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숙경 Aug 29. 2022

단편적인 것에 뺏긴 시각

자연은 언제나 옳은가?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세상에 좋다는 것 다 갖다 대도 자연만 한 건 없다고 감탄한다. 과연 그러한가, 자연은 언제나 우리들에게 수동적이고 고자세 아닌가, 우리는 자연을 통해서 무엇을 발견하는 걸까, 등등 의구심이 생긴다. 


이 물음의 답을 찾다 보니 ‘관계’의 문제에 다다르게 된다. 모든 존재는 관계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특히 인간인 우리는 관계에 민감하고, 때로는 누구보다 특별한 관계의 주인공이고 싶다. 성향에 따라 차이가 있을 뿐 모두는 이 관계망 속에서 살아가므로 ‘자연’ 역시 관계 맺기의 상대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 말은 너와 나의 자연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왜냐면 우리는 서로 다른 곳을 보며 살고, 서로 다른 지점을 부각해서 보기 때문이다. 이렇듯 다름을 이해하지 않는다면 충돌은 불 보듯 뻔하지만 대개는 이 관계망 설정에 매몰되어 관계 자체를 볼 여력이 없다.  


충돌의 최상위는 극명한 대립이다. 몬드리안은 이런 대립에서 평형상태를 찾는다. 그가 주장하는 불변의 상태가 수직과 수평의 만남인 것을 보면 이에 대한 설명은 충분하다. 어디 이뿐이랴? 색채와 크기도 이에 해당한다. 파랑은 빨강에 대립함으로써 비극적인 것을 제법 감소시킬 수 있다는 게 몬드리안의 생각이다. 


대립의 평형상태라…, 개별적인 것들의 대립은 분명히 조화롭지 못함을 가리키는데 어떻게 평형을 이룬다는 건지 의아하다. 그런데 이에 대한 몬드리안의 대답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우리가 사소하고 단편적인 것에 붙잡혀 있어서 전체를 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몬드리안의 평형상태는 전체를 관망, 관조하는 것을 조건으로 한다. 그는 <자연의 리얼리티와 추상적 리얼리티>를 통하여 우리들이 무엇을 어떻게 보는지 돌아보게 한다.  


‘우리가 바라보는 모든 것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그러나 이것은 일종의 한계가 있는 아름다움이다. 단독으로 있는 무언가를 볼 때, 우리는 그것을 전체로부터 분리시켜 본다. 그러므로 대립은 우리를 비껴간다. 더 이상 관계를 보지 않고 오직 색채의 형태만 본다. 우리는 주어진 색채와 형태를 보며 이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형태가 아무리 완벽해도 또는 그 색깔이 아무리 선명해도 우리의 지식은 제한된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사물을 특정한 것으로 또는 분리된 것으로 인식한다면, 우리는 모호함과 불확실성 그리고 상상하는 모든 종류의 것들 사이에서 표류하게 될 것이다.’



붉은 풍차, 1911.


<붉은 풍차>는 앞서 말한 파랑과 빨강의 대립을 보여준다. 몬드리안은 이 대립 덕분에 비극이 감소된다고 하는데 물론 두 색에서 비롯되는 균형을 말하는 거다. 자칫 색채가 뿜어내는 에너지 때문에 혼란에 빠질 수 있지만, 서로를 견제하는 힘이 비등하기 때문에 어떤 쪽으로도 쏠리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우리는 색채의 외적인 표현에 빠지기 일쑤라 관계보다 단편적인 색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우리가 대상을 추상적으로 보지 못하는 원인을 찾는다면 이 또한 타당한 이유가 되지 않을까.  


<붉은 풍차>는 몬드리안의 1911년 작품으로 아직 대상이 남아 있는 시기이다. 수평과 수직으로 단순화되지 않은 때라 대각선을 많이 가지고 있는 풍차의 모습에 색의 대비까지 겹쳐져 아무리 균형을 이야기한다고 해도 수긍할 수 없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풍차라는 형태로 인하여 푸른색보다 붉은색이 압도적으로 보이고, 교차되는 대각선은 안정보다 불안을 조성하는데 더구나 위쪽에 걸려 있어 이 감정을 강화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훗날 대상과 사선이 몬드리안의 화면에서 사라져야 하는 이유로 이해된다. 


몬드리안은 언제나 관계에 관심을 쏟는다. 색 자체보다 색채로 인한 관계에 집중할수록 비로소 순수한 색을 발견하게 될 거라는 데 참 어려운 주문이다. 단편적인 것에 머물지 말고 한 발 물러서서 더 큰 덩어리를 찾는 연습이 필요한 것 같다. 본질을 발견하는 일은 전체를 볼 줄 아는 안목에서 비롯된다는 깨침을 몬드리안으로부터 얻어 간다. 

작가의 이전글 자연은 예술이 아니며, 자연이 예술이 될 필요도 없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