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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숙경 Jan 06. 2023

칸딘스키의 <섬세한 긴장> 읽기

섬세한 긴장, 1923, 칸딘스키


칸딘스키는 자와 컴퍼스를 사용해야 가능한 작품을 선보였다. 화면 위에 등장한 모두는 갇히지 않은 상태로 화면 위에 널려 있다. 어슷한 사선의 구도는 편안함을 갖고 온다. 적당한 기울기가 감정을 소모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직각은 고정된 값으로 경직을 구사하고, 둔각의 기울기는 어떤 쪽으로든 쓰러져야만 하는 갈등을 초래한다. 살랑대는 봄바람에 기대어 노젓기를 그만둔 사공을 떠올릴 정도로 가볍고 평화로운 분위기는 살짝 기운 기울기를 가진 사선 덕분이다. 게다가 이 선은 정 중앙을 가로지르지 않는 예의까지 갖추고 있지 않은가? 


이런저런 사정을 안아 주는 반원의 포용, 그 안에 정돈된 격자무늬는 경직되어 있지 않다. 스스로 변형할 줄 아는 지혜, 변형이 허용된 자유, 이 모두가 나름의 법칙과 범위 안에서 존중을 실행하고 있는 터이다. 덕분에 세계는 더할 나위 없이 질서 정연하고 깔끔하다. 


2023년은 이처럼 서로 존중하는 해였으면 좋겠다. 타인에 대한 감정, 주변에 대한 배려, 공공의 선을 위한 누군가의 노력과 희생 등은 섬세한 긴장 없이 지나치기 쉬운 감각이다. 예수가 잡혀가던 날 밤, 잠에 취한 제자들에게 "깨어 있어라"라고 한 것은 단순히 졸음을 물리치라는 의미는 아니다. 여기에는 의미심장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도전적이고, 진취적이고, 실천적이고, 무엇보다도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했던 예수가 그리운 시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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