습자들의 마음 상황이 절로 이해가 된다. 이런 나의 특징이 자존감이 낮은 시절에는 조금도 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나, 그 분야의 전문가인 그 학장의 눈에는 내가 가지고 있는 자원이 바로 보였던 것이다. 그래서 인터뷰를 하자마자 나를 그 ESL영어 강사로 고용했다. 그 일로 나는 나의 오롯한 특징이 나의 자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나의 경험 = 나의 활용 가치
영어 교육 석사시절 하게 된 대학교내 ESL강사 일이 나에게 자존감을 높이게 해준 계기가 된 반면, 교육학 박사시절 하게 된 학부생 대상 한국어 강사 일은 오롯이 나의 장점을 발견하게 해준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외국어로서 영어를 힘들게 배운 덕분에 나는 남과 다른 활용 가치를 지닌 한국어 강사가 되어 있었다. 비록 영어를 원어민처럼 구사하는 그런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평생 외국어를 학습해 온 나의 과정은 한국어를 배우는 그 학습자들에게 좋은 샘플일 수 있었다. 또, 영어의 특징을 원어민인 그들보다 더 잘 알고 있었기에 영어와 한국어를 비교해줄 수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영어와 한국어 사이의 다리 역할을 할 수 있었다. 비록 영어 원어민이 가진 영어에 대한 직관은 없지만, 나는 더 어려운 한국어의 직관은 뛰어나니 그 또한 좋게 여겨졌다. 영어를 나보다 훨씬 잘 해서 부럽게 바라만 보았던 주변 사람들이 더 이상 나의 부러움의 대상이 아니었다. 심지어 외국어 학부 학과장 교수도 나의 한국어 수업 학생이기까지 했다. 그분은 한국어를 너무 열정적으로 배우셨다. 나에게 와서 숙제 검사를 맡고 단어 시험 결과도 자랑하기도 하고 모르는 문법 사항은 늘 질문을 해왔다. 급기야, 코로나 직전 해에 한국으로 와서 한 달 어학연수를 할 정도였다. 나는 나의 평생에 걸린 영어 학습 경험이 나의 진정한 활용가치의 원천임을 확신했다. 원어민처럼 하지 못하는 나의 영어 실력에 대해 기죽지 않고 오히려 평생 변함없이 노력해온 나의 수고가 원어민들의 직관보다 더 활용 가치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협업능력(Collaboration)을 위한 나의 No.1: 서로의 자원, 가치를 상호보완하려는 마음
나는 한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이기에 자신감이 생겼다. 그 덕분에 더 당당하게 한국인으로 영어를 사용하는 현지인들 앞에서 설 수 있었고 학생들을 지도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박사 졸업을 앞두고 있을 즘, 이민자로서의 나의 경험과 유학생으로서의 경험들을 대학원 박사과정의 친구들에게 정식으로 발표할 기회가 생겼다. 지도 교수님께서 나와 유진이라는 또 다른 한국인 유학생 친구에게 자신의 수업에 와서 이민자 및 유학생들의 경험에 관한 프리젠테이션을 해달라고 요청해왔다. 대부분 미국 친구들이 그렇듯이 그 프리젠테이션의 청중도 다른 나라에 살아보지 못하고 다른 나라 말을 진지하게 배울 필요가 없는 보통의 미국인 친구들이었다.
지금은 주립대학교 교수로 임용이 된 그 유진이라는 친구와 나는 신나게 우리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우리의 프리젠테이션은 서로 각자의 장점을 살리고 그 각자의 장점이 상호보완이 되게 구성했다. 나는 3년째 하고 있던 한국어 강의 덕분에 활동 중심의 프리젠테이션 운영 능력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었다. 그런 나의 장점을 먼저 살려 도입부와 전개부분을 내가 맡기로 했다. 나는 젓가락 사용법을 이용한 간단한 게임으로 발표를 시작했다. 뒤 이어서 아픈 아들을 한국에 있는 병원에 데려간 부모의 상황을 가정하며 그 수업의 수강생들에게 한글로 된 자녀의 건강 특이사항을 기입하는 문진표를 작성해보도록 했다. 그렇게 언어 장벽과 문화적 차이를 겪는 상황으로 친구들을 몰아넣은 후 내 친구 유진이가 미국 이민자들 및 유학생들이 겪는 문제 및 고충에 관한 자료를 제시했다. 끝으로, ‘보다 넓은 이해심과 배려하는 마음으로 이민자들을 받아들이고 그들에 대한 공감(empathy)능력이 있는 교육자가 되어야 한다’는 우리의 결론을 제시했다. 그날의 프린젠테이션은 성적과 무관한 것임에도 나와 유진이는 마치 이민자의 대표라도 된 양 성심을 다해 준비했고 우리의 진심을 담아서 전달했다. 그렇게 나와 유진이의 협업은 대성공이었다.
❚나만의 협업능력 필수 요소 세 가지 정리
1) 나의 특징 = 나의 자원 : 나의 온전한 특징이 충분히 자원이 될 수 있다.
2) 나의 경험 = 나의 활용 가치 : 나의 경험은 충분히 문제의 해결에 도움이 될 가치가 있다.
3) 각자의 자원, 가치를 적절히 상호보완하려는 마음 : 서로 다른 우리이기에 경쟁은 무의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