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4. 미국 교육은 이걸 잘 키워요.

:멀티 모달 리터러시! 다양하게 형태로 표현하는 능력

by Hey Soon

❚우리의 영어 교육 과연 이대로 괜찮을까?

원론적으로 교육이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 중에서 우리나라 영어 교육이 추구하는 목적은 무엇일까? 실제 우리나라 학교 교육은 그 본래의 존재 이유에 합당한 역할을 하고 있을까? 특히, 우리나라의 영어 교육은 본래 추구하도록 되어있는 그 능력을 키우고 있을까? 너무 비관론이라고 지적을 받을 지도 모르겠으나, 적어도 일선 교육 현장에서 매일같이 아이들을 지도하고 관찰한 영어 교사의 한 사람으로 나는 우리의 영어 교육이 참 엉뚱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대학수능시험 영어 문제에 만점을 받으려면 수수께끼 같은 한 단락의 글을 최대한 빨리 읽고 정답 하나를 귀신같이 찾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대학수능시험은 우리나라 교육과정을 온전히 다 반영하도록 되어있는 시험이다. 그렇다면 과연 제한 시간 안에 정답 하나를 찾아내는 능력이 대한민국 영어 교육이 추구하도록 요구된 능력일까? 그 시험이 측정하려는 그 능력은 똑똑한 대한민국 아이들을 더욱 거듭나게 만들 수 있는 올바른 능력일까?


❚브레이크가 고장난 자동차 그리고 그 안에 갖힌 우리 대한민국 아이들

우리나라의 영어 교육은 브레이크가 고장 난 위험천만한 자동차 같다. 우리는 똑똑한 대한민국 아이들을 참으로 엉뚱한 방향으로 미친 가속도를 내며 내몰고 있다. 그 아이들은 자신들이 어디로 가는 지 알 지도, 알 겨를 도 없이 그저 그 안에서 안간힘을 쓰며 정신을 차리려고 할 뿐이다. 그러나 이내 정신이 혼미해진다.


그런 현실을 지켜보고 있는 영어 교사로서, 학부모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안쓰러운 마음과 불안한 마음이 절로 든다. 과연 그 미친 자동차 위에 타고 있는 우리 아이들이 동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다른 나라의 십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앞으로 걸어갈 수는 있는 걸까? 우리는 우리의 대한민국 아이들에게 제대로 걸어볼 수 있는 기회라도 줬을까? 그 아이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는 있을까? 숨죽이고 듣게만 만들었지, 그들이 목소리를 내도록 한 적은 있었을까? 차분히 마음을 가다듬고 자동차 밖의 상황과 자동차 안의 상황을 살펴보며 맥락에 맞게 자신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있을까? 그 미친 자동차에서 내달리는 와중에 잠시라도 그들이 휴게소에 들를 권리조차 빼앗은 것은 아닐까?


그렇게 자동차에 실어 정신없이 내 달린 후 우리 대한미국 아이들은 소위 언어 장벽을 뛰어 넘어 당당하게 자신의 생각을 전하고 소통을 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 영어 교육은 우리 아이들이 그러한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하고 있을까? 과연 수능영어 만점인 학생은 그러한 능력이 있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어느 나라든 교육이 문제가 아닌 나라는 없을 것이다. 교육과 정치와 그리고 경제는 언제나 톱니바퀴처럼 서로 맞물려 있으니 그 복잡한 다이내믹을 관파하고 가치로운 교육만을 하는 나라는 이 세상에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적어도 엉뚱한 능력을 키우기 위해 어린 아이들에게 엄청난 희생을 강요하는 상황은 고쳐져야 되지 않을까?


❚미국에서 받은 교육은 많이 달랐다.

