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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숙경 Sep 27. 2022

클레의 회화 요소

낭만, 사람들은 저마다의 낭만을 설계한다. 여유로운 일상을 꿈꿀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다. 비극은 너와 나의 낭만이 다를 수 있다는 걸 수용할 수 없다는 사실에 있다. 우리는 다름을 의논해야 하고 이해와 양보가 필요하고 무엇보다도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쫓는 무엇에게 감정부터 내주고 만다. 낭만은 오롯이 꿈의 몫으로 남게 된다. 


예술에서 낭만은 이러한 사람들의 모습과 심리를 여실히 드러내는 것에 의미가 있다. 역사에서 낭만주의는 사회 체제의 대변혁을 기반으로 등장한 예술사조이다. 계몽주의의 이성 인식, 프랑스 대혁명의 실패, 절대왕정의 이완, 신흥 부자 계급의 세력화 등 그동안 겪어보지 못했던 세상 풍경은 가치관의 수정을 요구하며 새로운 가치관으로 낭만주의가 형성된다. 그리스 로마의 고전 대신 자국의 상황, 자신의 상태에 몰두하기 시작한 것이다. 고전적 규범의 붕괴는 당시 사회의 불신과 불안을 의미한다. 덕분에 자연의 관조 그리고 인간 내면의 모습을 주제로 한 낭만주의의 흐름은 예술 사조의 주류가 된다. 추상의 토양이 흙갈이를 마치고 다져지기 시작한 것이다. 


추상은 존재의 이유를 묻는 작업이다. 이제 회화는 무엇을 어떻게 그릴지 내용과 묘사를 떠나 ‘회화란 무엇인가?’라고 물어야 한다. 이것은 ‘나는 누구인가?’와 같은 질문이다. 모범답안이 있을 수 없는 이 질문의 의도를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세상에 둘도 없는 각자의 진리일 거다. 회화라고 다를 바 없다. 화가들은 회화의 요소인 선, 면, 색은 물론이고 심지어 재료에 대한 분석까지 마다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므로 화가의 식견과 안목이 그림의 그릇이 된다. 주의 주장이 난발하는 시대에 자유로운 표현만으로 예술이 될 수 없다. 거침없이 드러내는 개인적 취향이 예술일 수 없는 이유, 예술의 어려움이다


클레는 회화를 구사하는 요소, 즉 선, 밝기, 색을 특이한 방식으로 해석한다. 그것은 이 요소들에 드리워진 제약에 관한 것이다. 클레는 회화에 적용되는 어느 정도 제약적인 형식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에게 선은 회화 요소 중에서 가장 많은 제약을 갖고 태어난다. 선으로 표현되는 건 오로지 크기를 나타내는 실체, 즉 측정에 관한 것으로 예를 들면 길이, 도형의 각도, 원의 반지름, 초점의 거리 등이다. 선은 측정 가능한 치수를 동반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클레는 선의 특징을 ‘크기’라고 규정한다. 이 논리는 만약 측정이 불가능한 선이 있다면, 그것은 절대적 순수성이 결여된 선이라는 클레의 생각을 입증한다. 


밝기, 즉 명도는 클레에게 그림자를 나타내는 명암이 아니다. 그는 명도를 검정과 하양 사이에 있는 수많은 농담의 질서라고 해설한다. 한쪽이 하양의 기운이 풍부하게 되면 다른 쪽은 검정으로 치우치며 여러 단계의 무게감을 드러낸다. 검정은 하양을 중심으로, 하양은 검정을 중심으로, 또 이 모두가 회색을 중심으로 무게를 비교하게 한다. 그래서 클레는 명도의 특성을 ‘무게’로 규정한다. 


마지막 요소인 색에 관하여 클레는 앞서 말한 두 가지와 전혀 다른 특성을 갖는다고 말한다. 크기나 무게로만 나타낼 수 없다는 거다. 예를 들어 같은 넓이와 밝기를 조건으로 한 노랑과 빨강은 무게를 재는 저울이나 크기를 재는 자로 측정될 수 없음을 말한다. 클레는 색에 각각의 이름이 붙여진다는 건 색에 주어진 본질적인 차이로 판단하여 색의 특성을 ‘질’이라고 규정한다. 


이렇듯 클레는 세 가지 회화 요소를 통하여 크기, 무게, 질, 세 가지 형식의 수단을 증명했다. 이제 이 근본적인 형식이 어떤 관계를 맺으며 회화로 완성될 것인지 관찰할 차례이다. 이들이 서로 다름에도 불구하고 상호관계를 맺으며 소통하고 있음을 클레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색은 일차적으로 ‘질’을 표명하지만 색의 값과 밝기까지 지니고 있기에 ‘무게’이다. 또 색은 한계와 넓이를 갖고 있으며 이 모두는 측정될 수 있으니 ‘크기’이다.  명도는 ‘무게’이지만 범위와 경계를 지닌다는 점에서 ‘크기’이다. 그러나 선은 오로지 ‘크기’에 머문다. 


빨간 풍선, 1922.


클레는 <빨간 풍선>에 일말의 형상을 남겼다. 풍선은 헬륨 가스를 머금고 있는지 화면 중앙에 붕 떠있다. 다음에 눈에 띄는 건 편편한 지대 위에 자리한 어두운 사각형, 무게감 때문인지, 호위하는 양 옆의 도형 때문인지, 고도로 압축된 풍경은 풍선이 아니라 이 사각형에서 비롯된다. 어두운 명도는 무게 외에 깊이까지 드러내며 입구 역할을 톡톡히 해내 좌우의 형태에 활짝 열린 문을 대입해도 될 만큼 밀접한 연결 고리를 제공한다. 들어가 볼까? 호기심이 발동을 건다.


동네의 건물과 나무가 어른거리며 떠오르는데 선, 색채, 명도의 협업으로 완성된 명쾌한 비례 감각의 옷이 입혀져 있다. 선이 아니면 색은 뭉개져 보일 수 있다. 선의 역할에 힘입어 색은 면으로 확장된다. 색조로 말하는 색은 명도를 대동하며 화면을 유동적으로 만든다. 그 덕에 낮과 밤이 교차하는 모호한 공기가 채워진다. 클레는 이를 통해 형태와 색의 교류를 실험하고 싶었나 보다. 빨강, 파랑, 노랑의 삼원색과 동그라미, 네모, 삼각형의 기초 도형이 모두 차출된 풍경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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