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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숙경 May 09. 2022

수평선의 차가움, 수직선의 따뜻함

수직선, 수평선, 그리고 대각선, 이것은 선의 일반적인 분류 기준입니다. 칸딘스키 역시 직선을 이 세 가지로 구분해요. 물론 칸딘스키가 대하는 직선의 세 종류는 수학적 견해와 같을 수 없고 우리가 알고 기억하는 직선과 차이가 있습니다.


“1. 직선에서 가장 단순한 형태는 수평선이다. 인간의 상상 속에서 이 수평선은 그 위에 서서 움직일 수 있는 지평과 같은 면이나 선에 해당한다. 수평선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반듯하게 계속 뻗어 나가는, 차가운, 무언가를 싣고 있는 바탕이다. 그래서 차가움과 편평함이 이 선의 기본 울림이 된다. 그러므로 차갑고 무한한 움직임의 가능성을 지닌 최고의 간결한 형태로 지정한다.


2. 수평선과 비교하여 내외적으로 완전히 상반된, 또 수평에 대하여 직각으로 서 있는 것이 수직선이다. 수평선의 편평함이 수직선의 높이로 대체된 것이므로 수평선의 차가움은 수직선의 따뜻함으로 대체된다. 즉 수직선은 따뜻하고 무한한 움직임의 가능성을 지닌 최고의 간결한 형태이다.  


3. 직선의 셋째 유형은 대각선인데 수평선과 수직선으로부터 동일한 각으로 균등하게 기울어진 도식적인 선이다. 이 기울기의 상태가 곧 대각선의 내적인 울림으로 차가움과 따뜻함의 결합이다. 따라서 대각선은 차갑고 따뜻한, 무한한 움직임의 가능성을 지닌 최고의 간결한 형태이다. … 이것 외의 모든 직선들은 대각선에서 벗어난 것에 불과하다. 차고 따뜻한 성향의 차이가 이 선들의 내적 울림을 결정한다.”


위의 구분에서 눈여겨볼 것은 온도의 차이입니다. 만약 수평선이 수직선으로 향한다면, 수평선의 차가움이 대각선의 차고 따뜻함을 거쳐 수직선의 따뜻함에 도달하는 일련의 변화로 이해할 수 있겠지요. 이것이 반복되면 그림과 같은 직선의 원형 도식이 만들어지고요. 그런데 여기에서 논란이 되는 것은 대각선입니다. 45°의 각, 달리 말해서 직각을 반으로 나눈 각을 가진 선만 대각선에 해당된다는 겁니다. 칸딘스키는 이 외의 선을 자유로운 직선으로 따로 분류해 놓고 있어요.


기하학적인 직선의 원형(수직선, 대각선, 수평선) 


직선의 원형 


대각선과 자유로운 직선의 가장 큰 차이는 온도에 있어요. 수평선과 수직선의 차가움과 따뜻함을 대각선은 반반씩 공평하게 나누어 갖게 되므로 대각선의 온도는 중간지대로 균형을 유지할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자유로운 직선은 사정이 다른 겁니다. 이 직선들은 온도에 있어서 결코 균형을 이룰 수 없다는 사실에 칸딘스키의 관심이 모아집니다. 


그는 이 자유로운 직선에도 두 부류가 있음을 간과하지 않아요. 그것은 그림에서 보듯 면의 중심을 통과하는 선과 중심과 상관없이 아무렇게 널려 있는 선입니다. 전자는 단순해 보이고 후자는 상대적으로 복잡해 보이지 않나요? 이러한 감각적인 느낌에도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이유가 있다는 것을 칸딘스키는 확인해 보입니다. 


중심을 통과하는 자유로운 직선과 비 중심적인 자유로운 직선


칸딘스키는 비 중심적인 자유로운 직선에 특수한 능력이 있다고 합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지금껏 온도 차이로 서술했던 선의 성질에 색채가 등장하기 시작하죠. 먼저 수평선과 수직선의 색을 알아보겠습니다.  


칸딘스키는 수평선에 검정을, 수직선에 하양을 결부시키는데 검정과 하양이 색상환 밖에 있는 일차적인 색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 자세히 알아보기로 하고, 아무튼 온도를 중심으로 검정과 하양을 관찰한다면 칸딘스키는 하양이 검정보다 더 따뜻하다고 생각한 거지요. 적절한 표현은 아니지만 색이 없다는 의미로 무채색이라고 불릴 만큼 색채의 침묵이 진행되는 곳이니 검정과 하양은 침묵하는 색이라는 게 칸딘스키의 유추입니다. 따라서 검정과 하양의 수평선과 수직선도 침묵하는 선이라는 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이에 비하여 비 중심적인 자유로운 직선은 무채색이 아닌 다채로운 색과 견줄 수 있겠지요. 칸딘스키가 특수한 능력이라고 말한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에요. 다시 말해서 비 중심적인 자유로운 직선이란 색채가 살아 있고 검정이나 흰색과 확연하게 구별되는 특별함이 있다는 겁니다. 칸딘스키는 여기에 노랑과 파랑을 차출합니다. 


노랑과 파랑은 앞으로 나아가려는 것과 뒤로 물러서려는 서로 반대되는 긴장을 한꺼번에 다 지니고 있어요. 이 또한 순수 도식적인 직선들(수평선, 수직선, 대각선)과 구별되는 특징으로 평면과의 관계를 여실히 드러내는 셈이에요. 왜냐면 기본 직선들은 자신의 긴장을 면 위에서 펼쳐야 해요. 평면과 아주 돈독한 관계에서만 그 긴장의 진가가 발휘되기 때문이죠. 


 이에 반하여 자유로운 선, 특히 비 중심적인 선은 면과의 관계가 느슨해요. 그래서 칸딘스키는 노랑과 파랑의 긴장을 여기에 불러온 것입니다. 아무튼 중심을 벗어난 자유로운 직선들의 긴장과 다채로운 색채 사이에는 어떤 유사성이 있는 게 확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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