미국에서 5년간의 나의 경험으로 모든 미국에 있는 학교가 동일하다고 일반화 할 수는 없다, 하지만 내가 경험한 그 조각은 분명 실제에 존재한 조각임은 분명하다. 그 당시 우리 아이들이 받았던 초등학교와 중학교 교육, 그리고 내가 받은 석사과정과 박사과정의 교육 경험은 분명히 우리나라 교육이 키우는 능력과 사뭇 다른 능력을 키우고 있었다. 우리 아이들이 다니던 학교는 교회 소속의 작은 학교였지만 유치부에서 고등학교까지 있던 학교였다. 초등학생이던 우리 아들은 학교 역사시간에 각자 역사 속의 한 인물처럼 의상을 차려 입고 자신을 소개하는 프로젝트를 하는 걸 본 적이 있다. 유일한 아시안인 우리 아들은 훈족의 ‘아틸라(Attila the Hun)’라는 인물을 배정받았고 그 인물로 의상을 차려입고 역사 속 인물인 아틸라가 한 일에 대해 소개를 했다. 또, 그 학교에는 매년 5월의 졸업식을 앞두고 4월 중순부터 모든 고3 졸업생들은 교회 예배당에서 지역 사람 및 학부모를 대상으로 졸업 연설을 했다. 물론 미국에서 대학교 입시를 위해 ACT(American College Test)나 SAT(Scholastic Assessment Test)라는 시험이 있으나, 그렇다고 학교 교육이 그 시험에 모든 초점을 맞추지는 않았다. 학교는 학교대로 교육이 키워야할 능력을 차분히 기르고 있는 것 같았다. 고3이더라도 스포츠 활동을 통한 리더십과 협동심과 같은 소프트 스킬을 계속 키우고 있었다. 인생의 중요한 대학입시에 ‘제한된 시간 안에 정답 하나를 찾는 능력’이 절대적 기준이 되는 일은 미국에서는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그들의 교육이 추구하는 것은? 멀티모달 리터러시

우리나라는 열심히 끝도 없이 우리아이들에게 ‘집어넣는’ 교육을 미친 듯이 하고 있다. 미국에서 경험한 교육은 집어넣는 교육과 함께 ‘꺼내는 교육’의 균형을 맞추어 실천하고 있었다. 꺼내는 교육이라 함은 단순히 암기한 지식을 되내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멀티모달 리터러시라는 새로운 개념의 문해력을 키우는 교육이다. 지금으로부터 거의 7년 전이지만 그 타운에는 이미 아이패드 하나로 모든 수업을 실시하는 신설 중고등학교도 있었다.


❚멀티모달 리터러시(Multi-modal Literacy)

코로나 팬데믹을 거친 우리들은 직접 만나서 하던 대화보다는 온라인으로 문자를 주고 받는 것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유튜브, 블로그, 인스타그램, 트위터, 페이스북 등다양한 온라인 플랫폼을 활용해서 다양한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결국 우리가 의식을 하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는 글자라는 일차원적인 의미 전달매체 뿐 아니라 다양한 매체의 텍스트를 통해 정보를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멀티모달 리터러시(Multimodal Literacy)라는 말이 언어 교육과 관련된 자료 등에 자주 등장한다. Mills & Unsworth (2017)는 '멀티모달 리터러시'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멀티모달 리터러시’는 ‘다양한 매체의 텍스트를 해독하는 능력’이라고 풀어 말할 수 있다. 기존의 인쇄물이나 화면에 나타나는 글로 된 텍스트를 해독하는 능력을 넘어서 다양한 매체의 텍스트를 이해하고 표현하는 능력이다. 여기서 다양한 매체의 텍스트는 발화(음성으로 전달되는 발화), 제스추어, 글, 음악, 수학 기호, 그림, 사진 이미지 또는 디지털의 동영상등을 의미한다. 이제 인터넷과 모바일 기술 발달로 많은 사람들에게 디지털 이미지와 다양한 미디어상의 정보 공유는 일상생활이 되었다. 점점 많은 사람들이 온라인 플랫폼이나 인스턴트 메시지 앱을 활용하여 사진, 영상, 음악 등등 다양한 매체의 텍스트를 공유한다.


미국의 교육은 이런 시대적 상황 및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멀티모달 리터러시’를 키우려 애쓰고 있다. 예전에 글로만 된 텍스트를 읽고 이해하던 능력을 넘어서 음성언어, 수학적 식이나 기호, 다양한 시각 자료 등 다양한 범주의 의미전달 매체를 통해 이해하고 표현하는 능력에 집중하고 있다.


