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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숙경 Mar 24. 2022

그리스 고전 형식은 프리패스인가

복제되는 그리스 스타일 

회화는 자연을 관찰하고 해석하는 장르입니다. 천재성을 갖은 화가들은 남다른 천부적인 시각으로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한 듯 경이로운 세계를 우리에게 선사합니다. 하지만 선구자는 시대의 조롱거리가 되기 일쑤입니다. 적대적인 경멸이나 비방까지 이들의 몫입니다. 이렇듯 새로운 예술은 언제나 거부됩니다. 


인상주의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새로운 형식은 대중에게 낯선 것 이상으로 비평가와 수집가에게도 곤혹스러운 것이었습니다. 화가들은 인정받지 못했고 가난하고 궁핍했습니다. 르누아르와 피사로 같은 온화한 그림의 예술가들도 거의 굶어 죽다시피 했으니 당시 예술에 대한 이해란 얼마나 무지한 것인지 안타까운 일이지요. 


화병 1872 르누아르

 

퐁트와즈 1882 피사로


도대체 예술이란 무엇일까요? 당시 프랑스 인상주의를 적극적으로 지지하였던 소설가 에밀 졸라의 글을 소개합니다. (「현대회화의 원리」 미진사. P.59)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사람들이 갖고 있는 일반적인 생각이 있다. 그것은 예술가의 개성과는 무관한 절대적인 미가 존재하는데 이것은 모든 예술가가 추구해야 하는 완전무결한 이상적 차원으로서 모든 예술가는 정도의 차이는 있더라도 능력껏 거기에 도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준 하에서 사람들은 공통분모와도 같은 미 개념이 존재한다고 가정한다. 이 공통분모는 모든 작품에 적용되어 결국 어느 정도로 여기에 접근했느냐에 따라 작품의 질적 가치가 판가름 나는 것이다. 

그리스의 고전 미술은 그야말로 유일한 미의 규범으로 취급되었으며 따라서 인류가 제작해온 예술은 그리스의 미술 형식을 얼마나 닮고 있느냐에 따라서 그 가치를 인정받아왔다. 


아...! 그리스 스타일을 숭상하는 습관은 역사가 길군요.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고대 로마시대에도 미에 대한 기준은 그리스를 향하고 있었으니까요. 당시 그리스 미술품은 수없이 복제됩니다. 오늘날 우리가 대하는 그리스 미술품 중 로마의 복제품이 많답니다. 고대 그리스의 것은 훼손되어 사라졌지만 복제품이 남겨진 것이지요. 


그러나 고대 로마는 그리스 미술을 복제하는 데에 목적이 있었습니다. 바로 공동체의 결속이지요. 왜냐면 그리스 조각은 민주주의적 공동체를 표현하는 상징이었으니까요. 로마 공화정 역시 시민의 덕을 강조하려는 의도에서 그리스 미술 형식을 사용했던 것입니다. 요즘식으로 하면 공익광고 정도에 해당되겠지요.  


하지만 로마 제정 말기에 이르면 달라집니다. 그리스 신전의 조각상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미술품은 개인의 소유물로 점령당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로마 근교의 히드리아누스 황제의 별장입니다. 공동체의 자부심을 느끼게 하던 조각상들이 부자들의 저택이나 휴양지를 장식하기 시작합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병사나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는 신화 속의 인물이 여기저기 서 있지요. 그저 멋져 보이라고 즐거우라고 갖다 놓았을 뿐입니다. 좋다면 뭐든 가리지 않는 속물스러움은 인간 누구에게나 기본 사양으로 탑재되는 것인지 생각하게 합니다.  


이러한 분위기는 지금도 널려있습니다. 당장 눈을 돌려 보십시오. 나름 장식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곳에 그리스식 조각 한 점정도는 언제나 한 자리씩 배당되니까요. 이는 대중이 미술에 거는 기대가 그리스 형식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사용자의 요구가 한결같은 거지요. 


전통처럼 굳어진 이 습관은 현상으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습관은 우리의 생각을 지배합니다.  새로움은 언제나 불편하게 다가오고 인정하기 싫은 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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