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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숙경 Mar 21. 2022

마네의 실험

엄청난 격론은 인상주의의 출현을 예고합니다.

격론과 함께 등장한 인상주의의 


<올랭피아>는 르네상스의 거장 티치아노의 <우리비노의 비너스>를 리메이크한 것입니다. 올랭피아는 실존했던 인물로 당시 파리에서 이름난 매춘부였습니다. 티치아노의 모델 역시 실존인물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티치아노는 인물을 실물의 미모만 빌려와서 여신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실존을 상실한 존재라는 것이지요. 


<올랭피아> 에두아르 마네, 1863년


마네는 올랭피아를 통하여 지금까지 관찰과 감상의 대상으로 여겨졌던 여성에게 자의식을 불어넣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야말로 전통적인 여성상에 도전한 것이지요. 하지만 이러한 관점은 한쪽으로 밀어 놓고자 합니다. 이는 사회 구조나 페미니즘 등 많은 갈래로 파생 발전되는 주제이니까요. 아무튼 마네의 시선이 얼마나 파격적이었지 다시 확인하게 되는 대목입니다. 


<풀밭 위의 점심식사>와 <올랭피아>의 공통점은 어두움과 밝음의 급격한 대조입니다. 부드럽고 화려한 색채에 익숙했던 당시의 분위기를 떠올린다면 이 대조는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마네는 자신이 채색주의자임을 공표하려는 듯 선명하다 못해 야생적이고 자극적인 색으로 채워 나갑니다. 


색 면은 덩어리로 따로따로 분리되며 두껍게 그리고 과감하게 채색됩니다. 찬란한 햇빛이 한꺼번에 들이쳐 비치고 있는 듯한 눈부신 상황입니다. 하얀색 리넨 위에 누워 있는 올랭피아는 크고 창백한 색 면 덩어리로서 검게 칠해진 배경과 뚜렷하게 구분되지요. 특히 꽃다발을 들고 있는 흑인 하녀와 검은 고양이는 관람자들을 혼란스럽게 합니다. 검은 배경에 검은 물체라니! 


격렬하게 대비되는 두 종류의 색조 다음에 알아차려야 하는 것은 세부적인 묘사의 생략입니다. 꽃다발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장미색과 초록색 등 단순한 색 덩어리들이 발라져 있을 뿐입니다. 눈동자나 입술 등도 색의 터치 정도로 마감되지요. 모든 것이 단순화된 덕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물체는 사라지고 색 면만 관찰됩니다. 그러나 몇 걸음 뒤로 물러나 보십시오. 그림 속의 물체는 다시 살아나서 광채를 띠고 대상은 살아납니다. 


이러한 마네의 그림은 엄청난 격론을 불러일으키며 인상주의의 출현을 예고했습니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빛의 반사에 매료되었고 반사된 빛 자체를 묘사하고 싶었습니다. 그들이 자연광선이 풍부한 야외를 찾은 것은 당연합니다. 물과 바람과 구름이 많은 곳에서 빛은 예민하게 반응하니까요. 인상주의자들은 빛의 파장에 따라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이전의 그림 작업 대부분이 실내에서 이루어졌음을 감안하면 이 또한 파격인 것입니다. 


인상주의자들에게 자연은 대상이 아니라 움직이는 현상입니다. 이들이 대상을 관찰하고 본 것을 그대로 표현한다는 점에서 사실화처럼 여길 수 있지만 실상은 그와 반대입니다. 이제껏 유지되었던 전통적인 시각과 상반된 세계의 문을 두드린 것입니다. 이제 회화는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클로드 모네 

루앙 성당 - 아침. 1894


모네는 같은 자리에서 시간만 달리 한 모습의 그림을 여러 장 남겼습니다. <루앙 성당>, <짚단> 등이지요. <루앙 성당>을 모두 보며 비교해 보려고 했으나 파일이 너무 커서 옮길 수 없었습니다. 다행히 이 그림은 올릴 수 있네요. <짚단>은 후에 언급될 기회가 있으니 그때 함께 보기로 합시다. 










인상주의의 업적은 회화 역사 이례 변함없이 고수해온 주제를 밖으로 밀어낸 데에 있습니다. 대상이라는 실체가 사라지고 오로지 빛의 반영만 남긴 것이지요. 즉 빛의 변화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색채의 요동이 그림의 주제요 소재입니다. 


이 같은 이유에서 화가는 같은 자리에서 같은 모습을 반복해서 그립니다. 바뀌는 것은 오로지 시간입니다. 이 일관된 관심이 빛에 의해서 대상이 사라져 버리는 경계까지 데려가는 것이지요. 그것은 분할된 터치와 뒤섞인 색의 얼룩으로 표현된 눈부신 빛의 산물, 빛의 퇴적입니다.  


자! 우리가 여기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형태가 으깨지고 부서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반면 형태를 조직했던 작은 입자들은 세상에 나올 준비를 합니다. 추상미술이 기지개를 켜고 있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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