❚미국 대학원 수업시간에 매번 하던 일

그렇지만 이 멀티모달 리터러시는 그리 거창하거나 특별한 능력은 아니다. 기존의 문자나 음성 언어로만 하던 정보나 의견 교환을 좀 더 다양한 매체로 확장시켜서 수행하는 것이다. 비록 매체의 종류가 다양해졌지만 그 이면에 핵심이 되는 역량은 정보를 구조화 하고 효율적인 방식으로 표현하는 능력이다. 5년간 미국교육대학원 석사와 박사 과정의 수업에서 다양한 과목을 이수하였다. 각 과목들은 각기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었지만, 주어진 주제에 관해 각자 리서치를 하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기본적인 에세이 쓰기, 수업 중 프리젠테이션하기, 온라인 토론방에서 토론하기, 유튜브 동영상 제작하기, e-포트폴리오 만들기, 줌을 이용한 화상 컨퍼런스 참여하기, 설문조사 결과 통계처리 하여 발표하기, 다양한 모둠별 과제 등이 기본적으로 학습자인 내가 수행한 것들이다. 이런 다양한 과제들은 주제는 달랐지만, 모두 하나의 공통적인 역량을 키우고 있었다. 바로 다양한 매체를 통한 정보 수집, 구조화, 다양한 매체로 표현하는 능력이다. 물론 다 영어로 이루어져야 한다. 나의 모국어인 한국어는 쓸 수가 없는 상황이다. 나는 진정으로 멀티모달 리터러시를 그것도 영어로 키우도록 요구 받았던 것이다. 폴더 폰을 쓰다가 미국 유학을 간 40세의 늦갂이 유학생에겐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조금씩 나아지는 나를 발견했고 배움에 대한 즐거움도 생겼다.


❚우리 대한민국 아이들에게도 ‘멀티모달 리터러시’ 영어 수업을 시도해보기로

그런 개인적인 경험과 나름의 성취감을 느낀 미국 유학을 끝내고 온 나로서는 나의 영어 수업에서도 거창하게는 아니더라도 소위 ‘멀티모달 리터러시’를 향상시키는 수업활동을 시도해보고 싶었다. 특히 이번 학기에는 영어에 관심이 있는 중3 친구들 9명을 원어민 선생님과 함께 90분간 방과후 영어 수업으로 지도를 하게 되었다. 원어민 선생님이 있어서 우리는 모든 이야기를 영어로 나누는 환경이 조성되었다. 수업의 시퀀스는 다음과 같다.

1. 모두 9명이 둘러 앉아 10분간 영어 원서 동화책을 한 명씩 소리 내어 읽기.

2. 원어민 선생님이 내용 확인 질문을 영어로 하시고 우리 아이들은 대답하기.

3. 총 9명을 A(5명)팀, B(4명)팀으로 나누기,

4. A팀은 원어민 선생님과 본 교실에 있고 B팀은 나와 옆 교실로 이동하기.

5. 각 팀 내에서 2명~3명씩 짝을 만들어 총 4개의 다른 주제의 글을 각 짝모둠에게 하나씩 지정하기. 4개의 글은 연애 상담 편지글, 뇌의 발달에 관한 과학적인 설명이 담긴 글, 스쿠버 다이버로 유명한 사람에 관한 글, 미국 여성 자선활동가에 관한 글 등으로, 글의 전개 방식이 다소 다르다.

6. 약 30분간 파트너와 동일한 글을 읽고 글의 전체 구조를 핵심 키워드중심으로 칠판에 정리하기. 총 4개 소모둠은 글의 전개방식이 각기 다양한 형태로 글을 정리했다.


7. 칠판에 정리된 것을 사진으로 찍어서 카톡 채팅방에 공유한 후 원래 교실로 돌아오기.

8. 본 교실에 친구들은 칠판에 미리 정리한 것을 짝과 함께 영어로 발표하고, 옆 교실로 갔던 친구들은 카톡방에 올린 사진을 화면에 띄워서 발표하기.

9. 총 4개의 소모둠이 각자 영어 프리젠테이션을 할 동안 친구들은 경청하기.

