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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숙경 Aug 04. 2022

몬드리안의 언어

몬드리안 그림에서는 굳이 감정을 소환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잘 짜인 구도, 균형, 절제, 비례 등이 모든 것을 압도하며 감성을 쫓아내기 바쁘다. 이토록 무덤덤한 객관화된 화면은 어쩌면 몬드리안이 바라던 바일지 모른다. 그래서 떠오른 질문 하나, 예술에서 중요한 건 감정보다 이념인가? 


노랑, 파랑, 검정, 파랑 그리고 회색의 콤포지션. 1921년


예술이 감정의 표출이라고 생각하는 건 낭만주의 이후 산업자본주의 산물이고, 예술은 대체로 시대 이념의 파수꾼이었다. 예술은 기득권층을 보위하며 발전해왔는데 여기에 합류하지 않는 부류는 시대마다 있기 마련이다. 덕분에 발상의 전환이 가능한 것이고 의식도 진일보한다. 하지만 이 새로운 시각의 황당함도 시간이 필요할 뿐 이내 주의, 주장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예술은 사회와 밀접하다. 예술감상에 있어서 사회 환경, 의식, 산업 등등의 관점을 염두에 두어야 직감적인 공감 지수도 높아진다는 말이다. 


몬드리안의 작업이 균형으로 일관된 데는 당시 유행한 신지학과 밀접하다. 그의 일생을 좌지우지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신지학에 궁금증을 갖지 않을 수 없는데 특히 사후에 남겨진 몇 안 되는 유품 중 하나인 신지학에 관한 소책자가 호기심을 증폭시킨다. 평생 금욕적인 생활을 이어온 습관이 그의 주변을 말끔하게 정돈된 공간으로 만들었다. 다 읽은 책은 주변으로 넘기고, 편지도 읽은 즉시 찢어 버릴 정도로 무엇도 쌓아 두는 일이 없었기에 남겨진 유품은 특별하다. 


신지학을 검색하면 그리스어 테오스(신)와 소피아(지혜)라는 말에서 유래된 것으로 신적 지혜로 번역된다고 한다. 신지학이라는 용어는 일반적인 의미에서 고대 그리스의 플라톤, 영지주의, 신플라톤주의, 중세 북유럽의 신비주의, 르네상스 시대의 사변적 신비주의, 독일의 낭만주의 철학까지 그리고 인도 사상까지 더하면 그 견해는 풍부하다. 


이 다양성에도 공통된 특성이 있는데 우리가 주목할 것은 심오한 영적 존재가 있다는 것, 즉 직관, 명상, 계시 등을 통해 영적 실재와 직접 접촉이 가능하다는 신비주의이다. 따라서 신지학은 물질과 정신을 이원론으로 나누면서 물질을 적대시하고 정신을 지향하는 금욕주의적 성향을 띠며 새로운 정신적 유토피아가 도래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여기에서 예술은 본능을 정화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콤포지션 A. 1921년


몬드리안도 정신적 세계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그는 신지학의 영향을 받아 물질세계는 하등의 가치도 없으며 물질은 정신의 본질 파악하는데 방해가 될 뿐이라고 보았다. 그는 자연현상을 농축하여 절대적인 규칙으로 정제할 줄 알았다. 이렇게 하여 탄생한 것이 몬드리안의 언어이다. 


나는 몬드리안의 그림을 세상 만물의 균형으로 본다. 그의 완벽한 화면 분할이 감정까지 분할하여 표출하도록 유도하기에 어떤 하나의 감정이 앞서지 않는 평정심을 찾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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