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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숙경 Oct 05. 2022

파울 클레가 지목한 '의식의 결정체'

클레가 꼽은 선, 색, 명도는 모두에게 제공되는 회화 요소이다. 이것은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재료로서 마음먹은 대로 그리고, 칠하고, 밝기를 조절하는데 쓰인다. 하지만 마음껏 사용할 수 있다고 해서 마냥 자유로운 건 아니다. 여기에는 쓰임새에 대한 고민이 스며들어 있다. 그것은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지, 어떤 질서를 구사해야 할지, 어떤 방향을 제시해야 할지 등등의 과제이다. 직관이 회화의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고 모든 것을 관장하지도 않는다. 방향과 목적이 없다면 회화 작품이 될 수 없다. 행여 감성에 의하여 예술이 완성된다고 알았다면 그것은 오산이다. 감성은 예술을 특징 지우기는 하지만 예술의 모든 것을 대변할 수 없다. 


회화는 시각적 영역인 만큼 방향과 목적도 시각화해야 한다. 이 과제를 담당하는 게 구성이다. 이처럼 구성이란 관념적인 설계를 담당하고 수행하기 때문에 일찌감치 추상성을 갖추고 나타난다. 마음이 게으르면 구성이라는 회로를 놓칠 수밖에 없는 지점에 도착한 것이다. 


선택이란 관계 맺기를 의미한다. 이것은 내가 너의 이름을 불러주어서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는 김춘수의 시 ‘꽃’처럼 내밀한 관계의 출발을 알린다. 수많은 조형요소 가운데 어느 하나를 지목한다는 건 기존의 질서를 떨쳐내고 새로운 명령에 임할 요소를 찾는 일이다.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집중해야 할 절대적인 과업인 것이다. 그래서일까? 클레는 구성을 의식의 결정체라고 했다. 


변주곡, 1927.


 클레는 직선을 선택해서 <변주곡>을 완성해 보였다. 그는 확대되거나 파생되는 생각의 고리를 직선의 정방형에 싣는다. 그를 감동하게 한 대상은 직선으로 분리되고 조형 언어로 가공되어 그의 생각을 서술한다. 직선의 이야기, 여기에서 클레의 생각을 샅샅이 읽어내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우리는 각자의 눈높이에서 그림을 보는 것이므로 각자의 세계관으로 클레의 사연과 소통하면 된다. 감상의 주체는 ‘나’이기 때문이다. 


조형언어는 감동과 감정으로 이루어진다. 감동이란 새로운 차원으로 나아가는 것이며 감정은 이를 지지해 주는 조각들이다. 감동이 만들어낸 조형적 시각은 특수 안경이라도 착용한 듯 대상에 내재되어 있던 아주 특별한 요소를 볼 수 있게 한다. 이에 대하여 클레는 가지런히 정돈된 규칙이 그동안의 은둔을 마치고 자신을 드러낸다고 고백했다. 그는 당연히 이러한 상황을 표현하고 싶어서 궁리하는데 분류, 어울림, 요약, 축소 등 고심하며 합당한 형태를 찾아 제작하다 보면 살찐 모습의 풍부함을 자랑하는 요소를 만나게 된다는 경험담을 들려준다. 


<변주곡>은 직선의 나라, 직선의 유용함을 과시하려는 것인지 모두는 직선으로만 소통한다. 균등해 보이는 무덤덤한 평면은 정방형으로 나뉜 덕에 안정감까지 보유한다. 직선의 경직성은 온데간데없이 증발되었고, 제목 값을 하려는 건지 미세한 움직임을 간직한 선은 유순하기 그지없다. 손끝의 감각이 그대로 보존된 선이다. 마음에 드는 선 하나를 골라 응시해 보라, 선의 미세한 떨림과 흐름의 진동에 합류하게 될 것이다. 


다가감과 멀찌감치 물러섬의 차이는 이 그림을 감상하는 묘미 중의 하나이다. 클레의 말처럼 형상의 연상이 덧씌워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서로 다른 이미지를 연상할 수 있다. 따라서 제각기 다른 시각으로 다르게 감동한다. 정방형의 칸 하나만으로도 무궁무진한 연상과 더불어 무한의 세계로 날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클레는 이곳에 심어 놓았다. 


화가는 구성을 통하여 자신의 관점이 드러나도록 조정한다. 이를 수행하려면 분석적인 시각이 필요하고 전문가다운 판단과 표현도 필요하다. 이미 말했듯이 클레가 구성을 가리켜 의식의 결정체라고 한 데는 이를 염두에 둔 것으로 생각된다. 이와 더불어 클레는 구성의 역할과 비중을 음악에 빗대어 말했다. 그것은 주제의 모티브를 결정하는 것과 닮았다는 것이다. 


선정된 요소들의 그룹 형성과 배치는 독특한 분위기를 조성하며 화가의 의도를 드러낸다. 구성을 통하여 힘의 근거를 확보한 회화 요소는 화가의 주관적 요소로 거듭나는데, 이들의 활동 반경은 의식에서 무의식까지 가리지 않는다. 클레가 구성을 여러 차원의 교차라고 한 말은 이를 두고 한 것이다. 아무튼 구성을 통하여 화가는 의식 밖의 새로운 차원까지, 또는 새로운 차원의 수립까지 모두를 포괄하는 무한의 가능성을 시각화한다. 


클레는 구성의 결과로 드러난 형태가 구체적인 이미지의 형상이든 아니든 개의치 않았다. 그는 추상적 형태에서도 구름, 별, 나무, 동물 등 구체적인 형상을 연상할 수 있고, 연상이 감동을 돕는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우리의 연상력도 새롭게 꾸며지고 새로운 옷이 입혀진 구성의 일원이 아닌지, 연상 자체도 무시할 수 없는 구성력의 발휘가 아닌지. 아무튼 클레는 구체적인 이미지에 대하여 너그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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