10. 발표가 끝나고 발표자에게 질문을 몇 가지 던지기.

11. 발표의 좋은 부분을 칭찬해주기.

12. 각 4개의 글에 대한 발표가 끝난 후 해당 글에 대한 독해 문제를 풀고 각 모둠은 자신이 맡은 글의 문제의 정답을 알려주고 추가 설명을 영어로 해주기.


❚멋지게 해낸 친구들

처음으로 해보는 시도라서 원어민 선생님과 나는 아이들의 능력을 예측하지 못했다. 처음으로 이런 미션을 받은 친구들이라 애초에 30분 정도로 예상한 준비 시간은 좀 더 늘려줬어야 했다. 하지만 2명이 하나의 글을 발표하는 것에 대해서는 자신감을 보였다. 남앞에서 뭔가를 영어로 발표하는 그 떨림과 도전에 대한 작은 설레임등을 그들의 눈빛에서 볼 수 있었다. 마치 어릴 적 학교 놀이를 하듯이 짝과 함께 앞에서 영어로 발표를 할 때 우리는 최대한 미소를 띄우며 고개도 끄덕여주고 응원을 해주었다. 최악의 프리젠테이션은 대본을 그냥 읽는 것이라 미리 귀뜸을 해서 그런지, 친구들은 칠판에 쓴 키워드만을 가지고 영어로 문장을 구성하면서 발표를 해나갔다. 발표는 크게 1)Topic에 대한 소개, 2)Topic에 대한 결론, 3)그 결론으로 가는 전개 방식에서 세세한 설명으로 나뉘었다. 발표가 끝나면 나와 원어민 선생님은 그 세 가지 중 미흡한 부분에 대한 follow-up질문을 해서 발표한 내용에 대한 요지와 자신의 생각을 영어로 말하도록 했다.


❚소꼽놀이 같은 수업이지만 우리는 ‘멀티모달 리터러시’를 키우는 중

평상시 영어 수업에서는 교사인 내가 설명하고 학생들은 그저 듣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번 방과후 수업에서 나와 원어민 선생님은 그저 조력자로서의 역할을 철저하게 했다. 발표 준비기간 내내 아이들은 바쁘다. 서로 의논을 하며 중심 내용을 어떤 방식으로 정리할 것인지 의견을 조율하는 모습, 그리고 각자의 파트를 나누어서 각자의 몫을 열심히 하는 모습, 진지하게 영어로 프리젠테이션하는 모습은 그 하나하나가 나에게는 감동이었다. 말없이 듣기만 하는 학생들에게 이런 잠재력이 있었음을 발견하고 기뻤다. 친구들이 읽는 내용이 시험에는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그 친구들은 시험에 나오기 때문에 공부한 것이 아니라, 순수한 배움의 동기만으로 그렇게 성실하게 수업에 임한 것이다. ‘멀티모달 리터러시’가 너무 거창하게 멀게 느껴지는 말이지만, 오늘과 같은 수업에서도 우리 아이들은 듣기, 읽기, 말하기, 쓰기의 4skill을 통합했고, 단지 글자만이 아닌 다양한 기호나 시각적 도구를 그 전달 매체로 선택해서 각자의 전달내용에 맞게 조직화했다. 결론은 심플한 영어 발표인데 뭐가 그리 대단할까 싶겠지만, 이런 영어 발표를 준비하는 그 이면에는 글을 읽고 이해하고 구조화하기와 같은 hard skill뿐 아니라 협업능력, 시간관리능력, 용기, 맥락에 맞는 의사소통기술 등의 soft skill이 요구된다. 첫 시도치고는 대단한 성과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어민 선생님도 아이들의 모습에 많이 놀라셨다. 한 학기 동안 이런 패턴으로 방과후 수업을 운영할 예정이다. 총 10회의 수업을 마치고 난 이후 그 아이들이 과연 언어 장벽을 넘어 생각을 전하는 것에 대한 자신감을 얼마나 많이 키울지 기대가 된다.


❚참고 자료

Mills, K. & Unsworth, L.(2017). Multimodal Literacy.

https://doi.org/10.1093/acrefore/9780190264093.013.232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