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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숙경 Jan 19. 2024

고흐의 의자

고흐는 시장성 있는 인사이다. 그렇지 않고는 그에 관한 그토록 많은 유형의 책과 물품과 인쇄물이 가공되어 유통될 수 없다. 화가들 가운데 고흐만큼 회자되는 이는 드물다.  


그러나 고흐의 현실은 아득했다. 실상 그의 말에 귀 기울인 이는 동생 태오 말고 거의 없었다. 맑은 영혼을 소유한 사람은 세상과 타협이 어렵다. 고흐의 찬란한 색채와 극적인 인생사 자체가 오늘날 그를 셀럽으로 만든 것이지 그의 생각과 말에 의미를 두는 이는 적다. 


고흐는 의자 가장자리에 몇 가지 소지품이 놓았다. 그의 그림자이다. 사람은 흔적을 남긴다.  


의자, Vincent van Gogh, 1888, 73x91.8cm.


 초록은 하양에서 검정에 이르는 회색톤을 머금고 있다. 생기발랄한 초록의 본능이 현실의 턱을 만나기라도 한 듯 불투명한 장막을 입는다. 세상은 가라앉았고, 푸른빛 사색이 공기 중에 안개처럼 퍼진다. 그러나 화면을 꽉 채운 의자는 하고자 하는 무엇이 있다. 존재감, 누그러뜨릴 수 없는 의지가 고흐의 신념과 함께 이 의자 위에 모셔져 있다. 고흐는 의자 뒤에 'Vincent'라는 이름을 정확하게 쓰고 묘사했다. 


의자는 사선 구도에 실려 있다. 덕분에 생동감을 얻은 의자는 스스로 당당하게 제 모습을 시위한다. 타일의 선과 의자 다리 살이 서로 어긋난 사선의 얼개를 자아내며 의자에게 에너지를 제공한다. 이 의자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 움직일 수밖에 없는 구조의 의자이다. 고흐는 자신의 신념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신념은 삶의 과정을 통제하고 지도한다. 그 얼굴은 나름대로 꽤 윤리적이고 고답적이며 사뭇 진지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이 신념이 어디에서 왔을까? 왜 지니게 되었을까? 고흐에게만 의자가 있는 게 아니다. 나에게도, 또 그대에게도 의자가 있다.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키워진 우리는 널리 알려진 항목을 부단히 암기하며, 무비판적인 습득을 덕목으로 여겨며 한 시절을 지낸다. 어김없이 가려지는 우열로부터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엄격한 시기를 거쳐 성인이 된다. 그것이 얼마나 가학적인지, 또 공공연한 폭력인지 깨닫는 건 다른 다른 문제지만, 아무튼 이러한 교육은 갈등이라는 후폭풍을 몰고 온다.


우리는 학습된 것 중에 마음에 드는 것을 선택한다. 깊이 호흡하기보다는 확신하는 누군가가 말했으니까, 책에 쓰여 있으니까, 여론이 그렇다고 하니까, 일반상식이니까 등등의 이유로 선택되고, 이것은 알게 모르게 누군가의 신념이 되어 폭군처럼 휘둘리기도 한다. 비판적 사고를 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자신의 생각과 다른 이견을 오답으로 또는 물리쳐야만 하는 적군으로 안다. 


비판은 비난이 아니다. 비판적 사고란 단순히 옳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왜 그러한지, 어떤 논리를 지녔는지, 객관적인 추론이 어떠한지, 주장한 바가 실제 실천이 되는지 살피는 일이다. 그러므로 신념을 비판적 시각으로 검열하는 건 스스로 독단에 빠져 있는지 살피는 일이고, 편견에 맞서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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