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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숙경 May 06. 2022

힘의 양상 - 선

지금까지 우리가 본 것은 옴짝달싹 않고 정지해 있는 점이었어요. 이 점은 스스로 문을 닫고 자신 안으로 들어가 침잠하는 상태, 중심 집중적인 긴장 상태를 말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것들이 흐트러지면 점도 덩달아 소멸하는 것일까요?   

 

점이 사라지는 데는 두 가지 요인이 있어요. 우선은 점의 크기가 커짐으로 겪게 되는 내부의 변화입니다. 점이 커지면 중심 집중적인 긴장이 상대적으로 완화되는 건 뻔한 일이죠. 하지만 외적 요인 때문에 생기는 변화는 치명적이에요. 완전히 점이 소멸되니까요. 바로 바깥쪽에서 어떤 힘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죠. 


힘이란 어떤 형태로든 압박이 가해진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고정된 점, 움직임 없는 점에 외부에서 어떤 힘이 작용해 오면 점은 움직일 수밖에 없는 것이죠. 이에 대한 칸딘스키의 이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힘은 화면 속에 박혀 있는 점을 밖으로 꺼내 오고, 화면 위에서 어떤 방향이 되든 밀쳐낸다. 이어서 점의 중앙 집중적인 긴장은 파괴되고 점이 사라진다. 그 결과 새로운 존재가 살아난다. 또 다른 법칙을 갖고 자치적인 삶을 살아가는 존재, 그것은 ‘선’이다.”  


선이란 점에 작용된 어떤 힘의 결과인 셈입니다. 선은 점의 정적을 깨우며 비약을 준비하고, 두 관계는 최대의 대립각으로 치닫지만 상태의 전환은 불가피해 보여요. 이미 외부에서 어떤 힘이 점을 밀치기 시작했으니까요. 이제 점으로써 간직했던 긴장과 부동의 휴식은 막을 내리고 그 자리에 선이 나타납니다. 


이렇게 선이 등장하는 와중에 칸딘스키가 응시한 것은 힘의 양상이에요. 힘에는 하나인지 둘인지 그 이상인지 그 수가 있고 여기에 덧붙여 방향도 계산해야 하니 그 관계가 단순해 보이지 않아요. 그런데 칸딘스키는 선의 모든 형태는 결국 두 가지 경우뿐이라는 겁니다. 그것은 힘이 하나인지 두 개인지를 살피는 것인데, 이 두 경우가 다양한 선의 양상을 모두 포용한다는 것이에요. 물론 두 힘의 작용에는 이 힘들이 번갈아 작용하는지, 혹은 동시에 작용하는지로 세분화되기는 해요. 


단 하나의 힘에는 방향도 하나만 허락돼요. 고정된 방향으로 쭉 뻗어 나갈 수밖에 없는 거지요. 이렇게 하여 우리가 맞이하는 것이 직선입니다. 직선이 한쪽 방향으로 무한 질주해 나가는 성향을 갖게 된 데는 이런 배경이 있는 거예요. 


칸딘스키는 직선에 대하여 ‘직선의 긴장은 무한한 움직임의 가능성을 지닌 가장 간결한 형태를 제시한다.’라고 정리해요. 여기에 ‘긴장’에 관하여 자신의 관점을 특별히 부연하는데 일상적으로 ‘움직임’이라고 칭하는 것들을 긴장이라는 말로 대체하겠다는 거죠. 통상적인 개념이 그에게는 편치 않은 겁니다. 그의 의도와 달리 이해될까 염려도 되는 것이고요. 


아무튼 칸딘스키에게 긴장이란 이런 것이에요. 조형요소는 제각기 고유의 힘을 소유하는데 이 힘을 어떻게 전개할 것인지 결정하는 장치와 같은 것으로 이해하면 무리가 없을 것 같아요. 따라서 움직임과 방향성이 긴장을 구성한다는 논리도 생각해 볼 수 있겠지요. 


점과 선에 칸딘스키가 말하는 긴장을 적용해 보면 그가 말하려는 의도가 와 닿을 겁니다. 점에서는 방향성의 긴장이란 생각은 애초부터 하지 않아요. 오로지 움직임의 긴장만 갖겠다는 거죠. 하지만 선의 긴장에는 움직임과 방향 모두 존재합니다. 덕분에 직선은 수직과 수평이라는 구분도 가능한 것이고요. 


이를 바탕으로 칸딘스키는 수평선, 수직선, 대각선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는데 너무 길어지니 다음으로 미루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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